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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23화 (12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23화

    28. 9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3)

    “사장님, 잠시라도 쉬셔야 합니다. 벌써 며칠째……

    직원은 며칠째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일하고 있는 최우철 사장을 걱 정했다.

    그의 불면증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라도 자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쉬어야 한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는데, 최우철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단 1분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단 하루의 휴가를 위해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끌어다 해야 했기 때문.

    본래 일정만으로도 충분히 살인적 이었는데 거기다 ICMCOC와의 스 폰서 계약까지 체결하는 문제로 인해 업무량이 지나치게 부여된 것이었다.

    특히나 회사의 모든 일을 확인, 최 종 결재하는 그의 업무 스타일상 ‘단 하루’를 비우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됐어. 하루니까 결재 서류는 딜레 이 해놓고.”

    “네.”

    부하 직원에게 말한 뒤 시간을 확 인한 최우철이 서둘러 옷을 갖추었다.

    “저녁 두 시간은 연락 안 될 테니 그 안에 있는 일은 메일로 보내놔. 나중에 확인할 테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둘러 사무실을 벗어난 최우철은 곧장 이동하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이동을 하는 데에만 허용된 시간의 절반을 사용하여 잘츠부르크의 대축 전극장에 도착.

    ‘늦진 않았군.’

    최우철은 서둘러 콘서트홀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그를 마중 나온 안내원 덕분에 자리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피로함에 눈을 감고 있을 때 박수 소리가 들렸다.

    무대를 보자 다섯 명의 아이가 각 자 악기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최우철이 가장 사랑하는 그의 아들 이 피아노 앞에 긴장한 채 마음을 다잡았다.

    죽은 아내를 닮은 눈과 곧은 심정.

    아내를 땅과 가슴에 묻을 때 혼자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최 우철은 아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마 음껏 시켜주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음대생이었던 아내와 달리 최우철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아내와 어린 아들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유일한 행복이었다.

    목적도 아주 작은 즐거움도 없이 맹목적으로 달려들어야만 했던 그의

    삶에서 아내를 만나고 아들을 만나 며 지키고 싶은 게 생긴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덧없이 떠나갔다.

    모든 걸 이뤘다고 생각했건만 아내 가 병으로 죽은 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의 명예와 권력, 그 많은 재산이 모두 소용없었다.

    그런 것들보다 아내가 훨씬 더 소 중한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때부터였다.

    최우철은 최지훈에게 집착하기 시 작했다. 그마저 잃는다면 그에게 남 은 것이 없었기에 아들에게 유해한,

    아들이 꿈을 이루는 데 방해되는 요 소는 모조리 배제했다.

    만일 그의 집사가 ‘배도빈 덕분에 도련님이 즐거워하고 발전하고 있습 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처리했을 것이다.

    비록 유장혁에 의해 본인이 망가지 더라도 말이다.

    아들이 노력해 출전한 크리크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 부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이 돌아가 움직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왜곡된 집착이 그에게 매일 속삭였다.

    아들을 위해 움직이라고. 자기는

    돌보지 말고 그보다 아들을 위해 움 직이라고.

    최우철은 그렇게 본인의 거짓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

    ♪♫♬

    연주가 시작되었다.

    최우철은 아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아들의 연주회에 때맞춰 도착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는지 피곤이 몰려들었다.

    ‘활기차군.’

    나른한 와중에 들리는 부드러운 멜 로디는 최우철을 안심시켰다. 그를 달래듯 전개되는 슈베르트의 송어는 피아노가 합세하면서 좀 더 활기를 띄었다.

    최지훈이 내는 피아노 소리는 마치 송어가 헤엄을 칠 때마다 생기는 물의 파동 같았다.

    곡은 어느새 4악장의 중반부에 들 어 섰다.

    피아노는 보다 활기차게 보다 전면 에 나서서 그 활기찬 분위기를 이끌며 ‘힘’을 주었다.

    그런 뒤 다시 현악기가 드러나며 다시금 위기.

    그러나 또 한 번 분위기는 밝게 전환되었고 그렇게 피아노와 현악기 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또는 함께 어울리며 위기와 활기를 번갈아 들 려주었다.

    최우철이 드물게 미소 지었다.

    다음 날.

    우리 가족은 히무라, 사카모토와 함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즐겼다.

    여러 건물과 심지어는 야외 이곳저 곳에서 연주회 또는 상영회가 있어 어딜 가든 음악이 가득했다.

    음악만큼이나 사람이 가득하여 이 작고 아담한 도시는 활기가 넘쳤다.

    “도빈아,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어머니와 손을 잡고 걷는데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잘츠부르크요.”

    “하하. 그래. 잘츠부르크지. 예전에 봤던 기억 안 나니?”

    "..."

    200년 전쯤에는 한번 온 기억이 있는데, 그걸 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모호한 마음이 표정에 드 러난 모양이다. 아버지가 확인하듯 이 다시금 물으셨다.

    “그렇지? 생각나지?”

    “그게.”

    “사운드 오브 뮤직. 도빈이가 재밌게 봤었잖아.”

    “……아.”

    무슨 말씀을 하시나 싶더니 영화의 배경이 이곳이었다고 말씀하시는 듯.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과연 영화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하실 만한 말이다.

    “영화도 찍었지만 모차르트가 여기서 태어났었대.”

    그건 알고 있다.

    그가 잘츠부르크의 영주에게 몹쓸 대우를 받고 당시 음악활동에 제약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

    ♪♫♬

    좀 더 걷자 야외에서 현악4중주가 연주를 하고 그 앞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나왔다.

    “분위기 좋네. 아침은 여기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주 좋지. 배가 고파 더는 못 걸을 것 같았거든.”

    사카모토의 엄살에 히무라가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도빈아!”

    마침 아침에 보자고 했던 최지훈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른들에게 인사를 한 다음 내 곁 에 앉았다.

    “잘 잤어?”

    “그럭저럭. 넌?”

    “나두!”

    음식을 주문한 뒤 최지훈이 속삭였다.

    “어제는 아버지가 좀 기분이 좋으셨나 봐.”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얘는 너무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다행이네.”

    “응. 근데 식사도 덜 하시고 금방 돌아가셨어. 피곤해 보이시던데 괜찮을까?”

    그래도 별일 없어 보여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어른들의 대화를 들어보 니 최지훈의 부친이 금방 돌아간 듯 했다.

    “어머. 인사도 못 드렸는데.”

    “허허. 사장님도 무척 아쉬워하셨습니다. 이건 도련님과 함께해 주심 에 대한 선물로 꼭 전달해 드리라 고.”

    “이런 걸 다……. 정말 많이 바쁘 신가 봐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먼저 나온 빵을 크림에 찍어 먹는데 최지훈이 물었다.

    “근데 빈 필하모닉하곤 언제 연습 해?”

    “내일?”

    “엄청 기대된다. 구경하러 가도 돼?”

    “글쎄.”

    빈 필하모닉이라.

    사실 베를린 필의 객원 연주자로 활동하기 전에는 빈 필에 대해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사카모토 료이치가 30대일 적에 악장으로 활동한 곳이기도 했고, 조 금 더 어렸을 땐 한스 리히터라는 지휘자가 녹음한 내 교향곡을 들은 적 있다.

    “사카모토, 빈 필에 대해 소개 좀 해줘요.”

    “음?”

    “베를린 필에 있기 전에는 빈 필에 도 있었다면서요.”

    “허허. 벌써 30년도 넘는 일이구 만. 아마 내게 듣는 것보단 직접 경 험하는 게 좋을 것 같네.”

    30년이라니.

    처음 봤을 때 60대 초반이었던 사카모토의 나이가 벌써 70 가까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걱정되었다.

    푸르트벵글러도 토마스 필스도 모 두 이미 적지 않은 나이라는 걸 생 각하면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홍승 일이 몸이 좋지 않은 걸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도빈아, 우리 밥 먹고 사진 찍으러 갈래?”

    “사진?”

    “응. 오스트리아 전통 의상을 입고 기념 촬영을 하는 데가 있대. 예전 음악가들의 복장을 체험할 수 있어.”

    그 광대 복장이라면 사절이다.

    “싫어.”

    “가자아아~ 가발도 있대. 모차르트 그림 보면 뱅글뱅글 있잖아.”

    그 웃기지도 않은 가발은 더더욱 사절이다. 19세기에 살았을 적에도 그딴 가발은 쓰지 않았다.

    “싫어.”

    “우리 처음 같이 여행 온 거잖아.”

    “센다이도 같이 갔잖아.”

    “아무튼〜”

    칭얼거리는 최지훈을 무시하며 빵을 입으로 가져갔다.

    “도빈아, 그러지 말고 한번 가보자. 재밌을 거야. 추억도 되고.”

    어머니께서도 최지훈에게 합류해 설득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응? 도빈아〜”

    “……알았어.”

    뭔가 매우 꺼림칙하지만 수락했다.

    식사 후 최지훈이 끌고 간 곳에는 과거 사람들이 입던 옷과 소품이 있는 곳이었다.

    최지훈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하니 점원이 반갑게 맞이했다. 한쪽은 호리호리한 여성이었고 다른 한쪽은 턱이 갈라지고 수염 자 국이 있는…… 여성인가 보다.

    치마를 입고 있으니까.

    “어떻게 찍어줄까?”

    “모차르트 가발 있어요?”

    “그럼. 자자, 저기서 갈아입자.”

    “귀여운 아이네. 같이 여행 왔니?”

    다른 직원이 물었다.

    “네.”

    “어쩜. 둘이 너무 친해 보이네. 벌 써 같이 여행 오고.”

    “약속했거든요.”

    솔직히 최지훈은 떨어질 줄 알았는 데 결국에는 둘 다 크리크 결선에 올라 지켜졌다. 다행이다.

    “누나가 예쁘게 해줄게. 자, 들어가 자.”

    그녀가 이끄는 곳으로 들어가자 흰 블라우스에 조끼, 넓은 치마가 사방

    에 걸려 있었다.

    좀 더 들어가니 예전에 귀족가 영 애들이 입던 옷이 있었는데, 품질은 영 아니었다.

    그래도 예전에 입었던 옷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면 몇 벌 사서 가는 것 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남성복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친구랑 페어가 좋겠지? 이건 어때?”

    점원이 걸음을 흰 머리카락의 가발을 보여주었다. 빳빳하게 굳은 저 가발을 써야 하다니. 정말이지 최악 이다.

    “가발은 됐어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러지 말 고 한번 써 봐. 옷은…… 이게 좋겠다.”

    목에 치렁치렁 레이스가 달리고 게 다가 새빨간 옷이라니. 스카프라면 몰라도 저렇게 정신없는 옷 따위 입 고 싶지 않다.

    “화장도 할까?”

    “싫어요.”

    “친구는 할 텐데?”

    “도빈아〜 엄마 들어가도 돼?”

    때마침 원군이다.

    “네.”

    어머니께서 드레스 룸에 들어오시 더니 감탄하셨다.

    “어머나. 예쁜 옷 정말 많네.”

    “마담, 이건 어때요? 귀여울 것 같지 않아요?”

    “어쩜. 도빈아, 이거 봐봐. 잘 어울 릴 것 같은데. 어때?”

    레이스가 목으로도 부족해 손목에 도 있다. 아무래도 지원군이 아닌 듯하다.

    “언제 또 이런 걸 입어보겠니.”

    언제 또가 아니라 다신 입고 싶지 않지만 어머니께서 로코코 시대 때 한량이나 입었을 법한 옷을 들고 간 절히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었다.

    “……한 번뿐이에요.”

    “어머님, 이건 어떠세요? 제복도 있어요.”

    “예쁘네요, 도빈아, 이것도 한번 보자.”

    방금 한 번뿐이라고 했는데, 어머 니와 점원이 신이 나서 이것저것 내 몸에 대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다.

    “어머. 도빈아, 너무 예쁘다.”

    “핳핳핳핳핳핳!”

    “껄껄껄껄. 잘 어울리는데? 이건 사진으로 찍어야겠구만.”

    “푸흣

    어머니가 내 모습을 보곤 깜짝 놀 라셨다. 아버지는 숨을 넘어갈 듯 웃으셨고 사카모토 료이치는 멋대로 사진을 찍는 중이다.

    히무라는 웃음을 참으려 노력하지 만 그럴 수 없는 모양이다. 결국 호쾌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옆으로 와.”

    “치워.”

    “사진 찍어주시는 분이 붙으래.”

    사진사가 작은 벤치에 앉은 나와 최지훈 앞에서 양손을 모은다.

    가까이 붙으라는 뜻 같은데 도저히 어울려줄 마음이 안 들었다.

    “치〜즈.”

    “치〜즈.”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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