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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22화 (12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22화

    28. 9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2)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개막일이다.

    어머니 아버지와 히무라 그리고 사카모토 료이치와 함께 오스트리아의 또 하나의 음악 도시, 잘츠부르크를 찾았다.

    “지훈이가 오늘 공연을 한다고?”

    “네. 첫 무대래요.”

    “대단하네. 지훈이 아버님은 안 오 시나? 인사 한번 드려야 할 텐데.”

    “그러게요.”

    나도 그건 좀 궁금하다.

    콩쿠르 결선에도 안 온 사람이 이 런 데 올까 싶지만 말이다.

    “히무라, 어디로 가야 해요?”

    “이쪽으로 가야 할 거야.”

    “껄껄. 기대되는구만.”

    최지훈이 사카모토의 말을 들으면 긴장해서 얼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아도 어젯밤에 실수하면 어떻게 하냐며 밤새 나를 괴롭혔기 에 두 사람이 만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크리크 콩쿠르가 끝나고 사카모토 료이치는 평소처럼 나를 대했다.

    먼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히무라를 통해 그가 어떤 일을 한지 알고 있어서 고마울 뿐이었다.

    그러나 친구가 내색하지 않았기에 나도 조용히 이 감사함을 언젠가 갚 아줄 것을 다짐하며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축전극장 (Grosses Festspielhau s) 이야.”

    큰 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상아색 외벽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건물이 있었다.

    히무라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리는 페스티벌 하우스(Festspielhäuser) 의 메인 콘서트홀로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가 있는 극장이라 한다.

    ‘표를 구하는 사람이 많네.’

    세계에서 가장 큰 클래식 음악 축제 중 하나라더니, 표를 구하지 못 한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종이에 표를 구한다고 적어두고 들 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엄마, 저 사진 찍어주세요.”

    “자기야, 이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독일어도 들렸지만 대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정말 전 세계에서 찾는 축제라는 것을 관광객들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었다.

    대부분 표정이 밝다. 다들 잘 차려 입고 있는데 꼭 예전의 귀족 사교회 장 같은 느낌이다.

    ‘멋진 건물이네.’

    깔끔한 외관만큼이나 내부도 독특 한 분위기를 풍겼다.

    짙은 갈색의 목재 벽과 돌을 깎아 쌓아둔 형태의 기둥 그리고 곡선을 이루는 천장 등 여러모로 ‘클래식’ 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안도 예쁘네요.”

    “그러게. 도빈이도 여기서 연주하는 거야?”

    나는 잘 몰라서 히무라를 보았다.

    “하하하. 네, 아마 그럴 겁니다. 내 일은 빈 필과 미팅이 있으니 조율한 뒤 일주일 뒤에 협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그런가 보다.

    “하하. 빌헬름이 자네가 빈 필과 협연한다는 걸 듣고 얼마나 화를 낼 지 궁금해지는구만.”

    “이미 냈어요. 배신자라 하더라고요.”

    “껄껄. 속 좁은 친구 같으니. 걱정 말거라. 빌헬름은 내게도 배신자라 하니까. 말버릇 같은 거야.”

    잔뜩 성을 내긴 했지만 누구보다도 내 우승을 축하해 준 사람이었기에 걱정하지는 않는다.

    “이제 들어가도록 하죠. 공연 시작 1 0분 전입니다.”

    히무라가 앞장서 우리를 안내했고 콘서트홀 안으로 들어서자 안내원이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나를 보곤 반갑게 미소 지었다.

    호텔리어나 안내원들의 서비스 정신 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정말 팬이 많아졌다는 걸 이럴 때 좀 더 실감할 수 있다.

    ‘팬에게는 친절해야지.’

    그렇게 인사라도 할까 생각할 때 그녀가 상냥하게 물었다.

    “아동용 보조 의자를 가져다 드릴 까요?”

    “……필요 없어요.”

    그런 것 따위 필요 없어진 지 오 래다. 이 무례한 안내원에게 뭐라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축전극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무 대 중 하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대단한 규모였다.

    초연은 크리크 국제 콩쿠르에서 결 선에 오른 아이들이 연주하는 것으로 꾸며지는데, 기다리고 있자니 무대 위에 햇병아리들이 모습을 드러 냈다.

    최지훈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독주가 아닌 모양이네요?”

    아버지께서 히무라에게 물었다.

    “네. 독주는 부문별 우승자에게만 주어져서요. 상위 입상자들은 다른 부문의 입상자들과 팀을 꾸리게 됩니다.”

    “그럼 세 팀이 나오겠네요?”

    “네. 하루에 한 팀씩 첫 무대에서 연주한다고 하네요.”

    짝짝짝짝 _

    어린 음악가들을 환영하는, 응원하는 박수 소리가 잦아들었고 고개를 숙여 인사한 아이들은 각자 악기 앞 에 자리했다.

    최지훈이 건반을 누르자 다들 악기를 마지막으로 조율하였다.

    악기를 조율하는 기계도 있어서 굳이 저럴 필요는 없지만 전통을 지키는 모습이다.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연주가 시작되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합을 맞추기 위해 다른 아이들과 연습을 해야 했기에 최지훈을 며칠 못 봤는데, 어떤 곡을 어떻게 연주할까 기대되었다.

    좡!

    다섯 악기가 동시에 음을 내고 이 어지는 피아노 그리고 더해지는 바이올린.

    ♪♫♬

    ♪♫♬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의 피아노 5중주 A장조, ‘송어’.

    힘차고 멋진 곡이다.

    햇병아리들이 그것을 제법 멋들어지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연주다.

    최지훈의 송어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나 역시 귀를 즐겁게 해준 연주에 감사를 표했다.

    “대단하네요.”

    “네. 확실히 수준이 높습니다. 전세계에서 모인 최상위권 아이들이니 까요.”

    “껄껄. 즐겁구만. 즐거워. 어떤가, 도빈 군.”

    “좋았어요.”

    재롱잔치란 느낌은 전혀 없다.

    훌륭한 5중주였다.

    피아노 콩쿠르 때문에 바이올린이 나 다른 부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는데 확실히 저쪽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한 모양이다.

    연주회를 듣고 주변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도빈아, 뭐 먹을래? 읽을 수 있지?”

    “네.”

    ‘오스트리아 하면 자허 케이크지.’

    주로 빈과 그 주변에서 만들어지는 초콜릿 스펀지케이크는 베를린에 있을 때 가끔 이승희가 사다 주어 즐 겨 먹었다.

    초콜릿과 케이크 그리고 살구잼의 조화가 예술적이다.

    “이거 먹을래요.”

    “그건 디저트잖니. 밥이 되는 걸 먹어야지.”

    다시 메뉴판을 보곤 고기와 야채가 든 슈트루델(Strudel)과 커피를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오스트리아의 크림은 무척 풍미가 깊어 커피와 함께 마시면 입과 영혼 이 행복해진다.

    “주문할게요.”

    “네, 마담.”

    사카모토 료이치와 히무라가 주문을 하고 어머니께서 우리 가족의 메 뉴를 읊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겐 고기와

    야채가 든 슈트루델을 주세요.”

    “음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과일 주스도 있나요?”

    “네. 백포도와 자몽이 있습니다.”

    “도빈아, 뭐 마실래?”

    “……백포도로 마실래요.”

    “나는 자몽으로 하지.”

    “저도 자몽으로 주세요.”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내 의견은 가볍게 무시하신 어머니께 반항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백포도 주스 로 타협했다.

    와인과 같은 풍미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아쉬운 대로 만족해야겠다.

    곧 음식이 나오고 내 앞에 자몽 주스가 놓였기에 히무라와 잔을 바 꾸었다.

    “이거 괜찮은데? 도빈이가 주문을 잘했네.”

    내가 주문한 슈트루델을 맛 본 아버지가 감탄했다. 나도 빵을 조금 찢어 입에 넣었는데 확실히 좋은 솜 씨다.

    ‘어? 맛있는데?’

    입을 축일 겸 백포도 주스를 마셨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묘한 풍미를 느끼며 다시 한번 마셨다.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식사에 집중하고 있는데 공 연을 마무리하고 나온 최지훈과 집 사 할아버지가 도착했다.

    “어서 오렴. 집사님도 고생하셨어요.”

    “하하. 고생은요. 너무 늦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어서 앉으세요.”

    최지훈이 내 옆에 앉으며 눈을 초 롱초롱 빛냈다.

    “어땠어?”

    “잘하더라.”

    “정말?”

    “응. 60점 줄게.”

    “아싸! 드디어 60점을 넘었어!”

    “60점?”

    나와 최지훈의 대화를 듣던 히무라 가 물었다.

    “연주 점수요.”

    “어…… 그간 몇 점을 줬기에 좋아 하는 거야?”

    “작년까지는 30점이었어요!”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노력하면 점수가 계속 오 르는 걸요.”

    히무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헛 웃음을 지었다.

    “도빈 군의 점수가 박하구만. 나는 정말 즐겁게 들었네. 매우 활기찬 송어였어.”

    “도빈아, 사카모토 선생님이 뭐라 고 하신 거야?”

    “활기찬 송어였대.”

    “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분위기다.

    그때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집사 할아버지가 정중히 인사를 하 고 밖으로 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다들 신경 쓰지 않고 식사를 이어나 가는데 그가 돌아와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와 도련님은 이만 돌아가야 할 듯싶습니다. 사장님이 오셔서요.”

    “함께 식사하면 좋을 텐데.”

    “하하. 오붓하게 있고 싶으신 듯하 니 나중에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도련님, 가시죠.”

    “••••••네.”

    방금까지만 해도 밝게 웃던 녀석의 표정이 굳어진 것만 봐도 얼마나 아 쉬워하는지 알 수 있다.

    식사하는 내내 최지훈의 5중주를 두고 어떻게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 누었는데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자신을 알아봐 주는 어른들 사이에서 무척 즐거워했으니까.

    “내일 봐.”

    “응. 안녕히 계세요.”

    “아빠랑 즐거운 시간 보내렴.”

    그렇게 최지훈이 얼마 있지도 않고 떠나자 어머니께서 안타까운 듯 작 게 한숨을 쉬었다.

    “왜?”

    “지훈이가 안쓰러워서요. 표정 보셨죠?”

    “응. 아쉬워하는 것 같더라.”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같던데 걱 정이에요.”

    어머니의 말씀에 아버지가 큰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씀하셨다.

    “도빈이가 있잖아. 둘이 아주 친해 보이던데?”

    “네. 친해요.”

    그렇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첫 번째 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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