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20화 (120/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120화

27. 9살, 크리크 국제 음악 콩쿠르(5)

제1회 크리크 국제 콩쿠르 본선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앞으로 클래식 음악을 이끌어 나갈 아이들을 미리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도는 무척이나 높았다.

특히 본선부터는 콩쿠르가 공개되었기에 많은 사람이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하여 그들의 연주를 직접 감 상하거나 중계를 통해 그 광경을 보았는데.

단연 압도적인 시청률을 보인 것은 배도빈의 차례였다.

한국에서만 배도빈의 크리크 본선 출전 시청률은 29.3%.

오스트리아 빈 기준 오후 2시 30 분에 시작한 배도빈의 연주는 서울 에서 밤 9시 30분에 방영되었고 황 금시간대의 드라마를 제치고 당당히 동일 시간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특히, 배도빈이 두 곡의 쇼팽 발라 드 이후 연주했던 곡은 생전 처음 듣는 편곡의 ‘합창’이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는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면서 동시에 시청률 역시 35%를 넘어서고 말았다.

‘이럴 수가 있나.’

배도빈의 성장에 놀라고 반가워하 던 세계적 거장 사카모토 료이치마 저 허리부터 시작한 전율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9번 교향곡 D 단조.

베토벤이 남긴 마지막 교향곡이며 악성이 남긴 최고 최후의 걸작, 합창.

단연 베토벤이 일생을 바쳐 만들었다는 합창의 4악장이었다.

배도빈은 그것을 피아노로 편곡해 연주하여 순식간에 회장과 전 세계를 압도했다.

♪♫♬♪♫♬

♪♫♬♪♫♬

프란츠 리스트가 편곡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보다 좀 더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그러나 곡이 진행될수록 어마어마한 속주가 펼쳐졌다.

인간이 연주할 수 있는 속도인가.

음악 전문가들마저 이해하기 전에 그 때려 박는 듯한 ‘폭력’에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두둥!

배도빈이 마지막 음계를 연주하고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고 고개를 숙이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조차 조심스레 쉬어야 했다.

배도빈의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의 팔이 전율로 떨릴 때.

기나긴 여운을 뚫고 해일과 같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브라보!”

“브라보!”

누가 먼저라 할 것이 없었다.

콩쿠르 회장은 그 순간 단독 리사 이틀 현장이 되어버렸다.

배도빈의 연주는 전 국민의 관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배도빈의 정열적인 연주에 넋을 놓고 TV를 지켜볼 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감정은 한결같았다.

앞선 연주자들의 연주는 잘 치는 것 같지만 선뜻 감동이 없었다.

반면 배도빈의 연주를 들을 때면 조바심이 나고 애가 타며 가슴을 졸 이게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공감하기 쉬웠다.

자국민이 대단해 보이기 때문에 생기는 어떠한 애착일까.

아니면 배도빈의 연주가 다른 이들 과는 다르기 때문일까. 다르다면 무 엇이 다른가.

특히 마지막의 ‘합창 4악장’은 가 슴 속에서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벅차오르는 듯했다.

그 의문은 아이러니하게도 크리크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들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배도빈의 50분 프로그램을 모두 듣고, 심사위원진은 혼란에 빠졌다.

콘서트홀이 떠나갈 정도의 박수 소 리를 들으며 심사위원들은 배도빈의 연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구성을 본 적은 없었다.

언뜻 보면 성의 없이 보일 정도로 쇼팽의 발라드 세 곡을 쭉 이어 연주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마지막 곡은 지금까지 없었던 편곡.

프란츠 리스트가 편곡한 것도 아 닌, 배도빈이 직접 편곡한 곡이었기 에 어떻게 판단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배도빈이 들려주는 피아노는 분명 가슴을 움직였다.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폐부 깊이 스며드는 암울한 느낌과 그 끝에 전달되는 아주 큰 희망.

가장 큰 희망!

심사위원들은 결국 배도빈의 연주를 두고 어찌 판단해야 좋을지 의견을 나누기 위해 콩쿠르를 잠시 중단 하기로 운영위원회 측에 요청했다.

크리크 본선장 심사위원실. 위원들이 자리를 잡자마자 도요토미 류토가 말을 꺼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콩쿠르를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어떻게 이 자리에서 발표되지 않았던 곡을 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건 심사위원진 에 대한 도전입니다!”

‘쯧쯧.’

도요토미 류토의 발악을 들은 사카모토 료이치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렇게 볼 일이 아닙니다, 도요토 미 류토 위원.”

보리스 윈스턴이 나섰다.

“그럼 들어본 적도 없는 곡을 평가 하란 말씀입니까? 배도빈은 우리를 우롱하고 있는 겁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뭐, 뭐라고요?”

보리스 윈스턴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본 도요토미 류토는 짐짓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그를 시궁창의 쥐새끼를 보 듯 한심하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같은 일본인인 사카모토 료이치마저도.

“지금 다들 제정신입니까? 있지도 않은 곡을 가지고 콩쿠르에 나왔단 말입니다. 여기가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십니까!”

“그 입 다물게, 도요토미 류토.”

“사, 사카모토.”

사카모토 료이치가 일어섰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 연주를 듣고도 할 말이 그뿐인가! 자네가 정 녕 음악가라면 어찌 방금 배도빈의 연주에 감히 그런 망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옛정을 생각해서 더는 말하지 않겠네. 그러나.”

사카모토 료이치가 으르렁댔다.

“오늘 이후 또다시 개수작을 벌이 려 한다면 ICMCOCM가 자네뿐만 이 아니라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를 등지게 될 걸세.”

“무슨••••••!”

도요토미 류토가 도움을 청하듯 주 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다른 심사위원들이 한 명씩 일어났다. 사카모토 료이치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는 시위였다.

“이, 이것이 정녕 심사위원진의 뜻 인가? 당신들은 이 대회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어! 애초에!”

도요토미 류토의 잡소리를.

사카모토 료이치가 테이블을 내려 치며 끊었다.

“ICMCOC의 이념은 클래식 음악 계의 발전일세, 어리석은 친구여.”

“자네가 하는 짓이야말로 이 대회 의 의의를 저버리고 있어. 당치도 않은 협잡질로 음악계를 더럽히지 말게.”

도요토미 류토는 차마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협회에 서 가만히 있을 줄 아는가’라고 말 할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 가 이 콩쿠르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 되기 때 문이었다.

동시에 도요토미 류토 본인이 그 일에 가담하고 있다는 말이니 말이다.

“이 일은…… 정식으로 진정될 걸 세. 누가 옳은지는 그때 가서 밝혀 지게 되겠지!”

그러다 보니 일본의 상임 이사국으로서의 권한에 기대어 한발 후퇴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카모토 료이치가 그에게 다가가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코가 닿을 듯이 끌어당겨 눈을 마주하고 말했다.

“지금 네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 하는지 그 추악한 눈으로 잘 지켜봐라, 도요토미.”

어찌나 분했는지 사카모토 료이치는 이를 악물고 두 손을 떨어대며 말했다.

“너와 그 알량한 인간들 때문에 일 본은 유망한 피아니스트를 잃을 것 이고 일본 음악 협회는 고립될 거다. 그리고 한 피아니스트는 앞으로 위선자란 이름을 달고 살아가겠지. 바로 너와 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이 신성한 콩쿠르 장을 더럽히려는 놈들 때문에 말이다!”

모국인 일본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 하는 사카모토 료이치는 입술을 꽉 깨물고 그를 노려보다 이내 밀쳤다.

제1회 크리크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본선은 19세 이하, 전 세계에 서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10명이 진검승부를 벌이는 장이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이 자리에 선 그들 중 결선에 진출한 사람은 총 4명뿐.

전 세계 31개 국가에서 지원한 사람은 약 87,000여 명.

그들 중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에서 무대에 오를 기회 얻은 사람은 이들 4명뿐이었다.

촤륵!

크리크 본선이 치러진 콘서트홀 로 비에 결선 진출자 명단이 부착되었다.

Mr. Do-bean Bae 171

Ms. Elizaveta Tuktamysheva 148

Mr. Jaco ban Vertonghen 147

Mr. Ji-hoon Choi 146

“어엉어어엉끄억억엉.”

“……그만 좀 울어.”

“헉꺽허응헉어어어엉.”

‘울다가 죽겠는데.’

결선 진출자 명단을 확인한 최지훈 은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싶을 정 도로 오열했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누가 보면 떨어진 줄 알 것이다.

“도흑빈헉아헉.”

“왜.”

“흑학나쇼꺽어 엉쇼팽흐어 엉.”

“뭐라는 거야? 뚝 그치고 말해.”

"뚜우욱.”

한참을 더 꺽꺽 울어댄 최지훈이 엉망인 얼굴로 말했다.

“같이 나갈 수 있어. 끅. 쇼팽.”

“그래.”

그리고 동시에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

크리크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본선 결과 이후 언론은 뜨겁다 못해 터질 듯했다.

배도빈이 새롭게 편곡해 연주한 ‘합창 4악장’은 무려 3일 만에 조회 수 4천만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한국에서는 또다시 171점으로 결 선에 오른 배도빈에게 열광하며 ‘171점’을 배도빈 스코어라 부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금방 떨어질 줄 알았던 최지훈이 아쉬운 점수 차이로 4위를 기록, 그러나 결국 결선까지 올랐다는 데 환호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화제는 바로 심사위원진의 고발이었다.

심사 발표 이후 사카모토 료이치를 위시로 한 총 17명의 심사위원들이 심사위원 도요토미 류토의 부정을 ICMCOC에 고발했던 것이었다.

고발 내용은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정리되었다.

첫째 도요토미 류토가 특정 인물에 게 부당한 점수를 채점했다.

둘째 도요토미 류토가 특정 인물에 게 과도한 점수를 채점했다.

셋째 도요토미 류토가 특정 집단의 의뢰를 받고 앞선 두 사항을 진행했다.

크리크 국제 콩쿠르를 통해 다시 한번 클래식 음악계에 부흥을 바랐던 ICMCOC는 이와 같은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

즉시 대회 일정을 일주일 연기, 조 사단을 파견하였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

지난 7월 14일.

저희는 사카모토 료이치 외 16명 의 심사위원으로부터 도요토미 류토의 부정행위를 신고 받았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위해 설립된 국제 클래식 음악 경연 조직위원회의 정신에 위배될 수 있는 사항이라 즉시 조사단을 파견.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해당 성명서를 통해 사건 경 위를 밝히고 ICMCOC의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도요토미 류토는 지난 두 차례 특 정 참가자에게 의도적으로 최하점을 부여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대해 조사단은 도요토미 류토 에게 설명을 요구하였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나치게 빠른 연주라 음악을 받아 들일 시간조차 없었으며 감정이 과한 면이 있다. 특히 미발표 곡을 콩쿠르에서 시연함으로써 심사위원과 참가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아 최하점을 주었다.’

ICMCOC는 도요토미 류토의 의견 이 정당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그 의견을 참작했습니다.

다만 그가 내세운 근거가 최하점을 부여할 이유로는 타당하지 않았으며 비슷한 사유를 가진 참가자에게는 9 점을 주었다는 점과 두 차례 최하점을 같은 인물에게 주었다는 점을 감 안하여, 도요토미 류토에게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여 조직위 수칙 제9항 ‘모든 참 가자는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아야 하고 심사는 공정해야 한다’와 제9 항 1조 ‘이를 어긴 자에게는 즉시 중징계를 내린다’에 의거.

도요토미 류토의 심사위원직 정지를 명령했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고 투명한 크리크 국제 콩쿠르 진행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국제 클래식 음악 경연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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