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19화 (119/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19화

    27. 9살, 크리크 국제 음악 콩쿠르(4)

    -다음 참가자 4번 미스터 지훈 최, 무대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녀올게요, 집사님!”

    “힘내세요.”

    “도빈아, 나 열심히 할게! 어머니, 저 열심히 할게요!”

    “그래. 재밌게 하고 와, 아들."

    방금까지 울던 도련님은 어느새 다 시 씩씩한 모습으로 무대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작아 보였는데, 어느새 저렇게 컸을까.

    분명 도련님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 켜보는 이 아이를 만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4년 전, 사모님이 떠난 뒤 화목했던 가정은 무너져 내렸다.

    사장님은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졌고 그럴수록 유난히 사모님을 많이 닮은 도련님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도련님은 그날 이후 슬픔을 잊으려는 듯, 사장님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피아노에 매진했다.

    웃음을 잃었던 사장님도 나날이 발 전하는 도련님을 볼 때면 웃었으니까.

    도련님은 사장님이 웃음을 되찾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저 아이와 만나면서 서로를 지탱하던 사장님과 도련님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련님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하고 싶은 일에는 모든 것을 돕겠다는 생각이셨던 사장님은 자꾸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셨다.

    그러나.

    그러나 도련님만큼은 보다 나은 방 향으로 걸어 나가셨다.

    어찌나 다행인지.

    도련님은 여전히 사장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했지만, 단지 그것만 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기는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하기 위해.

    친구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또 경쟁하면서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것이 즐겁기 때문.

    그 전까지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 부담을 느꼈던 도련님이 배도빈, 저 아이를 만난 뒤로 웃게 된 것만 봐 도 알 수 있었다.

    피아노를 치면서 웃는 도련님.

    사모님 곁에서 ‘나비야’를 연주하 고 해맑게 웃던 그 아기가.

    지금은 이토록 아름다운 나비가 되 어 이 큰 무대에서 자신을 다하고 있다.

    ‘힘내세요, 도련님.’

    피아노 소나타 1번 C장조, K.279.

    최지훈이 모차르트의 첫 번째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간질거리는 아름다운 선율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복선처럼 깔 려 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발랄한 멜로디가 이어진다.

    그 반복은 마치.

    어린 나이에 다가오는 시련들 속에 서도 끝끝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최지훈을 나타내는 듯했다.

    기교적으로 어려운 곡도.

    화려하여 청중을 놀라게 하는 곡도 아니지만 저런 곡을 이다지도 깊게 표현할 수 있다니.

    어느새 이렇게나 성장했는지.

    최지훈이 연주를 마쳤을 때,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다음 참가자 5번 미스터 도빈 배, 무대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도빈아, 아자!”

    “ 아자.”

    “실력대로만 발휘하면 될 거야.”

    “ 당연하죠.”

    응원해 주시는 어머니와 히무라에 게 호응해 드리고 눈을 감았다. 정 신을 가다듬은 뒤 무대로 향했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최지훈은 만족 스러운 듯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보다 밝게 웃어 내게 힘을 준다.

    ‘그래.’

    네가 그렇게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가만있을 수는 없지.

    피아노 앞에 앉은 뒤.

    둥!

    쇼팽의 발라드 제1번 G단조 Op. 23의 첫 음을 눌렀다.

    충분히 길게.

    이 느린 곡은 음을 얼마나 잘 표 현하는지, 곡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따라 연주가 매우 달라진다.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는 음표와 느 리고 난해한 박자로 인해 연주자의 해석이 진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는 쇼팽의 발라드.

    이 강렬하나 여린 음은 갈수록 격 정적이게 발전해 나간다.

    복잡하고 난해하나 그 슬픔만은 뚜 렷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슴으로 듣는 곡이다.

    그야말로 연주자의 기량을 한껏 뽐 내기에 최고의 곡이다.

    ♪♫♬

    ♪♫♬

    연주를 마치고.

    숨을 한번 크게 한 뒤 다시금 건 반 위에 손을 얹었다.

    다음은 쇼팽의 발라드 제2번 모장조.

    오늘은 쇼팽을 연주하는 날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준 내 친구를 응원하기 위해, 마지막 곡은 바꾸기로 하자.

    * * *

    사카모토 료이치는 앞서 연주한 최지훈의 연주를 무척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연주의 정확도와 박자감각이 탁월 했고 10살이라고 하기엔 모차르트의 소나타에 담긴 애절하면서도 동 시에 발랄한 느낌을 잘 표현했다.

    ‘저 아이가 도빈 군 앞이라 다행이지.’

    4명을 심사한 뒤 사카모토 료이치 가 준 점수 중에서는 가장 높은 8 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허허. 독을 아주 단단히 품고 왔구만.’

    배도빈이 장내에 들어서면서 심사 위원들의 자세도 조금 달라졌다.

    공기가 달라진 것이다.

    이미 세계 최고의 연주를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를 상대로 어떤 이는 감상을, 어떤 이는 공정한 평가를, 어떤 이는 개수작을 부리려 하는데.

    사카모토 료이치는 그의 오감을 열 어 배도빈의 연주를 들었다.

    쇼팽의 발라드 1번.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연주 실력을 뽐내는 방법은 여럿 있지만 그중에 서도 가장 꺼리는 것은 곡에 대한 해석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음악성 자체를 공 격당할 수 있기 때문인데 배도빈은 그런 데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확신에 찬 연주를 이어나갔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이어지는 복 잡한 박자의 음계.

    마치 쇼팽의 조국 폴란드의 암울했던 시기를 표현하는 듯, 그 깊은 사 색을 그대로 전달받는 듯했다.

    ‘자네는 대체 어디까지 나아가려는 겐가.’

    배도빈이 다섯 살 때부터 4년 정 도를 봐온 사카모토 료이치는 대체 그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배도빈의 음악은 놀 랍도록 세련되어졌다.

    고전 시대와 그 이전에 국한되어 있던 레퍼토리가는 것은 단순히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늘어난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새로운 곡을 익힐수록 배도빈의 ‘솔직한’ 연주는 그 표현의 방법에 있어 발전했다.

    배도빈이 연주를 할 때면 사람들은 그의 슬픔을, 그가 기쁠 때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힘’이 정제되고 보다 ‘솔직 해진 세상’에는 더없이 반가운 단비 가 된 것이다.

    ‘음악을 즐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세계.’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대로 현대의 개인은 자본과 사회 그리고 경쟁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인간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문화, 음악.

    그 음악조차 온전히 눈을 감고 깊게 감상할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음악을 그 자체로 즐길 여유도 없이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서 심 지어는 놀이를 하면서.

    음악은 그야말로 ‘겸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기에 복잡한 음악은 흔히 쉽게 말하는 ‘음악성을 갖춘 음악’은 도 태될 수밖에 없었다.

    무지한 작자들은 그런 경향을 ‘교양 없는 사람’이라 취급하지만 사카모토 료이치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음악은 향유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 된다.

    이 시대가 쉬운 음악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쉬움’이란 단순히 음계와 박자가 단조로운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문득 들었을 때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 의지와 좌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생각하지 않고 가슴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

    그것이 사카모토 료이치가 지향하 는, 이 시대를 위로할 수 있는 음악 이었다.

    그가 위대한 세 명의 음악가 중에 서도 베토벤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에 있었다.

    ‘바흐는 우리에게 우주가 어떤 것 인지 알려주었고, 모차르트는 인간 이란 무엇인지 말했으며 베토벤은 자신이 누군지 말했다’라고 한 SF작 가가 말한 바 있다.

    그의 표현이 말해주듯 베토벤처럼 자신에게 솔직했던 음악가도 드물었다.

    비극적인 가정상황과 처절한 심연 속에서 자신이 누군지 끊임없이 외 쳤던 비운의 음악가.

    그러나 그는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 절망. 고통. 좌절. 비극. 비장 그러나 그 끝에는 언제나 희망.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그의 감정이 마치 듣는 사람을 위로하듯, 동조하고 함께 슬퍼해 주는 듯하다.

    그러나 언제나 베토벤은 곡의 마지막에 항상 희망을 남겨둔다.

    그는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인류애적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죽기 직전까지 음악을 한 것이다.

    ‘닮았어.’

    배도빈은 그런 베토벤을 빼다 박았다.

    이 시대.

    날이 갈수록 개인이 사라지는 이 얼어붙은 시대를 함께해 위로해 줄, 그리하여 다시금 물이 흐를 수 있도

    록 해줄 그런 음악.

    배도빈은 현대의 음악을 익히면서 자연스레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재난을 겪었던 일본이 그러 했으니까.

    ‘본인은 자각하고 있을지.’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카모토 료이치는 다짐했다.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든 어디든.

    이 위대한 음악가의 행보를 방해한 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막아내 주겠다고.

    적어도 배도빈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멋있어.’

    도빈이의 연주를 들을 때면 항상 힘이 난다.

    도중에 너무나 슬프고 어떨 때는 무섭기까지 하지만 그 끝에는 항상 희망을 남겨준다.

    지금의 슬픔을 함께 보듬어주면서, 이 고난을 버텨내면 다음에는 꼭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희망을 준다.

    그래서 난 도빈이의 연주가 좋다.

    아버지는 내게 도빈이처럼 되라고 하시지만, 나는 도빈이처럼 될 수 없다.

    도빈이는 정말 천재니까.

    하지만.

    하지만 나도 피아니스트가 될 거다. 도빈이처럼 사람을 위로해 주고 함께 울어줄 순 없어도 나도 분명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다.

    어머니가 웃어주셨으니까.

    지금은 웃어주지 않으시지만 예전 에는 아버지도 웃어주셨으니까.

    나도 분명.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 라 믿는다.

    도빈이의 음악이 꼭 그럴 수 있다 고 말해준다.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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