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18화 (11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18화

    27. 9살, 크리크 국제 음악 콩쿠르(3)

    【배도빈, 크리크 본선 진출!]

    [총점 1기점! 예선 참가자 중 최 고 점수 획득]

    【타마키 히로시, “잘못된 판정이다.”, 불복1

    [심사위원 보리스 윈스턴, “배도빈의 연주는 완벽했다. 그의 연주를 점수로 채점해야 함에 부조리함을 느낀다.”]

    【최지훈, 예선 4위로 본선 진출!]

    【최지훈. “우승하려 나왔어요.”】

    배도빈과 최지훈이 오스트리아 빈 에서 크리크 예선을 마쳤을 무렵, 한국에서는 두 천재에 대한 이야기 로 시끌벅적했다.

    배도빈의 선전은 누구나 예상했지 만 설마하니 간간이 TV나 콩쿠르에 나왔던 최지훈마저 본선에 오를 줄 은 몰랐다.

    ㄴ 시상에 이게 뭔 일이냐?

    ㄴ 그러게. 최성신이랑 남궁예건 뒤 에 이런 애들이 나오네.

    ㄴ 최지훈은 몰라도 배도빈은 저 두 사람 시작부터 넘어섰지. 지금 배도빈 커리어에 비빌 음악가, 거장들 말곤 없음.

    ㄴ 컄ㅋㅋㅋㅋ 오지죠? 0| 맛에 국뽕합니다.

    ㄴ 배도빈 예선 1위 소식 듣고 방문 부수고 놀이터까지 뛰어가서 티셔츠 찢으며 동서남북으로 울부짖었다.

    ㄴ 뭐래 븅신잌ㅋㅋㅋㅋ

    ㄴ 배도빈 진짜 대단하다. 이러다 정말 내년 쇼팽 콩쿠르 나가는 거 아닌가 몰라. 우승도 하겠지?

    ㄴ 본인은 콩쿠르 별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 있음。。

    ㄴ 왜?

    ㄴ 왜?

    ㄴ 자기 음악을 평가받는 게 기분 나쁘대.

    ㄴ 크으지리죠. 암, 천재라면 그런 자존심 정돈 있어야지.

    ㄴ 근데 배도빈이야 워낙 처음부터 잘 나가서 그런가 싶은데 최지훈도 대단하네. 크리크 본선 진출자 10명 중에 15세 미만은 배도빈이랑 최지훈뿐임.

    ㄴ 헐. 쟤도 그럼 대박이네?

    ㄴ 난 둘이 친한 게 신기함. 배도빈 아빠가 하는 SNS 보면 둘이 장난치 며 노는 동영상도 있던데 나이 먹으면서 사이 틀어질까 봐 걱정됨. 최지훈도 분명 대단한 앤데 배도빈 때 문에 너무 가려지니까. 오L 살리에리 가 모차르트 시기한 것처럼.

    ㄴ 헐? 배도빈 영상이 있다고?

    ㄴ ㅇㅇ. 졸면서 카레 먹는 거 졸귀.

    ㄴ 아직도 영화 내용 믿냐. 모차르 트랑 살리에리 두 사람 人누이가 안 좋았던 것 사실이지만 당시엔 살리 에리가 1인자였음. 게다가 모차르트는 인성질 때문에 평판도 그리 안 좋았고. 시기할 리가 없지.

    ㄴ 말이 그렇다는 거 아냐.

    ㄴ 님 눈치 없단 말 많이 듣죠?

    ㄴ 둘이 계속 친하게 지냈으면 좋것다.

    본선 당일.

    도대체 그놈의 인터뷰는 왜 그렇게 많은지 안 그래도 일정이 빡빡한데 시간을 많이 낭비하고 말았다.

    최지훈도 그랬을 테니 조금 걱정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로 본선 과제곡 연습을 위해 일 주일간 보지 않았던 최지훈은 시체 가 따로 없었다.

    “……괜찮아?”

    조심스레 묻자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최지훈이 배시시 웃었다.

    “ 괜찮아.”

    “괜찮긴 뭘 괜찮아. 대체 뭘 어떻게 지낸 거야?”

    “나 배우는 게 느리니까. 잠을 줄였어. 졸린 것뿐이야.”

    졸린 게 아니라 아파 보일 정도다.

    집사 할아버지는 한숨을 푹푹 내쉬 며 지훈이가 비틀댈 때마다 녀석을 지탱해 주었다.

    “어머나.”

    어머니께서도 최지훈을 보시곤 깜 짝 놀라셨다. 히무라도 좀 걱정되는 지 최지훈의 안색을 살폈다.

    “아들! 왜 그래? 어디 아파?”

    “괜찮아요. 헤헤.”

    “괜찮긴. 집사님, 지훈이 왜 이러는 거예요?”

    집사 할아버지로부터 설명을 들은 어머니께서는 시간을 확인하시곤 안 되겠다는 듯 택시를 부르셨다.

    “안 되겠다. 도빈아, 엄마 지훈이 데리고 병원 좀 다녀올게. 히무라 아저씨랑 같이 있을 수 있지?”

    “네.”

    “부인, 어쩌시려고……

    “콩쿠르 시작 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링거라도 맞혀야겠어요. 한 시간이라도 자면 좀 나을 거 예요.”

    집사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곤 어머니와 함께 최지훈을 데리고 택시에 올라탔다.

    차가 저 멀리 사라지고 히무라가 걱정스레 말했다.

    “엄청 압박이었나 봐. 어린애가 저렇게까지 자기를 몰아붙이다니.”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향상심 때문일까.

    아니면 아버지가 주는 강요 때문일까.

    두 이유 모두 자신의 몸을 깎아내 리는 바보 같은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후자라면 최악이다.

    “어머님 말씀대로 포도당 맞고 조 금이라도 자면 괜찮을 거야. 들어가 자.”

    “네.”

    콩쿠르 시작하기 직전에 회장에 도 착한 최지훈은 그나마 조금 나아보였다.

    “괜찮은 거야?”

    “응!”

    안 괜찮은 거 같은데.

    “너 그러다간 결선 올라가도 문제야. 다신 그런 짓 하지 마.”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이 대회 2년 뒤 에도 있어. 남들보다 느리면 느린 대로 가.”

    사실 이번에 크리크에 참가함으로 써 피아니스트 지망생들의 수준을 정확히 알게 되었는데.

    최지훈은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저 어린 나이에 이 무대까지 올라 온 것만 해도 최지훈이 얼마나 큰 재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단지 비교대상이었던 채은이가 너무 뛰어났을 뿐.

    마음 같아서는 ‘넌 결코 느린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녀석의 기준 역시 ‘다른 지망생’이 아 닌 나나 채은이에게 맞춰져 있다.

    그런 말을 해봐야 조금도 받아들이 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서 할 수 없었다.

    “그러면 늦어.”

    “뭐가 자꾸 늦는다는 소리야?”

    화가 나서 조금 목소리가 커졌다.

    “내후년이면…… 내년에 쇼팽 콩쿠르에 같이 못 나가잖아.”

    “뭐?”

    최지훈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내후년이면 너랑 같이 쇼팽 콩쿠르에 못 나가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있어!”

    “얘들아 잠시 진정하고.”

    히무라가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지 만 어머니께서 그를 저지하셨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어머니를 보 고선 다시 최지훈을 보았다.

    “좋아. 내년에 안 나갈게. 5년마다 있다고 했지? 6년 뒤에 나가면 되겠네.”

    “싫어.”

    “고집부리지 마. 너 지금 무리하고 있어. 이렇게 안 해도 몇 년 뒤면 분명.”

    “아는 척 말하지 마!”

    이런 최지훈은 처음이다.

    녀석과 싸우는 것도 처음이다.

    한참 어린 친구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약속했잖아!”

    “콩쿠르에서 서로 봐주지 말자는 거라면 나중에 해도.”

    우선은 타이르듯이 말하려는데, 최지훈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네가 콩쿠르에 나갈 이유가 되어 준다고. 내가 약속했잖아!”

    “힉. 힉. 끄윽. 약속했잖아아. 왜 까먹은 거야아아앙.”

    결국 눈물을 터뜨린 최지훈이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슬퍼 보이는지 표현할 길이 없다.

    집사 할아버지가 우는 최지훈을 안고 그 등을 토닥였다.

    * * *

    “걱정 마. 나 그런 데 안 나가.”

    “어? 왜? 실력이 아깝잖아.”

    “아깝긴. 나가서 뭐 하게.”

    “열심히 연습해서 1등 하면 기분 좋잖아.”

    “나랑 비슷한 사람이 생기면 그때 생각해 볼게.”

    “정말?”

    “뭐가?”

    “정말 비슷한 사람이 생기면 콩쿠르에 나갈 거야?”

    “뭐……

    “내가 그렇게 될게. 그러니까 언젠 가 꼭 함께 콩쿠르에 나가자.”

    “……내가 콩쿠르에 나가든 말든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거야?”

    “사람들이 네 연주를 들으면 얼마 나 행복하겠어. 난 알아. 네 연주가 얼마나 멋있는지. 다른 사람도 알아 줬으면 좋겠어.”

    문득 예전에 녀석과 한 대화가 떠 올랐다.

    당시에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 했건만, 최지훈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와 같은 무대에 서고 싶어서.

    서로 후회 없이 좋은 연주를 하자 며 녀석이 했던 약속.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녀석은 나와 함께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였던 것이다.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또 있었던가.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니 아버 지와는 또 다른 느낌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에게 다가갔다.

    “울지 마.”

    “끄아아앙.”

    “울지 마! 누가 까먹었다는 거야?”

    눈물을 가득 머금은 두 눈이 내게 ‘안 잊었어?’라고 묻는 듯했다.

    “안 잊었어.”

    그제야 녀석이 코를 마시며 울음을 그쳤다.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것도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도 아닌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라니.

    나와 함께하고 싶어 그랬다니.

    이 녀석은 나를 얼마나 더 드흔들 어 놓을 생각일까.

    “네 차례 다음이야. 결선에 같이 올라가야 하잖아. 언제까지 울 거 야.”

    “안 울어.”

    “결선은 같이 준비해.”

    “어?”

    “요령이 없으니까 오래 걸리는 거 야. 나랑 같이하면 괜찮을 거야. 그 러니까 같이해.”

    “하지만 그럼.”

    “그럼 너 다 쓰러져가는 꼴 보면서 가만있으란 소리야? 넌 내가 아프면 안 도왔을 것 같아?”

    "..."

    답은 없고 고개를 젓는다.

    “알았으면 빨리 준비해. 이런 대회 따위 내년 쇼팽 콩쿠르에 나갈 중간

    단계밖에 안 되잖아.”

    “으, 응!”

    팔소매로 얼굴을 쓱쓱 닦은 최지훈 이 또 밝게 웃었다.

    솔직한 녀석.

    올곧은 녀석.

    그리고 언제나 나를 울리는 사람.

    녀석이 내게 전해준 따뜻하고 정직 한 마음 덕에 가슴 속 호수에 남아 있던 얼음 조각마저 녹아들었다.

    녀석은 이미 내 형제다.

    ***

    어렸을 때는 나나 아빠 말고는 관 심도 보이지 않았던 도빈이가 너무 걱정되었다.

    짧게 다녔던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도 친구를 사귀지 못했으니까.

    처음에는 천재는 원래 저런가 싶었지만 내 아들은 그저 조심성이 많을 뿐이었다.

    사람을 볼 때 천천히 그 사람을 살피는 버릇이라든가.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슬그머니 다가와 빨래와 청소를 돕는다든지.

    부모에게 상처 주기 싫어 하고 싶은 말도 참는 모습을 보면 분명 따 뜻한 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는 조금씩 도빈이에게 친구를 만들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이 도빈이에게 ‘사람은 경계해 야 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는지는 몰라도.

    분명 언젠가는 그 따뜻한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미 만났던 모양이다.

    지훈이란 아이와 함께 있을 때면 도빈이는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할 줄 아는 평범한 아이였다.

    거짓말을 해 인터뷰를 지훈에게 돌 리곤 웃는 거라든지, 주의는 줘야겠지만 정작 둘이 즐거워하기에 나도 모르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두 아이는 서로에게 했던 약속을 두고 다시 한번 우정을 나누었다.

    ‘어머니.’

    지훈이가 나를 어머니라 불렀을 때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 알게 모 르게 최우철 씨로부터 압박을 받는

    지훈이는 기댈 곳이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없다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나도 정말 저 아이의 엄 마가 되어줄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사랑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들을 저렇게 사랑해 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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