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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16화 (11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16화

    27. 9살, 크리크 국제 음악 콩쿠르(1)

    다음 날 어머니와 함께 예선장을 찾았다.

    B조라서 오늘은 연주를 하지 않아 도 되는 최지훈이 끈덕지게 같이 가 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왔는 데 건물에 들어서기도 전에 기자들 이 몰려들었다.

    “어떤 곡을 연주할 예정입니까?”

    “오늘 일본의 타마키 히로시로부터 라이벌로 지목당하셨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게 누군데.’

    처음 듣는 개뼈다귀 같은 이름이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알려져 있습니다. ICMCOC의 첫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는 각오는요?”

    그중에 아는 얼굴이 몇몇 있었지만 워낙 정신이 없어 여러 마이크에 대 고 한 번에 답했다.

    “우승은 얘가 한대요.”

    내 옆에서 기자들 사이에 끼어 낑 낑대고 있던 최지훈이 깜짝 놀랐다.

    “어?!”

    “누구십니까! 참가자입니까?”

    “배도빈 군과는 어떤 관계죠?”

    “우승을 자신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자, 자, 자, 잠깐만요. 도빈아! 도빈아!”

    “최지훈. 한국 지역 예선에서 2등을 한 최지훈이죠?”

    “아. EI전자 최우철 아들이잖아!”

    “피아노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배도빈 군과는 친한가요?”

    “그…… 네. 아버지 성함은 맞고 피아노는 다섯 살부터……. 네. 친해요. 도빈아, 가지 마. 어디 가.”

    울먹이는 게 곧 울 것 같은데 대 답은 또 곧잘 한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최지훈을 보니 절로 뿌듯해졌다.

    덕분에 나와 어머니는 편안히 건물 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훈이 괜찮을까? 사람 너무 많던데.”

    “집사 할아버지도 있으니까요.”

    저렇게 최지훈에 대한 방송이나 기사가 생기면 강압적인 녀석의 아버 지도 조금은 덜 괴롭힐 거라 생각했다.

    ‘올 사람은 다 왔네.’

    대기실에는 스무 명 남짓 있었다.

    “아직 다들 안 온 모양이네?”

    “대부분 왔을 거예요. 오늘은 A조 만 하거든요.”

    “나누어서 치르는 거구나?”

    히무라가 크리크의 진행방식을 알 려줬는데 간단했다.

    예선은 A와 B로 나뉘어 하루 간격을 두고 과제곡을 연주한다.

    과제곡은 또 내 소나타 중에 두 곡을 고르는 거였는데 왜 콩쿠르마다 과제곡으로 정해져 있냐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베토벤의 소나타가 교과서니까.’

    내가 죽은 뒤 많은 음악가가 내게 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까지 하며 음 대에서 배운 지식을 전달하는 히무라와 후대 사람들이 기특했다.

    “너무해!”

    마침 최지훈도 대기실로 들어왔다.

    “왔어?”

    “어떻게 날 버릴 수 있어?”

    “버리다니. 어디까지나 네가 주목 받길 바란 거야.”

    “우승한다는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얼마나 난감했는지 알아?”

    “우승할 생각 아니야?”

    “••••••어?”

    “우승할 생각이 아니면 왜 나온 거야.”

    최지훈이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승할 거야.”

    ‘착한 녀석.’

    녀석에게 질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최지훈의 우승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렇게 잠시 소란이 마무리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일정을 헤아리듯 손 가락을 접으셨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는데 다시 한번 물어보셨다.

    “도빈아, 일정이 보름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럼 본선은?”

    “예선 일주일 뒤에 한대요. 결선도 본선 일주일 뒤에.”

    “과제곡이 많은데 그걸 다 할 수 있는 거야? 몇 명이나 뽑는데?”

    “각 조에서 5명씩 올라간대요.”

    “다들 자기 나라에선 잘하는 애들 일 텐데 생각보다 적네.”

    “결선은 4명밖에 못 올라가요!”

    어머니의 감상을 최지훈이 받아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꽤 빠듯한 일정이었는데 보통 이런 식으로 진행하나 싶다.

    예선이 끝나면 본선 과제곡이 주어 지는데 그 간격이 일주일뿐이라 어 린 참가자들이 얼마나 소화를 해낼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었다.

    특히 하나의 곡을 완성하기 위해 수백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최지훈 에게는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짧고.

    ‘한 달에서 두 달은 줘야 할 텐데.’

    연주의 깊이와 숙련도를 위해서라 도 그게 적당한 기간이다.

    모니터에 사회자가 나와 뭐라 이야 기를 시작했고 심사위원들의 모습이 잠시 화면에 비쳤다.

    ‘아니, 왜 여기 있어?’

    그간 연락이 안 되어 이상하게 생 각했는데 사카모토 료이치가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었다.

    심사위원만 12명이라 잠깐 스쳐 갔지만 사카모토를 못 알아볼 리 없다.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안 열어 보더니 심사위원이 되어 괜한 말이 안 나오도록 한 것 같다.

    그런 철저한 점이 좋지만.

    ‘심사위원이 되었다고 말이라도 했으면 좋았잖아. 누가 잘 봐달라고 하나.’

    심술이 났다.

    첫 연주자는 러시아에서 온 녀석이었다.

    “아,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야.”

    “뭐?”

    “러시아 지역 예선에서 1등한 사람 인데, 작년부터 국제 콩쿠르에 많이 나오고 있어. 타건이 엄청 빠르고 정확해.”

    그런가 보다.

    엘 어쩌고가 연주를 끝냈다.

    확실히 러시아에서 1등을 했다는 수준이긴 하지만 미카엘 블레하츠나 가우왕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와. 장 니콜라 아르튀르 라스타야.”

    “프랑스 사람인데 18살이래. 국제 청소년 콩쿠르에 많이 나왔헜어. 아 마 프랑스 지역 예선에서는 2등을 했을 거야.”

    그런가 보다.

    “우와! 벨기에의 자코 반 스토펠 베르통언이야!”

    “그만해.”

    여름날 매미처럼 설명을 해대는 통 에 결국엔 그만하라고 말해버렸다.

    도대체 평소에 뭘 하고 지내기에

    이런 꼬맹이들의 이름과 특징까지 외우고 다니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연주자들이 대체로 기억력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얘는 도가 지나치 다 싶을 정도다.

    ‘오타쿠.’

    그래. 피아노 오타쿠라 하는 게 맞겠다.

    ‘뭐, 그것도 재능이겠지.’

    최지훈만큼이나 악기로서의 피아노 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행위 그리고 피아노계 모두 관심을 가지고 미친 듯이 파고드는 사람도 몇 없다.

    피아니스트들마다 설명을 해대서 조금 거부감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피아니스트로서 이보다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풀이 죽 은 친구를 달래주었다.

    “미안. 말이 심했어. 저 사람은 누 군데?”

    “힝.”

    “••••••미안.”

    “알고 싶어?”

    “……알고 싶어.”

    최지훈이 다시 신나서 설명을 하는 데 어쩔 수 없이 들어주는 나를 보곤 어머니께서 슬쩍 미소를 지으셨다.

    예전에 나였다면 상상도 못 할 행 동인데 확실히 나도 많이 부드러워 진 모양이다.

    그렇게 7번째 참가자의 연주가 끝 나갈 무렵, 누군가 내 앞으로 왔다.

    “일본어는 할 수 있겠지?”

    ‘이건 또 뭔 개뼈다귀야?’

    의자에 앉은 채 올려다보자 소가 핥은 머리카락을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이라고 하기엔 좀 더 키가 컸는데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쯤 되어 보였다.

    “할 줄 몰라?”

    “관심 없으니까 돌아가.”

    “흥. 천하의 배도빈도 내가 무섭긴 한가 보지?”

    “어, 타마키 히로시!”

    어느새 콩쿠르의 설명위원이 된 최지훈이 이 건방진 꼬맹이에 대해 또 읊기 시작했다.

    “ 알아?”

    “응! 일본에서 엄청 유명한 애야. 16살이고 올해 전 일본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도 했어.”

    역시 성능 좋은 설명서다.

    “그리고…… 널 이기고 크리크에서 우승하겠다고 말했어.”

    “ 날?”

    얘가?

    “ 큭큭큭. ”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뭐, 뭐야. 갑자기.”

    “도빈아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최지훈이 당황한 듯 물었지만 지금 은 이 건방진 꼬맹이에게 한마디 해 줘야 할 것 같다.

    “누군가 했더니 그 건방진 꼬맹이 가 너였구만?”

    예전에 히무라와 이시하라 린이 말 해주었던 놈인가 보다. 관심 없어 신경 쓰지 않았건만 이번에는 본인 이 직접 오니 그간 기자들이 일본에 라이벌이 있다는 둥, 어떻게 생각하 냐는 둥 괴롭혔던 게 떠올랐다.

    “뭐라고?”

    “헛짓 그만하고 그럴 시간 있으면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

    피아니스트라면 적어도 연주로 말 해야 하는 법.

    언론과 타인의 유명세를 이용해 유 명해지려는 소인배는 수도 없이 만나 봤다.

    그중에 정말 가치 있는 인간이라곤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다음 순서는 일본의 타마키 히로시입니다.

    “치 잇.”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던 녀석은 자기의 이름이 불리자 대기실을 박차고 나갔다.

    “도빈아, 저 애가 왜 저러는 거니?”

    어머니께서 걱정스레 물으셨다.

    “사인해 달라고 했는데 싫다고 했어요.”

    “해주지 그랬어. 많이 서운해 보이던데.”

    “다음에 보면 해줄게요.”

    멀리서 떠들던 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직접 와서 시비를 걸다니.

    어린 치기를 부드럽게 봐줄 성인은 못된다.

    다음에 보면 먼저 와서 사인을 해 달라고 만들어줄 생각이다.

    “ICMCOC에서 심사를 부탁했습니다. 사카모토 선생님과 도요토미 선생님을 지목했네요.”

    ‘흐음.’

    처음 ICMCOC에서 심사위원 직을 맡아 달라 했을 때는 고민이 많았다.

    도빈 군이 나오는 걸 아니 자칫 잘못했다간 괜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

    거절하는 게 옳다.

    굳이 내가 심사위원으로 나가 도빈 군과의 친분으로 의심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쯧쯧.’

    한심한 작자들 같으니.

    일본에서 정해진 두 명의 심사위원 석에 피아노 협회 인물이 둘 있는데 그들의 작당을 듣고만 것이다.

    ‘배도빈 때문에 타마키 군이 우승 못 할지도 모르니 적당히 점수 맞추 자고.’

    도빈 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전 세계가 ‘어린 천재’에 열광하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 역시 마찬가지.

    기어이 재능 있는 아이를 한 명 데려다 도빈 군의 대용품으로 쓰려 했다.

    굳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터 인데.

    타마키 히로시란 아이가 불쌍할 뿐이다.

    “받아들이겠소.”

    “아…… 그러십니까? 하지만 분명 바쁘시니 굳이 수락하실 필요는.”

    “아니오. ICMCOC 같이 의식 있는 단체에서 요청을 했으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심사위원직 받아들이겠소.”

    “크흠. 흠. 알겠습니다.”

    저대로 두면 분명 두 명 모두 도빈 군에게 좋지 않은 점수를 줄 터.

    나라도 한자리 차지해야 한다고 생 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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