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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15화 (11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15화

    26. 9살, 라이벌(4)

    “배도빈, 배도빈이잖아!”

    “반주자!”

    어머니께서 나와 반주자를 번갈아 보시더니 내게 물으셨다.

    “아는 분이시니?”

    “아뇨. 어제 크리크 개최식에서 축하 연주를 한 사람이에요.”

    깜짝 놀랐는데 개최식에서 들려주었던 연주와 얼핏 들었던 헝가리 무 곡 5번 연주는 전혀 달랐다.

    곡 자체가 다르기야 하지만 반주를 했을 때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너무도 정열적이었기에 설마 동일 인물이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모르는 분이잖니.”

    어머니께서 반주자에게 고개를 숙 이며 다시 한번 사과를 하셨다.

    “죄송해요. 제가 잘 타이를게요.”

    “아니에요. 전혀! 세상에. 내 집에 배도빈이 오다니. 이건 기적이야.”

    “••••••네?”

    어머니가 한 번 더 당황하셨다.

    “그러지 말고 커피 한잔하고 가실 래요? 캔커피뿐이지만.”

    “하지만.”

    “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대답했다.

    “도빈아.”

    “괜찮아요. 들어와요.”

    어머니는 이내 포기하셨는지 나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 좁은 방에 피아노 한 대와 악보가 전부다.

    “여기.”

    그녀가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꺼내 나와 어머니에게 주었다.

    무려 9년 만에 커피를 마실 수 있단 생각에 캔을 뜯으려는데 어머니 께서 내게서 캔커피를 뺏어가셨다.

    빈틈이 없다.

    “도빈이는 아직 어려서 죄송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아! 그렇죠. ……어쩌지. 내올 게 없는데.”

    “괜찮아요. 갑자기 찾아온 걸요.

    ……도빈아, 대체 여긴 왜 온 거야?”

    “이 사람 연주가 너무 좋아서요.”

    어머니는 내 대답에 황당하신 듯 입만 뻥긋뻥긋하셨고 중간부터 한국 말을 한지라 알아듣지 못한 반주자는 그저 방끗방끗 웃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만났지만 그녀 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먼저 소개부터 해야겠지.

    “저는.”

    “알아. 배도빈. 두 번째 앨범 너무 좋았어.”

    아는 것 같으니 소개는 넘기고 본 론을 꺼냈다.

    “어제 개최식에서 찰스 브라움의 반주를 하셨죠?”

    “응. 아, 혹시 거기 있었던 거야?”

    “네.”

    “세상에. 어떻게 찾아왔어? 찰스 브라움은 내가 누군지도 모를 텐데.”

    협연자에 대해 모르다니.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했더 니 묻지도 않은 말을 수다스럽게 꺼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찾아왔냐고 물었으면서 대 답도 안 듣고 말이다.

    “며칠 전에 집주인이 월세를 못 낼 거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라 했는데 어쩜? 찰스 브라움하고 협주를 하게 된 거야. 근데 사람은 좀 별로더라. 가타부타 말도 없이 연주 한번 듣더 니 바로 하자고 하더라고.”

    ‘그야 그만한 실력이니까.’

    찰스 브라움이 일을 대충하는 게 아니라 이 여자의 실력이 너무도 뛰 어난 것이다.

    분명 그도 그것을 봤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찾은 거야?”

    “걷다가 헝가리 무곡 5번을 들었어요. 소리를 따라오다 보니 여기로 왔고.”

    “그렇게나 멀리까지 들려? ……옆 집 사람이 시끄럽다고 욕하는 게 정 말인가 보네.”

    딱 봐도 방음 따위 절대 안 될 것 같은 허름한 건물이다.

    게다가 그렇게나 열정적으로 연주를 해대니 옆에 사는 사람이 뭐라 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이름이 뭐예요?”

    “아하하! 그러고 보니 아직 소개를 안 했네. 니나 케베히리라고 해. 음…… 보다시피 백수고.”

    “케베히리?”

    “응.”

    케베히리라니 이 무슨 운명이란 말 인가.

    “저기, 내 연주 어땠어?”

    “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데 니나 케 베히리가 자신의 연주에 대해 물었다.

    “어땠냐구.”

    “한 곡 연주해 주면 말할게요.”

    “좋아. 리퀘스트는?”

    “……베트호펜 소나타 32번. C단조.”

    “엑. 어렵잖아.”

    나지막이 대답하자 니나가 인상을 쓰며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이내 피아노 앞에 앉아 내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 *

    1787년 7월.

    세상이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여러 거장이 모여 있는 빈으로 향 하고 얼마 뒤, 저주하는 남자로부터 도착한 편지에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단 하나의 희망조차 없이 슬픔과 비탄의 사슬에 얽매여 계셨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형제.

    매일 술에 찌들어 폭력을 휘두르는 빌어먹을 요한. 저주하는 요한!

    가난.

    라인가세의 집이 수몰되었을 때조 차 나와 동생들을 구하기 위해 무리 하시더니 결국.

    이렇게 폐렴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조금만.

    내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돈을 벌었더라면.

    차라리 요한을 죽였더라면!

    어머니께서 이렇게 돌아가시진 않았을 것이다.

    “끄윽. 끄으으윽.”

    결국 슬픔을 비집고 눈물이 나오고 야 말았다.

    어머니의 장례는 소박했던 결혼식 보다 더욱 초라했다.

    가족은 모두 반대했지만 가진 돈을 모두 써 본의 알터 프리토프의 묘지 에 어머니의 묘를 만들고 비석을 세 웠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어머니의 이름을 새겼다.

    HIER RUHT DIE MUTTER

    BEETHOVENS MARIA

    MAGDALENA BEETHOVEN GEB

    KEVERICH GEST.

    17.JULY.1787

    어머니와 같은 성을 가진 피아니스트가 내 슬픔을 위로하듯 연주를 마 쳤다.

    “어머.”

    나도 모르게 옛 생각이 나 눈물이 나왔는데 어머니께서 당황하셨다.

    “도빈아, 왜 그래?”

    “아니에요. 괜찮아요.”

    눈물을 훔치곤 니나를 보았다.

    어머니의 모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지만 어머니의 옛 성 케베리히를 이은 이 피아니스트는 여태껏 내가 본 가장 빛나는 보석이었다.

    그녀의 온전한 독주를 듣고선 나는 니나 케베리히의 팬이 되어버렸다.

    “좋은 연주였어요.”

    “갑자기 울어서 놀랐어. 내 연주가 그렇게 괜찮았어?”

    “최고였어요. 연주회가 있다면 꼭 보러 갈게요.”

    내 말에 니나가 깔깔 웃었다.

    “연주회는 무슨. 나 같은 무명이.”

    ‘무명?’

    발이 넓은 히무라나 다른 사람들도 몰라서 의아하긴 했는데 본인 입으로 들으니 이상하다.

    “무명이라됴?”

    “뭐, 그런 일이 있어. 그래도 배도빈에게서 칭찬을 들으니까 기분 좋은데?”

    니나가 씩 웃더니 내게도 연주를 부탁했다.

    “한 곡 듣곤 그냥 갈 생각은 아니지?”

    털털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친근하 게 느껴지는 그 말투에 고개를 끄덕였다.

    “뭘 듣고 싶어요?”

    “나도 베트호펜. 소나타 G장조 2번!”

    “베트호펜 좋아해요?”

    32번 C단조를 너무나 훌륭히 연주 하고 또 내 곡을 요청하기에 물었다.

    “그럼. 독일사람 중에 베트호펜 안 좋아하는 사람 있어?”

    넉살 좋은 대답에 씩 웃곤 연주를 시작했다.

    ♪♫♬

    ♪♫♬

    연주를 마치자 니나가 눈을 감고 고개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러곤 이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와. 내가 상상했던 연주랑 똑같아.”

    그러면서 내가 연주했던 것을 따라 치는데 반응이 즐거웠다.

    그렇게 잠시간 서로의 연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새 해가 져 있었다.

    “도빈아, 이제 돌아가야지.”

    “네.”

    시간이 늦었기에 오늘의 만남은 아 쉽지만 끝내야 할 것 같다.

    “그럼 잘 가! 진희 씨도 잘 가요!”

    “다음에 또 봐요.”

    “응.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

    “핸드폰 번호 알려줘요.”

    “지금 번호 따는 거야?”

    ‘뭐라는 거야.’

    나와 어머니의 반응이 싸늘하자 농 담이 먹히지 않은 니나가 어깨를 으쓱이곤 답했다.

    “핸드폰 없어. 대신 여기 집주인 번호를 가르쳐 줄게. 밤이나 아침에는 연락하면 안 돼. 화를 내니까.”

    그녀가 내게 쪽지를 하나 주었다.

    “그럼 실례했어요.”

    “아니에요. 저도 재밌었어요.”

    어머니와 니나가 인사를 나누었다.

    팔을 힘차게 흔들어 배웅하는 니나를 보며 나도 따라해 주었다.

    “도빈아 착한 사람이라서 다행이지 모르는 사람 집에 막 들어가면 안 돼. 큰일 나. 도빈이 방에 막 들어 가면 도빈이도 화나지?”

    맞는 말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커피잔을 던졌을 것이다.

    “네.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그래. 착하다.”

    어머니께서 내 뺨을 어루만지셨다.

    “그럼 돌아갈까?”

    “네.”

    “……여기가 어디지?”

    피아노 소리를 쫓아 골목을 몇 번 들어왔는데 나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큰길이었으면 대충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밤이기도 한지라 길을 잃었다.

    “도빈아, 스마트폰으로 길 좀 찾아 볼래?”

    핸드폰을 꺼내 히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텔에 도착해서는 어머니와 함께 따로 방을 잡았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어렵사리 나를 찾은 히무라는 생각보다 귀가 시간이 너무 늦어져 우선 푹 쉬라고 말했다.

    “그럼 쉬어.”

    “잠깐만요, 히무라.”

    “왜?”

    “혹시 샛별 엔터테인먼트에 사람 한 명 더 받을 생각 없어요?”

    “사람? 말했지만 지금 수입으로는.”

    “아뇨. 직원 말고요. 피아니스트.”

    “그것도 네가 좀 더 크기 전까지는

    계획 없어.”

    “대단한 사람이 있어요.”

    “대단해? 누구?”

    “어제 개최식에서 찰스 브라움 반 주했던 피아니스트요.”

    “아. 하지만 아직 누군지도 모르고.”

    “방금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뭐?”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설 명하자 히무라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실력을 확실할 텐데. 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지?”

    그건 모른다.

    “하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해요. 분명 블레하츠나 가우왕처럼 금방 유명해질 거예요.”

    음악과 귀와 가슴은 솔직하다.

    그만한 피아니스트라면 금세 사랑 받을 거라 확신했다.

    “여기.”

    “이게 뭐야?”

    “핸드폰이 없다고 해서 집주인 번 호를 받았어요. 옆에는 주소고요.”

    “흐음.”

    “내일 콩쿠르 예선은 괜찮으니까 니나를 만나러 가주세요. 히무라가 직접 듣고 판단해 줘요.”

    “하지만 지금 투자할 여력은.”

    “제 사비로 할게요. 니나가 샛별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하면 제가 투자자가 될게요.”

    “……그건 나중에 말해보자. 그래. 알았어. 네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 보러 갈게. 겸사겸사 어떤 사람 인지 좀 알아보고.”

    “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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