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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14화 (11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14화

    26. 9살, 라이벌(3)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 루하게 듣고 마침내 해방되었다.

    그 아름다운 연주를 했던 피아니스트가 누군지 알고 싶어 서둘러 히무라를 찾았다.

    “히무라, 히무라!”

    “여기야! 배고프지? 바로 음식을.”

    “찰스 브라움의 반주를 해준 피아니스트! 누군지 알아요?”

    “어?”

    히무라가 잠시 그녀를 떠올리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겠는데. 왜?”

    “만나보고 싶어서요.”

    “흐음. 그렇게나 대단한 사람이었나?”

    “반주를 해서 그래요. 독주를 한다 면 히무라도 반드시 알 수 있을 거예요.”

    조금 흥분한 나를 히무라가 진정시

    켰다.

    “알겠어. 일단 밥부터 먹자. 한번 알아볼게.”

    아쉽지만 이 이상 바랄 수는 없었기에 적당히 음식을 담아와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

    나와 히무라의 대화를 들은 최지훈 도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 있는데 가우왕이 툭툭 대는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어땠냐, 꼬맹아.”

    “제법이었어요.”

    “제법이라니, 너 인마.”

    “앉아요.”

    히무라와도 짧게 인사를 나눈 가우왕이 내 옆에 앉았다.

    “가, 가, 가.”

    최지훈이 이상한 소리를 낸다.

    모두 녀석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가우왕을 만나게 되어 기쁜 듯했다.

    “네 친구 어디 안 좋은 거 같은데?”

    “가우왕 팬이라서 그래요.”

    “그래?”

    가우왕이 최지훈과 눈을 마주하고 웃었다.

    “너도 피아니스트냐?”

    “도, 도빈아, 가, 가우왕이 뭐라고 하신 거야?”

    “너도 피아니스트냐고 물었어.”

    이 감자 그라탕 꽤 맛있다.

    “아, 아뇨! 그, 그냥 피아노가 좋아서 열심히 치고 있어요.”

    이 내가 이미 피아니스트라고 인정 했건만 녀석이 또 겸손한 척을 한다.

    “……뭐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통역 좀 해봐. 그 미칠 듯이 단 그라 탕 좀 그만 먹고.”

    “언젠가 당신을 꺾을 정도로 훌륭 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래요.”

    “뭐? 아주 건방진 녀석들끼리 친구 가 되셨구만.”

    가우왕이 파스타를 입에 넣으며 불 평했다.

    “하아. 가우왕과 같이 저녁을 먹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아.”

    “좋겠네. 근데 피아니스트가 아닌 사람한테는 관심 없대.”

    “어?”

    “……도빈아.”

    양쪽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히무라가 장난은 그만하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최지훈은 본인에 대해 좀 더 자부 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니 가우왕이라면 혹시 알 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아까 찰스 브라움 연주 때 반주한 피아니스트 누군지 알아요?”

    “아, 역시. 천하의 배도빈도 신경이 쓰였구만?”

    “ 알아요?”

    “몰라.”

    ‘이 자식이 누굴 놀리나.’

    “나도 처음 봤어. 그 정도 실력이 면 알려지지 않은 게 이상하다 생각 했지.”

    “그러니까요. 가우왕보다 잘하던 것 같은데.”

    “웃기지 마, 꼬맹아. 다시 붙어?”

    “30년은 더 연습하고 오세요.”

    잠깐 으르렁댄 뒤 웃고 말았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가우왕의 연주는 거장의 반열 에 들었다고 하기에 충분. 그 이상은 취향의 문제라 누가 더 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사카모토 료이치가 ‘배도빈의 피아노는 나보다 낫다’라고 하지만 나는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가우왕도 지금의 본인과 내 경연이 의미 없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데는 왜 나온 거야? 역시 쇼팽 콩쿠르 때문인가?”

    “얘 때문에요.”

    최지훈을 보며 말했다.

    “……이 꼬마가 그렇게 잘해?”

    “앞으로 그렇게 될 거예요.”

    “흐음.”

    최지훈이 나와 가우왕을 순진한 얼 굴로 번갈아 보았다.

    “얼빵해 보이는데. 생긴 것만 봐선 부잣집 도련님인데.”

    “부잣집 도련님 맞아요.”

    “그래서 그렇게 건방졌구만. 너도 그렇고 부잣집에서 크면 다 그렇게 건방지게 되냐?”

    “그러는 가우왕도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요.”

    “칫

    아무래도 가우왕에게 최지훈은 나와 같은 부류로 취급받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모레 응원 올 거예요?”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처럼 보 이냐?”

    대답하지 않고 그를 올려다보자 어 쩔 수 없다는 듯 그가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결선에는 보러 올 테니까 준비나 잘해. 혹시라도 떨어졌다간 가만두 지 않을 거야.”

    “그럴 일 없어요.”

    “그래.”

    가우왕과 인사를 하곤 돌아서는데 뒤에서 핸드폰 안내 음성이 어색하 게 말했다.

    “사인 좀 해주세요. 팬이에요.”

    돌아보니 최지훈이 어디서 구했는 지 사인지와 펜을 가우왕에게 향하 고 있었다.

    가우왕은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내게 물었다.

    “어이, 이 꼬맹이가 지금 나 놀리는 건가?”

    **

    다음 날.

    어머니와 함께 니아 발그레이의 집을 방문했다.

    “어서 와.”

    “오랜만이에요, 악장.”

    무척 건강해 보이는 얼굴을 보고 내심 안도했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상황은 심각했다.

    이승희에게서는 귀가 안 좋아졌다 고만 들었는데 손에도 마비가 온 것이다.

    대체 무슨 병인지.

    현대 의학으로도 어떻게 치료할 수 없다고 한다.

    “재활을 꾸준히 하면 일상생활은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연주는 이제 못 할 것 같아.”

    니아 발그레이는 담담히 자신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의 초연한 태도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참, 크리크에 출전했다며?”

    “네. 그렇게 되었어요.”

    “좋은 일이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마음껏 해야지. 세프는 네가 악장 오디션을 보지 않아서 서운해 했지만.”

    “덕분에 아직도 안 뽑은 모양이더 라고요.”

    “응. 다른 악장들도 불만이 많더라고. 4명이서 하던 일을 3명이서 하 게 되었으니까.”

    본래 네 명의 콘서트마스터가 일정에 맞추어 돌아가며 악장 역할을 수 행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으로서는 확 실히 니아 발그레이의 부재를 실감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 그를 보고 있을 뿐이었는데 니아 발그레이 가 상냥하게 말했다.

    “세프뿐만 아니라 나도 네가 베를린 필하모닉에 와줬으면 해.”

    “ 악장••••••

    “너라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테니 좀 더 멋진 베를린 필이 될 거야. 그렇지?”

    그의 말에 대답하지는 못하고 헤어 졌다.

    어머니와 천천히 빈 거리를 걸었다.

    “푸르트벵글러 씨도 발그레이 씨도 도빈이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네?”

    “그런 것 같아요.”

    “베를린 필에 들어가고 싶니?”

    “아직은요. 좀 더 알고 싶은 게 많으니까.”

    세상은 넓고 내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은 너무나 많은 ‘음악’이 축적 되어 왔다.

    나는 아직 그것들을 전부 파악하지 못했기에 아직은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고 나서야 푸르트벵글러처럼 베를린 필이라는 최고의 악기를 멋 지게 연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

    어머니와 그렇게 빈의 거리를 계속 걷는데 첫인상과는 조금 다르다. 차를 타고 바라본 빈은 예전과 너무나 달라져 있었는데, 중심지에서는 꽤 예전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점심도 먹고 쇼핑도 하며 시간을 보내자 어느덧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갈까?”

    내일은 크리크 예선을 치러야 하니 숙소로 돌아가 쉬는 게 맞다.

    “네. 여기서 멀지 않을 것 같아요.”

    “택시 잡으려 했는데. 벌써 길을 외운 거야?”

    “……스마트폰 지도로 봤어요.”

    대충 예전 모습을 떠올리며 이동 경로를 떠올린 것뿐인데 어떻게 대 답해야 하나 고민하다 핸드폰 핑계를 댔다.

    “아. 그렇구나. 요즘 애들은 정말 빠르다니까. 어떻게 하는 건지 엄마 한테도 알려줄래?”

    곤란하다. 할 줄 모른다.

    “호텔에서 알려드릴게요.”

    도착하면 히무라에게 알려달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천천히 걷는데, 어디에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

    ♪♫♬

    워낙 예술 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 라 거리를 걷는 도중에도 피아노뿐 만 아니라 여러 연주를 들었지만.

    다르다.

    ‘이건 대체.’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5번을 편 곡해 연주하고 있다.

    즉흥인지 아니면 누군가 만들어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계속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도빈아?”

    “잠깐만요.”

    나도 모르게 이 정열적인 연주에 이끌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하자 작은 건물이 나왔다.

    문을 슬쩍 열려고 하자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 나를 저지하려 하셨다.

    “도빈아, 갑자기 왜 그래?”

    그 순간 피아노 연주 소리가 멈추었다.

    “누구세요?”

    여성의 목소리.

    곧이어 문이 열렸다.

    “죄송해요. 아이가 피아노 소리가 너무 좋아서 실수를 했어요.”

    어머니께서 그녀에게 사과를 했는데 나는 문을 연 여성을 보고 깜짝 놀라 사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찰스 브라움의 반주를 해주었던 피아니스트였다.

    “아!”

    “아!”

    나와 그녀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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