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112화
26. 9살, 라이벌(1)
이러한 이야기는 수그러지는가 싶었지만 언론에서는 이 이야기를 좀 더 다루고 싶었다.
화제성.
이미 연예인 이상으로 전 국민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배도빈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인기를 끌었다.
더군다나 배도빈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라면 더욱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한민국의 유력 언론•방송사인 NBC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고.
“네가 총대 한번 메야겠다.”
결국 면식이 있던 보도국의 김준용 기자가 배도빈을 찾아 관련된 이야 기를 인터뷰했다.
“요즘 인터넷에서 칸토에 참가한 일에 대해 이야기가 많던데. 혹시 알고 있니?”
‘뭐라는 거야?’
전부터 마음에 안 드는 기자였는 데, 만나달라고 하기에 바쁜 시간을 내주었더니만 결국 이런 질문을 하 고 싶었던 모양이다.
“김 기자님, 민감한 질문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히무라가 나서서 김준용 기자를 제지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말에도 익숙해졌고 더 이상 예전처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기에 직접 이야기하고자 했다.
“괜찮아요, 히무라.”
히무라도 이제 예전처럼 무조건 내 행동을 막으려 하지는 않는다.
내가 괜찮다고 하자 슬쩍 물러나 주었다.
김준용 기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무슨 질문이었죠?”
“하하. 별일은 아니고 네가 너무 잘하다 보니 다른 대회 참가자들과 수준 차이가 난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
“사실이네요.”
“그렇지! 그래서 다들 막 네가 나 오면 안 됐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 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 인다.
어떻게든 내 대답을 이끌어 보다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걸 바라고 있는 거다.
마치 내 편인 듯 말하면서 말이다.
“그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 는지 듣고 싶으신 거죠?”
“그렇지. 아무래도 기분 나쁘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네. 기분 나빠요.”
신나게 펜을 놀리는 김준용 기자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나에 대해 떠드는 일은 예나 지금 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도리어 나를 향한 모욕과 소문은 예전이 더 심했다.
익숙했기에 그런 잡소리는 무시해 왔지만 예전과 분명 달라진 점이 있었다.
지금의 내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 가족과 소중한 사람이다.
“기자님은 준우승한 최지훈의 연주를 들어본 적 있어요?”
“최지훈? 아니……. 그런데 그건 왜?”
“그런 말을 할 거면 최지훈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준비조차 제대로 못하고 나온 사람 도 있던데, 우습고 하찮아요.”
히무라가 나서려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출전해서 우승을 못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회 참가자인가요? 그랬다면 최지훈처럼 정말 노력한 사람에게 실례예요. 적어도 제가 듣기에 최지훈을 제외하곤 크리크에 출전할 만한 기량을 갖춘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네. 다른 참가자들의 수준이 떨어 진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또.”
“ 또?”
“참가자가 아닌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는데 없는 사실을 더하거나 욕설을 한다거나 제 외할아버지를 비난하는 건 범죄 예요.”
“그건 네가 공인이니까……
“히무라, 공인이 무슨 뜻이에요?”
히무라를 보곤 물었다.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야.”
다시 고개를 돌려 김준용 기자를 바로 보면서 입을 열었다.
“공인이라고 죄 없이 인신공격을 받는 게 정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일 단 저는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왜 제가 음악을 하는데 외할아버지를 욕하고 거짓말로 누명 의 씌우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외할아버지가 돈으로 매수를 해 대회를 열었다든지 제 뒤를 봐주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봤어요. 크리크 콩쿠르의 격을 낮춰서 그 대회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지금도 피아노 앞 에서 피나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이유도 모르겠고요.”
필기를 하던 김준용 기자가 슬며시 펜을 내려놓았다.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녹음기를 끄기도 했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예요. 하지만 그걸 남에게 말했을 때는 책임을 져야 할 거예요.”
“……자기 생각도 말 못 하냐고 물 어보면 어떻게 대답할 거니?”
김준용 기자가 물었다.
“오래 못 살 거예요. 자기주장을 위해 남을 욕하는 사람이 오래 살 수 있을까요?”
예전 유럽 같았으면 바로 결투다.
명예를 훼손한 사람에게 손수건을 집어 던져 권총으로 쏴 죽였을 것이다.
특히 외할아버지와 최지훈을 욕되 게 하는 인간들은 용서할 수 없다.
“저를 욕하는 건 무시하면 돼요. 하지만 가족과 친구를 향한 모욕은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도저히 저를 욕하고 싶어 못 참겠으면 다른 사람 건들지 말고 저한테 하라고 기사 내 주세요.”
그렇게 김준용 기자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데 그가 이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텄네, 텄어.”
“김 기자님, 오늘 인터뷰는 도빈이 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겁니다. 부디 곡해해서 싣지 않도록.”
“그런 말 마세요, 대표님. 저도 사람입니다. 집에 도빈이만 한 아들도 있고요.”
“양심이 있으면 이런 걸 어떻게 그렇게 올려요. 표현의 자유니 뭐니, 언론의 권리니 의무니 같잖지도 않은 말로 이 어린애를 얼마나 괴롭혔으면 애가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우 리 애는 아직 핸드폰 게임만 해요.”
“……김 기자님.”
“도빈아, 아저씨가 미안했다.”
김준용 기자가 순순히 내게 사과했다. 아들이 나만 하다고 하니, 뭔가 생각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그럼 기사는.”
“기레기 짓도 적당히 해야지. 아들 뻘 되는 애가 욕먹을 기사 못 쓰겠습니다. 안 써요. 안 써.”
김준용 기자가 나와 히무라 앞에서 녹음된 파일을 지워버렸다.
메모했던 종이도 찢어 테이블 위에 두었다.
“그 뭐, 대신이라고 할 건 없지만 나중에 쇼팽 콩쿠르 나가게 되면 그 때 인터뷰 한번 해줘요. 그래 줄래, 도빈아?”
“네. 그렇게 해요.”
김준용 기자와 악수를 나누었다.
히무라가 김준용 기자를 배웅하고 돌아와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신 차린 거 같아 다행이네.”
“그러게요.”
“……괜찮은 거야? 댓글 같은 거 확인 안 하는 게 좋다고 했잖아.”
“팬들이 좋은 말을 써주기도 하니 까 안 볼 수 없어요.”
“그래도……
“정말 괜찮아요. 주변 사람들만 건 들지 않으면 무시하고 있어요.”
“그래. 그럼 기분도 전환할 겸 오 늘 저녁은 카레로 할까?”
“치킨도 얹어서요.”
“좋아.”
[악플에 대처하는 9살 아이가 보여 준 대한민국의 단상]
지난 토요일, 배도빈과의 두 번째 인터뷰를 가졌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배도빈은 내 기억 속의 모습과 달리 훌쩍 자라 있었다.
먼저 밝히건대 성장한 것은 키만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하며 최근 이슈가 되었던 칸토 우승에 대해 언급하자 배도빈 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가족과 친구만큼은 욕하지 말아주 세요. 차라리 저를 욕하세요.”
그 말을 하면서 나를 직시하는 그 곧은 눈빛만큼은 예전과 같았다.
‘크리크’는 재능 있는 어린 음악가를 위해 ICMCOC에서 기획한 전 세계적 음악 콩쿠르고 이슈가 되었던 ‘칸토’는 그 예선이다.
‘크리크’ 우승자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이유는 음악 꿈나무들이 보 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공평한 기 회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클래식 음악계의 안배였다.
그 자리에 배도빈보다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 판단은 ‘칸토’의 심사위원을 맡은 음악 전문가들이 해주었다고 생 각한다.
단지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보았을 때 현재의 비정상적인 상황에 안타 까울 뿐이었다.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배도빈 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다.
배도빈이 유명해질수록 그러한 상 황은 심해지는데, 그것을 본 음악가 이기 전 아홉 살 소년일 뿐인 배도빈은 가족과 친구를 욕할 거라면 자
신에게 하라고 부탁하였다.
유명 연예인에 대한 악플 문화는 꽤 오래전부터 문제시되어 왔다.
마치 예술 활동을 하면 비난을 들 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진 이들이 비 난과 비판을 구분하지 못한 채 익명 이란 이름 뒤에 숨어 폭력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후략)
-NBC 보도국 김준용 기자
NBC 보도국의 김준용 기자가 낸 사설기사는 조금씩 여론을 바꿔나가 기 시작했다.
특히 자식이 있는 부모 세대에서 어린아이가 오죽했으면 욕을 할 거 면 자신에게 해달라고 하냐며 인터 넷 악플 문화에 대해 혀를 찼다.
배도빈의 여성 팬들은 배도빈의 발 언을 보고 눈물이 나왔다, 응원한다, 어린데 너무 기특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으며.
그것은 비단 어떠한 세대만의 반응 은 아니었다.
모든 비난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 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WH그룹 유장혁 회장이 강경대응 에 나서면서 강제적으로 억눌리면서 배도빈의 ‘칸토 우승’에 대한 이야 기는 일단은 그렇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연예인, 운동선수, 예술가 등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은 여전하여 언젠가는 배도빈을 욕하는 사람도 다시 생겨날 테지만.
어린아이의 착한 마음에 분명 대한 민국은 감동하였다.
*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릴 ‘크리크’ 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출전하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하 는데 홍승일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안 가신다고요?”
“그래.”
“그렇게 나가라 하셨잖아요. 여행 도 할 겸 같이 가요.”
“빈은 너무 많이 가서 질렸어. 안 간다.”
너무 많이 가서 질리다니.
난 수십 년을 살았는데.
“무슨 이유가 그래요?”
“내 마음이야! 콜록. 콜록.”
홍승일이 소리를 버럭 지르곤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성질을 부리며 소리를 치니 사레가 들 만하다.
그를 빤히 보고 있자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는 듯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
가만 보니 살도 좀 빠진 것 같고 뭔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빨리 가서 준비나 해!”
“어디 아파요?”
“아프긴 누가 아파! 내가 아팠으면 좋겠냐?”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럼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서 피아노나 더 쳐!”
‘이 영감탱이가 갑자기 왜 이래?’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또 쓸데없이 시비를 건다.
기껏 사람이 걱정해 주는데 화를 내니 더는 못 상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