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11화 (11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11화

    25. 9살, 지역 예선 종료(3)

    칸토(크리크 국제 음악 콩쿠르 지 역 예선)의 본선 결과는 당연했다.

    결선에 진출한 여섯 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에는 최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

    과제곡은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 벌에서 빈 필하모닉의 연주에 앞서 연주하게 될 피아노 소나타 11번 A 장조, K.331.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역사상 가 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인 모차 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였다.

    ‘칸토’의 각 나라 우승, 준우승자들 은 7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크리크 콩쿠르’를 치르는데 거기서 우승한 사람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독 주를 하는 영광을 얻게 되는 듯.

    아무래도 ‘크리크’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연주’의 간격이 짧아 따로 곡을 준비하지 못할 것을 주최 측에 서 배려한 듯싶었다.

    신기했던 건 홍승일이 과제곡이 발표되기도 전에 이 곡이 선정될 거라는 걸 예상했던 것이다.

    “어떻게 알았어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자체가 모차르트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니까. 모 차르트 소나타 중에서 유명한 걸 따 지면 어려운 것도 아니지.”

    역시 나이는 괜히 먹는 게 아니다.

    함께 피아노를 치면서도 느꼈지만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홍승일이 얼마 나 노련한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일정이 빡빡하구나. 6월 15일에 결선을 치르면 7월 크리크까지는 보름밖에 없으니 말이야. 또 거기서 우승하면 곧장 연주를 준비 해야 할 테고. 독주만 있는 게 아니 라 빈 필과 협연도 한다는 거 알고 있느냐?”

    “네.”

    “그래. 알면 부지런히 해야지.”

    “충분히 했어요.”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지금의 너 도 훌륭하지만 더 발전해야 한다고. 네게 콩쿠르는 우승이 목적이 아니 야. 남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더 성장하는 거지.”

    “그렇게 콩쿠르 나가라고 하시더니

    할아버지도 결국 제가 우승한다고 생각하시네요.”

    “그럼. 귓구멍이 뚫려 있으면 네가 우승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당연한 일.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씁쓸해졌다.

    홍승일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아니, 대회에 참가했던 아이들이 중얼거렸던 것처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우승을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세계 각국에서 출전한 아이들 중에는 분명 이번 대회를 위 해 피나는 노력을 한 아이도 있을 것이다.

    최지훈처럼.

    내가 없었더라면 그런 아이들 중에 뛰어난 아이가 우승할 거라 생각하 니 그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봐줄 생각은 주호도 없기에 콩쿠르 무대 아래에서는 그런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 * *

    “도빈아, 파이팅!”

    “오빠, 파이팅!”

    6월 15일 일요일.

    칸토 결선 당일 종로의 콘서트홀을 찾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채은이와 그 가족이 응원을 해주었다. 박선영 도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힘을 주었는데 히무라는 별말이 없었다.

    “왜 응원 안 해줘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히무라가 불평했다.

    “긴장이라고는 조금도 안 하고, 어 차피 우승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고. 그런 네게 뭐라 말하겠니. 요즘 들어 내가 필요 없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럴 리가요. 히무라가 없으면 안 돼요. 빨리 응원해요.”

    “그, 그래. 파이팅!”

    히무라뿐만이 아니라 사카모토 료이치와 이승희,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토마스 필스, 한스 짐, 미카엘 블레하츠, 가우왕 등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안 해주니 그 게 요즘 불만이다.

    홍승일처럼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내가 콩쿠르에 나가길 바랐으면서 막상 출전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기분이 상한 것이다.

    ‘다들 출전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엄마, 제 핸드폰 주세요. 전화할 데가 있어요.”

    “그래. 사카모토 씨에게 전화하게?”

    “아뇨. 요즘 바쁜 거 같아요. 가우왕한테 하려고요.”

    핸드폰을 소지하고 무대에 오를 순 없어 잠시 맡겨둔 전화기를 받아 가우왕에게 전화를 걸었다.

    -……끄으윽. 누구야.

    “독일어로 말해요.”

    -뭐? ……이 꼬맹아, 지금이 몇 시인지 알아?

    “지금 한국 칸토 결선이에요.”

    -그래? 근데?

    “할 말 없어요?”

    -뭐, 수고해.

    “마음에 안 드는데.”

    -어차피 우승할 거잖아.

    “그거야 당연하죠.”

    -그런 거 어서 해치우고 잘츠부르크에서 빈 필이랑 협연이나 잘 준비 해. 보러 갈 거니까.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라 통화를 마 무리하고 푸르트벵글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그가 호탕하게 웃은 뒤 정색했다.

    -거기서 우승하면 빈 필과 협연을 한다지? 내가 응원할 거라 생각한 게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악장 오디션 보러 오지 못해!

    “아직 안 뽑았어요?”

    니아 발그레이의 은퇴 소식을 들은지 꽤 지났는데 아직도 안 뽑은 모 양이다.

    그때 카밀라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도빈이 괴롭히지 말고 빨리 뽑기나 해요! 언제까지 단원들 힘들게 할 생각이에요? 다른 악장들 스케줄 관리하기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마음에 드는 인간이 없는데 어쩌라는 거야!

    “……잘 지내요, 세프.”

    카밀라와 푸르트벵글러가 또 말싸움을 시작해서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응원을 듣는 건 포기해야 할 듯하다.

    ‘재미없는데.’

    우승이 정해져 있으면 응원을 받는다거나 하는 쪽이라도 재미를 봐야 하는데 그런 것도 시원치 않으니 더욱 재미없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최지훈이 얼마 나 분발했는가에 대한 의문뿐인데.

    진행자가 최지훈을 호명했다.

    서둘러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 기실로 향했는데 다행히 늦지 않았다. 최지훈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고 막 건반 위에 손을 얹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A장 조, K.331.

    너무나도 유명한 곡으로 과거만큼 이나 현대에도 사랑받는 곡인데 악장의 구성이 무척 다양하다.

    프랑스풍의 우아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트리오가 있는 미뉴에트라는 점도 당시에는 색달랐다.

    특히 ‘알라 투르카(터키풍으로)’라 고 적혀 있는 3악장은 당시에 유행 했던 동양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느 낌이라 더 독특하게 다가왔다.

    결론은 기교적인 면보다는 감성적 인 부분을 자극하는 곡인데.

    아직 그 부분에 대해 미숙한 최지훈이 과연 어떤 연주를 할지 기대되었다.

    동 _

    그 서정적 음률이 귀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

    ♪♫♬

    ‘••••••좋아.’

    본선이 끝난 뒤, 이 자리를 위해 또 얼마나 반복해 연주했을까.

    정확하고 간결한 타건과 최소한의 움직임. 몸도 마음도 악보에 맞춰 절제되어 매우 정제된 느낌을 주는 최지훈의 모차르트 소나타 A장조는 그 나름의 맛이 있었다.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선 여러 방법 이 있지만, 똑같은 슬픔이라도 열정 적으로 연주해야 하는 곡이 있는가 하면 절제했을 때 더욱 구슬픈 곡이 있는 법이다.

    홍겨운 곡도 마찬가지.

    최지훈이 수백, 어쩌면 천 번을 넘 긴 끝에 선보인 연주를 훌륭히 마쳤다.

    【칸토 종료, 우승자 배도빈】

    [이변은 없었다. 우승 배도빈. 준우 승 최지혼]

    [배도빈. “이 콩쿠르의 유일한 관심 사는 최지훈의 연주였다. 그의 연주는 한 단계 성숙해졌다.”】

    [정해진 결과에 클래식 음악 팬들 의 엇갈린 반응. 첫 콩쿠르 우승 축 하 VS 배도빈은 성인 콩쿠르에 참가 해야 했다]

    【최지훈, “배도빈과 겨룰 수 있어 만족. 최선을 다했다.”]

    [평론가 심일석, “배도빈의 연주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콩쿠르는 무의미했다.”】

    [평론가 박우석. “다가가지 못할 우 아함.”]

    크리크의 지역 예선인 칸토는 모든 사람의 예측대로 배도빈이 우승을 차지했다.

    많은 사람이 배도빈이 이른 나이에 세계무대에 설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그러나 제1회 대한민국 칸토의 참 가자 일부와 그 관계자 또는 그들의 의견을 지지하는 몇몇 사람이 배도빈의 참가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다.

    실력 차이가 나는데 굳이 칸토에 나와 다른 지망생의 앞길을 막았다는 게 그 요지였다.

    이러한 의견은 심사평과 더불어 더 욱 확산되었다.

    제1회 칸토(크리크 지역 예선)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어린 피아니스트들에게는 국제무대 에 설 수 있는 기회였던 만큼 지원자가 가장 많은 콩쿠르였다.

    참가 나이 제한의 폭도 넓은 편이 라 참가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분별력을 위해 ICMCOC에서 어려운 곡을 과제로 지정했을 때는 고등부 조차 어려워하는 곡을 초등학교 저 학년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우려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초등학교 1학년, 2 학년이 나란히 우승과 준우승을 차 지하였다.

    어린 음악가들의 발전이 내 상상을 뛰어넘어 기쁘기 그지없는 콩쿠르였다.

    그중에서도 우승자 배도빈의 연주는 압도적이었다.

    단순히 연주를 잘하는 것을 넘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한다.

    그의 해석에는 확신이 있었고 이미 거장의 반열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탐구하는 그에게 이번 콩쿠르는 도 리어 족쇄가 되지 않았나 싶다.

    더욱 큰 무대에서 날개를 활짝 펴 길 바랄 뿐이다.

    준우승자 최지훈의 연주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절제되어 있다.

    보통 어릴수록 감정을 과도하게 넣는 경향을 보이는데 최지훈의 연주 에서는 그런 미숙함을 찾을 수 없다.

    한 음, 한 음 정확하게 이어나가며 작곡가의 의도를 편안히 전달해 준다.

    톤을 신경 쓰고 곡에 대한 자신만 의 해석이 더해진다면 피아니스트로 서 대성할 거라 확신한다.

    -심사위원장 박건호(피아니스트)

    ‘칸토’가 배도빈의 기량을 뽐내기에는 너무도 좁은 무대였다는 대한민국의 거장 박건호의 심사평은 배도빈의 참가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주장에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박건호의 말뜻을 곡해하여 편한 대로 활용하면서 연일 배도빈을 공격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여론은 그의 견을 무시했다.

    ㄴ 배도빈 진짜 극혐 아니냐? 세계 적인 음악가라 하고 그래미상 받았으면 됐지 꼭 애들 나오는 대회에 나와야 했냐?

    ㄴ 칸토 원래 애들 나오는 곳임.

    ㄴ 그러니까 이미 성공한 음악가가 나와도 되는 거냐고. 남궁예건이 칸 토 나갔으면 가만있었겠냐고.

    ㄴ 남궁예건은 31살임.

    ㄴ 남궁예건 84년생임.

    ㄴ 그러니까 나이 제한만 있는 게 말이 되냐고. 칸토가 원래 어린아이 들한테 기회를 주는 취지로 열린 거 아니야. 아 이 새끼들 말 졸라 못 알아듣네.

    ㄴ 그럼 뭘 기준으로 둠?

    ㄴ ICMCOC에서 나이 제한 말고 다른 자격 제한을 둠?

    ㄴ ICMCOC에서 정한 방침은 8살 부터 19세까지 참가할 수 있는 거 임. 배도빈이 8살이고 참가할 수 있어서 참가했고 부정을 저지르고 우 승한 것도 아닌데 왤케 못 잡아먹어 서 난리임?

    ㄴ 그러니까 이게 다 배도빈 몰아주 기 아니야. 짜고 치는 거지. 그게 아 니면 갑자기 이런 대회 여는 이유가 뭔데? WH가 ICMCOC에 돈이라도 줬겠지. 지 손주 잘 봐달라고.

    ㄴ 헐

    ㄴ 헐랭.

    ㄴ 님 바보

    ㄴ 와 개불쌍하네. 소문 못 들었나? 배도빈이랑 WH그룹 엮어서 헛소리한 인간들 줄줄이 고소당한 거 모르냐?

    ㄴ 이렇게 또 방구석여포가 주거씁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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