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09화 (109/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09화

    25. 9살, 지역 예선 종료(1)

    식사를 마치고 박선영과 함께 샛별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향했다.

    이시하라 린과 카메라맨은 사무실 가운데 탁자에서 치킨을 먹고 있었다.

    “와, 한국 치킨 너무 맛있어요.”

    “더 시킬까요?”

    이시하라 린은 고개를 저었지만 이 미 뼈만 남은 걸 본 히무라가 전화 기를 들었다.

    “아, 왔어?”

    “네. 좀 더 드시고 할까요?”

    “아니야. 아니야. 하다가 배달 오면 먹으면서 하면 되니까. 아, 히무라 씨. 저는 양념이 더 좋아요.”

    대단한 넉살이다.

    대충 준비를 하고 이시하라 린이 본론을 꺼냈다.

    “우선은 감사 인사.”

    “감사 인사?”

    “응. 네가 앨범을 내면서 일본 클래식 음악계가 다시 살아나고 있어. 2009년과 2014년. 딱 5년 만에 음 반 판매량이 50만 장이나 늘었어.”

    “많이는 거예요?”

    “그럼. 네 첫 번째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이 43만 장 팔렸으니 도빈이 네 지분이 대부분이야. 히무라 씨와 나카무라 씨가 널 일본의 희망이라 했던 게 틀리지 않았단 게 증명된 셈이지.”

    두 번째 앨범이 꽤 많이 팔린 모 양이다. 발매된 지 얼마 안 되어 아

    직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기쁜 일이다.

    “그리고 힘들었을 때 정말 큰 도움 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아. 다들 희망을 얻었다고 해. 네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일본 팬들 이 널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모를 거야.”

    “고마운 일이네요.”

    “응. 그래서 일본인으로서 먼저 인 사부터 할게. 고마워. 정말로.”

    나는 내 음악을 했을 뿐인데.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이렇게까 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구나 싶다.

    사실 나는 그 일에 대해 한 일이 적다. 그저 생활에 부담이 생기지 않을 만큼 기부를 한 것이 전부.

    그런데 그때 발매된 내 앨범이 그 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니 부담스 럽기도 또 감사하기도 하다.

    “그럼 인터뷰를 시작하면……. 더 퍼스트 오브 미를 작업한 소감은?”

    “거기서부터예요?”

    이시하라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크리즈 오리지널 스코어 작업을 할 때부터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제가 모르는 악기를 이용한 다거나 아니면 악기가 아닌 걸로 소

    리를 내보기도 하고요. 더 퍼스트 오브 미에서는 그런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경험이 되었어요.”

    “거임도 해봤니?”

    이시하라 린 뒤에서 히무라가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아니요.”

    “흐응.”

    눈치가 빠른 건지 그녀가 슬쩍 뒤 돌았다. 히무라는 능청스럽게 모르는 척을 했다.

    “더 퍼스트 오브 미가 2013년 최 고 매출액을 달성하면서 게임 유저 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어.

    게임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음악만 들어도 게임의 장면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 노력했어요.”

    “돈도 많이 벌었지?”

    돈 관리는 어머니께서 하고 계셔서 굳이 확인하지 않으면 모른다.

    저번에도 이런 식의 질문을 받았던 것 같은데 그때 히무라는 단호히 끊어냈던 것 같다.

    “글쎄요.”

    “치. 좋아. 그러면 다음 질문. 가우왕과 녹음한 두 번째 앨범이 화제인 데, 일본에서만 벌써 20만 장이 팔렸어. 앨범에 대해 소개해 준다면?”

    “방금 답변이랑 이어지는데, 여러 소리를 실험해 보는 과정에서 자연 스러운 소리와 인위적으로 만든 소 리를 조화롭게 담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비발디의 사계와 같은 곡을 만 들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된 것 같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 느새 치킨이 새로 배달 왔다.

    그러나 침을 꿀꺽 삼키는 카메라맨 과 달리 이시하라 린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역시 프로는 프로다.

    “그럼 가장 중요한 질문! 크리크 지역 예선에 참가한 이유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요.”

    “약속?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고?”

    “아닌데요.”

    “어……. 일단 그 약속이 뭐야?”

    “친구랑 한 이야기예요. 자세한 건 대답 안 할 거예요.”

    “치사해.”

    “프라이버시예요.”

    “말 잘 못했을 때가 귀여웠는데.”

    “그래봤자 이야기 안 해줄 거예요.”

    뭔가를 적더니 이시하라 린이 기지 개를 쭉 폈다.

    “으응! 차! 끝! 오늘도 고마워.”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조금 김이 새는 건 어쩔 수 없네.”

    이시하라 린이 치킨 박스를 풀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뭐가요?”

    “난 네가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에 나갈 거라 생각했거든. 크리크 결선에 올라가는 게 17세부터인 나

    이 제한을 무시할 유일한 방법이니 까. 또 내년이 딱 5년마다 돌아오는 쇼팽 콩쿠르가 열리는 해고.”

    몰랐는데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모양이다.

    홍승일이 그곳에서 우승을 하는 게 피아니스트로서는 최고의 영광이라 고 하던데.

    확실히 그만한 주기로 전 세계에서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 모여 경연을 펼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 했다.

    “이야깃거리가 많았는데 말이야. 아쉬워. 아쉬워. 아, 이거 맛있다.”

    “이야깃거리요?”

    따로 업무를 보고 있던 히무라도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네. 실은 일본에 도빈이 라이벌이 생겼거든요.”

    “라이벌? 아, 타마키 히로시?”

    “네. 사실 라이벌이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요. 훌륭한 인재지만 도빈 이에 비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어디 그런다고 마케팅 안 하겠어요?”

    “하긴.”

    “네. 난리도 아니에요. 언론마다 도빈이만큼이나 천재라고 띄어주고 있어요. 물론, 이번 크리크 일본 예선 에도 참가했고요.”

    “확실히 눈에 띄긴 했지. 예전에 엑스톤에서도 영입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지금 나이가 열여섯 인가?”

    “네. 얼마 전 인터뷰에서는 크리크 에서 우승해서 쇼팽 국제 콩쿠르 우 승을 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본 내에서 관심이 많은데, 글쎄 도빈이가 참가한다는 거예요. 이제 앞뒤 안 보고 뛰어온 것도 이해되시 죠?”

    “무슨 상관인데요?”

    타마키 히로시라는 아이와 내 콩쿠르 참가가 어떤 연관을 가졌는지 이 해할 수 없었다.

    “아마 일본에서 너와 타마키 히로 시를 라이벌 구도로 잡았으니 화제 가 되었을 거야. 진검승부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흐음.”

    그 아이의 연주는 들어본 적 없지 만 열여섯 살이라. 대회 참가자 중 에서는 꽤 많은 편이다.

    일본에서도 괜히 실력 없는 사람을 두고 그럴 리는 없을 테니 어느 정 도 기본은 한다고 생각해야 할 텐데, 솔직히 가소롭다.

    “근데 왜? 쇼팽 콩쿠르에는 정말 안 나갈 거야?”

    “지금은 생각 없어요.”

    “정말 딱이잖아! 이런 기회 정말 드물다고. 만약 네가 크리크에서 우 승해서 내년 쇼팽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게 되면 최연소 참가자이자 최 연소 우승자가 될 수도 있잖아.”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홍승일이 2010년, 최성신이란 사람 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쇼팽 국 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고 했다.

    남궁예건과 함께 대한민국을 이끌 어갈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데.

    솔직히 나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 기회를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명예보다는 경험과 팬 그리고 돈이 더 소중하니까.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에 다들 내게 콩쿠르 참가를 하는 것에 대해 이만 저만 스트레스가 아닌데, 이번은 특 별한 케이스다.

    “저랑 약속한 친구가 쇼팽 콩쿠르 까지 출전하게 되면 모르겠지만 아 무래도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최지훈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서울 지역 예선장에서 최지훈이 그 나이 또래에 비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 차는 무시할 수 없다.

    그보다 몇 년이나 더 오래 피아노를 다룬 사람들과 경쟁해서 서울 예 선 1, 2차 본선, 결선을 통과한 다음.

    크리크 예선과 본선을 거쳐 결선에 오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건 좀 아쉽네. 재밌는 이야기가 사라져서.”

    “이시하라가 재밌으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얘는. 농담도 못 하니. 자, 아.”

    “……아.”

    이시하라 린이 다리 살을 뜯어 내 게 먹여주었다. 다른 거라면 단호히 거절했겠지만 정말 가끔씩만 먹을 수 있는 피자나 치킨, 햄버거는 예 외다.

    “배부르다. 히무라 씨, 잘 먹었어요!”

    “하하. 치킨 정도라면 언제든지 대 접해 드리죠. 이번 기사도 잘 부탁 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안 그래도 도빈이 팬카페에서 대체 언제 도빈이 특집기사 쓰냐고 엄청 혼나고 있다고요. 그럼 도빈아, 콩쿠르 잘하고. 다음에 또 봐.”

    “잘 가요.”

    이시하라 린이 정신없이 왔다가 돌 아간 뒤, 나와 최지훈은 나란히 2차 예선으로 진출.

    2차 예선도 무난히 통과해 서울 지역 예선 본선에 오르게 되었다.

    3월 말.

    최지훈은 예선 2차 결과 발표와 동시에 공개된 본선 과제를 보곤 나 와 연락도 제대로 안 될 정도로 집 중해 연습했다.

    과제는 나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의 소나타를 한 곡 포함한 50분 연주.

    어린애들을 상대로 꽤 엄격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본선부터는 심사 기준도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을 느 꼈다.

    그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허용이 되는 건지 심사위원들도 모른다는 말이잖아요.”

    “그래. 그러니 과하지 않은 선에서 하라니까. 너는 그 즉흥적인 변주만 아니면 무조건 우승이야.”

    이런 점에서는 홍승일도 도움이 안 되었지만 한 가지, 연주할 곡을 편 성하는 데에는 큰 도움을 주었다.

    확실히 오랜 시간 여러 음악을 접 하고 콩쿠르 경험도 많은 그인지라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점에서는 나보 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4월 말이 다가왔다.

    ICMCOC 주최, ‘크리크 콩쿠르’ 서울 지역 예선 본선장.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본선장에 도 착하자 주변은 이미 북적이고 있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차에서 내리자 마자 마련된 대기실로 뛰어갔다. 덕 분에 기자들과는 마주치지 않았는데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잠시 머리에 스쳤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최지훈도 도착해 있었다.

    “여.”

    “아, 왔어?”

    “응. 사람 엄청 많다. 넌 올 때 안 힘들었어?”

    “실은 기자님들한테 안 붙잡히려고 일찍 왔는데 미리 와 계시더라고.”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니까.”

    자발적으로 그러는 건지, 아니면 회사에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건지 기자들은 정말 알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번 과제 어려웠지?”

    “응. 선생님이 프로그램을 짜주긴 하셨는데 워낙 어려운 곡이라서. 실 수 없이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어.”

    “지금은 잘하고?”

    내 질문에 최지훈이 씩 웃는다.

    “그럼. 난 천재니까.”

    나도 따라 웃어주었다.

    그리고 대기실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연주자가 바뀌는 사이 아주 잠깐 심사위원석이 화면에 들어왔다.

    본선부터는 심사에 좀 더 엄격하기 위해 심사위원이 따로 발표되지 않았는데.

    살집이 있고 눈빛이 강렬한 노인이 앉아 있는 게 이상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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