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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07화 (10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07화

    24. 9살, 첫 콩쿠르(3)

    제1회 전국 학생 피아노 콩쿠르, ‘칸토’는 한국 음악 협회가 2014년 에 신설한 등용문이었다.

    2010년.

    혜성처럼 등장한 한 천재는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전 세계는 다시금 ‘영재 육성’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2012년, 2013년에 걸쳐 각국에서는 청소년뿐만이 아니라 유 아를 상대로 한 교육을 시도했고.

    더불어 콩쿠르도 개최되었다.

    아직은 시작 단계라 주목할 만한 신인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배도빈의 명성이 널리 알려질수록 이러한 일 은 더욱 힘을 얻었다.

    결국 2014년 독일, 영국, 이탈리 아, 프랑스, 폴란드, 벨기에, 스위스, 러시아, 미국, 일본, 대한민국, 중국 등 총 31개 국가의 클래식 음악 협 회가 한 가지 사항에 대해 합의했는

    데 그것이 바로 세계 클래식 음악 콩쿠르, ‘CREEK’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크리크’는 2014년 6월에 각국에서 ‘지역 예선(칸토)’을 거쳐 선발된 인 원이 7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본선과 결선을 거치게 되는데.

    부문은 피아노와 현악4부로 정해져 있었다.

    그 우승자에게는 3만 유로.

    결선까지 오른 사람에게는 각각 1만 유로가 주어지게 되는데 그 규모 에 비해 우승 상금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영재들이 이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에 따르는 명예 때문이었다.

    첫 번째 명예는 무대.

    ‘지역 예선’ 입상자에게는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필하모닉의 공연에 앞서 연주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

    100년 가까이 된 이 유서 깊은 축제에서 빈 필하모닉의 공연을 들으려면 최소 6달 전에 예매를 해야 할 정도인데, 그 영광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이었다.

    음악 영재들에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명예는 기회.

    각 나라의 예선(칸토)의 우승, 준 우승자가 모여 기량을 겨루는 ‘크리 크’에서 결선에 진출한 참가자에게는 2015년, 겨울 오스트리아 빈에서 있을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에 대한 추천서가 주어지게 된다.

    피아노 부문의 경우에는 5년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피아노 의 올림픽,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International Chopin Piano Co mpetition)’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제 콩쿠르에는 16세 이하는 참가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고 그 이하는 하부 콩쿠르가 따로 개최되지만.

    ‘크리크’의 결선 진출자에게만큼은 예외적 참가가 허용되었기에 어린 영재들에게는 세계적 무대에 좀 더 빨리 입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를 비롯해 여러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이와 같은 예외를 둔 것은 다름 아닌 배도빈 때문.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배도빈과 같은 인물이 출전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한, 나름의 준비였다.

    정작 본인은 이러한 일에 대해 모 르지만 배도빈이란 인물이 단 3~4 년 만에 클래식 음악계를 변화시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임한다고?”

    “네. 선수로 참가할 거예요.”

    “어? 갑자기?”

    지금껏 콩쿠르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해 왔기에 히무라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선 갑작스러운 일 은 아니었다.

    홍승일을 만난 것부터 일본 센다이 콩쿠르, 가우왕과의 경연 그리고 결 정적으로 최지훈과의 약속으로 크게 마음먹고 출전을 결심한 것이다.

    갑작스럽다고 한다면 특별 심사위 원으로 위촉된 것이 더 뜬금없는 일 이다.

    “네. 지훈이랑 약속했어요.”

    “으음. 하지만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협회랑은 관계를 잘 쌓아 나가야 해. 앞으로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일도 있고 귀찮은 일을 그들이 막아줄 수도 있으니까.”

    “홍승일 할아버지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 하던데요? 그랬죠?”

    “이놈! 내가 선생님이라 부르라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아, 히무라 대표. 그 협회 놈들 말 들을 거 하 나도 없소. 어차피 지들 이득을 위 해선 음악가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봐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도빈이가 콩쿠르에 참가하겠다고 하지 않은가! 이보다 더 중요한 일 이 있나?”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히무라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며 나와 홍승일을 설득하려 했지만 결 국 홍승일까지 등에 업은 내 등쌀에 밀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확실히 도빈이가 하 고 싶은 걸 하는 게 좋겠죠. 대신 도빈아, 이야기는 내가 할게. 이런 일은 내게 맡기기로 했잖아?”

    “그럼 같이 가요.”

    “••••••그래.”

    “좋구만! 그래, 빨리 다녀와서 과제 곡을 준비하자.”

    “혼자 할 거예요.”

    “내가 봐주면 더 좋다니까!”

    아군일 때는 저 막무가내가 도움이 되지만 적일 때는 참 번거롭다.

    아무튼 그렇게 특별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지 3일 만에 한국 클래식 음악 협회라는 곳을 찾았다.

    “도빈아, 절대 화난다고 말 막하면 안 돼?”

    “애도 아니고 안 그래요.”

    “애 맞잖아.”

    히무라와 박선영은 내가 멋대로 사 나이들 사이의 약속을 망가뜨린 ‘그 들’에게 무슨 말을 할지 초조해했지 만 히무라와 약속도 했고, 이야기가 잘 풀리면 가만있을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잘 풀렸을 때의 일이지 만 말이다.

    “아, 도빈 군. 어서 오게.”

    안내를 받아 협회장실로 들어서자 백발이 성성한 마른 노인이 우리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음. 아주 씩씩해 보이는구만.”

    씩씩한 게 아니라 씩씩대는 중이다.

    “안녕하십니까, 한지석 협회장님. 샛별 엔터테인먼트의 히무라 쇼우입니다.”

    “히무라 대표도 반갑소. 어서 이리 앉지.”

    한지석 협회장과 마주 앉자 한 여 성이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오렌지 주스라서 한 모금 마셨더니 매우 단 거라 조금은 손님 대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 어쩐 일로 찾아오셨는가. 도빈 군.”

    한지석 협회장이 묻자 히무라가 조 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내게 물었지만 방문하기 전에 히무라가 한사코 자기가 이야기하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를 보았다.

    “실은 부탁드릴 일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부탁?”

    “네. 도빈이에게도 이런 중요한 일 의 심사를 맡는 게 도움이 되겠지만 아무래도 참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서 말이죠.”

    “허어.”

    협회장이 탄식했다.

    “이거 너무 늦게 알린 모양이군. 대우는 섭섭하지 않게 하겠네. 특별 심사위원이라고는 하지만 정식 위원 과 동등하게 발언권도 주어질 테고. 도빈 군의 이름값이야 전 세계가 알 고 있으니 말이야.”

    “그 점은 감사합니다만 도빈이가 콩쿠르에 참가하고 싶은 의지가 강 해서 강해서 말이죠. 그 뒤의 쇼팽 콩쿠르도 있다 보니까요. 피아니스트로서의 도빈이를 위해 부디 헤아 려 주시기 바랍니다.”

    “쇼팽 콩쿠르에 나간다는 말은 안했.”

    “쉿!”

    가만히 있자.

    “흐음. 이거 어쩔 수 없군. 쇼팽 콩쿠르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면 확 실히 도빈 군의 앞길을 막는 일이 니……. 좋소.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지.”

    “감사합니다.”

    “대신.”

    “예?”

    “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부탁할

    게 있네만, 들어주시겠는가?”

    “네. 말씀하십쇼.”

    “콩쿠르 홍보를 위해서라도 홍보대 사로서는 활동을 해주었으면 좋겠네. 이미 도빈 군의 사진이 포스터 로 배포되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회수야 돈 문제니 해결이 어렵지 않지만 이미지라는 게 있으니까.”

    “네.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네.”

    “협회에서 추석에 대규모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네. 박건호 선생과 차명운 선생을 필두로 대한국립교향악 단 등 내로라하는 음악가는 대부분 모이는데, 도빈 군도 함께해 주지 않겠는가?”

    화장하고 사진 찍혀주었으면 되었지 바라는 것도 많다.

    “도빈아, 어쩔래?”

    특별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것도 마 음대로 했으면서, 뭔가 이번 일로 이것저것 챙기려는 하는 것 같아 기 분이 좋진 않지만.

    일단은 최지훈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돈은 얼마나 줘요?”

    “하하하하! 섭섭하지 않게 챙겨주겠네.”

    한지석 협회장이 손가락을 하나 들 어 보였다.

    “1 억?”

    “크, 크흠.”

    “그럼 천?”

    한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대신 협연은 안 하고 독 주만 할게요.”

    협연을 하면 다른 사람과 맞춰야 하니 시간이 든다. 천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뭔가 더 배려해 주기엔 기분이 나쁘다.

    “고맙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럼 참가 신청은 이쪽에서 처리 해 두겠네.”

    “네. 그렇게 해주세요.”

    협회 건물에서 나오고 집으로 돌아 가는 와중에 히무라가 한지석과의 거래에 대해 언급했다.

    “뭔가 추석 공연에서 널 내보내려 고 했던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걸 보니 한지석 협회장도 어지간해.”

    히무라도 그렇게 느낀 모양이다.

    “뭐, 나쁜 일은 아니니까요.”

    “아마 협회에서 주관하는데 네가 안 나오면 곤란해져서 그런 모양이야. 그건 그렇고 조건 이야기는 잘 했어. 괜히 시간 더 뺏길 이유는 없으니까. 제법이던데?”

    “가끔 정말 애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팬들이 카페에 도빈이한테서 편지 받았다고 난리도 아니에요. 팬 관리에 음악하는 사람들 대하는 거 하며 요즘 사람들이 도빈이 보고 조 련사라 한다니까요?”

    “하하하! 좋은 일이네.”

    샛별 엔터테인먼트가 떠나고 한국 클래식 음악 협회 운영실장이 한지 석을 찾았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뭐, 잘 해결되었네.”

    “다행이네요. ICMCOCGnternatio nal classic music competition orga nizing committee: 국제 클래식 음악 경연 조직위원회)에서 배도빈 군 의 참가를 요구했을 땐 어쩌나 싶었는데 말이죠.”

    한국 클래식 음악 협회는 얼마 전 ICMCOC로부터 시정 요청을 받았다.

    그 내용은 곧 배도빈을 특별 심사 위원으로 위촉하여 대회 참가를 막 은 것에 대한 시정 요구였다.

    그러나 배도빈을 심사위원으로 임 명한 것은 한국 클래식 음악 협회로 서도 어쩔 수 없는 타협안이었기에 한지석과 협회 사람들은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배도빈이 참가 신청을 하기도 전에 몇몇 학부모가 배도빈의 ‘지역 예 선’ 참가를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무시하면 될 일이지만, 협회에 정 기적으로 후원을 하는 이들이 많아 이유 없이 그것을 거절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래서 협회가 내놓은 방법은 배도빈을 심사위원직에 앉히는 것.

    그러나 이 방법은 ICMCOC의 설 립 목적에 위배되었다.

    ‘배도빈과 같은 천재를 발굴’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만큼 ICMCOC는 내심 배도빈이 이번 경연에 출전해 제1회 크리크가 성공하길 바랐다.

    그래야 이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는 ICMCOC에 들어오는 후원과 스폰이 늘어날 테니 말이다.

    그들로서는 배도빈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 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한국 클래식 음악 협회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 에 섰는데.

    유력 후원자들의 요청과 ICMCO 仁의 요청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갈림길이었다.

    그러던 차 배도빈과 샛별 엔터테인 먼트가 협회를 방문한 것이었다.

    ‘이렇게 된 거 얻을 수 있는 거라 도 챙겨야지.’

    후원자들의 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반발은 있겠지만 그것은 음성 적인 일이다.

    또한 협회로서는 특별 심사위원으로 배정해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지 만 ICMCOC와 샛별 엔터테인먼트가 공식적으로 참가를 요청했다는 식으로 답하면 후원자들도 덜 서운 해할 터이니.

    한지석 협회장은 도리어 배도빈이 찾아와 준 것이 감사할 지경이었다.

    더욱이 협회가 추진하고 있는 추석 공연에 배도빈을 섭외할 수 있었으니 협회로서는 만족스러운 형태로 일이 마무리된 것이었다.

    “뭐, 오늘은 회식이나 하자고. 하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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