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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06화 (10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06화

    24. 9살, 첫 콩쿠르(2)

    사카모토 료이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로부터 두 번째 앨범이 성공한 데에 축하를 받았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전화나 메 시지 등을 통해 안부를 물어주었는 데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팬들의 편지였다.

    좁은 샛별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한 쪽을 가득 채운 팬레터를 읽으며 답장을 쓰고 있는데 박선영이 다가왔다.

    “정말 그거 전부 답장할 거야?”

    “그럼요?”

    “굳이 전부 답장해 주지 않아도 돼. SNS에 사진 찍어 올려도 되고. 아니면 개인 방송 틀어서 한 번에 인사해도 괜찮고.”

    “편지를 받았으면 답장을 해줘야 죠.”

    팬 덕분에 좋은 집에서 맛있는 음 식을 탐미하며 지낼 수 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편지는 좋지.’

    예전에도 편지를 즐겨 썼다.

    답장을 보내는 일이 고되긴 해도 그들의 손 글씨에서 전해지는 정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답장을 보내기 위해 하루 종일 펜을 쥐었다.

    다음 날.

    개학 전 마지막 부 활동을 하기 위 해 학교로 갔는데 홍승일이 다짜고 짜 콩쿠르에 나가자는 말을 꺼냈다.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포기라니! 자, 봐라. 초등부만 나 오는 게 아니라 고등학생까지 나오잖느냐. 게다가 우승자에게는 내년 세계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 나갈 수 있는 추천서가 주어진다. 나이 제한 이 사라진 지금이 기회야! 꼭 나가 야 해!”

    “그러니까 싫다구요.”

    그렇게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최지훈이 부실로 들어왔다.

    “오, 지훈이냐.”

    홍승일의 관심이 잠시 다른 곳으로 향해 최지훈이 온 것이 더욱 반가웠다.

    “네, 선생님. 인사드리러 왔어요.”

    “음. 그래, 전학 가서도 열심히 하 고. 음악의 전당 아카데미도 다니고 있다면서?”

    “네.”

    “즐겁게 하거라. 너라면 분명 크게 될 거야.”

    평소라면 밝게 대답했을 텐데, 최지훈이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무슨 일이 있나 싶다.

    “도빈아.”

    “나 6월에 콩쿠르 나가. 우승하면 세계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 나갈 수 있대.”

    “오오. 그래. 잘 생각했다. 봐라. 지훈이도 나간다고 하지 않느냐.”

    기껏 홍승일의 관심사가 다른 곳으로 갔는데 다시 콩쿠르 이야기다. 홍승일이 신이 나서 다시 나를 부추 긴다.

    ‘무슨 일이 있었네.’

    예상대로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 눈빛에 독기가 잔뜩 올라 있다.

    각오를 다진 듯한 친구의 모습에 응원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꼭 우승해.”

    나이 제한이 없다고 하니 지금의 최지훈에게는 어려울 것이다.

    또래 중에서는 가장 잘 친다고 하 지만 우리나라에도 천재가 없는 것 은 아니니 말이다.

    “난 너도 참가했으면 좋겠어.”

    “어?”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지만 최지훈의 말은 변하지 않았다.

    “저번에 이야기했잖아. 콩쿠르만큼 공평한 무대는 없다고. 나, 너랑 정 정당당히 대결하고 싶어.”

    진심인가.

    실력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은 최지훈도 잘 알고 있다. 나랑 그렇게 오래 피아노를 함께 쳤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나오는 걸 보면 솔직하고 정직한 녀석이 결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터.

    자연스레 최지훈의 아버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와봐.”

    개인적인 일이기에 홍승일에게서 떨어졌다.

    “무슨 일 있었어?”

    최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맞아. 거짓말이야.”

    “그럼.”

    “그래도!”

    최지훈이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거랑은 상관없어. 나, 네게 이기 고 싶어.”

    “그럼 20년 정도 더 연습하고 와. 그때는 같이 연주하자.”

    “우습게 보지 마!”

    이른 사춘기라도 온 것인가.

    최지훈이 평소와 달리 소리를 쳤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데, 녀석의 말을 들어줄 생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씩씩대던 녀석도 옆에 풀썩 앉아 자기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가우왕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피아니스트였어. 내 목표였어.”

    ‘그랬지.’

    “그런데 어느 날 네가 그를 이겨버렸어. 그날은…… 잊지 못할 거야.”

    “네가 가우왕을 이긴 날, 나는 너 무 기뻤어. 내 친구가 그렇게 대단 한 사람을 이기다니.”

    최지훈의 목소리를 조금 떨렸다.

    마주한 눈동자도 흔들렸으나 나를 응시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그런데 네가 가우왕과 작업을 함께한 앨범을 듣고 깨달았어. 가우왕 의 피아노가 전보다 훨씬 멋있어졌다는 걸. 네 피아노랑 너무나 잘 어울리고 있다는 걸.”

    ‘좋은 결과물이었지.’

    “너랑 싸운 뒤, 네게 인정받고 함께한 거야. 나도. 나도 너랑 그런 연주를 하고 싶어.”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증명할 거야. 나도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어 서 너랑 같이 음악을 할 거야.”

    친구의 말에 나는 아직도 내심 이 어린 친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강압으로.

    그로인해 생긴 오기로 내게 도전하는 거라 생각했건만.

    이 아이는 나와 다르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미래를 위해, 자신의 음악을 위해,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 발악은 고귀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참 부족하다는 건 잘 알아. 하 지만 이제 내가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야. 내가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서.”

    “넌 이미 피아니스트야.”

    “단순히 피아노를 친다는 의미가 아니야. 나는 좀 더!”

    “그래. 나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내 말에.

    최지훈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끄으윽. 나, 나도. 끅. 너랑.”

    “그래.”

    “피아노가 좋아서 흐끄윽.”

    “그래.”

    “끄윽. 나도…… 피아니스트야?”

    “그래. 어엿한 피아니스트야.”

    그 어떤 사람보다.

    나이와 성별 그리고 시대를 아울러 나는 이보다 고귀한 정신을 가진 정 직한 음악가를 보지 못했다.

    강압적인 가정 분위기 속에서도 흔 들림 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이 어린 손을 어찌 잡아주지 않으리 오.

    그가 나를 새로운 목표로 두고 정 진하고자 한다면 기꺼이 그를 위해 그리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목표라든가 그 런 말 하지 마. 우리 둘 다 피아니스트이기 전에 친구잖아.”

    “도빈아아아아앙!”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 어린 영혼이 담아내기엔 너무나 힘든 일이었겠지만, 그것을 내게 전 달하지 않으려고.

    그럴 마음조차 없는 나의 벗을 위 해 손가락을 걸었다.

    “결선에서 보자.”

    “응. 꾜윽. 꼭 결선에서.”

    홍승일에게 콩쿠르 참가 의사를 밝히니 그가 잔뜩 신을 냈다.

    6월의 콩쿠르.

    최선을 다해 최고의 무대로 장식할 생각이다.

    벗에 대한 예우로써.

    “네?”

    “6월에 전국 학생 피아노 콩쿠르가 있는데 운영위원회 측에서 연락이 왔어.”

    다음 날.

    히무라가 내게 이상한 소식을 전했다. 잘못 들었기를 바라며 되물었는 데 이번에는 박선영이 사실 확인을 해주고 말았다.

    “아홈 살 심사위원이라니. 엄청나잖아. 어머니랑 아버지도 기뻐하시겠다.”

    “아니.”

    “운영위원회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 나갈 수 있는 티켓을 건 첫 콩쿠르다 보니 이것저것 신경 쓰는 모양이야. 홍보를 위해서 널 심 사위원으로 초청한 것 같아. 아, 그 리고 홍보대사로서도 활동해야 하는 데, 한국음악협회에서 정한 거라 어 지간하면 응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하지만 기준이 있으니까 그건 꼭 지켜야 해. 콩쿠르는 콩쿠르만의 심 사 기준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학생 부다 보니 아무래도 기술의 정확성 에 비중이 많을 거야. 아, 참고 자 료도 함께 왔는데 같이 볼래?”

    아니.

    참가한다고.

    결선에서 만나자는 약속 어제 했단 말이다.

    “완벽해. 정말 대단하네. 역시 천재구나?”

    “헤헤.”

    음악의 전당 아카데미에서 레슨을 마친 최지훈은 교사들이 평가하기에 도 수준급이었다.

    영재들만 모이는 이곳에서도 최지훈의 수준은 돋보였다.

    이대로 노력하면 분명 이번에 처음 열리는 전국 학생 피아노 콩쿠르에 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6월 콩쿠르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1등할 수 있을까요?”

    “음……. 힘들겠지만 전혀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교사의 말에 최지훈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가 이내 씁쓸하게 되었다.

    이미 세계적 거장으로 버티고 있는 배도빈이 있었기에 이 정도로는 무 리였다.

    좀 더. 좀 더 연습해서 그와 동등 하게 음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정 면으로 도전할 생각이었다.

    “도빈이 때문에 어려울 거예요.”

    “도빈이? 배도빈?”

    “네. 도빈이도 참가하거든요.”

    “그래? 이상하다?”

    교사의 반응이 뭔가 이상해 최지훈 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교사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가 결국 밖으로 나가 무 엇인가를 들고 들어왔다.

    “그래. 맞네. 지훈아, 여기 봐봐. 배도빈은 특별 심사위원으로 되어 있는데?”

    “?????”

    최지훈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제목 과 심사위원란의 배도빈의 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

    최지훈과 집 앞 놀이터 그네에 나 란히 앉았다. 어이가 없어 둘 다 고개를 삐딱하게 숙이고 흙만 보고 있은 지 오래다.

    그러다 문득 최지훈이 욱했다.

    “참가한다고 했잖아!”

    “하려 했어!”

    “그럼 왜 심사위원이 된 건데?”

    “몰라! 빌어먹을 영감탱이들. 지들 멋대로 오라 가라 하잖아!”

    “여, 영감탱이들!”

    “그래. 망할 영감탱이.”

    한숨을 푹 내쉰 뒤 히무라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최지훈에게 들려주었다.

    “한국 음악 협회라는 곳에서 업무 협조를 요청했대. 어지간하면 들어 줘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

    “업무 협조?”

    “일 도와달라는 거래. 덕분에 난 웃기지도 않은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야 했단 말이야.”

    “그랬구나.”

    “그랬어.”

    홍보대사인지 뭔지 하는 바람에 전 국에 붙여질 포스터에 화장을 하고 찍은 내 사진이 붙게 생겨 버렸다.

    생각할수록 분하다.

    “그럼…… 출전 못 하는 거야?”

    “심사위원이 참가하는 거 봤어?”

    “아니.”

    “나도 못 봤어.”

    “……어른들 나빠.”

    “그래. 아주 빌어먹을 놈들이지.”

    “비, 빌어먹을 놈들.”

    “욕 잘하네. 더 해봐.”

    “나, 나쁜 놈들.”

    최지훈과의 미래를 걸고 다짐한 약 속이 이틀 만에 무효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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