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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04화 (104/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104화

23. 9살, 불새(5)

예상대로 내가 악장 오디션을 보길 기대했던 이승희는 잔뜩 실망하고 말았다.

“다들 널 그리워하고 있어.”

“저도 그러워요.”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끝에 이승희도 납득했다.

“그래. 다른 이유도 아니고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데 어 쩌겠니. 악장은 연륜도 좀 있고 식 견도 있어야 해. 지금보다는 좀 더 경험을 쌓은 뒤도 괜찮을 거야.”

“꼬맹이 말을 들어야 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으니까요.”

“한스 말고는 그럴 사람 없을걸? 다들 네 실력을 아는데.”

“한스? 정식 단원이 되었어요?”

“응. 얼마 전에. 정말 자기 잘난 맛에 사는데 귀찮아 죽겠어. 실력은 많이 늘었지만.”

예전 이승희에게 집적대던 경박한 남자가 떠올랐다.

“너한테 지고 엄청 분했었나 봐. 킥킥.”

“좋은 일이네요.”

베를린 필의 정식 단원이 될 정도 로 열심히 했다니, 정말 좋은 일이다.

“세프가 많이 서운하겠다. 내심 널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

“어쩔 수 없어요. 참, 니아 발그레 이는 좀 어때요?”

“……실은 귀가 좀 안 좋아졌어.”

이승희의 말을 들은 순간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

“소리를 못 듣는 거예요?”

“아니. 아직 그런 상태는 아닌데 점점 자기가 놓치는 게 생기니까 자 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거지. 프로로 서는 은퇴를 한다고 해서 다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음악가.

과연 니아 발그레이가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결심한 것도 이 해할 수 있었다.

주변에는 그렇게 말했지만 본인은 매일 밤 매일 낮 내면의 고통과 싸워왔을 것이다.

하늘은 왜 항상 이러한 시련을 내 리는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아주 심각한 건 아니래. 치료를 받으면서 기구를 쓰면 일상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인이랑 전원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괜찮아 보이더라.”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애써 웃으니까 나도 웃을 수밖에 없더라고.

도빈이는 이런 마음 이해할 수 있나?”

물론이다.

그 애수를 어찌 헤아릴 수 없을까.

“배도빈이 나오지 않는다고요?”

“네.”

“ 흐음.”

바라던 일과 다른 방향이었기에 찰스 브라움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뭐, 어쩔 수 없지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배도빈이 나오지 않는데 제가 굳이 오디션을 보러 갈 필요가 있습니까? 그럼.”

“자, 잠깐.”

테슬라는 찰스 브라움의 등에 대고 말했다.

확실히 지금 당장은 나쁘지 않았다. 루드 테슬라는 베를린 필하모닉 과 연계해 공개 오디션을 크게 확장 했고 그것의 기획할 수 있었다.

상임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의 반대가 있었지만 베를린 필하모닉도 상업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배도빈과 가우왕의 피아노 경연처 럼 거장과 거장의 대결을 바랐던 두 사람의 목표가 시들해진 것이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테슬라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뭡니까?”

“배도빈과 그렇게까지 우열을 가리 고 싶으신 이유에 대해 말해줄 수 있습니까?”

“이유라.”

찰스 브라움은 깊게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그의 파이어버드를 이길 수 있을지 궁금해져서 말이죠.”

그렇게 말을 남기고 돌아가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보며 테슬라는 확신했다.

저렇게 음악가들에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면 언젠가 배도빈의 의 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바라던 구도 가 이루어질 것을 말이다.

한편 루드 테슬라와 헤어지고 건물을 나선 찰스 브라움은 지난 한 달 간 혹사시킨 자신의 손을 굳게 쥐었다.

경매회장에서 들었던 배도빈의 바 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 단조.

그렇게 연습을 해본 적이 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한 달은 자신이 들었던 최고의 연주를 뛰어넘기 위해 무엇 인가에 홀린 듯 바이올린을 켰다.

‘언젠가는 확인해 볼 날이 오겠지.’

그 날이 오기까지 찰스 브라움은 더욱 자신을 연마하기로 다짐했다.

개학을 한 달 남겼을 때.

더 이상 두 번째 앨범의 녹음을 미룰 수 없었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채은이에게 첫 번째 곡을 연습시켰다.

곧잘 연주는 하지만, 이래서는 배도빈 두 사람이 연주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 곡 들으면 어떤 기분이야?”

“따뜻해!”

“그럼 이 부분은?”

“응?”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잡아내지 만 세부적으로 들어서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 한다.

역시나 곡을 해석하고 그것을 연주 에 녹이려면 아직 먼 것 같다.

“내가 도와줄까?”

“넌 아직 안 돼.”

“흐엉.”

최지훈이 지원했지만 실력 미달.

채은이보다는 낫지만 하나의 곡을 미스 없이 연주하는 데 너무 긴 시 간이 필요하다. 감정적 표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냥 네가 두 번 연주해서 합치면 안 되는 거야?”

“그래선 공명이 없잖아.”

“아.”

피아노 두 대를 위한 협주곡은 각 각 파트가 나뉘어 있지만 겹치는 부 분도 있다.

첫 번째 앨범을 작업할 때도 느꼈 지만 현대의 기술이 아무리 놀라워 도 따로 녹음된 두 소리의 공명까지 합칠 수는 없었다.

그 미묘하게 풍성해지거나 변화하는 느낌을 주려면 역시 같이 연주를 해야 하는데.

사카모토와 블레하츠는 너무 바쁘다.

그렇게 고민하는데 최지훈이 새로 운 발상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어때?”

“ 누구?”

“홍승일 선생님! 피아노 엄청 잘 치시잖아.”

“그렇게까지 싫은 표정을 지을 것 까진 없잖아.”

그의 실력은 나도 인정하고 사카모토나 블레하츠에 비해 못난 사람도 아니지만 꺼림칙함이 남아 있다.

교감을 해야 하는 상대 연주자가 홍승일이라니 조금 싫다.

“싫은데.”

“그러지 말고 금요일에 한 번 여쭤 봐. 이번 주에는 금요일에 모이잖아.”

달리 도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이야기나 한번 해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나 처음부터 삐걱였다.

“암. 제자가 도와달라는데 가만있을 수 있나.”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시간 있냐고 물어봤잖느냐.”

“그냥 궁금했을 뿐이에요.”

“연주자를 못 찾았다면서.”

“다른 일이에요.”

“웃기지 마라. 누가 봐도 나한테 부탁하려고 온 거 아니냐.”

“그러니까 부탁한 적 없다고요.”

쓸데없이 옥신각신 시간을 낭비했는데 홍승일이 내게 제안을 했다.

“좋다. 그럼 너도 자존심이 있을 테니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거 래를 하자.”

“거래?”

“그래. 거래.”

일방적으로 부탁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에 물었다.

“뭔데요?”

“올해 열리는 콩쿠르에 출전할 것.”

“싫어요.”

고집탱이. 한동안 잠잠하더니 아직 도 포기 못 한 것 같다.

“끝까지 들어!”

‘화를 낼 사람이 누군데.’

버럭 화를 낸 홍승일이 계속해 말을 이었다.

“지훈이도 나가는 대회다. 원래도 열심히 하는 애지만 유독 칼을 갈고 있어 물었더니 뭐라 답한 줄 아느 냐?”

‘천재니까?’

“너한테 이기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더구나.”

‘천재니까’라는 대답보다는 나아서 조금 안심했지만 내 친구의 꿈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친구로서 너도 호응해 주고 싶지 않으냐?”

“좀 더 크면 할게요. 지금은 괴롭 히는 것뿐이라고요.”

말문이 막히자 홍승일이 꿍시렁 대 다가 괜찮은 말을 꺼냈다.

“그럼 난 못 해주겠으니 다른 데 가서 알아봐라. 가우왕인지 뭔지한테 다시 이야기해보든가.”

“네?”

“그래. 그건 싫지? 내 말을 들으면 예건이를 소개해 줄 수도 있다.”

“좋은 생각이네요.”

“잠깐. 어딜 가! 배도빈!”

“가우왕과 녹음을 하고 싶다고?”

“네.”

“어……

히무라가 대단히 난감하다는 듯 대답을 못 하고 있다.

“마음에 안 드는 것 때문에 거절하고 경연까지 했잖니?”

“네. 그때 들으니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지적했던 단점도 극복했고.”

“그때 다시 안 본다고 했던 거 기억하니?”

“그렇지만 제가 그래도 히무라라면 잘 말했을 거잖아요.”

“그리고 경연 뒤에 악수도 했어요.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잖아요. 한 번 싸웠으니 친구예요.”

“원피스 같은 말을……

내 말에 고개를 흔든 히무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어. 연락해 볼게. 대신 예전과는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 있어. 내 말에 따라야 해. 알겠지?”

“알겠어요.”

박선영이 가져다 준 오렌지 주스를 비운 뒤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히무라에게 물었다.

“뭐래요?”

“어?”

“연락 해본다고 했잖아요.”

“메일을 보내놨어. 아직 답장이 안 왔어.”

“ 전화는요?”

“사업 이야기니까 메일로 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통화도 하고 만나기 도 해봐야겠지만 우선은 독일 아리 아도 가우왕과 대화를 나눠봐야 할 테니까.”

“ 으음.”

그렇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이미 곡을 완성하고 몇 달이나 녹음을 못 하고 있어 잔뜩 달아오른 상태다.

그러나 히무라가 자기 말에 따라야 한다고 하기에 기다리던 차.

3일 뒤에 독일 아리아로부터 답변이 도착했다.

“뭐래요?”

히무라에게 물어보며 모니터를 보려 하자 히무라가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제목: 사업 제안서에 대한 답신.

내용: 안녕하십니까, 히무라 쇼우 대표님. 독일 아리아의 2팀장 제프 마이어입니다.

샛별 엔터테인먼트가 보내주신 사 업 계획서에 대해 검토하였습니다.

(중략)

이에 가우왕은 배도빈과 함께 만나 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미팅 일자를 잡고자 합니다.

이런저런 말이 있지만 결국엔 가우왕이 나를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만날래요.”

“빈정거릴 수도 있어. 상황이 조금 우스워진 거 알고 있지?”

“괜찮아요. 그 사람, 저한테 푹 빠져 있으니까요.”

“무슨.”

황당해하는 히무라와 박선영을 보고 씩 하고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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