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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01화 (10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101화

    23. 9살, 불새(2)

    클래식 음악 공연 기획자로 유명한 루드 테슬라는 매년 줄어드는 관객 수를 놓고 고심하는 중이었다.

    당분간은 고정 팬층이 두터워 괜찮다겠지만 새로 유입되는 이들이 턱 없이 부족했다.

    이대로라면 10년, 20년 뒤에는 클래식 음악계가 크게 축소될 것은 자 명했다.

    젊은 루드 테슬라는 어떻게 하면 보다 대중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을 비단 그 만이 하는 것은 아니었다.

    루드 테슬라와 같은 고민을 하는 많은 이가 재즈, 락, 민족음악 등 여러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하면서 활로를 모색했다.

    단지 큰 방향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을 뿐이다.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 순수했던 때로 돌아가야 한다.’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어떤 이는 이상, 전통을 말했고 어 떤 이는 변화를 추구했다.

    다들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음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돈을 벌려면 인기를 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통론자든 개혁론자든 클래식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문 제의식만큼은 공유할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음악계 인사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루드 테슬라 역시 인류가 만들어낸 이 고귀한 음악의 불씨를 다시금 타오르게 할 무엇인가가 필 요하다고 생각했다.

    필요하다면 변화를 통해서라도 말 이다.

    그것이 루드 테슬라와 같은 사람들 이 전통주의자들과 마찰을 겪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에게 영감을 주는 한 일 화가 있었다.

    ‘배도빈 가우왕 피아노 경연’.

    모든 음악가, 특히 연주자는 콩쿠르를 통해 실력을 입증 프로 연주자 로서 데뷔해 왔다.

    그런 뒤에는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 가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탁월한 스 타성을 발휘하는 연주자는 극소수였다.

    젊은 피아니스트로서는 가우왕, 미 카엘 블레하츠 등이 가장 인기 있는 티켓 파워를 발휘했는데 그들도 어느새 30대가 되었다.

    새로운 스타가 필요하던 차.

    루드 테슬라는 몇 년 전부터 언론 과 업계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배도빈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 나이. 외모. 실력. 스토리.

    모든 것이 완벽했다.

    가난을 이겨낸 천재 음악가는 세계 적인 인기를 끌었고 동시에 그의 가 정사가 일부 밝혀지면서 단순히 인 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말할 거리’ 가 생겨난 것이었다.

    ‘그의 실력은 진짜인가.’

    ‘아니면 단순히 명문가의 만들어진 천재인가.’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배도빈이란 이름이 항상 언급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자신 의 의견을 내놓는다는 사실이었다.

    인터넷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배도빈의 이해할 수 없는 급진적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 면서 커뮤니티는 매번 진흙탕이 되었다.

    화제성.

    단순히 천재 음악가가 탄생했다는 것만으로는 관심을 받는 데 한계가 있는데, 배도빈은 이야기할 거리가 너무도 많은 것이다.

    단순히 연주자가 아니라는 그 태생 도 훌륭하다.

    20세기에 들어서 이제 새로운 클래식 음악이 탄생하는 일은 매우 드 물어졌다.

    기존에 있던 음악을 변형하고 탐구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작곡가의 수는 크게 줄어들었으며 그에 반해 연주자의 수는 과포화되었다.

    고유성.

    배도빈은 전통적인 작곡가였으며 동시에 연주에도 능했다.

    이 역시 배도빈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얼마 전 피아노의 황태자 가우왕과 경연을 하면서 그 잠재된 스타성이 폭발하고 말았다.

    배도빈과 관련한 키워드가 검색되는 양이 전에 비해 배는 뛰었고 그를 언급하는 언론 매체 역시 그만큼 뛰었다.

    배도빈만이 아니었다.

    상대였던 가우왕마저 경연 이후로 더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후배에게 패배해 몰락한 것이 아니라.

    경연을 통해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팬 층은 더욱 확고해졌고 그를 아는 사람이 늘어 난 것이었다.

    ‘이 거다.’

    루드 테슬라는 확신했다.

    클래식 음악계에 필요한 것은 이런 일이었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원초적인 일이었다.

    ‘누가 더 잘하는가.’

    경쟁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릴 적 누구나 부모님을 귀찮게 물었을 터다.

    ‘해가 세요, 달이 세요?’

    ‘손오공이랑 마인 부우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모차르트랑 베토벤이랑 싸우면 누 가 이겨요?’

    ‘아인슈타인이 세닐스 보어가 세요?’

    체면 때문인지 아니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토록 많은 콩쿠르를 통해 더 이상 지쳤기 때문인지.

    공연 기획자인 루드 테슬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클래식 음악에는 이 런 원초적인 ‘대립 구도’가 없었다.

    대립 구도가 있으면 스토리는 자연 스럽게 나온다. 부족하다면 연출로 해결할 뿐이다.

    실제로 작년 말에 있었던 ‘배도빈 가우왕 피아노 경연’의 결과로 대중 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 길을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중심은 역시나 현재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천재 음악가.

    루드 테슬라가 전화기를 들었다.

    외할아버지와 영국 여행을 다녀온 뒤, TV 출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방송국으로 가는 길이다.

    심심하던 차 박선영이 이필호 기자 가 보내줬다며 ‘관중석’을 넘겨주었다.

    내 기사를 여러 번 써주었던 사람 이기에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잡지 수준이 꽤 높다.

    [사카모토 료이치 리사이틀 대성황 속에서 마무리]

    [베를린 필하모닉 연말 연주회. 과연 거장의 D단조는 완벽했다】

    [ ‘파이어버드’ 900만 유로에 낙찰]

    [바이올리니스트 찰스 브라움, “파이 어버드의 고혹적인 음색은 최고다.”]

    [한스 짐. “노먼 감독과 다시 작업 할 수 있어 영광이다”】

    ‘재밌네.’

    모르는 단어가 간혹 나오기는 하지 만 이젠 제법 글을 이해할 수 있어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세상을 접하 고 있다.

    사카 모토와 푸르트벵글러도 예정되어 있던 공연을 잘 마무리한 모양이다. 나중에 연락 한번 해봐야겠다.

    그리고.

    ‘결국엔 낙찰되었구나.’

    파이어버드가 제 주인을 찾은 모양 이다.

    “찰스 브라움이란 사람 알아요?”

    운전을 하고 있는 히무라에게 물었다.

    “찰스 브라움? 모를 리가.”

    “들어본 적 없어?”

    히무라와 박선영 두 사람 모두 모 르는 게 이상하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걸 보니 이름을 알린 바이올리니 스트 같다.

    “피아노의 황태자가 가우왕이라면 바이올린 쪽에서는 찰스 브라움이니 까. 콩쿠르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어.”

    “흐음. 그 사람이 파이어버드를 샀 대요.”

    “그래? 내가 알기로 스트라디바리 우스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수집을 하는 취미도 있는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갔으니 파이어버드도 제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한 번 연주해 봤기에 미련은 없다.

    페이지를 넘겼다.

    반가운 소식이다.

    “한스 짐이랑 노먼이 다시 작업하 게 되었대요.”

    “또 대작 하나가 나오겠네.”

    “우주 배경이래요.”

    우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두 천재의 합작이니 개봉하게 되면 꼭 영화관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방송국에 도착했다.

    4시간의 긴 녹화를 마치니 진이 빠졌다.

    “고생했어.”

    세트장에서 나오자 박선영이 무가 당 오렌지 주스를 주었다.

    “단 걸로 주세요.”

    “안 돼.”

    “제발.”

    “그, 그래도 안 돼.”

    저번에 몰래 사무실에 플레이박스

    와 과자, 음료수를 놓은 것을 어머 니께 들킨 뒤로는 ‘제발’ 공격도 소용이 없다.

    아쉬운 대로 한 모금 마신 뒤 히무라를 찾았다.

    “히무라는요?”

    “전화 받으러 나가셨어. 차로 먼저 가 있자.”

    오늘은 더 이상 일이 없어 돌아갈 생각으로 지친 몸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늘도 주차장에는 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꺄아!”

    “도빈아! 도빈아! 누나 좀 봐봐!”

    “여러분, 잠깐만! 그렇게 몰려오시 면 도빈이가 다칠 수 있어요!”

    이제는 꽤 능숙해진 박선영이 우렁 차게 외치자 팬들도 진정하고 적당 한 거리를 두었다.

    “안녕하세요.”

    “꺄! 어떡해! 나한테 인사했어!”

    한 명.

    “머리가 바뀌었네요?”

    “헐! 어떻게 알았어?”

    두명.

    “아, 저번에 안 오셨죠 기다렸잖아요?

    “엉엉. 미안해. 누나가 알바 열심히 해서 많이 올게.”

    “선물 안 줘도 되니까. 그래도 이 건 잘 먹을게요.”

    “귀여워!”

    여러 명.

    나를 좋아해 주는 팬들에게 최대한 인사를 하고 차에 타자 박선영이 나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왜요?”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누나들 애 태우기나 하고.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누나라.

    10대, 20대는 꼬맹이로 보일 뿐이다.

    “엄마가 팬들한테는 친절하게 대해 야 한다고 가르쳐 줬어요.”

    얼굴을 기억하고 뭔가 짧게라도 말을 걸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확실히 다들 좋아해서 번거롭긴 하 지만 노력하는 중이다.

    “……어머님한테 내가 그런 말 했다고 하면 안 돼?”

    “생각해 볼게요.”

    적당히 대답하고 관중석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히무라가 도착했다.

    “미안, 미안. 늦었지?”

    운적석에 오른 히무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도 엄청나네. 괜찮았어?”

    “말도 마세요. 도빈이 말이면 팬들 전부 끔뻑 죽으니까.”

    “하하하! 요즘 말이 많이 늘긴 했더라. 연예인 다 되었던데?”

    “순수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순수는. 도빈이 어렸을 때 못 봤지? 그때는 정말 매일매일 당황스러 웠다니까.”

    두 사람이 뭔가 묘하게 나를 욕하는 것 같지만 일단 넘겼다.

    “도빈아, 오늘 잠깐 시간 더 내도 될까?”

    히무라가 운전석에서 몸을 틀어 나를 봤다.

    “시간이요?”

    “응.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 짧 게 30분만 내달라고 하네. 유명한 곳이라 좋은 관계 만들면 괜찮을 것 같아. 두 번째 앨범 준비 중인 과정 도 홍보가 될 것 같고.”

    “좋아요.”

    “좋아.”

    히무라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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