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97화 (97/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97화

22. 9살, 운명이 문을 두드렸다(4)

‘Grande sonate pathetiqu日는 문득 예전 일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의 절박했던 감정이 다시금 가 슴에 차올랐다.

‘시도는 좋았다.’

가우왕이란 어린 후배에게 가장 필

요했던 것은 표현력.

정확함을 바탕으로 한 기교는 확실 히 훌륭했지만 곡을 해석하여 어떻게 표현해야 청중에게 감동을 줄지 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은 듯 해 아쉬움이 많았다.

화려한 타건과 속주로 귀를 즐겁게 할 수는 있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할 수는 없는 법.

그런 그가 자신의 장기를 살리는 곡이 아닌 ‘Grande sonate pathötiq ue’를 선택한 것은 그 나름의 도전 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내게 주장하는 것이다.

‘많이 노력했네.’

실제로 그의 연주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그의 화려한 연주 속에서 내가 예 전 일을 떠올렸으니까.

자존심 강한 미완성의 천재가 이제 막 발돋움을 하려는 듯하니 홍승일 의 말대로 그 이정표가 되어줄 생각 이다.

나의 ‘비장’을 들려줌으로써 말이다.

매우 느리고 장중하게(Grave).

네 마디의 G단조로 시작하는 발전부.

두 건반을 강렬히 눌러 연주를 시작했다. 이어 부드럽게 이어지다 다시 한번 무게를 더해 내려치듯이 연주 한다.

손에 힘이 부족하지만 움직임을 크 게 하면 될 일이다.

이 작은 몸으로 어떻게 연주를 해 야 하는지는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다.

내가 전해줄 감성에 집중할 뿐.

당시의 내가 느꼈던 절박함과 그 속에서 태워냈던 비장함을 들려줄 뿐이다.

“대단하군.”

“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잖은가.”

가우왕의 베토벤 소나타 C단조를 들은 청중들의 반응은 앞선 첫 곡과 달랐다.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그 연주에 심사위원들의 평도 달라졌다.

그간 그가 받았던 비평을 무색하게 하는 가슴을 울리는 연주였다.

‘자, 한 단계 더 성장한 천재에 뒤

이어 어떤 연주를 들려줄 텐가, 도빈 군.’

사카모토 료이치의 시선이 배도빈 에게 고정되었고.

배도빈이 연주를 시작했다.

강렬한 첫 음이 시작되었고 네 마 디의 G단조 이후의 짧은 간격.

콘서트홀에 모인 사람들은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 압도적인 연주에 가만히 뒤따라 나올 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

♪♫♬

빠르게 (Allegro) 로 진입하는 순간 그 서글픈 절규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운명을 기다리는 위대한 천재의 고 독과 고뇌 그리고 비장함이 고스란 히 가슴에 전달되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배도빈의 연주가 시작되고 연주를 듣던 사람들은 배도빈이 들려주는,

아니, 느끼게 해주는 이 생소한 감 정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음표들이 자아내는 고뇌와 강렬한 멜로디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청중들의 머리와 가슴을 헤집어 놓았다.

가우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  9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그의 자존심과 노력 그리고 자부심이 떠오르지 않고 오 직 배도빈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나 타 C단조만을 느낄 뿐이었다.

기술적으로 완벽하다는 사실을 인

식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연주에 빠져든 것이다.

연주는 곧 아름다웠던 기억에 대해 들려주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비극이 다가오고 다시금 포기하지 않은 베토벤이 결 국엔 다시 비극을 맞이한 듯 처연히 울리는 건반 소리.

그러나 다시 투쟁!

힘차고 간결하게 맺는 마지막 소리!

배도빈이 마지막 음을 내려쳤다.

그 소리가 공기 중에 스며들어 그 작은 잔음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콘서트홀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벌떡 일어 나 소리쳤다.

“브라보!”

뒤이어 천 명에 달하는 청중이 모 두 일어나 배도빈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은 이에게 보내는 최고의 행위.

신인가 악마인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그들은 광적으로 손뼉을 쳤다.

영혼을 전율케 하는 그의 음악은 마치 악마가 준 선물처럼 느껴질 정

도였다.

짝짝짝짝짝_

‘이것이…… 비창?’

가우왕 회장을 가득 채운 그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사회자 라 타우는 끊어질 줄 모르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이내 경연을 진행하기를 포기했다.

무려 몇 분간 이어지는 그것이 절 로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뒤에야 심 사위원들에게 평가를 부탁할 수 있었다.

가우왕 : 배도빈

0 : 6

어느 누구도 그 압도적인 결과를 부정할 수 없었다.

가우왕의 연주가 귀와 가슴을 건들였다면 배도빈의 연주는 감동할 새 도 없이 그 음율 속에 빠져들게 했으니.

넘치는 흥분은 배도빈이 건반 위에 다시 손을 얹을 때까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콘서트홀 안을 배회하였다.

그리고 배도빈이 그가 선택한 두 번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세기의 대결. 압도적인 실력을 선 보이다]

[마에스트로 마리 얀스, “가우왕은 그가 지금껏 받아온 비평을 씻어냈다. 단지 상대가 좋지 않았을 뿐.”】

[거장 제르바 루빈스타인, “내 남은 평생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어 큰 기쁨이다.”]

【배도빈 가우왕 피아노 경연 성황 리에 마쳐. 전 세계 260만 명 시청]

[총합점수 34 대 2. 배도빈, 피아노의 황태자를 압도하다]

[마에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우리는 지난 배도빈의 연주로 하여 금 피아노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다시금 복기할 수 있었다.”】

[거장 미카엘 블레하츠. “우리는 지 금까지 베토벤의 소나타를 잘못 연주하고 있었다.”】

【가우왕. “인정한다.”]

2013년 12월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배도빈 가우왕 피아노 경연’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작곡과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유명세를 얻던 배도빈이 피아노계에서 가장 빛나고 곧 거장으로 발돋움하려는 가우왕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따돌렸기 때문이었다.

각 국 방송사는 전문가를 초빙해 두 사람의 경연을 해설, 생중계하기 도 하면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세세한 차이는 있었지만 가우왕의 피아노 연주에 깊이가 생겨났다는

점과 상대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 만은 공통적이었다.

특히 배도빈이 한 곡, 한 곡 연주를 마친 뒤에는 진행자도 해설자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방송국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언론 사가 경연 도중에도 쉴 새 없이 기 사를 냈다.

경연 뒤에는 콘서트홀을 방문한 거 장들로부터 직접 인터뷰를 따 실시 간으로 발표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기사가 높은 조회 수를 기록.

대한민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

ㄴ 중간에 쌌지만 갈아입으러 갈 수 없었다.

ㄴ 등신 같은 말 멋있는 척하지 마.

ㄴ 배도빈 진짜 급이 다르다. 그냥 천재 나온 줄 알았는데 피아노는 진짜 개넘사벽이네.

ㄴ 경연 다 끝나고 비창 전 악장 다시 연주하는 거 들었냐. 진짜 소름도 그런 소름이 없었다.

ㄴ 가우왕도 잘했네.

ㄴ 나 진짜 클래식 1도 관심 없었는데 배도빈 연주할 때는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봄. 우리 가족 다 얼 빠져서 2시간 동안 밥상 앞에서 TV만 보고 있었음.

ㄴ 귀르가즘 쩔었다.

ㄴ 복습이 답이다 이건. 불판 깔아준 사람한테 진짜 iaia.

ㄴ 해외 반응 [링크] 루시퍼 강림。*?

ㄴ 박건호 이후 우리나라에 이런 거장 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짜 급 이 다른 연주였음.

ㄴ 해석 좀.

ㄴ 남궁예건이랑 최성신은?

ㄴ 샛별이 악마가 되어 돌아왔다. 그의 음악은 너무도 고혹적이라 빠져나올 수가 없다.

ㄴ 배도빈을 루시퍼라 했네. 샛별, 샛 별 하니까 말장난으로 말한 듯.

ㄴ 그게 뭔 말임?

ㄴ 남궁예건이랑 최성신도 저리되길 바라야지. 지금도 훌륭한 피아니스트인 건 맞음.

ㄴ 배도빈 연주가 너무 좋아서 악마가 유혹하는 것 같다는 말이 많은데 루시 퍼가 샛별이란 뜻도 가지고 있음. 그래 서 그렇게 부르는 듯.

ㄴ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의 루시퍼라는 거임?

ㄴ 노잼이야.

ㄴ 악마 같다는 말 같이 일하는 사람 들이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던뎈ㅋㅋㅋ

ㄴ OE 진짜임?

ㄴ ㅇㅇ. ㅋㅋㅋ 너무 완벽해서 엄청 귀찮게 하는 스타일이랰ㅋㅋ

ㄴ 귀엽닼ㅋㅋ

“다녀왔습니다!”

친구 배도빈의 경연을 직접 관람한 최지훈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부푼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배도빈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지만 가우왕은 최지훈이 피아노를 치기 전부터 사랑하고 존경했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았기에, 아직 어린 배도빈은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의 승리를 위해 기도했는데, 막상 연주를 들으니 새로운 세상에 들어간 듯했다.

그 연주만으로도 너무나 황홀했는데 압도적인 결과가 나오곤 최지훈은 작은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환희. 전율.

너무나 멀어 보이지도, 어디에 있는지 가늠조차 안 되던 프로 연주자의 세계.

한 살 어린 친구가 그곳에 우뚝 서는 모습을 보며 최지훈은 빨리 연 습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이 기쁨을 아버지와 함께하 고 싶었다.

“아버지?”

"응."

아버지의 거실로 향한 최지훈은 TV 화면에 배도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음을 보곤 신나서 최우철 사장 옆에 앉았다.

“도빈이 대단하죠? 정말 엄청났어요! 아버지도 함께 들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엔 꼭 같이 가 주세요.”

“……돌아왔으면 씻고 쉬어라.”

아버지의 냉담한 반응에 어린아이 치고 눈치가 빠른 최지훈이 입을 닫게 되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화났다는 걸 느낀 최지훈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르려 인사를 하고 최우철의 거실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였다.

“재밌었던 것 같구나.”

최우철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 졌기에 조금 시무룩해졌던 최지훈이 다시 밝게 대답했다.

“네!”

“……분하지는 않았느냐.”

“••••••네?”

“너보다 한 살 어린 놈이 저런데 분하지 않냐고 물었다.

“하지만 도빈이는 제 친구……

최우철이 의자 팔걸이를 세게 내려 쳤고 최지훈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 에 떨기 시작했다.

“뒤처지면 친구 따위 없어! 친구조 차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네가 대체 무엇이 부족하냐. 배도빈에게 있고 네게 없는 게 대체 무엇이야!”

“아, 아버지……

“난 나를 도와주는 것 따위 없었다. 하지만 넌 달라.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주마. 그러니 말해. 대 체 뭐가 필요하냐고! 네게 뭘 줘야

배도빈처럼 될 수 있는 거야!”

억센 손으로 자신의 양어깨를 잡고 뒤흔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최지훈은 울지도 못한 채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최지훈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 이었다.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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