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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95화 (9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95화

    22. 9살, 운명이 문을 두드렸다(2)

    푸르트벵글러의 격렬한 반응이 너 무나 재밌어 한동안 크게 웃고 떠들었다.

    식사가 나오고서야 그 분위기가 조 금 진정되었다.

    “그런데 대체 왜 하필 29일인 거냐. 이 바쁠 시기에. 하필이면 악장도.”

    “ 악장?”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나중에 본 인이 말하겠지.”

    푸르트벵글러가 이상한 말을 꺼냈다.

    니아 발그레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좀 더 물어보려 했는데 카밀라가 먼저 나섰다.

    “정말. 연말, 연초 연주회 때문에 시간 내느라 혼났어.”

    “흠. 확실히 그렇지. 나도 내일 끝 나자마자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네.”

    “나도 마찬가지야.”

    다들 바쁜 모양이다.

    확실히 연말연초에는 다들 개인 일 정이 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의 경 우에는 어제 막 연주회를 마쳤다고 한다.

    내일은 또 곧장 돌아가 다른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고 카밀라가 덧붙여 설명했다.

    그 말을 듣자 푸르트벵글러가 조금 피곤해 보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사카모토와 블 레하츠도 연말 리사이틀 때문에 일 정이 촉박해 보였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방송도 한다고 들었는데 시청률 같은 걸 의식한 거냐?”

    “생각해 보면 올해 마무리를 장식 할 최고의 이벤트이긴 하지.”

    푸르트벵글러와 사카모토가 주거나 받거니 하며 12월 29일이라는 날짜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무슨 의미라고 있는 거야?”

    카밀라가 물어 솔직하게 대답했다.

    “방학식이 오늘이었거든요.”

    “……뭐라고?”

    푸르트벵글러가 눈을 크게 뜨고 다 시 한번 말해보라는 듯이 말했다.

    “출석일수는 채워야 하니까요.”

    “망할 꼬맹이 같으니.”

    푸르트벵글러의 솔직한 말에 나도 다른 사람도 웃어버렸다.

    “후우. 그래. 자신은 있느냐?”

    “그럼요.”

    “네가 가우왕에게서 어떤 단점을 봤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쉽 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가 현재 가 장 인기 있는 피아니스트인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푸르트벵글러와 같은 생각이다.

    “맞아요. 그의 연주는 귀를 즐겁게 해요.”

    고개를 끄덕이는 세프와 언제나 미 소 짓고 있는 사카모토.

    이번에는 오랜 음악 친구가 물었다.

    “계획은 어떠냐. 이기려면 고전 시대 곡을 연주하는 게 좋을 텐데.”

    많은 고전 시대 음악이 화려한 기교보다는 멜로디 자체와 감정에 보 다 강점을 두고 있는 편이다.

    기교는 훌륭하나 곡 이해도가 떨어지는 가우왕에게는 난감할 수도 있다.

    또 그 당시 곡들은 내 특기이기도 하다.

    그 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카모토의 조언은 적절하다.

    “첫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 카예요.”

    “음?”

    “그건 가우왕의……

    “네. 그가 많이 연주하는 곡이예요.”

    의외의 선곡이라는 반응이다.

    “과연. 눈에는 눈으로 상대하겠단

    생각인가.”

    “그가 가장 자신 있는 곡으로 상대 해 줘야 균형이 조금이라도 맞을 테 니까요.”

    “하하하하! 그래! 사내라면 그 정 도 패기는 있어야지. 지기라도 했다 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난 어디까 지나 공정하게 심사를 볼 테니 말이다.”

    푸르트벵글러의 말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자세다.

    “네. 공정하게 해주세요.”

    12월 29일 오후 5人!(베이징 기준).

    WH그룹 후원, 독일 아리아와 샛 별 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는 ‘배도빈 가우왕 피아노 경연’의 막이 올랐다.

    전 세계에 동시 생중계가 되는 만 큼 각 나라마다 중계진이 나왔으며 중국 내에서만 31만 명이 몰려들어 ‘배도빈 가우왕 피아노 경연’의 콘서트홀 주변 일대가 마비되었다.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내빈석 에 자리한 사람들의 면면은 더없이 화려했다.

    바쁜 시기임에도 음악계 유명 인사 들이 대거 참관하였는데 로비에서는 그들에게서 인터뷰를 따기 위해 기 자들과 방송국 리포터가 치열하게 경쟁했다.

    ㄴ 미쳤다 진짜. 이름만 들어도 아는 사람들 다 나왔네.

    ㄴ 왘ㅋㅋㅋ 마리 얀스도 있음 ㅋㅋㅋㅋㅋㅋ

    ㄴ 진짜 일 엄청 커졌네. 이게 WH 그룹의 힘인가?

    ㄴ 마리 얀스가 누구임?

    ㄴ 그것도 그런데 이런 경우가 없어 서 그런 듯.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음악가 두 명이 칼만 안 들었지 맘 먹고 싸운다는데 화제가 안 되는 게 이상할 듯.

    ㄴ 가리 얀스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 르트허바우 음악감독임.

    ㄴ 음악감독?

    ㄴ 권한 많은 지휘자라 생각하면 됨.

    ㄴ 할리우드 배우들도 보이는데?

    ㄴ 샐럽들 모이는 곳이니께.

    더욱이 세계적인 그룹들의 후원이 빗발쳐 WH전자뿐만이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페이스노트, 전 세계적 대기업 미시시피 등의 로고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주최사인 독일 아리아와 샛별 엔터 테인먼트가 ‘배도빈 가우왕 피아노 경연’의 수익금을 경연 주최비용을 제외한 전액, 개발도상국 기아를 상 대로 기부한다는 뜻을 밝혔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고조되었다.

    ‘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실력’을 가늠하기 위한 대결임을 뜻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적 반응이 뜨거운 것도 무 리는 아니었다.

    ㄴ 와 미친 댓글 속도 실화냐?

    ㄴ 배도빈을 응원합니다.

    ㄴ 안 그래도 다른 나라 말 많은데 너무 빨리 올라가서 읽지를 못하겠넼ㅋㅋㅋㅋ

    ㄴ 황태자의 승전보를 기원합니다.

    뉴튜브로도 생중계되고 있는 인터 넷 댓글창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가 빠르게 올라왔다.

    채팅을 올리자마자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의 댓글을 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 방송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예측했던 뉴튜브 측 으로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너 무나 많은 트래픽이 걸렸기에 사람 들은 아쉬운 대로 TV로 시선을 돌 리는 수밖에 없었다.

    He * *

    “아, 켜졌다.”

    “ 뭐가요?”

    한편 대기실에 있던 배도빈은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박선영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개인 방송.”

    최근 들어 배도빈의 매니저로 개인 방송을 하는 박선영이었기에 배도빈 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오늘 도네 많이 받으면 조금 나눠 줄게.”

    “도네가 뭔데요?”

    “후원이야. 아, 사람들 엄청 많이 들어오네. 히힛. 소고기 먹어야지.”

    “후원? 왜 후원을 해요?”

    배도빈이 박선영의 핸드폰을 보기 위해 얼굴을 비추자, 박선영의 개인 방송 댓글창은 난리가 났다.

    ㄴ 왘ㅋㅋㅋ 배도빈이닼ㅋㅋㅋ

    ㄴ 와, 진짜 배도빈 매니저셨구나.

    ㄴ 도빈아, 누나가 카레 사줄게 밥 한 번만 먹자.

    ㄴ 와 쩔어. 대기실인가 보네.

    ㄴ 여기서도 경연 중계해 줌?

    동시에 박선영의 핸드폰이 계속해서 전자음으로 무엇인가를 말했다.

    배도빈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이거 하지 마세요. 이 돈으로 과자 사 드세요. 저 이런 거 안 받아도 돈 잘 벌어요.”

    “야! 그런 말 하면 안 돼! 너 이번 경연도 전부 기부할 거라며. 이것도 못 벌면 우리 뭐 먹고 살아!”

    “저작권료 계속 들어오고 있잖아요. 내년엔 더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누 나 예전에도 개인 방송했는데 그때 받은 돈은 어쨌어요?”

    ㄴ 매니저 뼈 맞았죠ㅋㅋㅋㅋ

    ㄴ 횡령이다! 횡령!

    ㄴ 과자 사 먹으랰ㅋㅋ 아 진짜 귀 여워 죽겠닼ㅋㅋㅋㅋㅋ

    ㄴ 샛별 엔터테인먼트 힘든가 보네.

    ㄴ 누나들 과자 안 먹어도 돼. 도빈 이 많이 먹어 ㅠㅠㅠ

    ㄴ 언제 시작함?

    “녹음실이랑 사무실 임대료만 몇 백만 원인데 이런 거라도 해야지! 봐봐, 사람들이 진짜 횡령한 줄 알잖아.”

    “아니래요.”

    ㄴ 엌ㅋㅋㅋㅋㅋ 아니랰ㅋㅋ

    ㄴ 그래그래. 믿어줄겤ㅋㅋ

    ㄴ 어, 갔다.

    ㄴ 갔어…….

    ㄴ 갔네…….

    “여러분, 도빈이 지금 막 준비해야 해서 갔어요. 많이들 응원 부탁드려요. 아, 네. 규정상 그건 좀 어려워요. 이게 후원사들이랑 중계권 계약 한 거 때문에 경연 영상은 못……

    아, 안 돼. 나가지 마요.”

    대기실에 홀로 남은 박선영은 배도빈이 떠나자 순식간에 줄어드는 시 청자 수를 보며 좌절했다.

    “찾아와 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사회를 맡은 라 타우 입니다.”

    짝짝짝짝_

    세기의 대결을 보기 위해 달아오른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콘서트홀에 사회자 라 타우가 등장했다.

    “우선 오늘 경연의 방식에 대해 안 내해 드리겠습니다.”

    라 타우 뒤 큰 스크린에 화면이 비 춰졌다.

    “가우왕과 배도빈은 서로가 정한 곡을 모른 채 피아노 앞에 서게 됩니다. 우선 주자인 배도빈이 연주를 하면 다음 차례인 가우왕이 배도빈 의 선택곡을 연주합니다.”

    라 타우의 말에 관중석이 순간 웅 성거렸다.

    경연을 할 곡에 대해 공유조차 없이 연주를 해야 하는 악조건을 이해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말이 돼요?”

    베를린 필의 사무국장 카밀라 앤더 슨이 빈 필의 사무국장 필립 람에게 물었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조건이지. 레 퍼토리가 아무리 넓은 연주자라 해 도 불가능해. 서로 마음먹고 이기려 고 하는 자존심 싸움인데 상대 레파 토리에 맞춰줄 리도 없고.”

    어젯밤 배도빈의 첫 번째 선택 곡을 들은 카밀라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한 룰에서 상 대의 특기 곡을 선택하는 일은 너무 도 불리해 보였다.

    “무엇보다 상대가 연주한 곡을 처 음 들었을 때의 문제도 있어. 적어도 범위는 상정했어야지. 이런 조건이면 역시 빅 매치치고 재밌는 것 없다는 말이 나올지도 몰라.”

    “범위요?”

    “예를 들어 베토벤이라든가 리스트 라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래야 연습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아.”

    “아니. 설령 알고 있는 곡이라 해도 연습 없이는 제대로 된 연주가 가능 할 리 없어. 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거 누가 정한 룰인지 알아?”

    “도빈이가 제안했고 가우왕이 받아 들인 걸로 알고 있어요.”

    “둘 다 미쳤군.”

    빈 필하모닉의 사무국장 필립 람의 생각은 정확했다.

    관중석에 있는 많은 음악 관계자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특히나 가우왕의 경우에는 곡마다 편차가 심하다는 평을 많이 받고 있었다.

    레파토리가 좁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넓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배도빈은 이제 막 만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알고 있는 곡의 폭이 넓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허무한 경연이 될지도 몰라.’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군.’

    ‘무슨 생각으로 이런 조건을 걸었는 지 모르겠군. 사실상 즉흥 연주가 될 텐데.’

    “마지막으로 심사는 양측에서 선출 된 여섯 분이 해주시겠습니다. 먼저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마에 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소개

    합니다.”

    라 타우가 심사위원을 한 명씩 소개하였고.

    이윽고 모두의 우려 속에서.

    사회자 라 타우가 마침내 대결을 펼칠 두 사람을 호명했다.

    “모든 설명이 끝났습니다. 오래 기 다리셨습니다. 피아노의 황태자, 가 장 화려한 피아니스트 가우왕! 그리 고 대한민국의 음악가 배도빈을 모 십니다. 모두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시 길 바랍니다!”

    ㄴ 저 새끼 짤라. 소개 엿같이 하네.

    ㄴ 편파 실화?

    ㄴ 시작부터 장난질이네.

    ㄴ 똥개도 자기 집에선 먹고 들어간다잖아.

    두 사람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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