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94화 (94/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94화

22. 9살, 운명이 문을 두드렸다(1)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면 괜찮은 거겠지. 그럼 쉬어.”

“그래. 걱정 말고 들어가.”

매니저가 떠난 뒤 가우왕은 TV를 끄고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배도빈의 첫 번째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가우왕은 터질 듯이 뛰는 가 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흥분.

그것은 분명 기쁨이었다.

배도빈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세간 의 평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일본에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절로 고 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마치 얼음처럼 고요한 호수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으로 이어지는 전 개는 가우왕이 들었던 그 어떠한 곡 보다 선정적이었다.

적어도 그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기에 가우왕은 배도빈의 앨범을 그렇게 평가했다.

그때부터 배도빈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이어왔다.

죽음의 유물 1, 2부에 삽입된 ‘가 장 큰 희망’과 ‘용감한 영혼’은 정말 완벽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특히 배도빈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을 한다고 했을 때는 직접 티켓 까지 구하여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을 찾을 정도로.

가우왕은 배도빈을 높이 평가했다.

더 이상 그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던 가우왕은 소속사 독일 아리아 에게 배도빈의 곡 작업에 함께할 것을 요청했다.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는 신인과의 공동 작업은 분명 상업적으로 가 치가 있다고 판단.

독일 아리아도 적극적으로 샛별 엔터테인먼트에 러브 콜을 보냈다.

세계 최고의 열정적인 피아니스트.

‘황태자’ 가우왕은 곧 그와 만날 날을 기대했다.

그러나 배도빈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해당 오퍼는 불발로 이어졌다.

“가우왕, 거절이야.”

“뭐?”

“건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 네. 당분간은 무리한 일정 없이 지 낸다고 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마하니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 지 않았던 가우왕은 배도빈이 하루 빨리 쾌차하길 바랄 뿐이었다.

얼마 뒤.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는지 배도빈 이 영화 ‘인크리즈’의 음악 감독이 되었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다음 스케줄은 저랑 해야 해요.”

“네 마음은 알지만 라이징스타 엔 터테인먼트가 수락을 해야……

“배도빈이 저를 거부할 리 없어요. 저번에는 건강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이번에는 아니에요.”

“그렇다고 이미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 앨범 작업을 하자고 하는 건.”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배도빈을 누가 가만두겠어요. 지금부터 연락 하지 않으면 또 기회를 놓칠 거라고요.”

“아, 알겠으니 진정해.”

다급했던 가우왕은 수차례 배도빈 과의 공동 작업 제안을 요구했다.

독일 아리아로서도 최선을 다했지 만 결국 배도빈은 ‘인크리즈’의 작업 뒤에 ‘더 퍼스트 오브 미’의 오 리지널 스코어 작업에 들어갔다.

“젠장!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 예요? 오퍼는 제대로 넣긴 했습니까?”

“물론이지. 다만.”

“변명은 필요 없어요. 독일 아리아는 지금 조금도 이해를 못 하고 있다고요. 배도빈의 곡을 제가 연주하는 걸 상상할 수 없으니 노력하지 않는 거라고요.”

“우리도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 단 지 계약금 부분에서.”

“그딴 돈 때문에 나를 선택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해!”

가우왕은 그처럼 고고한 음악을 만 들어내는 배도빈이 고작 돈 몇 푼에 자신을 거절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독일 아리아에 대한 신뢰 가 없어졌다.

그런 와중에 ‘블랙 나이트 인크리 즈’의 OST 앨범이 발매되자 가우왕 은 미칠 것만 같았다.

완벽한 음악이다.

그 비장미 넘치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에 매료될수록 가우왕은 배도빈과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극심 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만큼 그의 영혼을 충만히 해주는 곡이 없었던 탓이다.

“직접 찾아가겠어요.”

“뭐?”

“더 이상 못 믿겠어요. 제가 직접 배도빈에게 말할게요. 어차피 이번 앨범 피아노곡으로 할 거라면 함께 하자고. 제 연주를 들으면 거절할 리 없어요.”

자신의 연주에 자부심이 있었기에.

세계가 그를 인정하고 있었기에 반 드시 그럴 거라 생각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줘. 다음 주 내로 답을 줄게.”

독일 아리아의 간판스타 가우왕의 클레임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독일 아리아의 운영진은 결국 히무라 쇼 우 대표를 설득.

무려 2년 만에 세기의 두 천재의 만남이 성사되게 되었다.

“괜찮겠어? 아직 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 직접 한국까지 가서……

“문제없어요. 제 연주를 들으면 분

명 배도빈도 함께하자고 할 거예요. 제가 그의 음악을 듣고 직감했던 것 처럼요.”

매니저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가우왕이 씩 하고 웃곤 그의 어깨를 토 닥였다.

“자리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고생 했어요. 이 계약은 성사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돌아온 뒤에는 술 한 잔하자고요.”

2년 만에 웃는 가우왕을 보면서 매니저도 따라 웃었다.

언론으로부터 ‘황태자’라고 불리며 현재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 중에 가

장 열정적이며 빠른 연주를 한다고 평가받는 가우왕.

그가 얼마나 배도빈과 함께하고 싶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치 당장에라도 작업에 들어갈 줄 알았던 가우왕의 예상과 달리 배도빈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과연. 이러니 그런 곡을 만들었지.’

베를린 필하모닉과 사카모토 료이치가 농담 삼아 배도빈을 ‘악마’같다고 말한다던데.

확실히 이처럼 완벽을 추구하니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우왕에게는 자신이 있었다. 세계가 알아주는 자신의 피아노 라면 배도빈도 알아줄 거라고.

하지만.

이틀, 사흘, 나흘.

배도빈은 그저 자신의 연주를 듣기 만 할 뿐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뭐가 문제인 거야.’

그럴수록 가우왕은 초조해졌다.

분명 최선의 연주를 했고 자평을 해도 훌륭했다. 그러나 배도빈은 무 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은 표정이었고, 그가 처음으로 가우왕의 연주에

대해 코멘트를 한 것은 충격적인 말 이었다.

‘음 표현이 잘못되었다.’

늙다리 은퇴 음악가들에게서나 가 끔 듣던 말을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에게서 들으니 충격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뭐?”

배도빈은 방금 가우왕이 연주한 부 분을 직접 연주했다.

‘뭐가 다르다는 거야.’

“박자도 음계도 똑같잖아?”

가우왕의 질문에 대한 배도빈의 답

변은 그가 그의 스승에게서 듣던 말 과 똑같았다.

인정할 수 없었다.

스승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피아니스트였고 자신만의 퍼포먼스와 화려 한 속주로 일약 대스타가 된 가우왕 은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 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 한 것은 대중이 어떻게 듣느냐 하는 것.

청중은 자극적인 것을 선호한다.

보다 빠르고 화려한 연주를 할수록 열광한다.

깊게 파고드는 연주를 해봤자 비효 율적이라는 뜻.

그럴 바에는 그들이 원하고 본인이 잘하는 속주를 우선하는 게 먼저라 생각했고 지금까지 그것으로 성공해 왔다.

“그런 것보다는 내 속주에 집중하 라고. 이런 느린 곡으로는 나도 듣는 사람도 만족할 수 없을 테니까.”

가우왕이 뜻을 전했다.

그렇게 음악적으로 완벽하면서도 듣는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을 줄 아는 배도빈이라면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음악성만을 따져 결국엔 그들만의 음악을 하는 늙은이들과 다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도빈과 잠시간 대화를 나는 샛별 엔터테인먼트의 히무라 대표는 ‘죄 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왜?’

의문이 듦과 동시에.

2년간 배도빈이 자신과의 합동 작업을 수락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아, 처음부터 함께할 생각이 없었구나.

수치. 슬픔. 분노. 다시 분노.

가장 많이 사랑받는 피아니스트지 만 가장 많은 질타를 받는 가우왕.

그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천재에게서 거부당했다는 사 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기랄.’

생각하면 할수록 분했고.

그의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어른의 세계’에서의 음악은 이러 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던 차, 배도빈에게서 온 제안

은 그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 가르쳐 주마.’

가우왕은 매니저가 떠난 방에서 홀 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밤새워 본인의 기량을 날카롭게 칼을 갈기를 벌써 한 달째.

완벽해야 하는 황태자는 그렇게 고 독하게 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사랑한 유일한 작곡가 배도빈 에게 이기기 위해서 말이다.

12월 28일.

베이징에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사카모토 료이치 그리고 미카엘 블 레하츠와 만났다.

특히 푸르트벵글러와는 정말 오랜 만에 만나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웃 으며 그를 맞이했다.

“세프!”

“하하하! 건강해 보이는구나!”

“세프도요. 카밀라 씨도 안녕하세요.”

“많이 컸네. 잘 지냈지?”

외할아버지가 마련해 준 호텔에 짐을 풀고 스카이라운지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 곡 들었어요?”

“크흠.”

헛기침을 하는 푸르트벵글러는 아직 내가 영화나 게임 등에 사용되는 곡 만 만드는 것에 불만을 가진 듯했다.

내 두 번째 앨범과 바이올리니스트 로서의 연주회를 기대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훌륭했다.”

그러나 그가 뜻밖에 말을 꺼냈다.

“들었어요?”

푸르트벵글러가 입맛을 다신 뒤 어

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훌륭한 교향곡이었다고 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새침하게 구는 그를 놀리고 싶어졌다.

“뭐가 그렇게 좋았는데요?”

“그래. 뭐가 그리 좋았는지 말 좀 해보게나, 빌헬름.”

“자네는 가만있게.”

사카모토도 공격에 합류.

푸르트벵글러가 짜증을 부리자 그를 다루기로는 최고인 카밀라마저 나섰다.

“왜요? 저한테는 잘만 이야기하셨

잖아요. 부끄러운 거예요?”

“부끄럽긴 누가!”

푸르트벵글러가 샴페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다들 그 모습을 보곤 웃었다. 오랜 만에 반가운 사람과 함께하니 역시 즐겁다.

“인크리즈는 어렸을 적 에로이카를 들은 이후로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대요. 후훗.”

“정말요?”

“카밀라!”

“하하하하! 이거 천하의 빌헬름도

도빈 군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모 양이구만.”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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