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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93화 (93/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93화

21. 8살, 1학년(9)

똑똑“

부실 개인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연 습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니 최지훈이 안으로 들 어왔다.

“차 마시고 할래? 향이 좋아.”

꽤 오래 연습하고 있었던지라 거절 하지 않았다.

“웬 차?”

최지훈이 밖을 가리켰다.

유리벽 뒤로 집사 할아버지가 테이 블 위에 찻잔과 다기를 세팅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부잣집 아들이다.

“오렌지 주스는 없어?”

“엄청 좋아하네. 그럴 거라 생각해 서 준비해 달랬어. 좀 쉬다 하자.”

눈치가 좋게도 당분이 많이 들어간

오렌지 주스를 준비해 두었다는 말 에 기쁘게 밖으로 향했다.

단맛은 덜하지만 바삭한 식감이 좋은 쿠키도 함께 있어 입이 즐거웠다.

이런 훌륭한 티타임을 준비해 주었음에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많이 드십쇼.”

“같이 드세요.”

“괜찮습니다. 그럼.”

집사는 인자하게 웃어 보인 뒤 부 실 밖으로 향했다.

매번 어디서 뭘 하며 기다리는 걸까.

나로서도 연배가 위라 생각되는 그 가 최지훈을 따라 돌아다니는 걸 생 각하면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 맛있다.”

“그치?”

일단은 준비해 준 거니 감사히 먹 고 있는데 항상 재잘재잘 떠들던 최지훈이 조용하다.

뭔가 화제를 꺼내려 주변을 둘러보 니 홍승일이 보이지 않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가 안 보이네.”

“할아버지? 아, 선생님.”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잠깐 일이 생겨서 어디로 간 다고 하셨어.”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시계를 보 자 저녁 6시. 다섯 시간이나 연습실 에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넌 왜 안 가고 있었어? 과외 있지 않아?”

“응. 이거 마시고 집에 가야 해. 나도 더 연습하고 싶은데.”

“천천히 해.”

“하지만 넌 더 열심히 하잖아. 난 더 노력해야 하는데……

유약한 말투와 달리 녀석은 꽤 분 해보였다. 어딘가 조급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무슨 일 있어?”

“어? 아, 아니. 그런 거 없어. …… 괜찮은 거야?”

“뭐가?”

“가우왕이랑 연주대결 하기로 했잖아. 다들 엄청 기대하고 있던데.”

“뭐. 그럭저럭.”

“화났지?”

티가 났나.

드러내지 않으려고 생각했는데 최

지훈이 눈치챌 정도라면 아마 내 주 변 사람들은 다들 알고도 모른 척 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건방진 놈.’

최지훈의 말대로 화가 났다.

머리끝까지.

작업을 함께하지 않은 과정에서 서 로의 입장 차이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문제는 놈의 태도였다.

나와 대화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비아냥대듯 비웃는 것도 참아주었거 늘.

언론을 통해 내 음악에 대해 헛소 리를 해대기까지 하니 도저히 참아 줄 수가 없었다.

히무라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런 걸로 내 분이 풀릴 리 없다.

찍 소리도 못 내도록 그 코를 뭉 개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녀석이 가장 자 신 있는 종목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 각했다.

그래야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을 무 너뜨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으음. 도빈아,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아.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거 야.”

당연히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

부모님과 샛별 엔터테인먼트가 반 대했는데 홍승일이 적극 찬성.

거기에 푸르트벵글러와 사카모토 료이치까지 재밌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자 어머니 아버지와 히무라 도 결국에는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암! 잘 생각했다! 음악가라면 입 만 놀리지 말고 당당히 실력으로 이 야기해야지! 시간을 내서라도 공증을 서주마!

-마에스트로! 또 어딜 간다는 거 예요?

푸르트벵글러와 통화를 하는 와중 에 카밀라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 로 들렸다.

-이런 재밌는 일을 두고 가만있으라는 건가! 크흠. 그래, 도빈아. 시 간과 장소만 알려다오.

-안 돼요! 연말이면 바쁠 텐데 어 쩌려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씀하시

는 거예요?

두 사람은 여전한가 싶어 새삼 베를린이 그리워졌다.

-껄껄. 재밌겠구만. 기왕 하는 거 축제처럼 해보는 건 어떤가.

“축제요?”

-그런 게 좀 더 효과적인 텐데. 기 왕이면 관객들도 초청하고 말이야. 그 돈으로 기부도 하고 그러면 아주 의미가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역시 사카모토. 좋은 생각이다.

“맞아요. 그래서 말인데 사카모토 도 함께해 줬으면 좋겠어요. 공증을

해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거든요.”

-오오. 그런 재밌는 일에 빠질 수 야 있나. 시간과 장소만 알려주게. 아, 블레하츠도 관심이 있을 텐데.

“초청장 함께 보낼게요.”

-기다리고 있겠네.

그렇게 조금씩 계획은 구체화되었고 히무라는 그래모폰의 기자 한스 레넌을 비롯한 여러 언론에 기사까 지 내면서 가우왕을 자극했다.

“말렸던 것치곤 꽤 본격적이네요?”

“하기로 정했으니 제대로 해야지. 이번 연주회로 돈 벌자고 한 건 네 생각이잖아?”

“자선사업은 아니니까요. 아, 근데 기부할 돈은 나올까요?”

“글쎄. 화제성은 충분하다 못해 넘 칠 정도라…… 괜찮을 것 같아. 단 가를 좀 맞춰봐야지.”

처음에는 망설이던 히무라도 아주 이쪽에 동조해 신나게 일을 진행시 켰다.

더불어 외할아버지까지 이 대결에 후원을 해주면서 가우왕은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듯했다.

“가우왕도 중국 팬들의 바람을 무 시할 순 없을 테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중국 내에서는

가우왕의 승리를 확실시하는 모양인 지라 이 대결을 거절할 수 없을 거 라고 히무라가 덧붙였다.

결국 가우왕은 대결을 수락했고 날짜는 내가, 장소는 가우왕이 정하였다.

심사위원이라 해야 할지 공증인도 서로 공평하게 3명씩 선출하기로 했는데.

내 경우에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 임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그 래미 위너 사카모토 료이치 그리고 200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출신의 미카엘 블레하츠가 함께해 주었다.

가우왕 측에서는 ‘그래모폰’의 편 집장 로타어 클로제, 피아노 거장 리온스카예 그리고 차이나 내셔널 심포니의 지휘자 텐지안으로 결정.

그렇게 12월 29일, 베이징에서 건 방진 후배 놈에게 참된 교육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화난 거 맞지?”

“조금은.”

“……가우왕은 정말 엄청 유명한

피아니스트잖아. 이길 수 있어?”

뭐가 그렇게 조심스러운지 최지훈 이 걱정스레 물었다.

“당연하지.”

“다, 당연해?”

“그럼 내가 질 것 같아?”

“그치만 상대는 어른이잖아. 게다 가 상도 엄청 많이 탔고.”

“그런 게 그 사람의 실력을 보여주 진 않아. 연주만이 증명할 수 있지.”

내 말에 최지훈이 웃었다.

“맞아. 연주가 젤 중요해.”

“네가 듣기에 그 사람이 나보다 잘 치는 것 같아?”

“으음……

그러고 보니 예전, 최지훈이 이승희를 처음 만났을 때 ‘존경하는 음악가는 가우왕입니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존경하는 피아니스트와 친구의 대 결이 라.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겠지만 앞으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귀는 정확해야 한다.

“그게 헷갈릴 정도면 아직 멀었어.

더 연습해. 좋은 연주 더 많이 듣고.”

“힝.”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음악가의 매치는 잠잠했던 클래식 음악계를 넘어 일반인들 사이에 서도 화제가 되었다.

곧 거장의 반열에 이를 (만)29세의 피아니스트와 여러 언론과 전문가 그리고 대중에게서 21세기 최고의 작곡가로 평가받는 (만)7살 천재.

더군다나 자연스럽게 한국과 중국 양국의 자존심 싸움까지 이르니 흥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이 대결의 결과에 대해 배팅까지 이루어질 정도였으니 대중 의 관심이 얼마나 달아올랐는지 알 수 있었다.

피아노 1대1 매치.

전근대에서나 있었을 법한 이러한 기회를 언론이 놓칠 리 없었다.

“당장 인터뷰들 따와!”

“배도빈이랑 가우왕 양측 모두 인 터뷰 거절하고 있습니다.”

“머리는 뒀다 뭐 해! 유명한 사람 들한테라도 물어봐! 누가 이길 것 같냐고!”

“아무래도 연주에 있어서는 가우왕 이 우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여 러 콩쿠르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증 명해 냈으니까요.”

“배도빈의 피아노 연주는 CD를 통해서만 들었지만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그가 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가우왕과 비교하면 어느 쪽 이 나은지 알 수 없군요.”

“어린 천재의 도발을 받은 가우왕 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싶네요.”

각 언론은 클래식 업계에서 이름을 알린 사람이라면 모두 한 번씩 ‘배도빈 VS 가우왕 피아노 경연’에 대 해 물었다.

대부분이 배도빈의 음악적 기량에 대해 인정했으나 그것이 작곡에 한 하다는 평가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손 꼽히는 가우왕과의 연주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불리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느이거 괜히 쪽 당하는 거 아님?

L 그럴 리가 없음. 우리 도빈이가 세계체고임.

L그렇게만 볼 게 아님. 가우왕 잘 모르는 사람 많은 것 같은데 피아노 듣는 사람들 사이에선 실력으로는 탑급으로 쳐주고 있음. 비슷한 나이 에서는 압도적임.

L그래서 그래미상 받음?

L븅딱아. 그래미상을 작곡으로 받았지 피아노 연주로 받았냐?

L도빈이가 이겼으면 좋겠다TTTT

음악계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조차 업계 관련자와 인터넷 전문가들의 말에 조금씩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말대로 피아니스트로서 배도빈이 보여준 것이 너무나 적었던 탓이다.

그런 와중에 이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라 칭송받는 사카모토 료이치 와 미카엘 블레하츠가 입을 열면서 분위기는 최고조로 올랐다.

“도빈 군과는 그가 다섯 살 때부터 함께 알고 지냈습니다. 그때부터 이

미 저와 피아노를 치며 놀곤 했는데 저는 단 한 번도 그보다 잘 연주한 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미국에서 처음 만난 도빈 군은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제 가 들은 그 어떤 베토벤보다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ㄴ 컄ㅋㅋㅋㅋㅋ 그럼 그렇지 !

ㄴ 자신이 있으니까 함 붙자고 한 거넼ㅋㅋㅋ

ㄴ 사카모토 료이치랑 블레하츠 둘 다 배도빈이랑 친함. 그냥 언플일 수도 있음.

ㄴ 답답아, 이런 일 있을 때 유명한 사람들은 입조심 하는 거 모르냐? 괜히 누구 편 들었다가 상대방하고 사이 나빠지고 예측도 틀리면 이미 지만 손상되는데 왜 그러겠냐? 친해 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배도빈이 연주 잘하니까 저런 말 하는 거잖아.

ㄴ 아 진짜 재밌겠다.

ㄴ 포스터도 나옴ㅋㅋㅋㅋㅋ

[ 링크]

ㄴ 어느 쪽이든 지면 진짜 개쪽임

ㄴ 헐 포스터 쩔어 도빈이 너무 귀엽다 진짜.

ㄴ 사진 잘나왔네.

한편 중국에서는 가우왕이 여유롭 게 지내고 있었다.

매일 늦잠을 자서 오후 늦은 시간 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괜찮은 거야?”

“그럼. 내 실력 못 믿어?”

경연 날짜가 정해지고도 아무런 준 비를 하지 않는 가우왕을 보며 매니 저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나 가우왕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어차피 번갈아 가면서 하나씩 치 고 똑같은 곡을 받아치는 룰로 하기 로 했잖아. 내가 걔보다 연주를 못 하겠어? 아니면 뭐 레파토리가 부족 할까 봐? 걱정 마. 그 건방진 꼬맹 이한테 진짜 피아니스트의 실력을 보여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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