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089화
21. 8살, 1학년(5)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오. 오랜만이구만. 아가씨가 다 되었어.”
“아저씨도 참. 애가 여덟 살인데 아가씨라됴.”
어머니께서 학교로 찾아오셨다.
홍승일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어 머니께선 싫지 않으신지 웃으셨다.
“그래. 무슨 일이냐?”
“아버지한테 이야기 듣고 인사드려 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렸을 땐 많이 뵈었는데 그간 격조했네요.”
“클클클. 네가 집 나가고 나서 장 혁이 그놈이 얼마나 애가 탔는지 넌 모를 거다. 내색하진 않지만 옆에서 보는데 그런 표정은 내 처음이었어. 아주 통쾌했다. 하하하!”
“아저씨도 참.”
내 생각보다 친하다.
조금 어이가 없고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어울리기 싫어 개인 연습 실로 들어가려 했다.
“마침 잘 왔다. 도빈이 너도 잠깐 와서 이야기 들어라.”
싫은 티를 내자 어머니께서 손짓을 하셨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자 홍승일이 이상한 말을 꺼냈다.
“6월 말에 학교에 이야기하고 피아노부 애들을 데리고 일본에 갈 생각 이다.”
“ 일본에요?”
“음. 센다이 콩쿠르 피아노 결선이 28일부터 시작이야. 국제 콩쿠르인 만큼 도움이 될 거다. 금요일이니 목요일쯤 가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돌아올 생각이다.”
“아저씨가 인솔하신다면 괜찮겠지 만……
“안 갈래요.”
“도빈아?”
“콩쿠르보단 거장들 연주회 가는 게 더 도움이 돼요.”
“이 녀석아, 이것도 공부야!”
“콩쿠르 내보내려 하는 거잖아요!”
“안 내보낸다니까!”
또 발뺌한다.
홍승일의 두 눈에 욕망이 드글드글 하다.
명예라든지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참 끈질기다.
“너 국제 콩쿠르 보러 간 적 있냐?”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그 봐라! 수백, 수천 명이 경쟁 끝에 걸러진 사람들이 긴장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자리야. 이 얼마나 가슴 뛰겠느냐. 재밌겠지?”
“그러니까 저한테도 그렇게 하라는 거 아니에요. 누가 모를 줄 알아요?”
“크흠.”
“도빈아, 아저씨 잠깐만.”
나와 홍승일이 어머니를 보았다.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다.
나도 홍승일도 조금 움찔하고 말았다.
“도빈아, 잠깐 엄마하고 이야기 좀 하자. 아저씨, 잠시만요.”
"음."
어머니에게 이끌려 빈 교실로 들어 갔다. 어머니께서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곤 입을 여셨다.
“도빈아, 너 계속 선생님한테 소리 치면서 이야기했니?”
“……네.”
“왜 그랬어?”
“자꾸 억지 부리니까요. 콩쿠르 안 나간다고 하는데 자꾸 내보내려 해요.”
“우선.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아니, 어른이 아니라 나이가 적든 많든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거야. 그럴 수 있지?”
“그럴 거지?”
“……네.”
그제야 어머니께서 표정을 푸셨다.
억울한 점이 있지만 정론이라 반박 할 거리가 없었다.
“그리고 엄마도 도빈이가 싫어하는 거 시킬 생각 없어. 도빈이가 정말 콩쿠르 나가는 게 싫으면 엄마가 선 생님한테 말할게. 강요하지 말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께서 궁금 하다는 듯 물어보셨다.
“근데 왜 나가기 싫어? 선생님 말 씀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상도 타면 재밌지 않을까?”
이 질문은 정말 많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많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평가를 받는 행위 자체가 싫은 것 이다.
피아노 연주로 서로의 실력을 가늠 하는 것은 연주자끼리 할 일이다. 건방지게 다른 사람이 누가 더 위라 고 평가하는 것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작곡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받는 상의 경우에는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해 지금은 인정하 고 있지만.
콩쿠르의 경우에는 다르다.
“심사 위원에게 평가 받기 싫을 뿐 이에요.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 들이 얼마나 음악을 깊이 있게 이해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러겠어요?”
“그렇구나.”
“사카모토랑 누가 더 ‘Rain’을 더 잘 연주하는지 내기하는 건 즐거워요. 사카모토가 자기 곡이지만 제가 더 잘 친다고 했을 때는 너무 기뻤 어요. 사카모토는 너무나 훌륭한 음악가고 ‘Rain’을 작곡한 사람이니 까.”
"응."
“콩쿠르에 나가야만 음악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전 굳이 나갈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마치자 어머 니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도빈이 정말 다 컸네? 얼마 전까 지만 해도 이렇게 말 잘하는지 몰랐는데.”
‘그러게.’
어느새 우리나라 말이 어느 정도 익은 모양이다.
“선생님한테는 그렇게 얘기해 봤니?”
“네.”
“그래? 알았어. 같이 이야기해 보자.”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다시 홍승일 에게 가 이야기를 했더니.
“진희야 도빈이가 아니면 그럼 누가 나가냐.”
“네?”
“한국에서도 1등 한 번 나와야지. 도빈이한테도 절대 나쁜 이야기가 아니야. 콩쿠르에서 1등을 한다는 건 단순히 그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도빈이 너도 잘 들어라.”
한 번 목을 가다듬은 홍승일이 또 다시 열정적으로 말했다.
구구절절했지만 결론은.
“공증을 받는 거란다. 네가 이렇게 나 뛰어난 사람이라고.”
“굳이 콩쿠르가 아니라도.”
“타이틀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네가 대중성을 갖췄다는 것 외에도 사람들이 너의 실력을 알 수 있는 건 그런 수상 내역뿐이지. 그래미상을 받고 나서 네 몸값이 예전과 같더냐?”
“어……
분명 ‘더 퍼스트 오브 미’를 작업 했을 때와 ‘죽음의 유물 1부, 2부’, ‘인크리즈’의 값이 다르긴 했다.
작업량과 업계가 다르다는 것도 감 안해야겠지만 홍승일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이제 조금 납득할 수 있었다.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네 가치를 판단할 때 도움이 된다는 뜻이야. 너의 그 마음은 높이 산다. 넌 모르겠지만 나도 그리 살았어.”
……그래서 유명하지 않았던 건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내게 무엇인가를 더해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면 내 생각보다 그쪽이 영향을 많이 미치는 듯하다.
“그리고 말하지 않았냐. 군대 면제가 된다고.”
“그래요?”
입대를 하지 않으려고 콩쿠르에 나간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 식이다.
“그런 거 때문에 나가라고 하면 절대 안 나갈 거예요.”
“네가 버는 돈이 달라진다니까?”
“흐음.”
이건 좀 고민된다.
“일단 그럼 가보기라도 하자. 가서 현장을 보고 결정해도 되지 않느냔 말이야.”
“그 정도면 알겠어요.”
“진희야, 얘 누구 닮아서 이렇게 소고집이 냐?”
“푸홋. 저도 신랑도 안 그런 거 보 면 아버지 닮았나 봐요.”
“어휴. 거 나가라고 하면 그냥 나 가면 되지 무슨 자존심이 이렇게 강 해서야. 천재는 다 이러냐?”
“아니라서 모르겠어요. 도빈아, 그 럼 일본에는 갈까?”
“네. 나카무라도 보고 와도 돼요?”
“참. 나카무라 씨한테 연락을 못 드린 지 오래되었네. 엄마도 갈까? 안 그래도 그 이후로 뵌 적이 없어 서 인사드려야 하는데.”
“나카무라?”
“아, 전에 도빈이 매니저 해주시던 분이에요.”
“나카무라 보러 가는 겸 해서 가는 거라면 괜찮아요.”
“겸이 아니라 목적이 콩쿠르다.”
홍승일과는 좀처럼 안 맞는다.
6월 7일.
보도 제한이 풀리자마자 루드 캣의 신작, ‘The First Of Me’에 대한 기 사와 리뷰가 쏟아졌다.
절대 다수가 최고점을 주는 것은 물론, 게임의 스토리와 연출, 게임성 그리고 OST까지 완벽하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그 반응에 걸맞게.
6월 14일.
전 세계 동시 발매된 ‘The First Of Me’는 출시 2주 만에 300만 장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2013년 플레이박스 타이틀 게임 중에는 최다 판매 기록이었으며 게 임 총괄 제작자인 제임스 터너는 ‘블록버스터급 제작진이 만든 최고 의 게임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발표했다.
“더 퍼스트 오브 미는 게임 제작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업계 최고로 구 성되어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인터뷰에서 제임스 터너는 게임 오 리지널 스코어를 감독한 배도빈과 자문 역할을 맡았던 사카모토 료이치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배도빈 음악 감독이 태풍 속에서 피아노 녹음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정말이지 난감했습니다만, 결국에는 이렇게 훌륭한 OST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더 퍼스트 오브 미의 성공 에는 그의 공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더 퍼스트 오브 미는 2013년 최고의 게임이 될 것입니다.”
루드 캣과 제임스 터너의 자신만만 한 태도답게 게임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해당 게임을 접한 유저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게임에 몰입하였고 곧 게임에 대한 감상이 커뮤니티 사 이트에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ㄴ 4시간 동안 화장실도 안 가고 했다. 진짜 갓작임.
ㄴ 제인 진짜 눈물 나네mm 기특해 기특해 TTTT
ㄴ 진짜 몰입도 개쩔었다. 군인 개 새끼
ㄴ 내가 게임을 했는지 영화를 본 건지 모르겠다. 진짜 소름 돋게 재 밌게 했음.
ㄴ 이 와중에 솔직히 음악 없었으면 전투 지루한 거, ㅇㅈ?
“뭐 보고 있어?”
스마트폰으로 기사와 커뮤니티 글을 확인하고 있는데 최지훈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게임이 나왔는데 반응이 좋나 봐. 다들 재밌다고 하네.”
“게임?”
6월 27일.
일본에 왔다.
홍승일이 한국 초등학교 피아노부를 인솔했는데 부교사로 우리 반 담
임선생까지 함께했다.
“더 퍼스트 오브 미.”
“아! 음악 네가 만든 거? 재밌대?”
“응. 재밌대.”
“아빠한테 사 달라 해야겠다.”
“사도 못 할걸?”
“왜?”
“이거 꼬맹이들은 못 해. 이용가가 있나 봐.”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어?”
하긴.
사기만 하면 집에서 누가 하든 누가 알겠는가.
어머니와 아버지께선 17세 이용가라 하면 안 된다고 하셔서 못 샀는 데, 히무라나 박선영에게 부탁을 해 봐야겠다.
‘선물 받은 게임기도 몰래 사무실에 두면……
괜찮을 것 같다.
“똑똑한데.”
“히 히히.”
그렇게 최지훈과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여자애 둘은 담임선생이, 나와 최지훈 그리고.
‘쟤는 이름이 뭐지.’
학생A는 홍승일의 방에 머물게 되었다. 내일 어머니께서 오시면 나는 따로 어머니와 지내다가 나카무라에 게 갈 예정인데.
“선생님, 전 아빠가 방 따로 잡아 주셨는데 거기서 있어도 돼요?”
“부자집 놈들이란. 그래, 맘대로 해 라.”
“선생님, 저도요.”
학생A도 따로 방을 잡았댄다.
오늘 밤을 홍승일과 단 둘이 보내야 한다니.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