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86화 (86/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86화

21. 8살, 1학년(2)

연주를 마치고 일어나자 교사가 소리를 쳤다.

“이거 천재라더니 내가 아주 단단히 잘못 알았구만! 아주 엉터리야!”

‘저 늙은이가 노망이 났나.’

감히 이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 아니, 배도빈의 연주를 듣고 엉터리라는 말을 내뱉다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뭐라고요?”

“아주 엉터리라 했다.”

“할아버지의 귀가 잘못된 거겠죠.”

실력을 보여 달라고 하기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시험해 봤더니 곡 의 구조나 연주할 때의 표현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모양이다.

그런 주제에 감히 망발을 떠들어대 쏘아주었다.

“흥!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군. 자, 내 연주를 들어봐라.”

노망난 노친네가 피아노 앞에 앉더 니 연주를 시작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C단조 2 악장.

긴밀하게 연결된 곡 내용이 아름다 워 당시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 이다.

♪♫♬

♪♫♬

‘……제법이군.’

입만 산 늙은이는 아닌 듯.

연주는 제법이었다.

오랜 시간 연주를 해온 사람의 완 숙함이 느껴지는 해석과 곁들어, 수 준 이상의 느낌을 들도록 해주었다.

음을 정확히 표현하는 능력은 사카모토 료이치와도 비견할 만하다.

‘이런 사람이 있었나.’

이름은 모르지만 이만한 남자라면 분명 이름을 떨쳤을 터.

외할아버지가 일부러 초청을 한 교 사라고 하니 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가 연주를 마치자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어떠냐.”

“나쁘지 않네요.”

“평가가 박하군. 그런데 내 생각엔 내가 더 뛰어난 것 같구나. 나만 박 수를 받았으니 말이야.”

« »

어이가 없어 피아노 앞에 앉았다.

방금 그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쓸데없는 트집이나 잡는 인간.’

찍소리도 못 하게 해줄 생각이다.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관객에게 박수를 받기 위한 연주라면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쉽고 이해하기 쉬우며 자극적인 곡.

음악적 장치나 기교보다는 보다 감정에 충실한.

솔직한 곡과 연주가 그러한 법이다.

‘이걸 듣고도 어디 한번 떠들어볼 수 있나 보자.’

주제가 단순할수록 그것을 변화할 수 있는 수단은 무궁무진해진다.

내가 테마에 집착하지 않은 이유 또한 전개 과정에서 그려낼 수 있는 자유로움을 위함이었다.

그렇게 정말 많은 곡을 만들었고.

불같은 시기에 완성한 이 곡은 당 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정말 많은 사 랑을 받고 있다.

♪♫♬♪♫♬♪♫♬

이만한 연주라면 더는 떠들지 못할 터.

연주를 마치자 학생들이 요란하게 손뼉을 쳤다.

“아직 한참 멀었구만. 베토벤이 들었다면 땅을 치고 슬퍼했을 거다! 진짜 연주라면 이런 걸 두고 하는 거니 잘 들어라.”

“뭐, 뭐라고?”

‘이 망할 영감탱이가 이 나를 우습 게 봐? 베토벤이 들었다면 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이름도 모르는 노친네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피아노 앞에 앉았다.

***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배도빈이 등교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

후다닥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곤 부 부가 작게 웃었다.

최근 들어 배도빈은 마치 등교시간을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배영준이 유진희에게 물었다.

“요즘 도빈이가 학교 가는 걸 좋아 하는 것 같은데?”

“그러게요. 3월 한 달은 억지로 가는 느낌이었는데.”

“친구도 사귀고 적응한 모양이지. 다행이야.”

“후훗. 정말 그래요. 입학하기 전부 터 이것저것 너무 유명해져서 걱정 이었는데 잘 지내는 모양이에요.”

“조금 힘이 들어간 것 같지만 말이 야. 저렇게 힘 있는 모습은 처음인 데. 별일은 없겠지?”

“한창 뛰어 놀 때잖아요. 전 저렇게 활기찬 도빈이가 더 보기 좋은걸요?”

“그래. 건강이 최고지. 아, 나도 나 가봐야겠다.”

“잘 다녀와요.”

“응. 다녀올게.”

가볍게 입을 맞춘 부부는 신혼처럼 서로를 애틋하게 보았다.

벌써 한 달째.

4교시가 끝나면 점심도 거르고 부실로 갔다.

있는 대로 억지를 부리는 노인 때문이었는데 그 인간 때문에 혈압이 오를 지경이었다.

오늘도 자기가 더 잘났다고 우기는 통에 벌써 세 곡이나 연주를 했다.

처음 피아노부에 들었을 때부터 내 성질을 긁어대는 통에 화딱지가 나 참을 수 없었다.

“도, 도빈아. 괜찮아?”

“안 괜찮아.”

망할 영감탱이.

“드디어 레파토리가 다 떨어진 모 양이지? 왜 그러고 있어? 천재라더 니 별것 아니군그래. 겨우 이 정도 로 치켜세우다니, 다들 귀가 잘못된 모양이야.”

“웃기지 말고 영감이야말로 그 귀 열고 똑똑히 들어.”

“도빈아!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하 면 안 돼.”

“이제야 본성을 드러내는구만. 그 래, 음악이 안 되면 성질이라도 내 야겠지.”

“뭐, 뭐라고?”

씩씩대며 자리에 앉아 라흐마니노 프의 전주곡 중 C샵단조를 연주하 기 시작했다.

아직 덜 자란 손으로 연주하기에 무리가 따르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되지도 않는 도발을 해대는 저 못 된 영감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빨라! 그렇게 빠르게 연주해서는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겠다! 이 망할 꼬맹이!”

“빠르게 연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몇 번을 말해, 이 영감탱이야!”

“자, 봐라.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연주해서 충분히 전달이 되겠냐!”

“청중한테 곡 해석 따위 바라는 게 잘못이지! 그냥 즐기면 되는 거야! 그러기 위한 장치라고. 장치 따위 일일이 구차하게 설명할 바엔 차라 리 강의를 하겠다!”

음악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작곡가만 알면 된다.

굳이 그것을 강조해 관객에게 알아 달라고 말하는 것은 억지다.

그렇게 추한 짓도 없다.

“네 말은 너의 그 터무니없이 빠른 연주를 듣고 관객들이 좋아한다는 거냐? 하참. 웃기지도 않는군. 네 주제에 어디 시대연주 흉내를 내는 거냐. 봐라. 이게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는 방법이다.”

‘어쩌고 저째?’

이제는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 * *

-하하하하! 그거 재밌는 일이로군.

“웃을 일이 아니에요.”

사카모토 료이치가 전화로 안부를 물어 최근 내 신경을 박박 긁어대는 못된 영감탱이에 대해 말하자.

아주 신나게 웃었다.

-자네도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즐기고 있다고요?”

-자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런 말을 들을 실력이 아니라는 걸.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라고요.”

- 하하하하!

“사카모토!”

-아아, 미안하네. 미안. 하지만 평 소의 자네라고 하기엔 좀 다른 듯해 서 말이야. 주변의 헛소리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지 않았나.

“그야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다.

평론가든 음악가든 내 음악에 대해 말도 안 되는 평을 해대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했는데.

이상하게 그 영감탱이가 억지를 부 리면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그러면 화가 나요.”

-으음. 둘 중 하나겠구만.

사카모토가 이상한 말을 꺼냈다.

-자네가 그에게 인정받고 싶거나, 아니면 그를 인정하고 있는 거겠지. 이유는 몰라도 말이야.

“그런 사람한테 인정받지 않아도 돼요.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뿐이에요.”

-그렇다면 그만큼 상대를 인정한 다는 뜻 아닌가. 콩쿠르도 나가기 싫어하던 자네가 이기고 싶다니. 이 거, 상대가 누군지 궁금해지는데?

확실히 나쁘지 않은 연주지만.

‘아니.’

그래 훌륭한 피아니스트다.

그간 머리에 피가 쏠려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대로 그는 탁월하다.

그런 인간이 내 연주에 억지를 부 리니 더 크게 화가 나는 거다.

모를 리가 없는데.

나를 도발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경박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일 뿐이에요.”

“허허.”

배도빈과 통화를 마친 사카모토 료이치가 신기한 듯 웃었다.

‘이제야 좀 아이답구만.’

음악적 기량과 여러 모습을 봐서는

결코 그렇게 느낄 수 없었는데, 단 순한 도발에 반응하는 걸 보니 귀여웠다.

평론이나 상을 싫어하는 이유를 들었을 때는 정말 끝에 다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초등학교 피아노 교사의 말에는 발 끈한다.

사카모토 료이치는 그 고집쟁이 배도빈을 구워삶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 졌다.

한편.

한국 초등학교 피아노부 강사 홍승일은 오랜만에 아들 부부의 집에서 손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하하하! 옳지. 옳지, 잘한다. 내 새끼.”

“아버님 요즘 많이 밝아 보이세요. 한국 초등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신 다면서요?”

“아아. 애비가 말하더냐?”

“네. 아버님이 다시 피아노 일을 하셔서 너무 좋다고 하던걸요?”

“녀석.”

“아우아우.”

“오구오구.”

홍승일은 바닥을 탁탁 치는 손녀를 보며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며느리가 그런 그에게 사과 한쪽을 건네며 말했다.

“그이 소원이 뭔 줄 아세요?”

“소원?”

“아버님 연주회 한 번만 더 가는 거예요.”

“이제 늙어서 그렇게 번거로운 거 못 한다. 애들 가르치는 것도 친구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

시아버지의 대답에 며느리가 고개를 살짝 틀어 새침하게 물었다

“에이. 아버님도 재밌어 하시는 것 같던데요? 밖에도 다니시고 하니까 그러신 거 아니에요?”

“크흠.”

“그이 말고도 아버님 연주 듣고 싶어하는 사람 많은 거 아시잖아요. 이제 약주도 끊으셨고 다시 시작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홍승일이 대답은 않고 딸에게 장난 감을 흔들어 보이자 며느리가 눈을 감았다. 그러곤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홍승일은 며느리의 뒷모습을 보곤 씁쓸하게 웃었다.

‘아니지. 아니야.’

지금은 그저 이렇게 손녀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평생을 했던 피아노는 ‘어린 천재’ 와 대결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우아?”

그때 손녀가 홍승일의 손가락을 덥석 쥐었다.

“응? 하하하. 녀석 힘 좋은 거 봐라. 애미야, 주희 사과 먹을 수 있냐?”

“아직 주시면 안 돼요.”

부엌에서 들려온 대답에 홍승일이 아쉽다는 듯 손녀를 보았다. 손녀는 그와 눈을 마주치다 이내 시선을 돌 려 다른 곳을 보았다.

“이 맛있는 걸 아직 못 먹다니. 불쌍하구만 내 새끼.”

“꺄우.”

“무럭무럭 커야 한다. 적어도 유치원 가는 모습 정돈 보고 싶구나.”

"...?”

재롱을 부리는 손녀를 보며 홍승일 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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