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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84화 (84/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84화

20. 8살, 입학(7)

미국에서 정신없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다시는 시상식에 가지 않겠다고 다 짐했는데, 어머니 아버지께서 좋아 하시는 걸 보니 그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입학식 날.

아침부터 학교 갈 준비를 마쳤다.

어머니께선 나보다 더 분주해 보였다.

-3월을 맞아 전국 초•중•고등학교 에서 입학식이 열렸습니다. 특히 초 등학교에 갓 입학한 햇병아리들은 설레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유리 기자의 보도입니다.

햇병아리라.

“도빈아, TV 그만 보고 이 닦았니? 편 지는?”

“네. 닦았아요. 편지도 주머니에 넣었고요.”

“늦겠다. 서두르자.”

“네.”

할아버지가 보내준 차를 타고 한국 초등학교로 향했다.

촤르르르륵-

“도빈 군, 입학하는 소감이 어떻습 니까?”

“어머님, WH그룹과 한때 연을 끊 으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이게 대체 무슨.’

무슨 경호원이냐고 반대했는데, 할 아버지가 이들을 붙여주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어머니와 함께 학교에 방문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자들과 카메라가 달려들었다.

적당히 대답하고 무례한 질문에는 경호원들이 나서면서 다행히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학교 안에서도 나를 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달려들지는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교장실로 향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도빈이는 TV보다 잘생겼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이가 지긋하고 안경을 쓴 여성이 우리를 반겼다.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그럼요. 도빈이 같은 학생이 입학해 주어서 저희로서는 너무나 고마 운걸요.”

어머니와 교장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 나는 창문 밖으로 다른 아이들이 어디론가 향하는 걸 보았다.

“과찬이에요. 도빈이가 사실 음악을 하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을 아 직 못 받아서요. 또래 친구도 사귀어본 적이 많이 없어서 잘 적응할지 걱정이네요.”

“걱정 마세요. 분명 잘 적응할 거예요. 도빈이 같은 천재를 대상으로 한 교육 커리큘럼이 따로 있으니까요. 반도 비슷한 아이끼리 배정될테니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돼요.”

“그럼 다행이지만.”

“도빈이처럼 훌륭한 학생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되죠. 유회장님 말씀도 있고 각별히 신경 쓸 예정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좋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는지 드디어 알 수 있었다.

후원을 많이 하는 할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네. 잘 부탁드려요.”

“참. 그리고 먼저 부탁드렸던……

“네. 도빈이도 한번 연습해 봤어요. 외우진 못했는데.”

“호호. 괜찮아요. 보면서 읽는 거니 부담 없이 하시면 돼요.”

그렇게 간단히 대화를 나누다가 교장 선생이 시간을 확인했다.

“그럼 입학식장으로 가실까요? 슬슬 시간이 되어서.”

“그래야겠네요. 도빈아.”

“네.”

교장 선생를 따라 방금 다른 아이들이 향했던 곳으로 향했다. 식장이 웅성거리는데, 애들이 하는 말을 언 뜻언뜻 들을 수 있었다.

“귀엽다.”

“쟤가 WH그룹 후계자래.”

“그럼 친하게 지내야겠네?”

“왜?”

“아버지가 WH랑 EI 쪽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라고 하셨어.”

‘어린놈들이 벌써부터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저번에 유치원에 갔을 때도 느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도무지 요즘 애들은 아이 같지 않다.

여덟 살 먹은 애들의 대화는 아닌 듯하다.

“도빈아, 그럼 잘 있어. 엄마 뒤에 있을게.”

“네.”

줄을 서고 기다리자 교장 선생이 단상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긴장과 설렘 속에 첫발을 내 디뎠을 겁니다. 학교에 가면 어떤

친구를 만날지, 어떤 걸 배울지 많이 궁금할 것 같아요. 앞으로 여러 분은……

나중에 혹시 수면용 음악을 만든다 면 교장 선생의 목소리와 억양을 분석해야 할 듯하다.

“자, 그럼 다음으로 입학생 대표 배도빈 군과 재학생 대표의 편지 낭독이 있겠습니다. 배도빈 군은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도빈아!”

어느새 잠에 들었던 모양.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니 다급히 정면을 가리키셨다.

“도빈 군이 살짝 긴장했던 모양입니다. 모두 친구에게 박수를 보내주세요.”

“아하하하하!”

짝짝짝짝짝 I

‘ 아.’

뭔가 했더니 편지를 읽을 차례가 된 듯하다.

일어서 앞으로 나가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 음?’

없다.

분명 편지를 넣어두었는데 어디엔가 흘린 듯, 다른 주머니를 찾아도 편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냥 올 라섰다.

멀리 마주보고 있는 어머니께서 무엇인가를 들고 흔들어 보이셨다.

“자, 입학생 대표 배도빈 군의 편지 낭독이 있겠습니다.”

다시 저기까지 가서 받을 수는 없으니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야겠다.

“여기서 보니 귀여운 게 다들 햇병 아리들 같네요. 무럭무럭 자라나서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럼 재학생의 답장을 듣겠습니다. 멋진 덕담을 한 배도빈 군에 게 다들 박수 보내주세요.”

짝짝짝.

처음보다 박수 소리가 작아졌다.

초등학교라는 곳은 과연 기초 교양을 쌓는 곳이었다.

“자 첫 번째로 우리가 배울 건 세 어보기예요. 무엇을 세어보느냐? 연 필의 수를 세어보고 친구 수를 세어 보는 거예요.”

“바른 자세로 낱말을 읽고 쓸 수 있도록 살펴보도록 해요. 먼저 바르 게 듣는 자세를 배울 거예요.”

“오늘 우리가 공부할 내용은 알파 벳 A에서 F까지예요. OK, Let’s ge t study. The first started.

햇병아리들을 가르치기 위한 내용 답게 학습 내용은 너무도 쉬웠다.

‘이런 걸 들으려 입학한 건 아니지 만.’

스승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수업 시간에는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

“안녕.”

쉬는 시간.

수업 사이마다 배치된 이 합리적인 시간에 같은 반 햇병아리 하나가 다가왔다.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자기소개를 한다.

“다래해운의 이경민이라고 해. 너 희랑 친하게 지내는 곳이야. 우리 아빠 이름 들어봤지?”

200년이 흘렀는데도 멍청한 귀족 가 자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소개였다.

자기소개를 하는 척하지만 자기가 어디 소속인지를 말할 뿐 본인에 대 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뭐, 잘 지내자고.”

“으, 응!”

“나두. 나두 도빈이랑 인사할래.”

한 번 인사를 받아주니 병아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외할아버지의 말대로 정말 나와 친하게 지내라고 시키기라도 한 모양 인지, 저마다 자기가 어디 집 아이 라고 소개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가장 먼저 말을 텄다는 데 자부심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너는 안 돼’라는 햇병아리를 보곤 뭐 하는 앤가 싶었다.

“비켜. 도빈이 귀찮게 하지 말고.”

그때 또 한 병아리가 나타나 다래 해운집 아들네미를 밀쳤다.

“안녕. 김정민이라고 해.”

“그래.”

“다들 애들이라 좀 귀찮지? 우리가 이해를 해줘야 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자기도 애면서 저는 다른 애들과 조금 다른 줄 아는 모 양이다.

“하핫.”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자기 말에 동조한 거 라 생각하는 듯, 김정민이 신나서 말을 계속했다.

“수업 내용도 너무 수준 떨어지지 않아?”

“평범하다 생각하는데.”

“하지만 우린 평범하지 않잖아.”

이 시대는 계급이 없는 자유롭고 이상적인 곳이라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여전히 돈과 권력으로 돌아가는 세상임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어린아이들까지 자신들을 스스로 ‘다른 신분’으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제왕학이라도 배우는 것일까.

이 무지한 아이들의 부모의 얼굴에 대고 토악질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 나는 평범하지 않지.”

내 말을 들은 김정민이 그제야 아 이답게 환하게 웃었는데, 애는 애다.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글쎄.”

피곤하다.

* * *

“나도 학교 갈래.”

“채은이도 여덟 살이 되면 갈 수 있어. 오빠 학교 가야 하니까 떼쓰 지 말자?”

채은이가 어쩔 수 없이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해주었다.

매일 아침 겪는 일이었는데 차라리 나도 채은이와 함께 피아노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교문 앞에서 내리면 항상 기자들이 있었고 교실에 있어도 다른 반 또는 다른 학년 아이들이 나를 감싸고 관 심도 없는 이야기를 해댔으니까.

어떤 기사를 올리든 뒤에서 뭐라 떠들든 상관하지 않지만 화장실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하게 하는 환경에 지쳐갔다.

그나마 최지훈이 놀러오면 주변에 사람이 적어져 매일 문자로 녀석을 호출했다.

[어디야?]

[계단!]

[빨리 와.]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기

[응.]

[ㅠㅠ 감동이야 ㅠㅠ 난 나만 너랑 친하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어.]

[살려줘.]

그렇게 가끔 최지훈과 함께 피아노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지칠 수밖에 없었는데.

병아리들이, 하물며 교사들마저 내 게 너무도 많이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장은 누가 하는 게 좋을까?”

“도빈이요!”

“도빈이가요!”

“도빈아, 친구들이 이렇게 바라는 데 회장 해보지 않을래?”

들어보니 학급 학생회의 장 역할을 하는 모양인데 귀찮기도 하고 그럴 시간도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은 얌전히 학교만 다니고 있지 만 언제 또 무슨 작업을 할지 모르니까.

‘곧 앨범 작업도 들어가야 하고.’

티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앨범 작업 때문에 결석할 때도 있을 테니 어려울 것 같아요.”

“와……

‘와는 무슨.’

반 아이들이 작게 감탄했다.

“그렇구나. 어쩔 수 없지. 그럼 투표로 뽑도록 하자. 혹시 회장 하고 싶은 사람?”

두 명이 손을 들었다.

종이를 나눠 받고 후보 중 그나마 똘똘해 보이는 녀석의 이름을 써 제 출했다.

‘이게 선거로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형태의 정치 체계 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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