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83화 (83/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83화

20. 8살, 입학(6)

다음 날.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를 한 탓에 점심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사카모토의 집을 둘러보니 사카모토와 블레하츠, 한스 짐은 이미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부지런하네.’

오늘 아침은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 며 느긋하게 핸드폰을 열었다.

히무라와 박선영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데리러 와달라고 말하려는데, 핸드폰에는 이미 몇 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일어나면 전화를 하라는 히무라와 박선영의 문자가 꽤 많이 와 있었다.

일단 목이 타는 탓에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앞에는 사카모토 료이치가 남긴 메모가 있었다.

추분히 쉬다 오게. 먼저 가 있도록 하 지. 혹시 배가 고프면 냉장고 안에 있는 샌드위치을 먹도록 하고.

-시카모토

친절한 사람이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뒤 히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빈이니?

“네. 일어났어요.”

-곧장 갈게. 사카모토 선생님 댁이 지?

히무라의 목소리가 조금 다급하게 느껴졌다. 메시지를 왜 그렇게 많이 보냈나 싶었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늦은 것 같았다.

‘ 시간이……

시계를 확인해 보니 시상식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무슨 일 있어요? 시상식까진 아직 많이 남은 거 같은데.”

-응.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 조 금 늦을지도 모르겠네. 일단 네 메 이크업부터 해야지.

“메이크업이 뭐예요?”

-도빈아, 일단 가서 이야기하자.

히무라가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내가 늦잠을 잔 듯.

다른 사람도 이미 나간 걸 보면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 일 단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가만히 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곧 박선영이 찾아왔다.

“도빈아!”

“아, 누나. 잘 잤어요? 아침은.”

“세상에. 아직 씻지도 않은 거야? 내가 못 살아. 이리 와봐.”

“아니. 잠.”

“시간 없어. 어서.”

박선영에게 이끌려 세면대 앞에 서자 그녀가 내 얼굴을 물로 문대기 시작했다.

“잠. 컥.”

“입 닫아. 눈 감고.”

여성이 씻어주는 상황은 좀 더 선정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고 통스럽고 굴욕적일 거라곤 전혀 몰랐다.

양치질과 머리까지 대신 감겨준 그녀가 머리를 급히 말려주곤 또다시 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대표님, 출발!”

“히무라, 잘 잤어요?”

“그래. 뒤에 샌드위치 있으니까 먹어.”

‘……많이 늦었나본데.’

두 사람 다 내 말은 조금도 안 듣는다.

얌전히 베이컨과 상추 그리고 토마 토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다 보니 미용실 같은 곳에 이르렀다.

박선영이 뭐라 뭐라 말을 하는데.

갑자기 내 머리와 얼굴을 자기들 마음대로 농락하기 시작했다.

“잠깐만. 히무라, 이거 뭐 하는 거 예요.”

“메이크업해야지. 시상식에 나가는 데 그냥 갈 수는 없잖아.”

‘아니 이 무슨.’

“진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해주셔야 해요. 과하지 않게.”

“알아요, 미스. 워낙 잘생겨서 조금 만 손대면 될 것 같아요. 피부도 너 무 좋네요.”

‘뭐라는 거야.’

치덕치덕 로션 같은 걸 바르더니 이제 어머니께서 가끔 하시는 화장을 하기 시작.

조금 짜증이 났지만 히무라와 박선 영이 필요하다고 하니 참기로 했다.

‘그 거지 같은 가발 쓰는 꼬락서니 도 참았으니까.’

뽀글뽀글한 가발을 쓰던 유행은 정 말이지 최악이었다.

2013년 2월.

대한민국의 한 음악 방송국은 세계 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을 독점 생중계하였다.

배도빈을 향한 국민적 사랑은 폭발 적이었고 특히나 블랙 나이트 인크 리즈의 기록적인 성적에 힘입어 자 연스레 2회 연속 수상을 기대하게 했다.

-안녕하십니까. 세계 최고의 음악 축제, 제55회 그래미 시상식 중계를 맡은 박형욱입니다. 저와 함께 소식을 전달해 주실 김지철 평론가께서

나와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김지철입니다.

-작년에 이어 정말 기쁜 소식이 있다죠?

-네.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배도빈이 이번에도 두 개 부문에 노 미 네 이 트되었다는 소식 입니다.

-예. 정말 대단한 일인데요. 이 그 래미 시상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설 명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하하. 일단은 그래미상을 받은 음악가를 소개할 때 다른 어떤 말보다 그래미 위너라 불리는 것만으로도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죠.

-그런 대단한 상을 배도빈은 이미 작년에 세 개 부문에서 수상한 거란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아, 마침 시상식이 시작되었군요. 현장으로 화면을 돌 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화면이 돌아가자 개막을 축하하는 테일러 리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2012년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활 동한 가수의 컨트리한 곡이 감미롭 게 들렸다.

ㄴ 테이 개이쁘네 진짜

ㄴ 노래 좋다.

ㄴ 필요 없고 배도빈 언제 나오냐?

ㄴ 이거 처음 봐서 모름.

ㄴ 본상에는 후보로 없던데 그럼 안 나오는 거 아님?

ㄴ 나올걸? 안 나오면 말이 안 되 지.

ㄴ 인터뷰라도 하겠지. 독점 중계했으면 그 정도 신경은 쓸 듯.

사회자로 나온 남자가 유명 가수, 음악가를 언급할 때마다 화면에 그들의 밝은 모습이 담겼다.

ㄴ 와 뭐냐;; 다 아는 사람들이네.

ㄴ 그래미가 달리 그래미냨ㅋㅋ

ㄴ 왘ㅋㅋ 알톤 존이 할배 아직도 개쩌넼ㅋㅋㅋ

전설적인 인물들이 차례로 화면에 잡히자 채팅창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는 난리가 났다.

배도빈 때문에 평소 그래미 시상식 중계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이 유입되었는데, 그들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첫 번째,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 부문부터 발표가 되면서 배도빈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채팅을 나누었다.

ㄴ 배도빈은 어디어디에 노미네이트 된 거임?

ㄴ 이번엔 본상에는 못 듬.

ㄴ 8살에 퇴물된 거임? 하는 말이 없네 미친놈이.

ㄴ 베스트 스코어 사운드트랙에 노 미네이트되었네.

ㄴ 그게 뭔데?

ㄴ 그게 모임?

ㄴ 근데 본상 아니면 중계 안 되는 거 아님?

ㄴ Best score soundtrack for visu al media. 번역하면 비주얼 미디어 작곡상이라고 보면 됨. 게임이든 애 니든 영화든 다 포함되는 걸로 알고 있음.

ㄴ Best instrumental compositio n에도 올랐네.

ㄴ 인크리즈로 후보된 건가 보네.

ㄴ 영화 성적으론 세이머즈가 더 잘 나오지 않았냐?

ㄴ 세이머즈 OST 맡았던 사람은 노미네이트 안 됨.

ㄴ 그럼 상 탄 거네.

ㄴ 탄 거네。。.

ㄴ 영화 흥행 성적으로 결정하는 거 아님. 애초에 그럼 왜 세이머즈가 노미네이트 안 되었겠냐.

ㄴ ㅋㅋㅋㅋ 그 돈으로 매수했겠지 => WH그룹 돈 많다~

ㄴ 아직도 이런 놈들 있네

ㄴ 채 팅방 관리 좀.

ㄴ 근데 이거 원래 이렇게 오래 함?

벌써 3시간 지났는데.

ㄴ 그러게 뭐지.

ㄴ 모든 부문 중계 안 될걸?

ㄴ ??????

ㄴ 설마 그러겠냐.

ㄴ ?

ㄴ 대체 중계 안 하겠냐 설마. 배도빈 나올 것처럼 말했잖아.

ㄴ 나온다곤 말 안 함.

3시간 동안 배도빈이 나오길 기다렸던 사람들이 채팅방에 방송국 욕을 하기 시작했다.

ㄴ 오케이. 그럼 인터뷰라도 따자.

ㄴ ㅇㅇ 그렇게라도 하자.

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ㄴ 도빈이 보려고 밤새워서 3시간이 나 기다렸는데TTTTTTTT

ㄴ 아……. 미치것I네, 진짜. 이거 보 려고 약속도 안 잡았는데. 개우울하네.

그렇게 점점 체념하기 시작한 사람 들이 늘어나고 있을 때 누군가 링크를 올렸다.

ㄴ 야, 배도빈 인방 켰다. [링크]

ㄴ 분위기 보고 말해라. 진짜.

ㄴ 구라치지 마 미친놈아. 안 그래 도 빡치는데.

그러나 배도빈이 인터넷 방송을 켰 다는 이야기가 커뮤니티 게시글로 계속해서 올라왔고.

혹시나 싶어 해당 링크로 접속한 사람들은 꽃을 잔뜩 안고 있는 배도빈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손에는 꽃 말고도 기념패도 있었다.

핸드폰으로 찍는 모양인지 화질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배도빈이었다.

“이제 말하면 되는 거예요?”

“응. 시작했어. 사람들 들어오기 시 작했으니 말해도 돼.”

“음……. 안녕하세요. 배도빈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스테플스 센터에 있어요.”

ㄴ 왘ㅋㅋㅋ 중계 안 해주니 직접 방송하는 클라씈ㅋㅋㅋ

ㄴ 와 귀여운 거 봐 TTTTTT 오늘따 라 훨 귀염 터진다 진짜TTTTTT

ㄴ 화질 좀 높여주세요.

“어…… 무슨 말을 해야 해요?”

“팬 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항상 제 곡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얼마 전에 아빠 차 사 드렸어요. 곧 사고 날 것 같았거든요.”

“도, 도빈아 그런 말 말고.”

“고맙다는 말도 안 돼요?”

“차 샀다는 말이 안 된다는 거야. 그냥 상 받아서 좋았다거나 영광이었다는 말이면 돼.”

“별로 안 기쁜데.”

“아, 진짜. 목소리 이미 다 나갔잖아. 난 몰라.”

도랏ㅋㅋㅋㅋ 별로 안 기쁘댘 ㅋㅋㅋㅋㅋ

ㄴ 계속 조공할 테니 연주회 좀 많이 해줘 TTTT

ㄴ 아암. 본상 안 줘서 화난 거지.

ㄴ 아 진짜 너무 귀여워. 아빠 차 사 드렸대ㅋㅋ 미쳤다 진짴ㅋ

ㄴ 매니저 극한직업ㅋㅋㅋㅋ 포기했엌ㅋㅋㅋㅋ

ㄴ 이거 소감 말하려고 킨 방송이 아닌 거 같은뎈ㅋㅋㅋㅋ

ㄴ 우리 도빈이가 차 좀 살 수도 있지. 왜 말려요 말리지 마요

“어. 아무튼 정말 고맙습니다. 한국 에서 많이 기다리고 계셨는데 중계가 안 되었다고 해서 이렇게 인사드려요.”

배도빈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채팅방이 다시 한번 난리 났다.

새벽까지 기다렸던 그들의 불만은 배도빈의 귀여운 모습으로 씻은 듯이 날아갔다.

배도빈에 대해 조금 부정적이었던 반응도 2년 연속 그래미상을 수상한 업적과 팬들을 위해 개인 방송까지 한 점으로 많이 완화되었다.

반면 독점 중계권을 가졌으면서도 기자조차 파견하지 않았던 음악 방송국에 대해서는 비난의 여론이 끊 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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