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78화 (78/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78화

20. 8살, 입학(1)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작업은 훌륭하게 진행되었다.

음악팀의 인원이라든가.

연주 방법에 대한 일이라든가.

홀로 작업했을 때와 달리 늘 의견 이 맞지 않아 그 때문에 시간을 보내고 고민하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정말, 만족할 수 있는 곡이 완성되었다.

불협화음이 곡을 전반적으로 더욱 풍성하게 완성도를 높여주듯이.

이렇게 작은 갈등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문제 제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문제가 없었더라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테고, 이렇게 만족스러운 결과 물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도빈아, ‘인크리즈 OST’가 그래미 상에 노미네이트되었어.”

“어머. 정말요?”

“노미네이트가 뭐예요?”

깜짝 놀라 신을 내는 박선영을 두 고 히무라에게 물었다.

“후보에 올랐다는 뜻이야. 2년 연 속 후보에 오르다니. 이거 또 난리 가 나겠는데?”

안 받았으면 모를까.

이미 한 번 받았으니 할 말이 없었다. 발표가 된 것도 아니고 후보 로 올랐을 뿐이라니 아직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지금은 ‘더 퍼스트 오브 미’에 집 중할 때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러.

12월이 될 즈음에는 어느 정도 작 업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실제 녹음 작업과 게임에 포함되었을 때를 확인하는 단계만이 남아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도빈아, 언제쯤 끝날 것 같아?”

루드 캣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 고 있는데 박선영이 물었다.

“한 달 안에는 마무리될 것 같아

요. 필스가 연말 연주회 때문에 녹 음을 서두르자고 했거든요. 그 뒤로 미루든가.”

종 11곡 중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 연주를 해주기로 한 곡은 두 곡이었다.

이미 한 달 전에 악보를 넘겨주고 토마스 필스에게 부탁했는데 아마 지금쯤이면 연습도 거의 이루어졌을 것이다.

각각 8분, 13분 정도 되는 1악장 정도 되는 길이인데 토마스 필스가 어떻게 해석을 했는지 궁금하다.

“빨리 할 수 있으면 좋지만 무리해선 안 돼.”

“걱정 말아요, 히무라.”

히무라와 마주보고 웃었다.

“빠르면 좋을 텐데.”

그러나 박선영은 빨리 돌아가고 싶은 모양인지 다 들리게 혼잣말을 했다.

“저도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정말?”

“하하. 선영 씨가 빨리 돌아가고 싶나 보네.”

내 대답에 박선영이 반색했고 히무라가 웃으며 반응했다.

몇 개월이나 타지에 있으니 확실히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요. 음식도 입에 안 맞고 아는 사람도 없고. 무엇보다 여기 있으면 퇴근을 해도 퇴근한 것 같지가 않아요.”

“크흠.”

당찬 사원과 불쌍한 사장의 대화를 들으며 맛없는 빵을 뜯는데 가방에 서 ‘Smells like teen spirit’가 울렸다.

잠시 내려놓고 핸드폰을 찾으니 외 할아버지가 건 전화였다.

‘무슨 일이지.’

그간 연락을 한 적이 없었기에 의 아했으나 일단은 받았다.

“할아버지?”

-그래, 도빈아. 잘 지내느냐.

“맛없는 빵만 아니라면 잘 지내고 있어요.”

-맛없는 빵?

“여기 빵은 너무 맛이 없거든요.”

-그럼 안 되지. 밥은 맛있게 잘 먹 어야 키도 잘 큰단다. 게임 음악은 잘 만들고 있고?

“어? 어떻게 아셨어요?”

-네 기사라면 잘 찾아보고 있지. 그 외에도 할아버지가 모르는 건 많이 없단다. 루드 캣이 잘 대해주고 있더냐?

“네. 잘해주고 있어요. 작업도 거의 끝나서 요즘에는 여유로워요.”

- 음음.

만족스럽다는 듯 소리를 낸 외할아 버지가 생각지 않았던 말을 꺼내셨다.

-실은 네 학교 말이다. 기왕이면 좋은 환경에서 다닐 수 있도록 알아 봤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학교라면 내년에 가야 하는데.

기왕 가는 거 좋은 곳에 가는 게 나쁠 것 같지 않다.

뭐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지만 어머니께서 외할아버지의 호의를 받아들이실까 싶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근데 엄마 가 반대할지도 모르겠어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 엄마랑은 이야기해 보도록 하마. 설 마 아들 좋은 곳에서 공부시킨다는 데 반대하겠느냐.

일반적이라면 그럴 리 없겠지만.

두 분의 관계를 봐서는 그러실 것 같다.

“할아버지, 물어볼 게 있어요.”

- 뭐든.

“엄마 아빠랑 대화할 순 없는 거예요?”

-하하. 흐음.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일이 있단다.

“그래도 오해는 푸는 게 좋지 않을 까요? 부모랑 자식이잖아요.”

아무래도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관계가 나빠진 듯하다.

그래서 차라리 오해를 푸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하여 물어보았다.

- 으음.

잠시 고민하듯 신음한 외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겠지. 걱정 말고 지내거라.

“네. 할아버지도 건강하세요.”

전화를 끊으니 히무라가 궁금하다 는듯 곧장 물었다.

박선영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주제 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할아버지?”

“네. 학교 이야기로 전화하셨어요.”

“그러네. 벌써 학교 갈 때가 됐구 나. 그런데 할아버지 이야기는 처음 듣네.”

“연락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하긴. 대부분 그런 편이지. 그래도 네 진로 생각하시는 거 보니 엄청 아끼시나 보다.”

“그러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 들어보니 국립은 아닐 테고, 사립인 거 같은 데.”

“글쎄요. 집이랑 가까우면 좋겠어요.”

일용직을 하던 배용준은 얼마 전 작은 건설업체 대표에게 특유의 성 실함을 보여 취직할 수 있었다.

급여는 많지 않지만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고 필요한 일을 먼저 찾아 하 기에 회사나 주변 거래처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다.

“배 씨가 참 서글서글하니 일도 잘 해. 응?”

“그래. 사람 하난 참 진국이지.”

“그 왜 듣자니 학벌도 좋다더만.”

“학벌?”

“박사였대 박사.”

“예끼,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박 사까지 한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그런가?”

오후 3시.

잠시 쉬고 있던 사람들이 배영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때마침 배 영준이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배 씨! 어디 가? 여 와서 커피 한 잔하고 가.”

“그럴까요?”

대충 자리 잡고 앉은 배영준에게 캔 커피 하나를 챙겨준 남자가 물었다.

“배 씨, 학벌이 좋다며? 박사라고 하던데. 무슨 박사야?”

“하하. 누가 그러던가요. 아닙니다.”

“거봐. 그럴 리가 없다고 했잖아. 멀쩡한 사람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왜?”

“아니. 난 그런 줄 알았지 뭐.”

“하하하하.”

잠시 수다를 떤 뒤 배영준이 일어섰다.

“왜. 벌써 가려고?”

“남은 일이 좀 있어서요. 천천히들 오세요.”

“그래. 욕 봐.”

인사를 나누고 현장으로 걸어가는 배영준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묻어나 왔다.

부정하곤 있지만 확실히 10년 전 만 해도 그는 이제 막 박사 학위를 딴 촉망받는 재자(才子: 재주가 뛰 어난 젊은 남자)였다.

28 살.

동기들이 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는 이른 나이에 사학 박사 학위를 땄다.

동시에 당시 WH그룹의 후원으로 막 진행되고 있었던 한 사업에 투입 되었다.

‘테메스 발굴 사업’.

WH그룹은 유럽에서 대규모 관광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배영준의 스승 김남식 박사는 WH 그룹을 끈질기게 설득해 그 대규모 사업에 함께할 수 있었다.

목적은 ‘테메스’라는 고대 문명 유적을 추적, 발굴하는 것.

그전부터 김남식 박사는 테메스 문 명에 대한 논문을 매년 발표했고 학 계의 반응은 반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WH그룹의 유장혁 회장과 접촉.

발견하여 발굴할 수 있다면 WH그 룹이 유럽에 투자하려는 관광 단지 사업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설 득하였다.

그 사전 작업으로 배영준이 포함된 김남식 팀이 문헌으로만 존재하는 유적을 탐사, 발굴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만 발견하면 WH그룹은 그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과 연계하여 관광지를 형성하여 유원지 사업을 할 예정이었다.

해외 언론과 학계에서도 끊임없이 관심을 받았고 김남식 박사는 어마 어마한 투자금을 받으며 연일 언론 에 관련한 자료를 뿌려댔다.

그러나.

1년간 아무런 소득도 없었고 학계에서는 연일 반박하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WH그룹은 ‘테메스’를 포기, 다른 방법으로 유원지 사업을 진행 했다.

그 사업에 투자했던 다른 사람들이 WH그룹이 손을 떼는 것을 보고선 등을 돌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김남식 박사와 그 팀은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몰려 불명예스럽게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만났던 두 사람.

배영준 유진희 부부는 귀국 후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 아이가 배도빈.

과거 테메스를 찾기 위해 청춘을 태웠던 배영준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비록 첫 번째 꿈은 허무히 잃었지 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배영준이었다.

잠시 옛일을 생각하던 배영준이 다 시금 발을 옮기려는데 누군가 그에 게 말을 걸었다.

“공부가 아니라 땅 파는 게 천직이었던 모양이군.”

“……안녕하십니까.”

배도빈의 외할아버지이자 아내 유 진희의 부친, WH그룹 유장혁 회장 이었다.

“잠깐 시간 좀 내주게.”

“하던 일이 있어 어렵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괜찮으실 때 찾아뵙겠습니다.”

“기다리지.”

돈이라면 10원짜리 동전 하나도 허투로 쓰는 법이 없는 유장혁이 그 보다 귀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 시간 이다.

사업을 하다 적자를 내면 징계지만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이유를 막론 하고 다시는 WH그룹에 발을 못 붙이게 할 정도로 시간을 중요히 여기는 사람인데.

기다리겠다는 말에 배영준이 놀랐다.

“내 성격 알 텐데 그러고 있나.”

“……5시까지 나오겠습니다.”

“알겠네.”

작업 현장으로 향하는 배영준은 갑 자기 찾아온 장인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처럼 지낸 지 몇 년이나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 이 런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아내 유진희도 그에게 언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고민하다가 일을 대충 마무리하곤 작업장 입구로 향했다.

“타지.”

무슨 일일까.

혹시 도빈이를 보고 싶은 것일까.

그런 거라면 외할아버지로서 당연 한 감정이다. 아내는 싫어하겠지만 그 정도라면 함께 자리하면 되는데.

문제는 혹시나 하는 그것.

도빈이를 빼앗아가려는 거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할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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