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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77화 (7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77화

    19. 7살, 불협화음(4)

    태풍이 오는 날에 맞춰 일을 진행 하기 위해 루드 캣과 사카모토 료이치는 매우 분주해졌다.

    히무라에게 듣기로는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소방당국에 협조 요청을 하기도 했단다.

    “도빈아, 정말 이래야겠니?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정말 위험할 수도 있어.”

    “그래, 도빈아. 태풍 규모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철부지 어린애를 설득하기 위해 히무라와 박선영이 계속해서 노력했지 만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 좀 바빠요. 나중에 이야기해요.”

    “배도빈!”

    히무라가 소리를 쳤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그를 봤는데, 그의 얼굴이 정말 절박해 보였다.

    그제야 나는 그토록 녹음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설명했음에도.

    그가 이렇게까지 나를 말리려고 하 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재난의 기억을 가진 그로서는 불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넌 아무것도 몰라. 이 일이 얼마 나 위험한지 모른다고. 어른 말 들어. 고집부리는 것도 적당히 해.”

    그가 내게 나이를 내세워, 나의 무 지를 내세워 말한 것도 처음이었다.

    평소의 히무라를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나를 막을 생각인 것이다.

    ‘일곱 살 어린애’에게 겁을 줘서라 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책임감과 불안감 때문이라 그의 행 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히무라, 위험한 걸 알아서 루드 캣과 캘리포니아주 소방국이 도와주는 거잖아요.”

    “재난은 인간이 준비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외벽을 친다 해 도 소리 때문에 결국 안전하게는 못 만들어. 그러다 무거운 거라도 날아 와 부딪치면 그 안에 있는 네가 다 친다고. 그러다 혹시!”

    뒷말을 잇지 못한 히무라는 나를 보며 씩씩댈 뿐이었다.

    나 역시 다치거나 죽을 생각은 눈 꼽만큼도 없다.

    그러나 ‘더 퍼스트 오브 미’의 OST 작업을 소홀히 할 생각도 없다.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 력을 하는 건데, 대안도 없이 그저 하지 말라는 히무라의 입장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과 별개로 이해 할 수 없었다.

    “대안이 있어요?”

    “뭐?”

    “저는 이 작업 대충할 생각 없어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만 들 생각이에요. 그러기 위해 루드 캣에 도움을 청한 거고요.”

    “그러다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게 다 무슨 소용이냐.”

    타협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서로의 생각에 틀린 점이 없고.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래서는 만일 태풍 속에서 연주하는 작업이 안전하게 마무리된다고 해도 나와 히무라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보다 완벽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고.

    히무라는 나를 생각했을 뿐인데 말 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이렇게 허무하게 헤어지는 일이 너무도 많기에, 지금도 그때인가 싶어.

    사랑하는 히무라와 헤어지기 싫어 어떻게든 머리를 굴렸다.

    더 나은 방법, 나와 히무라 둘 다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그렇게 나와 히무라가 서로를 보며 말없이 대치하고 있을 때 박선영이 입을 열었다.

    “도빈아, 인공적인 방법은 어때? 큰 선풍기와 위에서 물을 뿌리면 비 슷한 효과가 날 거야.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실내에서 하는 거 니 안전하고.”

    “그, 그래. 그거라면 분명 네가 바 라던 효과가 날 거다.”

    “……알겠어요. 한번 해봐요.”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대안이 있으니 더는 고집을 부릴 필요는 없다.

    실내에서 태풍이 부는 날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나로서는 다시 한번 그들을 믿는 수밖에.

    히무라가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방에 남은 내게 박선영이 다가 와 손을 꼭 만졌다.

    “대표님이 다 도빈이 생각해서 그러는 거 알지?”

    “ 알아요.”

    “으음.”

    실내 환경 조성을 위해 할리우드에 업무협력을 요청한 루드 캣은 곧 영 화 세트장을 얻어 그쪽에서 일을 진 행할 수 있었다.

    다행히 사카모토 료이치의 인맥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나를 지지하여 목 소리를 내준 사람도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려 했구나?”

    "노먼.”

    크리스틴 노먼이 세트장을 내게 빌려줄 것을 함께 부탁했다고 하니 나 로서는 고마울 뿐이다.

    “노먼은 촬영할 때 차를 진짜로 터뜨렸다면서요.”

    “그거야 그렇게 해야 실감이 나니까 그렇지.”

    “저도 그뿐이었다고요.”

    “사실 나도 이해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노먼도 나와 비슷 한 생각으로 직접 그렇게 일을 해왔었다.

    그녀가 살짝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렇게 작업에 들어갔는데.

    예상보다 그리 좋지 못했다.

    사카모토 료이치와 롤랑 리옹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고.

    물론 내 귀에도 썩 좋지 않았다.

    “선생님,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도빈 군이 이 걸로 만족할 것 같지 않네. 아직 스 며들지 못했어. 환경은 비교적 잘 조성된 것 같지만 말이야.”

    저쪽에서 히무라와 사카모토가 일 본어로 대화를 하는데, 대충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사카모토의 대답을 들은 히무라의 표정이 구겨졌다.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서 눈을 떼고 헤드폰을 쓰고 다시금 녹음된 것을 들어보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하고 나서.

    다시 헤드폰을 벗었다.

    “다시 한번 해볼게요.”

    “OK!”

    그렇게 녹음을 반복해 보았다.

    그러나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도 리어 녹음을 반복할 때마다, 불규칙 적이라 생각했던 물이 떨어지는 소 리가 미묘하게 규칙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짜증이 났다.

    아무리 환경을 조성한다 한들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의 미묘한 규칙을 찾고 나서는 잠시 작업을 중단 하고 쉬는 시간을 요청했다.

    ‘제기랄.’

    미국에 와서 크고 작은 일로 갈등 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사카모토 료이치와도 그랬고 히무라와도 마찬 가지다.

    그러나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싫어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도 나를 싫어해서 의견이 상충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불협화 음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

    “뭔가 생각났니?”

    그때까지 계속 내 옆에 있어준 크 리스틴 노먼이 내게 물었다.

    “네.”

    “잘됐네.”

    불협화음. 엇박자 화음.

    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안정한 느낌을 주지만 잘만 사용 하면 도리어 더욱 신선한 느낌을 준다.

    마치 나와 사카모토.

    나와 히무라의 관계처럼 말이다.

    곧장 악보를 찾아들어 화음을 바꾸 기 시작했다.

    분명 이 물이 불규칙적으로 쏟아지는 소리와 간헐적인 바람 소리와 함께 불안정한 이 화음이.

    무엇인가를 만들어줄 거란 강한 확 신에 펜을 움직였고.

    세트장 중간에 위치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사카모토! 한 번만 더 갈게요!”

    “으음.”

    역시 내 예상대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도빈 군이 피아노 앞으로 가 다시 한번 녹음을 요청한 것을 들은 히무라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포기하고 실제 태풍 안에서 연주를 하겠다고 말하지 않은 걸 다 행이라 여긴 듯하지만.

    이대로라면 아마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아무리 잘 세팅한다고 해도 실제 태풍처럼 자연스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은 무리다.

    문제는 이대로 밖에 나가서 연주를 한다 해도 만족스러울지에 대한 확 신이 없다는 것.

    도빈 군의 음악적 열정에 대해서는 이 늙은 나도 존경하고 존중하나 뾰 족한 답이 없기에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우선은 어쩔 수 없이 도빈 군의 요청대로 스태프들에게 사인을 보냈다.

    스탠바이를 갖추고 도빈 군에게 시 작해도 된다고 말하자 이내 곧.

    구슬픈.

    불안한.

    그러나 그 사이에 의지가 깃든 도빈 군의 피아노 소나타 ‘태풍 치는 언덕’ B단조가 연주되었다.

    정말 훌륭한 곡이 아닐 수 없다.

    감히 말하건대 세계 그 어떤 작곡 가가 와도 이보다 훌륭한 B단조의 소나타를 만들 수 없을 것이며.

    그 어떤 피아니스트라 할지라도 도빈 군처럼 이 곡을 잘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음?’

    곡이 다르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내가 알던 ‘태풍 치는 언덕’이었거늘, 불협화음 이 섞인 지금의 변주곡은.

    놀랍도록 이 불규칙한 물소리와 바 람 소리와 아슬아슬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그 불안감이 극적인 분위기를 잡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활용한 불협 화음을 통해 어색한 주변 환경이 도 리어 자연스레 녹아들고 있다.

    ‘이럴 수가 있나.’

    불협화음을 쓰는 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바흐나 고전 시대 때야 금기시 되었을 뿐이지(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은 잘만 사용했다).

    근 200년 동안 잘 이용되어 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기교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순식간에 이 환경과 어울리도록 배치를 한 것에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도빈 군의 역량이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야 익히 잘 알고 있고.

    그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던지라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늘.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한 일을 저 어린아이가 해내 고야 말았다.

    “료이치……. 지금 이거 방금 막 고친 것이 맞는가.”

    벗인 롤랑 리옹도 믿기지 않는 듯 굳이 내게 물었다.

    “그런 것 같네.”

    “정말 믿을 수가 없군. 같은 곡을 이렇게나 빨리 즉흥적으로 고쳐, 환 경과 어울리게 하다니. 발상도 뛰어 나. 안정적인 게 아니라 도리어 불 안하게 만들어 조화를 만들다니. 자 네는 이걸 믿을 수 있는가?”

    롤랑의 말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연주를 마치고.

    뛰어와 녹음된 곡을 들어보는 것을 기다린 뒤에 다가가 번쩍 안아들었다.

    “왜, 왜 이래요, 사카모토!”

    “하하하하하! 대단해! 대단해!”

    이 시대 새로운 역사를 쓸 인물로 성장할 거라 생각했거늘.

    이미 나는 역사적 인물과 함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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