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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76화 (7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76화

    19. 7살, 불협화음(3)

    작업을 하던 도중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옆방에서 여러 악기를 만지며 어떤 악기를 사용하면 좋을까 실험해 보 고 있는 사카모토에게 갔다.

    “사카모토, 이 챕터에 계속 비가 오잖아요. 빗소리는 어떻게 넣어요?”

    “아.”

    사카모토가 악기를 내려놓았다.

    “보통은 녹음된 걸 쓰지. 빗소리는 꽤 여러 종류가 있으니 말일세. 그 챕터에선 태풍이 왔으니 그에 맞춰 넣을 걸세.”

    “그럼 그 소리랑 이 챕터에 들어갈 음악이랑 겹쳐서 나오는 거예요?”

    “아마 그럴 테지.”

    불만스러워 고민을 하고 있자 사카모토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나 보구만. 말해주겠나?”

    “비가 올 때 소리와 안 올 때 소리 가 다르잖아요?”

    습도에 따라서도 음이 미묘하게 달 라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단순히 겹치면 비가 내리는 곳에 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로 들리지 않을 테니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 중 이에요.”

    “옳거니.”

    사카모토 료이치가 내 말을 이해한 모양이다.

    그 역시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제임스 터너가 녹음 스튜디오에 방문 했다.

    “기쁜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기쁜 소식?"

    사카모토 료이치가 반문했다.

    “제작이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이 제 QA 작업 정도만 진행하면 되죠. 이게 가장 난감한 과정이지만. 하 하.”

    제임스 터너의 말을 사카모토가 전 달해 주었다.

    “게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단계만 남았다고 하는군.”

    “그럼 해볼 수 있는 거예요?”

    영화 음악을 작업했을 때처럼.

    직접 경험을 하는 게 작업에 큰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시나리오와 참고 자료를 아무리 많이, 그리고 제임스 터너에게서 아무리 상세히 설명을 듣는다 해도.

    직접 체험하는 것에 비할 수는 없다.

    “도빈 군이 해볼 수 있는지 물어보 는군.”

    “물론이죠, 사카모토 료이치. 바로 해보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실은 나도 많이 기대했던지라.”

    “하하하.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사카모토와 함께 제임스 터너를 따 라가자 플레이박스와 정말 큰 모니터, 그리고 배영빈이 게임을 할 때 가끔 쓰던 조종기가 있었다.

    패드라고 하는 것 같다.

    ‘좋은 환경이군.’

    그 앞 테이블에는 먹어보지 못했던 과자와 음료가 놓여 있었다.

    큰 모니터와 플에이박스가 없어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방이다.

    “도빈 군은 게임을 해본 적 없을테니 같이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편한 대로 하시죠.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시고요.”

    “항상 신경 써줘서 고맙네, 감독.”

    “별말씀을.”

    방 두 개에 각각 나뉘어 있어 사카모토가 나와 한 방을 쓸 것을 권 한 모양이다.

    제임스 터너가 떠나고 사카모토가 함께 들어가기를 권했고.

    난생처음 게임이라는 것을 해보았는데, 결국 진행이 안 되어 사카모토가 게임을 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신기한 포장지 로 감싸여 있는 과자를 탐미했다.

    사카모토가 게임을 어느 정도 플레 이한 뒤에 잠시 화면을 멈추었다. 그리고 뒤로 돌았는데 표정이 뭔가 놀란 듯하다.

    “왜 그러세요?”

    “그 많은 과자 봉지를 보고 놀랐을 뿐일세. 그렇게나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아.”

    사카모토가 어머니처럼 말했다.

    집에서 떨어져 있는 동안만이라도 맛있는 음식을 탐하고 싶은 일곱 살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듯하다.

    화제를 돌렸다.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음. 확실히 스토리가 좋지. 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네. 그래, 감상은 어떤가.”

    효과음 정도만 들어가 있는데.

    확실히 오전에 고민하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역시 폭풍우가 몰아치는 챕터에선 그냥 덧씌우면 안 좋을 것 같아요.”

    “흐음. 빌헬름이 자네를 왜 꼬마 악마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랬어요?”

    “단원들도 그러던데, 몰랐나?”

    “가끔 듣긴 했는데 무시했죠.”

    “그러니 그런 소릴 듣는 게야. 껄껄.”

    실없는 대화를 나눈 뒤 사카모토가 진지하게 화제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음악에 어울리는 빗소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그런 걸 할 수 있다면 신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 이 챕터에 쓰일 곡을 효과음에 어울리도록 다시 만 드는 일도…… 난 사실 불가능해 보 이는군.”

    “같은 생각이에요.”

    계속 고민을 하자 사카모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해결하고 싶은 거구만. 흐음. 그래. 한번 고민해 보세.”

    사카모토 료이치가 조금 피곤해 보인다. 게임을 오래 했기 때문인가 싶어 걱정스레 말했다.

    “피곤해 보여요.”

    “암. 완벽주의자 감독과 함께 작업 하는데 피곤하지.”

    “히히.”

    “하하하.”

    그렇게 말해도.

    나만큼이나 사카모토 료이치가 완 벽을 추구하는 건, 자신이 연주한 훌륭한 기타 곡을 두고 굳이 롤랑을 초청한 것에서 드러난다.

    저녁 시간이 되어 히무라, 박선영 과 만나 함께 숙소에서 저녁을 먹는 데 벌써 며칠째 레토르트 스파게티 라 물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루드 캣의 구내식당에서 먹자니 너무 기름진 음식만 있어 잘 가지 않게 되었다.

    “히무라, 미국에는 김치 안 팔아요? 아니면 한국 음식이나.”

    “저도 좀 물려요, 대표님.”

    내 말에 박선영이 동조했다.

    “그럼 내일은 한인 타운에 가보자. 거기라면 한국 음식점이 많을 거야. 도빈이 너도 한국 사람이긴 하구나?”

    “어머, 대표님도. 당연한 말을 하고 그러세요.”

    그렇게 히무라와 박선영이 떠들고 있는데, TV에서 무엇인가가 나왔다.

    “타이푼이 오나 보네.”

    “큰일이네요. 주변인 것 같은데. 미국의 타이푼은 규모가 크다면서요?”

    “잘 모르겠네, 나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데 ‘타이푼’ 이라는 것이 곧 이쪽으로 오는 모양 이다.

    “타이푼?”

    “아, 태풍. 바람과 비가 엄청 많이 불고 내리는 거야.”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벌떡 일어났다. 그래봤자 식탁과 그리 차 이나지 않지만.

    “왜 그래? 뭐 가져다줄까?”

    “사카모토하고 상의할 일이 있어요.”

    의아해하는 두 사람을 두고 방에서 핸드폰을 들고 나와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히무라와 박선영은 잠시 나를 보다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곧 사카모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도빈 군에게 전화를 받는 건 처음이구만. 무슨 일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좋은 생각?

    “C챕터에 사용될 곡이요.”

    -아아. 그 태풍이 부는 부분 말이 로군. 그래, 어떤 아이디어인가.

    “태풍이 오면 야외에서 연주를 하는 거예요. 그럼 빗소리, 바람소리랑 같이 자연스럽게 녹음이 되지 않을 까요?”

    “줍!”

    순간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돌 아보자 박선영이 음식물을 얼굴과 옷에 묻힌 채 히무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히무라는 사레라도 들린 듯 기침을 해댔고 때마침 사카모토가 입을 열었다.

    -너무 위험해. 게다가 그 피아노곡 직접 연주하기로 하지 않았나.

    “그래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녹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흐음.

    “도, 도빈아 잠깐만. 너무 위험해. 잠깐 전화기 좀 줄래?”

    박선영이 화장실로 들어가고 히무라가 다가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건네주었더니 자기 마음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사카모토 선생님, 접니다. 히무라. 도빈이와 이야기 좀 한 뒤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네. 네.”

    “왜 끊어요?”

    “도빈아, 정말 위험한 일이야. 규모 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야외면 무슨 물건이 날아와 덮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제대로 녹음이 될지에 대한 걱정을 했는더!, 안전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럼 안전하게 녹음할 수 있는 방 법 없을까요?”

    “그건……

    “알아봐 주세요. 내일 제임스 터너 랑 같이 이야기해 봐요.”

    “꼭…… 그렇게 해야겠니?”

    “네. 저는 방법이 이뿐이라 생각해요. 가능만 하다면 가장 자연스럽게 잘 녹음이 될 거예요.”

    “도빈아, 태풍 속에서 연주라니. 어

    머니 아버지가 아시면 큰일 나. 그 냥 넘어가지 않으실 거야.”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야외에서 좋은 음질로 녹음할 수 있는지, 안 전하게 녹음할 수 있는지만 해결되 면 되잖아요?”

    “아아.”

    히무라가 뭐라 말을 못 하다가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내가 네 고집에는 못 당하겠다. 알아볼게. 내일 사카모토 선생님 과 터너 씨하고 같이 이야기해 보 자. 단, 방법이 없으면 무조건 포기 해야 한다?”

    “저도 피아노 치다가 돌 맞아 죽긴 싫어요.”

    강한 바람에 날아온 돌에 맞고 죽었다간 억울해서 눈조차 못 감으리라.

    다음 날 오전.

    내 말을 전해 들은 사카모토 료이치와 제임스 터너와 미팅을 가졌다.

    먼저 히무라가 시작부터 초를 쳤다.

    “도빈이는 이렇게 녹음을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당연히 안 되겠죠? 하하하. 농담 한번 해봤을 뿐입니다. 도빈아, 아쉽지만 안 될 것 같다.”

    “안 되긴 뭐가 안 돼요.”

    제임스 터너와 사카모토 료이치의 표정이 어둡기는 하지만 아직 직접 이야기를 한 건 아니다.

    “안전하게 녹음할 수 있을 것. 제 대로 녹음을 할 수 있는지. 이 두 개만 확실하면 좋을 것 같아요.”

    독어로 말하고 히무라를 보자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제임스 터너에게 내 말을 전했다.

    ‘제대로 전한 거 맞아?’

    내 안전에 대해 신경 쓰는 히무라는 믿을 수가 없어서 의심하고 있는

    데, 사카모토 료이치가 입을 열었다.

    “녹음 자체는 가능할 걸세. 음집기 도 있고 여의치 않다면 와이어를 이용한 방법도 있지.”

    “와이어요?”

    “음. 실제로 야외에서 녹음할 때 피아노와 스튜디오 사이를 와이어로 연결해 녹음을 한 적이 있네. 바람 소리를 함께 녹음하기 위함이었지.”

    전례가 있다는 말에 나는 기뻐했고 히무라는 죽을상을 지었다.

    “안전 문제라면 어떻게든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간이 외벽을 만 드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군요.”

    “터너 씨, 정말 그렇게까지 할 필 요가 있습니까?”

    히무라가 제임스 터너에게 뭐라 말 했는데 따지는 듯한 말이었다.

    그러자 빡빡머리의 큰 턱을 가진 남자가 굳은 결의로 뭐라 답했다.

    “여섯 살 소년이 더 퍼스트 오브 미를 위해 이런 생각을 냈습니다. 대응해 주지 못한다면 어른으로서, 루드 캣으로서 창피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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