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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75화 (7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75화

    19. 7살, 불협화음(2)

    작업에 들어간 뒤, 사카모토 료이치가 함께 작업할 사람을 몇 구하자고 제안했다.

    그와 함께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굳이 그래야 하나 싶어 되물었는데.

    사카모토의 생각은 달랐다.

    “혼자서 다 하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는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해 배워 야 할 걸세.”

    “왜요?”

    “우리 둘이 일하는 것에 비해 더 효율적이고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말이야.”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확인하고 수정하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효율적이란 것도 납득할 수 없고요.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어요. 사람 이 많아져도 결국 제 뜻대로 될 거예요.”

    “껄껄. 이제 보니 독재자였구만.”

    설마 사카모토가 내게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라 놀랐고 동시에 화가 났다.

    “도빈 군, 이런 작업은 함께했을 때 큰 결과물을 가져다줄 수 있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타 인이 의견을 낼 수 있는 법이야. 이 건 결코 자네의 기량을 의심하는 게 아닐세.”

    “남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아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사카모토.”

    이 시대에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음악가들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다시 태어난 순간부터 후대 음악가 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부터는.

    내 앞에 있는 사카모토 료이치.

    이승희, 토마스 필스, 푸르트벵글러, 한스 짐 등 여러 음악가로부터 감동했다.

    “제 이름을 내건 앨범과 악보에 남 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또 그들이 저와 다른 생각을 가 지고 있는 것은 존중하지만 그걸 받 아들일 생각은 없어요. 다른 건 다른 거예요.”

    “흐음.”

    사카모토 료이치가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럼 내게 함께하자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카모토랑 작업하면 재밌으니까.”

    사카모토는 내게 자연스레 영감을 준다.

    지금처럼. 또 독일에서처럼.

    나와 생각이 정말 다르지만 나는 그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특히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더 더욱.

    모순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와 다른 또 다른 천재, 사카모토 료이치의 생각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느 낀다.

    그 과정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유분방하면 서도 고결한 사카모토의 정신과 함께하는 거라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하하하!”

    크게 웃은 사카모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내가 총애를 받고 있었군. 흐음. 도빈 군.”

    사카마토와 시선을 마주했다.

    “너무나 기쁜 일이야. 자네 같은 천재가 이 늙은이와 함께하는 걸 좋아해 준다는 건.”

    사카모토의 말투는 평상시와 똑같다.

    “하지만 자네는 더욱 크게 될 수 있어. 내 장담하지. 그러려면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네. 다른 사람을 구 하자는 말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네만. 그럼…… 빌헬름은 어떤가.”

    “싫어요.”

    “그래, 좋겠지. ……아니, 싫다고?”

    “네. 싫어요.”

    사카모토가 깜짝 놀라 물었다.

    “푸르트벵글러는 고집쟁이라 싫어요.”

    “큭하하하하하!”

    사카모토가 정말 크게 웃었다.

    지금까지 그가 이렇게까지 크게 웃 은 걸 본 적이 없었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카모토?”

    “끅. 쿡쿡쿡쿡. 아아. 이건 정말이 지 명언이구만. 빌헬름 그 친구가 이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말했어요.”

    “뭐라? 하하하하. 어떤 반응이던가.”

    “저도 똑같대요.”

    “음. 그렇지.”

    조금 인상을 쓰자 사카모토가 빙그 레 웃었고 나도 조금 웃었다.

    “알겠네. 그런 생각이라면 어쩔 수 없지. 이거, 늘그막에 고생하게 생겼 구만.”

    *

    “클래식 기타는 어떨까.”

    배경음악을 두고 사카모토가 의견을 제시했다.

    확실히 듣기 편한 특유의 음색을 고려하면 좋은 발상이라 생각했다.

    사카모토가 스튜디오에 준비되어 있는 클래식 기타를 가져와, 내가 미리 구상한 주제를 연주했다.

    공백이 많지만 그만큼 울림이 깊다.

    그럴듯했다.

    “좋아요. 독주로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좋군. 전개는 어떻게 할 텐가.”

    “이런 식으로?”

    지금은 구분을 위해 클래식 기타라 불리지만 예전에는 이것으로 몇몇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 몸으로는 연주해 본 적이 없어 기타를 들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 니었다.

    ‘대충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자세를 잡고 즉흥적으로 연주를 해나갔다.

    “흐음. 정말이지 즉흥곡이라 생각 할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야. 훌륭 하네.”

    “아직 다듬을 게 많아요.”

    사카모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해도 주제를 그렇게나 변 주해 이어나간다면 크게 손볼 곳은 없을 것 같아. 이런 식이었나?”

    사카모토에게 기타를 건네자 받아 들곤 방금 전 즉홍연주를 똑같이 따라 했다.

    다시 들으니 역시나 아쉬운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선 코드로 넘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요?”

    “이런 식으로 말일세.”

    더욱 풍성하다.

    그러나 기타 곡은 멜로디를 중심으로 공백을 두어 애절한 분위기를 살 리고 싶었기에 해결법을 찾아야 했다.

    “멜로디를 살리고 싶어요. 이런 건 어때요?”

    “흐음. 확실히 더 낫군.”

    사카모토와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은 역시나 즐거웠다.

    더 나은 방향을 찾는 고독한 여정 에 동반자가 있다는 건 큰 힘이 되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함께 있다면 더더욱.

    각자의 의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서 나는 사카모토 료이치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었는데.

    그의 음악에는 한계가 없어 보였다.

    그런 말을 하자 그가 웃으며 내게 도 같은 말을 해주었다.

    “나야말로 그런 생각을 했네. 한 분야에 특화된 사람일수록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는데 자네는 그러지 않아 다행이야.”

    “함정?”

    “음. 자기의 분야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거지. 자부심이 자만심이 되는 경우야.”

    무슨 말을 할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매력적인 장르와 형식이라 도 때로는 그걸 벗어날 필요가 있는 데, 그들은 그것을 금기시하지. 그리 좋지 못한 일이라 생각하네.”

    “푸르트벵글러처럼요?”

    “하하하하! 흠. 그 친구도 그런 부 분이 없지 않아 있지. 더없이 훌륭 한 재능을 가졌지만 그가 클래식 이 외의 음악 장르에 대해 편견을 가진 건 안타까운 일이야. 빌헬름이었다

    면 아마 이 기타 곡에 대해 ‘형식이 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군! 이건 습작에 불과해!’라고 말하겠지.”

    “하하하하!”

    사카모토의 성대모사가 너무도 똑같이 웃었다.

    확실히 만들다 보니 멜로디만 있는 곡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게임 배경 특히, 게임을 하는 사람이 쉬는 장소에 들어갈 곡이기 때문에 귀를 피로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곡 자체에 빠지면, 이 게임을 더욱 부각시킬 수 없다.

    그렇게 미국에서 사카모토와 함께 한 지 첫 주 만에 클래식 기타로 만든 기타 곡을 완성했다.

    사카모토 료이치와 함께 제임스 터너를 찾아가 첫 번째 곡을 들려주었다.

    그것을 들은 제임스 터너는 고개를 끄덕인 뒤 정중히 말했다.

    “오래, 많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유저들은 이 음악을 20시간 이상 들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한 제임스 터너는 정말로 나와 사카모토가 함께 만든 기타 곡을 일하는 내내 들었다.

    다음 날 다음 곡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하러 만났을 때조차 이어폰을 꽂고 미팅실로 들어올 정도였다.

    “터너, 설마 계속 듣고 있었던 거 예요?”

    “물론이죠. 처음에는 밋밋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계속 듣다 보니 자연 스럽게 생활이 가능하더군요. 좋습니다. 이대로 가시죠.”

    정말 대단한 열정가라 생각했다.

    “아, 그 파일은 다시 녹음할 생각 이오, 제임스 터너.”

    사카모토의 말에 나도 제임스 터너 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저건 사카모토 료이치가 직접 몇 번의 연습을 하고 연주한 거라 내가 듣기에도 훌륭하여 굳이 그럴 필요 가 있을까 싶었다.

    “저는 정말 듣기 편했습니다만 무 슨 문제가 있습니까?”

    “하하. 그런 건 아니고 아는 친구 중에 기타를 기가 막히게 치는 사람 이 도와준다고 해서 말이오.”

    사카모토가 나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분명 자네도 마음에 들 걸세.”

    “누군데요?”

    “롤랑 리옹. 이 시대 최고의 기타 리스트지.”

    아쉽지만 나도 제임스 터너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무안해진 사카모토 료이치가 헛기 침을 한 뒤 롤랑 리옹이란 사람이 곧 방문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기분이 조금 상하기도 했지만.

    그가 독단으로 판단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연주자일지 궁금해서 기 다렸는데.

    사카모토 료이치가 부탁까지 하면 서 초청했다고 한 말을 믿을 수 있었다.

    다른 기악곡에 비해 클래식 기타로 연주된 곡은 많이 듣지 못했지만 ‘이 시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는 수식어에 동의하고 말았다.

    녹음 스튜디오에 울린 그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박수를 보냈다.

    “흐허허. 이거 쑥스럽구만.”

    “아뇨. 최고예요, 리옹.”

    “직접 작곡한 곡이지. 기타 연주 실력만큼이나 작곡가로서도 뛰어난 친구인데, 기타 곡이라면 이 친구에 게 부탁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말이 없었던 것은 나중에 짚고 넘어갈 테지만 우선은 정말 대단한 연주자를 만난 기쁨이 더 컸다.

    그간 낭만 시대 음악가의 곡을 듣는데 집중하느라 이 시대의 작곡가 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는데.

    ‘찾아 들어야겠어.’

    하루가 24시간이고 잠을 자야 한다는 게 억울할 정도로 안타까웠다.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말게, 료이치. 진짜 천재 앞에서 무안해지잖나.”

    “하하하! 사실 나도 요즘 함께하는 데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모르겠네. 실수를 하면 귀신같이 찾아내는데 말도 말게.”

    사카모토 료이치가 엄살을 부렸다.

    “그러니 자네도 이 곡 연주할 때 집중해야 할 걸세.”

    “으음. 이거 페이도 없이 부탁하는 것치고 너무 깐깐한 거 같은데.”

    “페이가 없다니, 무슨 말인가. 자네 같은 사람을 두고 그런 거 하나 준 비하지 않았을까 봐. 자네 오기 전 에 제작사와 이야기해 두었지.”

    “크흠.”

    롤랑 리옹이 헛기침을 하고 사카모토에게 귓속말을 했다.

    사카모토도 그의 귀에다 말을 하니 리옹이 고개를 끄덕이고 의욕적으로 되었다.

    “깐깐하다고 하기엔 너무 큰 돈이 구만. 잘 부탁함세.”

    솔직한 친구 같다.

    더욱 아름답기 위해 어기지 못할 규칙이란 없다.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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