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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72화 (7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72화

    18. 7살, 노력과 집념과 재능(2)

    NBC 예능국.

    전국에 있는 수재를 찾아 소개하는 프로그램 수재원정대의 제작진은 매 주 새로운 사람을 찾기 위해 분주했다.

    오늘도 다음 대상을 찾기 위한 회 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배도빈.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는 배도빈으로 인해 클래식 음악 붐이 형성된 대한민국은 연일 배도빈에 대한 이 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최연소 그래미 본상을 수상하였고 그 외에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 화를 만들어가고 있었기에.

    수재원정대 팀은 그를 섭외하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매일같이 배도빈의 소속사인 샛별 엔터테인먼트에 연락을 넣기를 수개월째.

    그간 많은 TV프로그램이 배도빈만 섭외하면 시청률이 대박이 났었기에 수재원정대의 박 PD는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뜻밖의 소식을 듣고는 기어이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 배도빈 섭외가 불발이라고?”

    “네. 거절당했어요.”

    “하아. 시발. 되는 일이 없어. 되는 일이! 대체 뭣들 했던 거야? 어? 시 청률 떨어지는 거 몰라?”

    “뻔히 알면서 왜 죽자 살자 안 달 려들어? 내가 이렇게 매번 소리를 쳐야 해? 어?”

    “아닙니다.”

    씩씩대던 박 PD가 겨우 숨을 고르 고는 입을 열었다.

    “이유가 뭐야? 어?”

    “건강 때문이래요. 일정이 너무 바빠서 요즘 몸이 안 좋은 모양이에요. 다른 활동도 안 하고 있어요.”

    “제기랄. 다들 게시판 못 봤어? 수재원정대에 배도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말이 돼? 미치겠네, 진짜.”

    잔뜩 성이 난 박 PD 때문에 회의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간 오늘 성질 더럽기로 소문이 난 박 PD에게 제 대로 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용기를 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Pird, 최지훈은 어떨까요?”

    “누구?”

    “최지훈이라고 피아노로 꽤 유명한 애 있어요. 나이도 어리고요. 이제 여덟 살인데 중학생들보다 잘한다고 몇 번 방송에도 나왔었어요.”

    대안이 나오자 박 PD도 고민을 하 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건강 때문에 활동을 못 하는 배도빈을 끌어올 순 없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가만. 걔 EI전자 최우철 사장 아들 아냐?”

    “아, 맞아요.”

    “재벌 2세라. 천재 재벌 2세. 괜찮은데? 실력은 진짜고?”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고 했어요. 그럼 잘하는 거 아닐까요?”

    “그건 모르지. 김 작가, 자네 피아노 쳤다며. 어려운 곡 하나 말해봐.”

    “어려운 곡이요?”

    “어려운 곡을 치는 걸 보여줘야 사람들이 좋아할 거 아냐.”

    잠시 고민을 하던 김 작가가 입을 뗐다.

    “글쎄요. 여덟 살이라면…… 연습 곡만 잘 쳐도 대단할걸요?”

    “야야, 연습곡이 뭐야. 어려운 걸 말해보라니까?”

    김 작가는 내키지 않았지만 PD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피아노를 쳤을 때 제대로 못 쳤던 곡을 언급 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F단조라는 곡이 있어요.”

    “그게 제목이야? 뭐, 그럼 녹화할 때 그거 한번 시켜보자고. 일단 빨 리 섭외부터 해봐.”

    참가한 콩쿠르에서는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 최지훈.

    대중은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진짜 천재를 바랐지만, 최지훈 역시 활동 내역만 보면 충분히 호감을 끌 요소가 많았다.

    재벌 2세. 학교 성적 우수. 외모.

    그리고 음악적인 자질까지.

    박 PD는 배도빈의 대체제로서 충 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결 국 수재원정대는 최지훈이란 또 다른 수재를 선택했다.

    그렇게 접촉을 하고 촬영 일정을 조율하기까지 약 두 달.

    각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수재를 찾아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 ‘수 재원정대’에 마침내 최지훈이 출연 하였다.

    가을이 오기 전 여름이 마지막 심술을 부렸다.

    루드 캣이 제작하고 있는 게임 시나리오와 관련 정보를 검토하는 날 이 반복되었다.

    루드 캣에서 내가 이해하기 쉽게 한글과 독일어로 번역하여 보내주었기에 다른 사람을 거쳐 보는 번거로 움이 없어 작업은 순조로웠다.

    게임 제목은.

    ‘더 퍼스트 오브 미(The first of me)’.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히무라 나 배영빈에게 물어 설명을 보충할 수 있었고.

    나는 곧 그 감동적인 스토리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틈틈히 채은이를 가르쳐 주고 있었는데 이제는 제법 기초가 잡혀 슬슬 연탄곡을 맞춰볼 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한동안 못 볼 테니까.’

    가기 전에 선물 하나 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루드 캣의 게임에 어떤 음악을 넣어야 할까 건반을 눌러댔다.

    대충의 테마는 잡아두었는데 내가 원하던 조건이 하나 불발된 것이 아쉬울 뿐.

    내년 4월까지는 여유롭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리 급하지는 않다.

    다만 내가 원하던 게 하나 이루어 지지 않아 심기가 불편한 것이다.

    ‘못된 푸르트벵글러.’

    루드 캣과 계약을 마친 뒤 나는 곧장 푸르트벵글러에게 전화를 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게임에 사 용될 곡을 녹음해 줄 것을 요청하자 푸르트벵글러는 그런 짓 하지 말고 빨리 돌아오라는 억지를 부렸다.

    타협점을 찾을 수 없었던 난 결국 루드 캣이 있다는 산타 모니카 주변 의 오케스트라를 찾았고.

    또다시 토마스 필스와 함께하게 되었다.

    이것도 정말 인연은 인연인 모양.

    미국에서는 거의 대부분 캘리포니 아주에만 머물렀는데 이번에도 그쪽으로 가게 되어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머. 도빈아, 이리 와봐. 지훈이 TV에 나오네?”

    TV를 보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부 르셨다.

    거실로 나갔더니 정말 최지훈에 대 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나레이션)우아한 연주 소리를 따 라 향한 곳에 여덟 살 소년이 있었다. 작은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아름 다운 선율. 전국 피아노 콩쿠르 유 치부 우승 2회, 초등부 우승 1회에 빛나는 꿈나무, 최지훈에 대해 지금 알아보도록 하자.

    최지훈에 대한 소개 영상이 나오기 에 어머니 옆에 앉아 TV를 보기 시 작했다.

    항상 생각하지만 방송국이란 곳은 사람을 낯 간지럽게 하는 걸 좋아하는 듯싶다.

    히무라는 그렇게 해야 재밌다고 말하지만 공감할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수재원정대의 김하나 입니다. 오늘은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 수재로 알려진 최지훈 군을 만 나보려는데요. 서둘러 만나보도록 하죠. 고고!

    ‘집 좋네.’

    리포터가 최지훈의 집으로 향했는 데,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부잣집 아들이라더니 그냥 부자가 아닌 모양이다.

    “저런 집은 얼마나 해요?”

    “글쎄?”

    빨리 저런 집을 사서 어머니와 아 버지께 드리고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싱긋 웃으셨다.

    “왜? 저런 집 사 주려고?”

    “네.”

    “엄마는 도빈이가 사 준 이 집이 훨씬 좋은데?”

    이 집을 드리고 내가 나가야 할 듯하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커 피와 와인 유가당 오렌지 주스를 못 먹는 건 너무나 힘드니까.

    -안녕하세요. 피아니스트가 될 여 덟 살 최지훈입니다.

    어머니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TV는 계속해 진행되었다.

    -와, 지훈이 너무 잘생겼다.

    -감사합니다.

    -누나가 피아노를 너무 잘 친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연주해 줄 수 있어?

    -네, 그럴게요. 근데…….

    -누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F 단조가 너무 좋더라. 혹시 연주해 줄 수 있어?

    ‘ 어?’

    다시 TV> 보던 중 의외의 상황이 나왔다.

    아버지의 압박으로 ‘천재 흉내’를 내고 있는 최지훈이라고는 해도, 내 피아노 소나타 도단조는 여덟 살짜 리가 칠 수 있는 곡이 아니다.

    음을 표현하는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한 곡.

    몇 번 방송을 해봤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사전에 오가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데.

    무슨 생각으로 저런 곡을 선정했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

    ♪♫♬

    “어머. 지훈이도 피아노 잘 치는구 나? 좋네.”

    “네.”

    완주는 아니었지만 곧잘 따라하는 흉내 정도는 내고 있었기에 조금 놀랐다.

    난이도가 높은 건 아니지만 곡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쳤다간 곡을 망치기 십상인데.

    제법 들어줄 만한 연주였다.

    -와아. 대단한데?

    -이야. 진짜 대단하네요.

    리포터와 그것을 보고 있는 패널들 이 최지훈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최지훈의 성적표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다른 여러 특기를 보여주는 장 면이 이어졌고 어머니께서는 ‘도빈 이도 지훈이처럼 공부도 잘하고 음악도 재밌게 하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지훈이의 꿈은 뭐야?

    -작년에 손가을 님이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2등을 하셨어요.

    -맞아. 맞아. 그랬었지. 지훈이도 거기 나가고 싶구나?

    -네. 저는 꼭 거기서 1등을 할 거 예요.

    -정말? 엄청 어려울 텐데?

    -네. 저는 천재니까요.

    ‘그놈의 천재 타령은.’

    천재고 둔재고가 뭐가 그리 중요하 다고 저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몸에 좋은 비싼 식재료를 보내준 그에게는 고마우나 최지훈을 저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건 좋지 않다.

    저 밝고 올곧은 녀석이.

    천재라는 이름 때문에 힘들어할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 이름에 집착하여 자식을 학대한 남자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방송이 끝난 뒤 도착한 메시지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나 TV 나온 거 봤어? 베토벤 소 나타 연습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 TT

    [6주 동안 쳤더니 손가락이 너무 아 파 TTTT 호 해줘.]

    [사진]

    최지훈이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녀 석이 자신의 손을 직접 찍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굳이 사진으로 보지 않아도.

    내 소나타 1번을 들어줄 만큼 치 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흐뭇한 마음에 답장을 보내주었다.

    [잘했어.]

    [진짜? 진짜? 나 그 뒤로 더 연습 해서 방송보다 더 잘 칠 수 있어. 우리 집에 놀러올래기

    [그건 싫어.]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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