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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71화 (7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71화

    18. 7살, 노력과 집념과 재능(1)

    “음악 학원 다닐 때 사귀었어요.”

    너무 좋아하셔서 도리어 부담이 될 정도였는데 어머니께서는 갑자기 손님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분주해 지셨다.

    “먹을 게 많이 없는데 어쩌지. 장 보러 다녀와야 하나? 그래, 그게 좋겠다. 도빈아, 잠깐 채은이랑 같이 있을 수 있지? 엄마 요 앞에 마트에 좀 다녀올게.”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돈 많은 집안 자식이라 항상 맛있고 좋은 거 먹고 다닐 테니까.

    도리어 어머니께서 열심히 준비하 신 음식을 먹고 반응이 안 좋으면 더 화가 날 것 같다.

    최지훈이 예의 바르긴 해도 애다 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말렸는데.

    “아니야. 엄마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도빈아, 노올자〜”

    밖에서 최지훈의 목소리가 들려 현관문을 열어주었더니 멀끔한 차림의 노인과 함께 최지훈이 서 있었다.

    “이분은?”

    “나 돌봐주시는 분이야. 집사님, 저 여기서 놀고 돌아갈 때 연락드릴게요.”

    집사라니.

    누가 보면 어디 귀족가문인 줄 알 것이다.

    “어머나.”

    뒤따라 나온 어머니께서 최지훈과 집사라는 노인을 번갈아 보며 놀라셨다.

    “안녕하세요, 최지훈입니다. 도빈이 친구예요.”

    “예의 바르기도 해라. 어서 오렴.”

    “안녕하십니까, 부인.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걸.”

    “부인이라뇨. 아하하. 이런 거 안 사오셔도 되는데. 어머, 이건……

    “허허. 지훈 도련님의 부친께서 보낸 선물입니다. 부인께서 마음에 들 어하실지 모르시겠지만 정성을 담아 보내드린다 하셨습니다.”

    최지훈의 아버지라.

    참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감사해라. 오랜만에 먹어보겠네요. 아, 내 정신 좀 봐. 안으로 들어오 셔서 차라도 한잔하세요.”

    어머니께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제 스처를 취하자 최지훈이 ‘실례합니 다’라고 말하며 들어왔고 집사는 정 중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만 일이 있어서 그러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

    집사가 돌아간 뒤 어머니께서 선물 과 최지훈을 번갈아 보셨다.

    牧이 비싼’ 걸.•”

    “뭔데요?”

    비싸다고 하니 궁금해져서 물었다.

    “건전복이라고 전복을 말린 거야. 어머 이거 봐. 길품이네? 예전에 먹던 곳인데. 지훈아,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아빠한 테 말씀드려줄래?”

    “네!”

    힘차게 대답한 최지훈을 보며, 어 머니께서 무엇인가 떠오르신 듯 반갑게 목소리를 내셨다.

    “아! TV에 나온 적 있었지? 어디 서 많이 본 얼굴이더라. 저번에 도빈이랑 라디오도 했었고?”

    “네! 헤헤헤.”

    쑥스러워 하는 최지훈과 녀석을 흐 뭇하게 바라보는 어머니. 친구를 데 려왔다는 데 무척 기쁘신 듯하다.

    “잘 왔어. 들어가서 놀고 있으면 아줌마가 간식 가져다줄게. 도빈아,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감사합니다! 다녀오세요!”

    “네. 다녀오세요.”

    어머니께서 집밖으로 나선 뒤, 최지훈이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피아노 가르치고 있었어.”

    “어?”

    의아해하는 최지훈과 방에 들어서 자 채은이가 반갑게 이쪽을 봤다가 흠칫 놀랐다.

    ‘아, 낯을 가렸지.’

    “아, 진짜 피아노 가르쳐 주고 있었나 보네? 안녕. 난 최지훈이야.”

    채은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내 눈치를 봤고, 최지훈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다.

    두 사람의 온도 차이가 심하다.

    “내 친구야. 괜찮아.”

    “••••••안녕.”

    채은이가 어렵게 인사를 했다.

    “근데 갑자기 왜 온 거야?”

    “아빠가 친하게 지내라면서 놀러 가래.”

    “어?”

    앞뒤 내용이 다 빠져서 무슨 뜻인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몰라? 레슨 시간인데 너랑 놀라고 하셔서 그냥 빨리 와버렸어.”

    “나랑 놀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놀고 싶은 거였구만.”

    “아니야! 놀고 싶지만 너랑 노는 게 더 좋은 거야!”

    미묘하게 다른 것을 굳이 말한 녀 석을 보곤 피식 웃었다.

    레슨을 피해서 이쪽으로 오다니.

    더 훌륭한 선생에게 피아노를 배우러 온 아주 현명한 학생이 아닌가.

    “그럼 잠깐 거기 있어봐. 채은이랑 약속한 게 있어서.”

    “응. 와, 이게 다 뭐야? 악보? 너 가 만든 거야? 봐도 돼?”

    “으”

    고개를 끄덕이는 최지훈을 두고 채 은이 옆에 섰다.

    차채은을 위한 연습곡 1번 C장조 (Studie für Engel no. 1 C major).

    3분 정도의 짧은 곡으로 속도는 적당히.

    현재 차채은의 수준보다 조금 높은 정도로 몇 번 연습하면 금방 칠 수 있게 만들었다.

    본래는 피아노 두 대를 놓고 협주를 하는 연탄곡이지만.

    우리집에는 피아노가 한 대뿐이라 채은이가 이 곡에 익숙해지면 녹음 실에 가서 함께 연주할 생각이다.

    “자, 들어봐.”

    "응."

    여덟 마디씩 연주해 주고 직접 쳐 보게 한 다음 악보 설명.

    일단 먼저 멜로디를 익히게 하고 설명을 하는 게 채은이를 위한 맞춤 형 강의다.

    “해볼래?”

    “응, 응.”

    의욕적으로 건반에 달라붙어 연주를 하기 시작한 채은이는 정확하게 연주를 해나갔다.

    다섯 번 틀리던 걸 다음 연주에는 네 번 틀리고. 그다음 연주에는 한 번을 틀린다.

    그런 뒤에는 완벽하게 내가 연주했던 그대로의 연주를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기특했다.

    슬쩍 최지훈을 보니 내색하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초적인 곡이라 해도 무려 다섯 살짜리 꼬마가 처음 보는 곡을 한 시간 만에 완벽히 연주를 했으니까.

    내 기준이라 최지훈에게는 어린애 가 그럴 듯한 곡을 훌륭한 연주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재밌어!”

    “잘했어.”

    머리를 쓰다듬으니 신나서 다시 한 번 차채은을 위한 연습곡 1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도빈아.”

    최지훈이 불러 고개를 돌렸다.

    “이건 무슨 곡이야?”

    “체르니 교본이나 하농 연습곡은 재미없어 하길래 만들었어.”

    카를 그 친구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지만 말이다.

    “쟤는 언제부터 피아노 쳤어?”

    “글쎄. 한 세 달 됐나?”

    “세 달?”

    깜짝 놀란 최지훈이 충격을 받은 듯 목소리를 크게 냈다.

    덕분에 깜짝 놀란 채은이가 실수를 해버렸고 하던 연주를 멈추고 이쪽을 보았다.

    “너도 쳐 봐.”

    “응?”

    “봐줄게. 저번에 들어보니까 많이 늘었던데?”

    “아, 응……

    채은이에게 가서 말했다.

    “저 오빠도 쳐보고 싶대. 괜찮아?”

    채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주었고 조금 긴장을 한 최지훈 이 자리에 앉았다.

    “뭐 치지?”

    “좋아하는 거.”

    잠시 숨을 고른 뒤 최지훈이 발랄 한 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건.’

    아마 쇼팽이란 사람의 연습곡(에튀 드: ötude) 일 것이다.

    채은이를 가르치기 위해 찾아본 교 본에서 본 기억이 났다.

    오른손이 검은 건반만을 연주하는 곡인데 언젠가는 채은이에게도 가르 쳐 줄 생각을 했었다.

    다른 연습곡들과 다르게 쇼팽이란 남자의 연습곡은 분명 ‘즐겁게’ 연주를 할 수 있었으니까.

    슬쩍 채은이를 보자 초콜릿을 받았을 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잔뜩 기쁜 것이다.

    이 달콤한 연주가 채은이에게는 초 콜릿만큼이나 기쁜 듯, 내 소매를 꼭 잡고 흔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확실히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이제 갓 여덟 살인 최지훈이 이만 한 연주를 한다는 건 분명 놀랄 만 한 일이다.

    일반적으로는 또래, 아니, 위로 다 섯이나 여섯 살은 많은 사람이 꾸준히 연습을 했다고 쳐야 저만큼 연주 할 수 있을 테니까.

    최지훈의 재능이 그리 훌륭하지 않은 것을 감안했을 때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단 하나의 곡을 저렇게 표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반복했을지.

    “후우.”

    최지훈이 연주를 마쳤다.

    “잘 치잖아?”

    "응."

    두 눈이 똘망똘망한 채은이를 보더 니 최지훈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럼. 난 천재니까.”

    “천재 아니야.”

    “힝.”

    “그래도 이렇게까지 잘 칠 줄은 몰랐어. 대단해. 연습을 얼마나 한 거야?”

    내 말에 최지훈이 감격했다.

    “일주일 동안 이것만 쳤어.”

    “ 일주일?”

    “응. 하루에 10시간 정도?”

    미쳤구만.

    만일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저 어린 녀석이 스스로의 의지로 그만큼 노력을 했다면 그건 그것대 로 대단한 일이다.

    스윽스윽-

    소매를 붙잡고 있던 채은이가 나를 당겼다. 고개를 돌리자 방끗 웃으며 말했다.

    “오빠, 나두. 나두 가르쳐 줘.”

    «으»

    방금 최지훈이 연주한 곡은 쳐본 적이 없어서 잠시 망설이다가 박선 영이 구해다 준 교본 목록을 뒤적였다.

    한쪽 구석에 있는 악보집을 찾아 펼쳐 올려놓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너도 이거 칠 줄 알아?”

    “칠 수야 있겠지. 처음이지만.”

    잠시 악보를 살핀 뒤 건반 위에 스을 얹었다.

    ♪♫♬♪♫♬

    ‘과연. 이런 기분인가.’

    연습곡은 정말로 많지만 쇼팽의 연 습곡은 묘한 느낌을 준다.

    음악적 아름다움은 물론 곡 안에 있는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이런 곡 이라면 피아노를 배울 때 분명 즐거 울 터.

    적당한 난이도까지 붙어 기초 단계를 넘어서 오기에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이 가장 힘든 시기니 말이다.

    채은이를 위한 연습곡을 만들 때 참고를 해도 또는 그대로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연주를 해보니 그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연주를 마치고 일어서자 최지훈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나를 보고 있었다.

    채은이는 내게 다가와 피아노 의자 에 앉으려 하고 있다.

    “왜?”

    “진짜…… 처음 치는 거야?”

    “응.”

    “그렇구나.”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뻔히 보인다.

    “난 이거도 엄청 연습해야 했는데……

    “받아들여야 해.”

    “어?”

    “너보다 음악 잘하는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어. 피아노든 작곡이든. 그 거 보면서 좌절할 필요 조금도 없어. 넌 일주일 연습해서 이 곡 잘 치게 되었잖아.”

    “다른 곡도 똑같아. 하루에 10시간 씩 피아노만 칠 정도로 좋아하잖아. 그게 네 장점이야. 다른 애들은 하 루에 3시간만 쳐도 힘들다고 찡찡대 니까, 너는 10시간 열심히 치면 돼.”

    억울할 수 있다.

    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멈춘다면 정말 더 못한 사람으로 남을 뿐이다.

    흔히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천재라고들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가진 재능에 더불어 일생을 오직 음악을 하는 데에만 미쳐 있었다.

    그러하기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나조차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 해 모차르트라는 노력하는 천재에 닿기 위해 어렸을 적부터 오직.

    오직 음악만을 해왔다.

    정말 분하다면.

    음악을 좋아한다면 한 평생을 바칠 각오와 그것을 이어나갈 수 있는 집 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채은이를 보면 또 다르지만.’

    저 아이의 경우에는 나와 달리 ‘즐 기는 것’일 테지만.

    최지훈.

    내 친구 최지훈은 나와 비슷하다.

    “……맞아. 더 연습하면 되겠지. 그럼 괜찮아.”

    비록 웃고 있지만, 저 어린 가슴은 속이 타들어갈 터.

    그것을 이겨냈을 때 최지훈도 훌륭 한 음악가가 될 터다.

    그렇게 녀석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었을 때.

    ♪♫♬♪♫♬

    채은이가 쇼팽의 연습곡을 치기 시 작했고 기껏 불타올랐던 최지훈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지훈이 가면 치자, 채은아.’

    고작 두 번 들었다고 어설프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나조차 어이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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