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70화 (7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70화

    17. 7살, 밤과 고양이(2)

    “채은이도 볼 거야.”

    “채은이는 아직 어려서 안 돼. 나 중에 크면 보자?”

    “오빠도 보는데……. 히잉.”

    옆집 아주머니가 너무 자극적이란 이유로 채은이를 달랬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배웅했는데, 달래기 위해 준 초콜릿을 문 채 눈물을 글썽이는 게 조금 귀여웠다.

    “도빈이도 원래 보면 안 되는 거야?”

    “네……

    어려서 불편한 점이 또 한 번 생 겼다.

    7월 19일.

    루드 캣과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분 좋게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영화관으로 향했다.

    “쟤 배도빈 아니야?”

    “어머. 맞네. 맞네! 대박!”

    “엄마아빠랑 같이 온 모양이네? 진짜 너무 귀엽다.”

    “귀여워〜”

    주변에서 나를 알아보는 소리가 들렸지만 뭔가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아 신경 쓰지 않았다.

    “빨리빨리.”

    “안 늦었어요. 아직 30분이나 남았는걸요?”

    반면 아버지께서는 아예 오늘 하루 일을 나가지 않을 정도로 잔뜩 기대하고 계셨다.

    “도빈아, 절대. 절대 무슨 이야기 나오는지 설명하면 안 된다?”

    블랙 나이트의 1편과 2편을 볼 때 아버지께서 옆에서 이것저것 설명을 하는 통에 불편했던 기억이 떠올라 조금 황당했다.

    “당신은. 당신이야말로 얌전히 봐요.”

    무슨 일인지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혼냈다.

    어머니를 올려다보자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를 하셨다.

    “1편 나왔을 때 엄마랑 아빠랑 영화관에 갔는데 어찌나 말이 많던지. 주변 사람들이 눈총을 줘서 혼났다 니까? 도빈이는 그러면 안 돼?”

    “네.”

    “그, 그런.”

    곤란해하는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 가 앞장서 걸어갔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알지만, 평소에 서로 죽 고 못 사는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저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어지간히 시끄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 요란스럽게 영화관에 입장했다.

    어떻게 꾸며졌을지 너무도 기대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같은 상영관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 은 저마다의 표현으로 블랙 나이트 인크리즈를 찬양했다.

    “와, 나 기저귀 차고 볼걸.”

    “웃기고 있네. 크큭. 아, 근데 진짜 대박이었다.”

    “응응. 나 지금 영화 보고 나왔어. 어. 개쩔어. 꼭 봐. 아니, 나 두 번 볼 거니까 같이 오자.”

    나 역시 그 장대한 서사시의 마무 리를 곱씹는데, 시장함을 느껴 핸드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자 벌써 점 심시 간이었다.

    아침에 왔는데 벌써 점심이라니.

    러닝타임이 170분이 넘었다는 사 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단 한시도 지루할 틈 없이 재밌게 봤는데, 그렇게까지 사람을 몰입시 킬 수 있었던 크리스틴 노먼 감독의 역량에 감탄할 뿐이었다.

    “크으! 진짜 크리스틴 노먼이라니 까. 도빈아, 그 사람 어때? 역시 대 단한 사람이지?”

    “네. 대단한 사람이에요.”

    나만큼이나 즐거워하는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와 함께 웃었다.

    영화 볼 때 설명하지 말라고 어머 니께서 말씀하셨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고 정말 푹 빠져 계셨으니까.

    “배고파요.”

    “그래, 엄마도 배고프네. 도빈이 뭐 먹고 싶어?”

    “카레요.”

    * *

    [명작의 아쉬운 마무리】

    크리스틴 노먼 감독의 2012년 개 봉작 블랙 나이트 인크리즈가 개봉 되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2편 에 이은 3편은 기대에 못 미치는, 크리스틴 노먼 감독의 실수였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 대사와 행 동으로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훌륭 했던 2편과 달리, 인크리즈의 ‘네임 리스’는 초반 타인의 대사로 설명될 뿐이다.

    반면 압도적인 영상과 연출에는 박 수를 보낸다.

    혼돈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는 방식과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면은 과연 명장 크리스틴 노먼 의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배도빈의 음악이 큰 역할을 수행하였음은 자명한 사실.

    선뜻 조잡한 영화에 170분간 몰입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노먼 감독의 연출과 배도빈의 음악 덕분 이었다.

    •영화 평론가 로저 진(★★★☆)

    【전설의 마무리. 압도적인 170분】

    2005년과 2008년에 이어 4년 만 에 후속작 ‘인크리즈’가 개봉되었다.

    명장 크리스틴 노먼이 감독한 인크 리즈는 블랙 나이트 앞에 최고의 트 릴로지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충분 했다.

    여전히 강렬하고 깊이 있는 서사는 압도적인 영상으로 투사되어 170분 동안 숨 막히게 표현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배도빈의 장중 한 음악이 더해져 관객은 보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영화 평론가 레너드 리키(★★★★)

    [거장의 음악에 전율하다]

    이제 갓 여섯 살의 아이에게 거장 이란 표현을 쓰는 데 거부감을 느낄 지도 모른다.

    더욱이 음악 활동을 한 지 이제 2~3년밖에 안 되는 사람에게 붙인 다면 말도 안 된다는 혹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도빈을 거장이라 하는 데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인크리즈’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총 감독한 배도빈은 자신의 탁월한 해석 능력을 보여주었다.

    주제음과 모티브는 영화 음악에 중요한 요소다.

    의미가 있는 장면을 연결할 때 항 상 모티브를 들을 수 있는데, 이는 장면과 장면의 유사성을 잇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된다.

    때문에 각 장면의 분위기에 맞춰 모티브는 적절하게 변형되어 사용되 는데, 배도빈은 이 변화를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해 냈다.

    마치 베토벤처럼 말이다.

    베토벤의 c단조 교향곡(운명)은 처 음부터 끝까지 모티브의 변형으로만 구성된, 악성의 집착과 집념과 음악적 역량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나는 ‘인크리즈’에 사용된 배도빈의 장면마다 적절히 변형하는 것을 보 며 감히 그를 떠올려 보았다.

    -한스 짐(그래모폰)

    여러 전문가의 평이 갈렸으나 영광 스러운 피날레였다는 평가만큼은 이 견이 없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블랙 나이트 인크리즈는 대한민국에서만 관객 수 최단 시간 300만 명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앞서 개봉한 맥스 스튜디오의 세이머스가 개봉 닷새 만에 약 180만 명의 관객을 유치하였기에.

    많은 사람이 최고의 트릴로지가 마 무리 되고, 그 뒤를 이을 최고의 시 리즈가 시작된 한해라고 평했다.

    세계적으로는 더욱 흥행하였는데, 비록 아쉬운 부분이 있으나 그 몰입 도와 훌륭한 마무리라는 데에는 의 견이 증명하듯.

    전미 5억 9,000만 달근L

    해외 7억 4,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약 1,330,000,000달러를 벌어들였다.

    지니위즈와 죽음의 유물 2부에 이어, 역대 5번째 흥행 성적이었으며, 앞서 개봉한 세이머즈와 나란히 10 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2012년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TV에서 매일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 슬쩍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나를 참 좋아한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와는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았는 데 저렇게까지 응원을 해 힘을 주는 것을 보니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네. 샛별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아, 예. 예. 관련 내용은 메일과 팩스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우 선은요. 네.”

    “감사합니다. 샛별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아, 네. 네. 연주 문의는 공식 메일로 의뢰해 주시면 검토 후 연락 드리고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 때문인지 히무라와 박선영은 무 척 바빠 보였다.

    사무실 전화기는 물론 두 사람의 핸드폰까지 연달아 울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계속 TV를 볼 뿐이었다.

    뉴스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어 요 즘 관심을 두고 있는 지구방위대 가 랜드를 보는데.

    끝나고 나서야 히무라와 박선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대표님, 하루 종일 전화랑 메일 확인하는 데 시간을 다 쓰는 거 같아요. 사람 한 명 더 둬야 하지 않을까요?”

    박선영의 말에 히무라가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좋겠지만. 수입이 일정해 지지 않으면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 현재로서는 도빈이가 일을 안 하면 수입이 없잖아. 계약을 하면서 늘려 가야지.”

    내 기억으로는 내 수입의 1할을 매니지먼트, 그러니까 히무라에게 주기로 했다.

    올해 내가 1억을 벌면 천만 원.

    그보다는 많이 벌어서 히무라에게 도 적지 않은 액수가 들어갔지만.

    그런 와중에 박선영의 월급도 챙겨 줘야 하니 빡빡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올해만 따지면 9억?’

    얼마 전에 맺은 루드 캣과의 계약으로 대박이 나서 수입이 크게 올랐는데,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 다가 항상 이렇게 많이 벌 순 없을 테니 히무라의 걱정도 이해가 되긴 했다.

    “돈이 많이 부족해요?”

    “아아. 아냐. 도빈이는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모르긴 해도 이 사무실을 빌리는 데만 해도 돈이 적잖게 들고 있을 것이다.

    엑스톤에서 남부럽지 않게 벌었을 히무라가 저러니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고 무작정 비율을 조절해 줄 수는 없었기에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수익을 내는 사람이 늘어나면 되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히무라, 한 사람 더 늘면 어때요?”

    “으음. 그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월급을……

    “아니요. 음악 하는 사람.”

    “아, 그 말이었구나.”

    잠시 생각을 하던 히무라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그렇지. 실제로 관리하 던 사람들이 회사 차렸다고 하니까 많이 연락을 해줬는데, 지금은 너한 테만 집중하고 싶어서 거절했어. 앞으로 당분간은 마찬가지고.”

    “당분간?”

    “네가 좀 컸을 때?”

    “아.”

    고개를 끄덕이자 히무라가 작게 웃은 뒤 말했다.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이런 건 나한테 맡기고 넌 음악만 즐겁게 하면 돼. 알겠지?”

    분명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채은이를 생각해 말을 꺼냈지만 히무라 의 방침이 완고했다.

    확실히 아직 이르다 보니 나중에 이야기를 꺼내도 될 것 같다.

    ‘3, 4년 정도 더 배우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때까지 히무라와 박선영이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안쓰러워졌다.

    채은이와 함께 연주할 곡을 완성시킨 주말.

    [나 너희 집 놀러가도 돼?]

    오늘도 어김없이 채은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최지훈이 문자를 보냈다.

    [안 돼.]

    [왜? 나 너랑 놀고 싶단 말이야.]

    [바빠.]

    [너희 집 앞인데?]

    [돌아가. 왜 출발하기 전에 묻지 않은 거야?]

    [힝ㅠㅠ 도빈아ㅠㅠ]

    약속도 없이 찾아온 녀석을 그냥 보내려다 전화를 걸었다.

    저번에 보이는 라디오에서 듣기로는 제법 실력이 늘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놀라겠지.’

    채은이의 연주가 최지훈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엄마.”

    최지훈에게 문자를 보내고 거실로 나왔다.

    “왜? 간식 줄까?”

    “괜찮아요. 실은 친구가 온다고 하 는데 괜찮아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어머니께 여쭤봐야 하는 법.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정말? 친구? 어떻게? 사카모토 씨나 푸르트벵글러 같은 할아버지 말고? 아니, 언제?”

    순식간에 질문을 다섯 개나 받아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