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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67화 (6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67화

    16. 7살, 선생님이 되다(3)

    자꾸만 꾸벅꾸벅 조는 나를 두고 결국 어머니는 병원에 데려갔는데, 검사를 마친 뒤 의사가 크게 웃었다.

    무슨 큰 병에 걸린 건 아닌지 걱 정하셨던 어머니께서는 황당하다는 듯 설명을 재촉했다.

    “뭐, 의학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춘 곤증일 겁니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습니다.”

    “네?”

    “도빈아, 입맛이 없고 자꾸 졸리고 그래? 아픈 곳은 없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빈이를 화나게 하는 건?”

    “ 없어요.”

    대답을 하자 의사가 웃으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문제없습니다. 아주 건강해요. 한 동안 도빈이가 바빴다고요? 장거리 이동도 많이 하고.”

    “ 네.”

    “아마 환경이 계속 바뀌면서 생기는 일일 겁니다. 또 성장기다 보니 아무래도 잠을 많이 자는 게 당연합 니다만 낮에 자면 밤에 못 잘 테니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규칙적인 생활이요?”

    어머니께서 나를 내려다보시는데, ‘엄마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댔지?’라고 말씀하시는 듯했다.

    “아무래도 비규칙적인 생활을 반복 한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네요.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만 자는 걸 추천드립니다. 또 입맛을 돋우는 음 식을 먹거나 신선한 환경에 가면 나 아질 겁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을 나선 어 머니는 어이가 없으신 듯 깔깔 웃기 시작하셨다.

    “엄마?”

    “아냐. 도빈이가 건강해서 다행이다.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니? 아빠한테 전화 해줘야겠다.”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탔고.

    아버지와 통화를 마친 어머니는 히무라와 나카무라에게도 전화를 하셨다. 중간중간에 자꾸 헛웃음을 지으시는데,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다.

    4월이 그렇게 덧없이 흘러갔다.

    두 번째 앨범 작업이 남아 있지만 6월부터 작업을 들어가도 괜찮았고 히무라가 그간 바빴던 걸 신경 써준 덕에 6월이 되기 전까지는 따분한 생활을 이어나가야 할 듯싶었다.

    처음 엑스톤과 계약을 한 뒤, 계속 해서 쉼없이 일이 있었기 때문에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한적한 시간인데.

    이 시간이 그렇게 지루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일이 있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심심했다.

    그런 이야기를 어머니께 했더니.

    귀찮은 일을 가져 오셨다.

    “도빈아, 옆집 동생이 놀러왔어.”

    “안녕 도빈아〜 채은아, 오빠한테 인사해 봐.”

    “••••••안녕.”

    옆집 꼬맹이를 데리고 오셨다.

    “채은이도 피아노 배우고 싶대. 도빈이가 가르쳐 주면 되겠다. 그치?”

    “아이 참, 언니도. 도빈이처럼 유명 한 애한테 과외 받을 돈 없어요.”

    “얘는. 애들끼리 노는 거 가지고 무슨 돈 이야기야.”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가 하하호 호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두 사람의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옆집 아주머니는 천재 배도빈에게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 싫었을 테고.

    어머니께서는 항상 그러셨듯, 내게 비슷한 또래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그 이해관계가 들어맞으면서 불쌍 한 나와 채은이라는 저 아이가 희생 당하는 거다.

    불쌍한 녀석.

    아직 자기 엄마 다리 뒤에 숨어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아이가 무 슨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것인지.

    차라리 사람이 달에 갔다는 말이 더 그럴 듯하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요?”

    어머니를 보며 말하자 이웃 아주머 니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채은아, 오빠한테 피아노 가르쳐 달라고 해봐.”

    꼬맹이가 고개를 힘차게 저으며 이 젠 얼굴마저 숨겨 버렸다.

    ‘어쩌라고.’

    가르치는 거야 예전에 돈을 벌기 위해 꽤 많이 했었지만.

    사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은 아니다.

    똥멍청이들밖에 없으니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

    무엇보다도 내가 가르친 귀족가 자 제들이란 연놈들은 지적을 하면 고칠 생각은 안 하고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만으로 발광하기 일쑤였다.

    실력과 자존심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 것들이 노력도 없이 그 얄팍한 감정을 ‘자존심 상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에 역겨워 토악질이 나올 지경 이었다.

    하물며 저렇게 본인이 싫어하는데, 가르칠 순 없는 법이다.

    나나 저 아이에게나 못할 짓이다.

    “그럼 저 들어가 볼게요.”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가 날 잡으려 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말을 내뱉진 않았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두 번째 앨범 에 대해 고민하며 피아노를 만졌는데, 모든 곡을 피아노로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란츠 리스트.

    다시 태어나고 갓난아기였을 무렵부터 내게 충격과 신선함을 가져다준 역사상 가장 요염했던 피아니스트.

    죽기 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은 있는데 잘 생각나지 않은 걸 보면 당시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어렸을 터다.

    아무튼.

    그자가 내 교향곡을 모두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게 편곡을 했는데, 그게 제법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있으면서 지금 은 낭만파라 불리는 시대를 접하게 되었고.

    그중 리스트의 피아노는 특히 내 감수성을 자극하였는데 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그의 교향시를 피아노로 편곡 해 볼 생각을 해보았다.

    훌륭한 후대 음악가를 깊이 탐구하는 시간이 될 것은 물론, 그의 교향 시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탓에 마음이 이끌렸던 것인데.

    프란츠 리스트의 7번 교향시 축제 의 함성을 들으며 사색에 잠긴 와중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뜨니 꼬맹이가 내 방에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니 움찔거렸다.

    물어도 대답은 없다.

    ‘도통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얌전히 있는 것 같아 가만 두었다.

    축제의 함성의 힘찬 소리와 부드럽게 전개되는 서사적인 음률을 떠올 리며 건반에 손을 얹었다.

    그날 이후 꼬맹이는 매일 같이 찾아와 조용히 내 방에서 음악을 듣다 가 어머니께서 챙겨주시는 간식을 먹고 돌아갔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는데 무슨 일인 지 간식을 먹으라고 했는데도 방에 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도빈아, 채은이한테 간식 먹자고 했어?”

    “네. 했어요.”

    “맛있게 잘됐는데.”

    일어나 내 방으로 향하시려던 어머 니께서 무엇인가 생각나셨는지 다시 자리에 앉으셨다.

    “채은이랑 좀 친해졌니? 요즘 매일 오는 것 같던데.”

    “아뇨.”

    “왜? 그럼 방에서 뭐 해?”

    “피아노 쳐요. 걔는 그냥 듣고 있고요.”

    “대화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니 어머니께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여자애니까 도빈이가 상냥하게 같이 피아노도 같이 쳐보자고 해봐.”

    “하기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하자고 하는 것도 괴롭히는 거 아닐까요?”

    “그건 그렇지만.”

    그때였다.

    내 방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 한 음, 한 음 탐구하듯 건반 소리가 천천히 이어졌다.

    “거 봐. 채은이도 피아노 치고 싶었나 보네.”

    관심을 가질 순 있지만 내가 가르쳐야 할 이유는 없다.

    돈이 필요했던 시기야 억지로 못난 놈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돈 때문 에 굳이 레슨을 할 정도는 아니다.

    앨범 판매액이라든가.

    매절 형태로 판 ‘가장 큰 희망’과 ‘용감한 영혼’에 대한 개런티.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받은 돈도 있고 연주회나 방송에 출연하여 번 돈도 있다.

    그리고 ‘인크리즈’를 작업하면서 선금으로 받은 돈과 앞으로 받게 될 저작권 사용료를 생각해 보면 더욱.

    돈은 충분히 벌었고 앞으로도 계속 들어올 테니까.

    “도빈아, 동생한테는 친절해야지.”

    그러나 이렇게 인간적인 면으로 요구를 하면 어쩔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돌아가자 꼬맹이가 황급히 피아노 의자에서 일 어났다.

    “괜찮아. 계속해도.”

    겁먹은 아기 고양이처럼 살짝 나를 올려다보는 꼬맹이를 보자 나도 모 르게 마음이 동해 손짓을 했다.

    꼬맹이가 조심스레 피아노에 앉았고, 나는 그 옆에 서 건반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어렸을 적 들은 동요 중에 서도 단순한 멜로디를 연주했다.

    솔솔라라솔솔미〜

    “들어봤어?”

    꼬맹이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자, 여기가 솔이야. 여기는 라. 여 기는 미. 솔솔. 라라. 솔솔미.”

    하나씩 음계를 알려주자 곧찰 쳤다. 제법인 건 박자를 기억하는 건지 정확히 맞췄다는 것.

    뒷부분도 가르쳐 주니 신이 나서 반복해 연주를 했다.

    손녀가 있었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린 게 집중해서 피아노를 치는데 그 모습이 무척 열심히라 기특하게 보였다.

    “다른 것도……

    반복을 하던 꼬맹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정도야 괜찮겠지 싶다.

    곧잘 따라 하기에 이번에는 조금은 더 어려운 동요의 음계를 알려주고,

    먼저 연주해 주었다.

    물론 방금 전과 같이 멜로디만.

    레시도시솔 레시시도시솔~

    이번에는 반음이 들어갔는데, 또 곧잘 친다.

    박자도 조금씩 다른데 정확히 맞춰 가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다섯 살이라 했던가?’

    예전에 히무라가 선물해 준 피아노 가 딱 맞을 시기인데 어린애가 제법 음감이 있는 듯해 신기해서 조금 더 가르쳐 주었다.

    * * *

    도빈이가 간식을 먹고 방으로 들어 가서 얼마 뒤.

    항상 클래식 음악만 들렸는데, 무 슨 일인지 동요가 들렸다.

    몇 번 반복해서 치는 걸 보니 채은 이가 아는 곡을 들려주는 것 같다.

    ‘놀아주고 있구나.’

    무뚝뚝하긴 해도 이럴 때 보면 자 기 아빠를 닮아 다정한 면도 있는 것 같네.

    흐뭇한 마음에 슬쩍 방 안을 엿봤는데 신기하게도 도빈이가 아니라 채은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어머.’

    쉬운 곡이라고 해도 도빈이가 연주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저 어린아이가 정확한 연주를 하는 게 너무 신 기했다.

    ‘귀여워라.’

    도빈이도 마음에 들었는지 그 옆에 서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도빈이와 채은이가 나왔다.

    채은이가 고개를 숙인 뒤 수줍게 입을 열었다.

    “안녕히 계세요.”

    “재밌게 놀았니?”

    정말 재밌었는지 채은이가 처음으로 조금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 놀자, 오빠.”

    “어머.”

    그리고 도빈이에게 오빠라고 말한 뒤 나가려고 하기에 문을 열어, 옆집에 들어갈 때까지 복도에서 지켜 보았다.

    채은이가 잘 돌아간 걸 확인하고 집에 들어서 도빈이에게 물었다.

    “도빈아, 채은이가 오빠래. 동생 생겼네?”

    “네.”

    “채은이 귀엽지?”

    “……조금요.”

    귀여운 건 알아가지고.

    쑥스러워하며 긍정하는 도빈이의 볼을 살짝 당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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