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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66화 (6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66화

    16. 7살, 선생님이 되다(2)

    배영준으로부터 배도빈에 대한 이 야기를 전해 들은 히무라는 크게 걱정이 되었다.

    번 아웃 증후군(Burn out syndrome).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한 사람이 극 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일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히무라는 곧장 관련한 정보를 찾았고 대충의 상황을 짐작해 보았다.

    주로 열정적이고 전력을 다하는 사람이 목표를 끝마치고 겪는 일로 기력이 없고 무기력해진다고 한다.

    감정적이게 되거나 두통 등의 신체 적 문제도 생긴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전문 상담사를 찾아보는 것도 생각 해 봤지만 한국에서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었기에.

    일단 해결법을 찾아보는데 대화를 통한 해결과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고 그 외에는 충분한 휴식(취미 활 동)을 가지는 게 좋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배도빈을 옆에서 몇 년 봐온 사카모토 료이치도 충분히 쉬라고 말한 기억이 떠오른 히무라는 고개를 끄 덕였다.

    그는 배도빈이 이런 증상을 겪을 수 있다고 예상했던 모양.

    히무라가 전화기를 들었다.

    -바쁜 모양이야. 오랜만이네.

    “하하. 미안. 미안. 확실히 좀 바빴지. 잘 지내나?”

    -재활 때문에 영 죽겠어. 료코가 옆에 있어줘서 다행이지. 자네는 좀 어때?

    “정신없어. 도빈이 작업 때문에 미 국에 있었는데 꿈에 도모에와 아들 녀석이 나오더라고. 왜 안 오냐고 말이야.”

    “늦게 가서 싹싹 빌었지. 하하.”

    -……도모에도, 히데오도 이해할 걸세. 따뜻한 아이 아닌가.

    나카무라의 어설픈 위로에.

    히무라는 목이 메었다.

    1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아내와 아들을 잃은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

    오직 배도빈의 음악을 들을 때만 그 아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아빠, 정말 이걸 저랑 같은 나이 인 애가 만들었어요?’

    ‘저도 보고 싶어요. 친구할래요.’

    ‘바이올린 배울래요. 같이 연주할 수 있을까요?’

    문득 배도빈의 음악을 유독 좋아했던 아들 히데오가 떠올랐다.

    아들이 좋아했던 음악.

    재앙을 겪은 일본에 희망을 가져다 준 음악을 더욱 빛나게 하리라 다짐 했던 히무라는 현재.

    어쩌면 배도빈을 망가뜨렸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더욱 사로잡혔다.

    -히무라?

    히무라가 간신히 입을 뗐다.

    “아, 다름이 아니라 뭐 좀 물어볼 일이 있어서. 자네 혹시 담당하던 사람 중에 번 아웃 증후군을 겪은 사람이 있었나?”

    -흐음. 있었지. 혹시 도빈 군이?

    “그런 것 같아. 귀국 후에 음악에 관한 일은 잘 안 하던 것 같더라고. 자꾸 잠만 자고. 왜, 정신적으로 스 트레스를 받으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로 잠을 많이 잔다고 하지 않던가.”

    -들어본 적 있네. 자네가 그리 말 할 정도면 중증인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

    “그게……

    베를린에서 돌아온 뒤의 일정을 설 명한 히무라에게.

    나카무라가 호통을 쳤다.

    -자네 제정신인가? 도빈이 아직 여섯 살이야! 어른인 자네조차 지칠 정도의 스케줄을 다섯 달씩이나 지 속하면 멀쩡한 게 이상하지!

    히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모두 나카무라의 말이 옳았기 때문 이었다.

    히무라가 배도빈을 특별히 생각하는 만큼이나 나카무라 역시 마찬가 지였다.

    특히 재앙을 겪기 전까지만 해도 배도빈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매니저 일을 했던 나카무 라로서는 히무라의 일 처리에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가장 믿었던 친구이자 동료였으니까.

    그런 히무라가 소중한 아이를 그렇게 다뤘다는 데에서 분노한 것이다.

    -그딴 식으로 할 거면 도빈이 다른 사람에게 보내! 정말 믿을 수가 없군. 내가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 봤어. 끊겠네!

    뚝 _

    뚜뚜뚜뚜-

    이어지는 통화 종료음이 이어졌다.

    핸드폰을 들고 있던 히무라의 팔이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

    봄이 되서 그런지 자꾸만 졸립다.

    나긋한 햇볕을 쬐고 있다 보면 나 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오는데 벌써 며칠째 병든 병아리마냥 지냈다.

    입맛도 떨어졌는데.

    오렌지 주스 말고는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았다. 가끔 어머니께서 해주 시는 매운 음식은 조금 손을 댔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그냥 걸렀다.

    ‘몸이 안 좋나?’

    2012년에 들어서만 여덟 번의 연주회를 가졌고 여섯 곡을 만들었으며 TV나 라디오 같은 곳에는 일주 일에 두세 번씩 나갔었다.

    그뿐만 아니라 장거리 이동도 많았던 탓에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친 모양.

    무엇인가를 할 의지가 조금도 없었다.

    그저 TV를 틀어놓고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무가 당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걸 계속하 고 싶을 뿐이다.

    아니, 더더욱 격렬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도빈아.”

    “네.”

    거실에서 어머니께서 부르셔서 나갔는데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가 종 이를 하나 보여주셨다.

    어떤 축제의 팜플렛인 모양.

    “여수에서 엑스포를 한대. 엄청 예쁘다고 하던데, 구경하러 갈래?”

    귀찮아서 안 간다고 하려는데,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이 너무도 초롱 초롱 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봐봐. 여기 정원 보면 기분 전환도 되고 좋을 거야.”

    확실히 팜플렛에 소개된 사진으로 보면 구경할 거리가 많아 보이긴 한 데, 그리 끌리지 않았다.

    “엄마랑 아빠는 여기 너무 가보고 싶은데.”

    그러나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면서 내 기분을 풀어주시려는 모습을 보 니 거절할 수 없었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그간 내가 무기 력해 있는 것을 걱정하시는 듯한 모 습을 봤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요.”

    두 분이 웃으시니 그걸로 괜찮다만.

    적당히 다녀올 생각이다.

    이틀 뒤.

    우리 가족만 가는 줄 알았는데, 웬 여자아이와 그 부모로 보이는 사람 이 함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 네가 도빈이니? 너무 잘생겼다.”

    “도빈아, 옆집 아주머니랑 아저씨야. 인사 드려.”

    “안녕하세요.”

    새로 집을 마련하고 이웃은 한 번 도 보지 못했는데, 내가 바쁘기도 했고 또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던 탓이다.

    눈치를 보니 아버지도 약간 어색한 듯한데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친한 걸 보니 베를린에서 온 뒤에 어머니 끼리 친분을 나눈 듯했다.

    시선을 돌려 여자애를 보는데.

    네다섯 살 정도 되었을까.

    큰 눈과 흰 피부 그리고 땋은 머 리가 귀여운 아이였다.

    “ 안.”

    “으아아앙!”

    “……녕.”

    “어머. 채은아, 왜 울어?”

    “으아아앙.”

    인사를 하려고 손을 들었는데 갑자 기 울음을 터뜨린 것.

    이웃 아주머니에게 안겨 서글프게 우는 꼬마를 보며 당황하고 말았다.

    ** *

    엑스포는 이것저것 볼 것이 많았다.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지만 다시 태 어난 뒤에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오디오부터 시작해 컴퓨터 그리고 개량된 악기까지.

    하루하루가 신선하고 신비로웠는데 최근에는 그 감각이 조금 더뎌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방문한 이곳에서 조금 은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얼음동굴이라든가(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몇몇 곳이 그러했는데.

    처음에는 이웃 아저씨에게 업혀 다 니던 꼬마 차채은도 아장아장 걸으며 주변을 신기한 듯 구경하기 시작 했다.

    그러다 혼자 다리가 꼬여 넘어지려 던 것을 붙잡아 주었는데 후다닥 다시 자기 아버지에게 가 숨는 것을 보고 친해지기는 글렀다고 생각.

    이후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나도 내 구경을 하며 적당히 시간을 보냈다.

    오기 전까지는 귀찮았는데, 막상 도착하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나들이였다.

    여수에 다녀오고 히무라가 집으로 방문했다.

    뭔가 새로운 일을 가져왔나 싶었는 데 정말 의외의 말을 꺼내서 어이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두 분. 그리고 도빈아.”

    ‘이 친구가 뭘 잘못 먹었나.’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매니저를 한다고 했으면서 가장 중요한 네 건강을 생각지 못했어. 그간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 하면 날 용서할 수 없구나. 미안하 다, 도빈아.”

    혹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히무라 에게 무슨 말을 하셨나 싶어 두 분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부모님은 고개를 슬쩍 저으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반응.

    확실히 나도 부모님도 히무라에 대 해서는 전적으로 믿고 있다.

    어머니가 미국으로 오지 않으신 것 도 히무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히무라에게 물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히무라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돌아오고 네가 음악을 듣는 것조차 안 한다고 들었어. 그 만큼 지쳤던 탓이겠지. 모두 네 리 듬을 망친 내 잘못이다.”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스스로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 위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게 왜 히무라 잘못인데요?”

    “네가 항상 제 컨디션으로 있을 수 있게 스케줄을 조절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어. 그런데 그걸 잘 못했지.”

    “알고 있는데 왜 그렇게 했어요?”

    “그건.”

    대답을 기다리자 히무라가 탄식하 듯 내뱉었다.

    “내 욕심 때문이야.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리고 싶었어. 한국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너에 대해 알 고 싶다는 요청이 많았으니까.”

    “그 일정 전부 제가 한다고 했잖아요. 엄마도 아빠도 들으셨죠?”

    어머니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 시는 걸 확인하고 히무라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전 제 음악을 사람들에게 더 많이 들려주고 싶어요. 아마 히무라가 절 알리고 싶은 마음보다 더 클 거예요. 그러기 위해 사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일로 사과할 필요 없어요. 사과는 일을 못 잡았을 때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지치긴 했어요. 확실히 이런 적이 처음이라 일단 쉬고 있는데 걱정 마 세요. 몸은 이미 다 괜찮아졌으니까.”

    그리고.

    “제가 음악을 안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 외에는 생각 해 본 적도, 그럴 마음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하나의 곡을 짓는 데 3〜4년이 걸 리자 어느 못 배워먹은 놈이 이젠 베트호펜도 끝이라며 떠벌리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완성한 내 곡은 유 럽 전역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매번 내 연주회를 찾으러 수많은 귀족이 몰려들었다.

    천재.

    그 이름은 존경받기도 하지만 때때 로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하는 법.

    또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 때문인지 조금만 더 큰 성 과를 보이지 못해도.

    ‘이젠 끝이야.’

    ‘내리막길이군.’

    ‘안타까워.’

    부정적인 인식, 말들이 따라붙게 된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히무라에게 분명히 말했다.

    히무라에게 하는 말이지만 이 자리 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께도 함께 드리는 말이다.

    “지친 절 걱정하는 건 고맙지만 히무라가 걱정한다고 나아지지 않아요. 저도 평범한 사람처럼 단지 지 쳤을 뿐이고 충분히 쉬고 나면 다시 움직일 수 있어요. 그뿐이에요.”

    ‘인크리즈’라는.

    내가 생각해도 에로이카에 버금갈 명곡을 만들었기에 생긴 만족감과 탈력감에 지금은 잠시 쉬어갈 뿐.

    히무라에게 분명히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그래.”

    굳게 다짐한 히무라를 보며 웃은 뒤 돌아섰다.

    “그런 전 좀 잘게요.”

    자꾸 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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