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65화 (6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65화

    16. 7살, 선생님이 되다(1)

    ‘인크리즈’.

    내가 감수를 하고 토마스 필스가 지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 연주한 녹음본은 12분 3초 정도로 완 성되었다.

    도단조의 이 곡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역시나 긴박감과 비장함이다.

    묵중한 소리를 내기 위해 멜로디부 터 악기까지 정말 공을 많이 들였는 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곡 전반 에 통주저음을 넣었다.

    더불어 주 멜로디 역시 최대한 단 순하게.

    그러나 웅장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 했다.

    듣기 쉽고 이해하기 쉬워야 내 의 도가 듣는 사람에게 잘 전달되는 법.

    기교를 부려 사람의 머리를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가슴을 움직일 순 없는 법이다.

    ‘간단한 재료로 최고로 효과적이게.’

    가장 나다운 곡 중 하나라 자평할 수 있었다.

    그러나 C단조처럼 테마에만 집중, 집착하지만은 않았는데 하나의 이야 기를 생각하면서 쓰다 보니 자연스 럽게 그런 느낌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결론은.

    만족스럽다.

    이러한 곡을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며 2〜3달 뒤 세계에 선보여 질 ‘블랙 나이트 인크리즈’를 생각 하니.

    지난 고생도 분명 보람찬 일이라 생각했다.

    4월 12일.

    모든 작업을 마친 나는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기 에 며칠 남아서 관광이라도 하라는 노먼과 사카모토 그리고 필스의 제 안을 거절하였다.

    어차피 내가 남아 있어도 이들은 여전히 바쁠 테니 떠나주는 게 내게 도, 이들에게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크리스틴 노먼과 사카모토 료이치는 녹음된 내 곡을 잘라 영화에 삽 입하고 편집하는 일을 반복해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은 토마스 필스와 LA 필하모닉이 다시금 연주를 해줘야 할 테니까.

    그래서 아쉬움을 떨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또 보자.”

    바쁜 와중에도 배웅을 나온 크리스 틴 노먼이 악수를 청했다.

    “또 봐요, 노먼.”

    그녀의 얇은 손이 내 손을 꼭 쥐었는데 나를 향한 노먼의 신뢰가 전 해지는 듯해 기뻤다.

    히무라는 벌써부터 다음 작품도 함께할 수 있을 거라며 기대하고 있지 만, 나는 알 수 있다.

    아직 ‘블랙 나이트 인크리즈’의 작 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다음 작품’은 없다는 것을.

    일할 때 그녀가 보여준 놀라운 집 중력과 천재성을 보면 분명 그러할 거라 생각했다.

    “다음 작품도 함께해 줄 거지?”

    아닌가 보다.

    “그럼요. 물론이죠.”

    그렇게 크리스틴 노먼과 인사를 나누고 사카모토 료이치를 보았다.

    그가 언제나 그러하듯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조언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푹 쉬도록 하 게. 그간 너무 많은 것을 했어. 건 강과 영혼을 위해 잠시 휴식을 가져 야 할 걸세.”

    확실히 최근 몇 달간 무리를 했기 에 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할게요.”

    사카모토와도 악수를 나눈 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촤라라라락-

    게이트를 지나 공항 내부로 들어서 자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눈이 부셔 인상을 썼는데.

    동시에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악!”

    “귀여워!”

    다수의 여성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이 소란스러운 장소를 황급히 벗어 나려 했지만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번 작업에 대해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업이 끝난 건가요?”

    “이번 곡에 대해 설명 좀 부탁드립 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히무라를 봤는데, 내게 달려드는 기자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바빠 보였다.

    마찬가지로 애써 기자들을 상대하는 박선영이 외쳤다.

    “진정하세요. 진정! 이렇게 달려 드시면 도빈이가 다칠 수 있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저쪽에서 여성들이 동조했기에 기자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곤 한발 뒤로 물러섰다.

    히무라가 박선영에게 칭찬의 눈길을 주었고, 이내 기자들을 향해 물었다.

    “20분간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뒤이어 나오시는 분들께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자리를 조금 옮겼으면 합니다.”

    질문을 받겠다는 말에 기자와 팬들 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이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뒤 한 사람씩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크리스틴 노먼 감독과 어떤 작업을 했는지, 어떻게 접촉하셨는지 알 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떻게 알았지?’

    히무라를 보자 그가 대신 답했다.

    “블랙 나이트 인크리즈의 오리지널 스코어, OST 작업을 하였습니다.”

    영화 제목이 나오자 장내가 한차례 술렁였다.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확실히 인기 가 많은 영화라 다들 놀란 것 같다.

    “도빈아, 여기.”

    히무라가 대답을 하는 사이 박선영 이 내게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는데, 파란 바탕의 그곳에는 노먼의 사진 과 영어가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의 마에스트로와 작업하 여 영광이었다. 그의 음악 덕분에 마지막 시리즈는 완벽해질 수 있었다. 라고 적혀 있네.”

    “아.”

    이런 말은 직접 해도 괜찮을 텐데.

    굳이 이런 곳에 올릴 필요가 있나?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인사에 고 개를 끄덕였다.

    “블랙 나이트 인크리즈의 제작진

    측에서 먼저 연락을 주었습니다. 그 에 대해 수락을 하였고 두 달간 미 국에서 작업을 마쳤습니다.”

    “죽음의 유물과 더불어 블랙맨 시 리즈까지 맡아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향후 영화 음악 작품 활동에 대한 계 획이 있습니까?”

    “아직 정해진 일은 없습니다. 이번 일정이 촉박해 도빈 군도 무리를 한 만큼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2주 뒤에 맥스 스튜디오의 세이머 스가 개봉합니다. 2012년 최고의 기 대작이 먼저 개봉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긴 뭘 어떻게 생각해.

    한 기자의 말에 불만이 있었는데, 히무라가 현명하게 대답했다.

    “세이머스가 2주 뒤에 개봉한다고요? 그거 참 기대됩니다. 휴식을 취 하는 동안에 도빈 군과 함께 보러 가야겠군요.”

    이런 쓸데없는 짓은 그만하고 조금 이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다녀왔습니다.”

    “도빈아!”

    기특한 우리 아들이 돌아왔다.

    입원을 했다고 하기에 어찌나 걱정 이 되던지, 그래도 어디 크게 아프 거나 하지 않았다고 하기에 다행이 라 여기며.

    돌아온 도빈이와 함께 유원지라도 갈까 했는데.

    “잘래요.”

    단 3초간 반갑게 인사를 나눈 도빈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곧장 잠에 들고 말았다.

    “자게 둬야 할 것 같아요. 시차 적 응도 해야 하고, 많이 힘들었다고 하니까요.”

    진희의 말대로 우선은 쉴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그대로 저 녁까지 있으니.

    “밥은 먹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게요. 배고플 텐데.”

    밥도 먹지 않고 벌써 10시간 가까이 자기에 깨우고 말았다.

    “도빈아, 밥 먹고 자자.”

    “으으으응 ”

    “옳지, 우리 아들. 자자. 엄마가 맛 있는 카레 해주셨다.”

    아직 눈도 뜨지 않은 녀석이 코를 벌름벌름 대더니 이윽고 일어났다.

    눈을 부비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꽉 안으니, 평소라면 질색을 할 녀석이 ‘으아아’라고 소리를 낼 뿐, 가만있었다.

    확실히 피곤하긴 한 모양.

    꾸벅꾸벅.

    “쿡쿡쿡.”

    도빈이가 식탁에 앉아서도 고개를 꾸벅이며 조는데 숟가락은 입으로 가져가는 게 신기해서 진희와 웃고 말았다.

    동영상을 찍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하하하하. 도빈아, 도빈아?”

    “••••••네?”

    숟가락을 물고 졸던 도빈이가 깨면 서 주변을 살피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내 아들이지만 세계 최강의 귀여움 이다.

    정신을 차린 도빈이가 다시 카레라 이스를 떠 입으로 가져갔고, 단 한 번 그렇게 했을 뿐인데 또다시 졸기 시작.

    진희와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저은 뒤 도빈이를 안았다.

    “어?”

    “자러 가자 도빈아. 밤에 깨면 아 빠 불러?”

    끄덕이는 건지 마는 건지도 모를 만큼 작게 움직이는 녀석을 침대에 눕힌 뒤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기특한 녀석.

    이렇게 잠을 잘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바빴던 걸까.

    안쓰럽다.

    독일로 가기 전부터 이미 자랑스러운 아들이라,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라 생각하며 믿었는데.

    조금은.

    조금은 어리광을 부리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영화 내용 좀 조금 알려주 면 좋겠고. 궁금해 죽겠단 말이지.’

    실없는 생각을 하며 곤히 자는 녀 석을 보다 방에서 나왔다.

    * * *

    미국에서 돌아온 도빈이는 며칠 지나자 다시 건강해졌다.

    잠도 푹 자고 식욕이 좋아져 이것 저것 많이 먹는데 뭔가 석연치 않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도빈아, 아빠랑 영화 보러 갈까?”

    주말을 맞이해 시간도 있겠다 TV를 보고 있는 도빈이에게 나들이를 제안했는데.

    나를 보더니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사과 먹자.”

    진희가 사과를 깎아 와 접시를 내 려놓으니 도빈이가 그걸 집어 먹으며 또다시 TV를 볼 뿐이었다.

    그러더니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 작.

    슬쩍 진희와 시선을 교환하니 무엇 인가 할 말이 있어 보여 안방으로 들어오니.

    “도빈이 요즘 좀 이상하지 않아요?”

    “역시 그렇지?”

    “네. 요즘엔 그냥 TV만 보고 있고……. 부쩍 잠도 많이 자고요.”

    “그러고 보니.”

    뭔가 일반적인 아이와 다를 바 없는데, 문뜩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빈이 요즘 밥도 잘 안 먹던 거 같던데. 간식만 먹고.”

    “그러게요. 걱정이에요. 어디 아프 기라도 한 걸까요?”

    “으음.”

    “요즘은 피아노도 잘 안 쳤던 것 같아요. 그렇게 좋아했는데.”

    확실히 항상 집을 채우고 있던 배도빈의 피아노 연주 소리가 며칠째 들리지 않았다.

    도빈이가 있을 때면 항상 어떤 곡 이든 들리곤 했는데 돌아온 뒤로는 그런 일이 부쩍 줄어들었다.

    “왜 그럴까요?”

    “글쎄. 지친 걸까?”

    “요즘 좀 넋을 놓고 있는 것 같긴 해요. 힘도 없어 보이고.”

    “잠은 어때? 잘 자고 있어?”

    “너무 자서 문제죠.”

    미국에서의 바쁜 일정, 아니, 생각 해 보면 그 전부터 도빈이는 무척이 나 바빴다.

    베를린에서 돌아온 뒤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연주회, 방송 출연, 곡 작업을 반복했으니까.

    지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생각이 들지만, 혹시나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은 건 아닌지.

    그것이 가장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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