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62화 (6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62화

    15. 7살, 세계와 함께하다(2)

    듣기로 ‘인크리즈’는 트릴로지의 삼부작.

    즉 세 번째 영화였기에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1편과 2편을 보려 했는데.

    히무라에게 부탁할 필요도 없이 아 버지께서 DVD를 소장하고 계셨다.

    “도빈아,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왜요?”

    “……엄마 몰래 샀거든.”

    아버지에게도 취미가 필요했을 터.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매일 육체노동으로 지쳤을 아버지 에게도 즐길 수 있는, 휴식을 취할 무엇인가가 필요했을 테고.

    무엇보다 나와 어머니가 베를린에 있는 동안에도 외로우셨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가 안심을 하곤 영화를 틀어주셨다.

    “지금. 지금부터 집중해서 봐야 한단다.”

    “이해할 수 있니? 이 장면은 주인 공이 복수를 다짐하는 걸 넘어서서 스스로 범죄를 억제하기 위한 상징 이 되기로 마음먹는 장면이란다.”

    “여기. 여기 이 액션이 대단하지 않니?”

    "..."

    과연.

    아버지께서 블랙 나이트 OST 제 작 이야기를 듣고 흥분하신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DVD를 소장하고, 이걸 보기 위한 기계도 사신 걸 보면 분명 이 영화의 팬이신 거다.

    그러고 보니 이사 온 집에 안 쓰는 방이 있었는데 지금 영화에 나오는 인물의 인형이 몇몇 개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크으. 저거 봐라. 정말.”

    “ 아빠.”

    “응?”

    “방해돼요.”

    “……그, 그렇지. 재밌게 보렴.”

    아버지가 슬픈 표정을 지으셨지만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얼마 없는 만큼 집중해서

    영화를 이해하고 미국으로 가 작업 에 곧장 돌입해야 한다.

    히무라가 말한 바로는 작곡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요구사항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걸 감안하면 일정은 더욱 촉박해 진다.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돌려 보기 위해 리모컨을 들었다.

    “……아빠. 이거 처음부터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이틀간 영화를 반복해서 네 번쯤 보고 생각했다.

    확실히 아버지와 많은 사람이 이 영 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단히 철학적이면서도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너무도 훌륭히 재단되었다.

    인물도 이야기도 영상도 음악도 모 두 매력적이라서 내가 OST 앨범을 만들어야 할 3편에 대한 기대가 가 득 차올랐다.

    블랙 나이트 OST 앨범을 만들기 로 결정하고 일주일 뒤.

    ‘이런 느낌이구나.’

    정식으로 계약서가 오간 뒤에 곧장 영화 대본을 받아볼 수 있었다.

    동시에 할리우드 레코드와 전임자 한스 짐이 작업에 대해 요구하는 바 가 문서로 정리되어 도착했다.

    영어는 거의 못 하기에 박선영 매 니저가 번역을 해 내게 보여주었다.

    할리우드 레코드는 작곡에 관련해 서는 코멘트를 하지 않았지만 일 진 행 방식과 같은 양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용감한 영혼’을 작곡했을 때처럼 악보만 만들어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맡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한스 짐은 괴롭고 어려운 작업이 되겠지만 ‘가장 큰 희망’과 ‘용감한 영혼’을 쓴 나라면 가능할 거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본인이 작업했을 때 참고했던, 그 리고 이번 ‘인크리즈’에 사용하려 했던 몇 가지 자료를 첨부해 주었다.

    이를 이어서 작업할 생각은 없지만 참고 정도는 해야겠다고 판단하여 그것부터 살피기 시작했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영화 음악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놀랍도록 많은 시도를 했었는 데, 과연 소리를 탐구하는 남자였다.

    그가 내게 보여준 자료에는 나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방법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2편, ‘블랙 나이트’ 에 사용된 테마곡을 만든 방식이 홍 이로웠다.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저건 어떤 악기일까, 생각했는데.

    다름 아닌 바이올린을 보우가 아닌 날카로운 것(칼)으로 긁어내는 실험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소름 끼치면서도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던 것.

    결과적으로 그 캐릭터에 대한 이미 지와 적절히 어울리면서 영화에 몰 입할 수 있는 좋은 음악을 만들었던 것이었다.

    정말로.

    재밌는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베를린 필에 있으면서 내가 그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현대 음악에 대 해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턱없는 소리.

    배우고 해볼 게 이렇게나 많이 남 아 있음에 기뻐하며 집중하기 시작 했다.

    나흘이 지나고 로스앤젤레스로 향 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 국제 공항으로 향했다.

    “제가 옆에 계속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전화할게요.”

    걱정하시는 어머니께 핸드폰을 보 이며 일이 생기면 전화 드리겠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셨다.

    “도빈아, 그거 설마 할아버지가 준 거니?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아.”

    외할아버지와의 일이 꽤 예전이라 깜빡하고 말았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당장 핸드폰을 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미국에 가 있는 동안에는 쓰 고 한국 돌아오면 할아버지한테 돌 려주는 거야?”

    돌려드릴 생각은 없지만 그러지 않으면 어머니께서 불편하실 듯하여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요.”

    나를 꼭 안아주신 어머니께 손을 흔들고.

    히무라, 박선영과 함께 2년 만에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 * *

    “끄윽.”

    “속이 안 좋아?”

    “괜찮아요.”

    예전처럼 구토를 하지는 않지만 밀 폐된 공간에 반나절씩이나 있다 보 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LA 국제공항에 내리자 갈색 머리 의 남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배도빈 작곡가 일행이시죠?”

    “그렇습니다. 라이징 스타(샛별)의 히무라 쇼우입니다. 같은 소속 대리 박선영 씨고요. 그리고 이분이 작곡 가 배도빈이십니다.”

    “디자인 뮤직 그룹의 로버트 루츠 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배도빈.”

    히무라와 악수를 나눈 로버트 루츠 가 내게도 손을 내밀어 인사를 청했다.

    그의 큰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미국에 계실 때 여러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마워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대충 ‘땡큐’라고 말했다.

    “스튜디오로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로버트 루츠를 따라 걷는데, 박선 영이 내게 물었다.

    “도빈아, 방금 말 알아 들은 거야? 영어는 언제 공부했어?”

    “그냥 대충 대답한 거예요.”

    “하하하하!”

    그 대화를 엿들은 히무라가 웃은 뒤에 ‘도빈이가 말하는 건 정말 중 요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다음엔 꼭 누나가 통역을 해주면 대답해야 해’라고 당부하였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공항에서 나오 니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요즘 좋은 차를 참 많이 타고 다니 는데, 언젠가 아버지께도 한 대 좋은 것을 선물해 드려야 할 것 같다.

    얼마쯤 흘렀을까.

    “환영합니다. 월드 디자인 뮤직 스 튜디 오입니다.”

    태양빛을 은빛으로 반사하는 외벽 과 넓은 부지가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차에서 내려 로버트 루츠를 따라 건물 내부로 들어갔고 나와 박선영 은 어리둥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리니 덩치가 산만 한 사람이 나를 꽉 끌 어안았다.

    “뭐, 뭐야!”

    “드디어 만났구만! 어서 오게!”

    깜짝 놀라 발버둥을 치는데 얼마나 억센지 조금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숨이 막혀 발로 녀석을 몇 번 차 니 그제야 나를 풀어주며 자신을 소 개했다.

    “다비드 바론. 널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를 거다.”

    얼굴보다 목이 더 두꺼운, 이 육체 파 남자가 예전 ‘가장 큰 희망’을 작곡했을 때 내게 감사 메일을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딴판이잖아.’

    “자, 들어가지. 하하!”

    예의 바른 그 메일과 저 괴물 같은 남자가 동일인물이라는 데에서 조금 충격이었다.

    분명 영화 제작사 측 인물로 기억 한다.

    “월드 디자인 뮤직 스튜디오에 온 걸 환영하지.”

    미팅실로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뒤 다비드 바론이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인상대로, 직선적인 억양이고 큰 목소리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바론.”

    “그 말은 도리어 내가 배도빈에게 해야지.”

    다비드 바론이 내게 시선을 두고 입을 열었다.

    “한스 짐의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정말 최악이었지. 영화 개봉 예정일은 코앞인데 그만 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확실히 2편 ‘블랙 나이트’에 사용 된 음악을 떠올려 보면 훌륭한 작곡 가고 대체할 인물이 적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있어도, 그 정도 인물이라면 다른 일정이 없을 수 없으니까.

    “그러다 한스 짐과 생각을 함께하 게 되었지. 그가 어느 날 내게 전화를 해 묻더군. 배도빈이라는 작곡가에 대해 아냐고. ‘죽음의 유물’을 살 린 음악가라 답하자 그가 배도빈, 당신을 잡으라고 말했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지.”

    그가 씩 하고 웃었다.

    “정말 감사하네.”

    박선영이 옆에서 그의 말을 통역해 주는데, 그와 말이 바로 통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싶다.

    그는 당당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내 게 감사를 표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나를 신뢰하고 있는 저 눈빛이 함께 일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

    “일정이 급한 만큼 세팅을 해둔 게 있네. 사실 한스 짐이 애용하던 애  로드 스튜디오로 할까 싶다가, ‘가장 큰 희망’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했더군. 가깝기도 하고 어 찌될지 몰라 섭외를 보류해 뒀는데, 이것부터 체크해 주었으면 좋겠군.”

    “네. 로스앤젤레스 필이 좋아요.”

    로스앤젤리스 필하모닉과 토마스 필스라면 믿고 함께할 수 있다.

    예전 ‘가장 큰 희망’을 녹음할 때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었고, 베를린 필하모닉에 요청을 하기에는 위 치상으로 너무 떨어져 있으니까.

    “좋아. 바로 섭외하지. 아마 2주 뒤에는 바로 녹음을 할 수 있게 될 걸세.”

    “네.”

    “다음은 크리스토퍼 벨제뷰 감독과 의 미팅 일정을 잡아야 하네. 알겠지만 오리지널 스코어는 감독이 바 라는 방향을 잘 읽어야 하지. 그를 위한 미팅이야.”

    “문제없어요.”

    “좋아.”

    “고전적인 방식이 되겠군. 하지만 그래서 더 좋을 수도 있겠지.”

    “더 좋을 거예요.”

    “자신감이 있어서 좋구만. 하하! 그래! 그래야지! 기대하겠네. 부탁하지.”

    다비드 바론이 손을 내밀었고.

    그 우악스러운 손을 잡고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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