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60화 (60/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60화

14. 6살, 안녕(5)

12월의 첫 번째 월요일.

앞으로 당분간(어쩌면 몇 년간) 오지 못하기에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로 향했다.

저번 주 금요일에 오늘 귀국한다고 말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단 원 대부분이 나를 환영해 주었다.

이승희는 말할 것도 없으며.

어느새 친해진 니아 발그레이와 마 누엘 노이어 그리고 다른 단원들 모 두 밝은 모습으로 배웅해 주었다.

그들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고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게 향했다.

“건강해야 해요.”

“물론이지. 너야말로 음악을 그만두면 안 된다.”

저번 주에 사카모토와 투닥거린 장면 이 떠올라서 씩 하고 웃었다.

“놀러 와.”

“또 보자.”

푸르트벵글러와 인사를 마치자 사람 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단지 반년이 흘렀을 뿐인데.

이 누런 외벽의 콘서트홀이 벌써 그 리워질 것만 같았다.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자주 찾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이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 정식으로 입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현재 여기 있는 사람의 절반은 남아 있을까?

또 자리는 남아 있을까?

이미 정이 들어버린 사람과 이별하는 것은 나이를 먹어도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이다.

“가자, 도빈아.”

“네.”

어머니와 함께 홀을 나서는데, 뒤에서 푸르트벵글러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리마! 누가 뭐래도 이곳의 바이올린 부수석은 배도빈, 너라는 걸 잊지 마라!”

돌아보니 푸르트벵글러가 굳센 의지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바이올린 부수석 자리를 비워둔다는 것처럼 들렸기에, 니아 발그레이와 이승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간 함께해서, 그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알기에 나도 소리쳤다.

“다시 뽑으세요! 다음엔 지휘하러 올 거니까!”

“뭐, 뭐라고? 이놈! 내가 있는데 어딜 뭘 하러 온다는 거냐!”

발끈하는 푸르트벵글러.

그간 그도, 나도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잦아졌다.

좋은 변화라 생각하며 되받아쳐 주었다.

“어차피 투표로 뽑는 거잖아요? 열심히 하셔야 할 거예요.”

“뭐, 뭣 저, 저 고얀!”

“하하하하!”

나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도 그리고 결국엔 푸르트벵글러도 웃었다.

그렇게.

베를린 필하모닉과 인사를 나누었다.

-얼마 전 좋은 소식이 있었죠. 제5회 휴스턴 영화평론가 협회상을 대한민국 이 휩쓸었습니다. 오늘은 그 시상식이 있는 날인데요. 텍사스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 연결해 보겠습니다. 박준표 기자?

-……네. 저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뮤지엄 오브 파인 아츠에 나 와 있습니다.

-현재 시상식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네. 최고의 외국 영화로 선정된 김자운 감독의 천사를 보았다는 높은 평가를 받으며 수상하였습니다. 현지 언론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영화로 평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또 좋은 소식이 있었지요?

-……네. ‘부활’과 ‘가장 큰 희망’으로 유명한 작곡가 배도빈의 ‘용감한 영혼’ 이 최고의 오리지널 악보로 선정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휴스턴 영화평론가 협회로 부터 최고의 오리지널 악보상을 수상 한 작곡가 배도빈이 그래미 어워즈를 제패했다는 소식입니다. 박준표 기자, 배도빈 씨가 수상한 상이 무엇인가요?

-최고의 영화음악, 최고의 클래식 앨 범 그리고 최고의 신인상입니다. 특히

최고의 신인상은 그래미 어워즈의 제 너럴 필드 즉, 본상이라 불릴 정도로 가장 큰 이슈입니다.

-그런 큰 상을 받은 거로군요.

-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서는 최초로 그래미 어워즈 본상을 받았습니다. 잠시, 시상식 장면을 감상하 도록 하겠습니다.

-하이. ……나이스 투 미츄. 땡큐.

-하하하하. 독일어와 일본어 등 외국 어에 능통하다고 들었는데 영어는 익 숙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앞니가 빠진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 네요.

-이어서 대한민국 최초로 그래미 어 워즈 본상을 수상한 배도빈 군을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전문 평론가, 월간지 관중석의 이필호 평론가 나와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 * *

귀국 후두 달째.

7살이 된 배도빈은 TV 출연, CF 촬영, 인터뷰, 연주회 등으로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해, 배도빈을 위 해 움직이고 있던 히무라조차 진이 빠 질 정도의 스케줄이었으니.

어린 배도빈이 감당하기에는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다음은 토크쇼야. 30분 정도 뒤에 도착할 테니 조금이라도 눈 붙여도 돼. 아, 최지훈이라고 네 친구도 같이 출연 한다던데. ……도빈아?”

운전석에서 뒤를 돌아본 히무라는 앉자마자 곯아떨어진 배도빈을 보고 한 숨을 내쉬었다.

‘스케줄 조절을 좀 해야겠어.’

그래미상을 수상하면서 배도빈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심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 보일 정도로 치솟았다.

정말 많은 단체에서 배도빈을 찾았으며 팬카페까지 생겨, 배도빈 매니지먼 트사이자 히무라가 설립한 ‘샛별’로 공 식 카페 수락 요청이 들어왔다.

자체 관리를 하려고 했던 히무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페에 접속했Ä 가입자 수를 보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약 27만 명에 달하는 가입자 수를 보곤 히무라는 그 카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곧 카페 운영진과 미팅을 나눴다.

방송국을 포함한 언론사와 각 시립 오케스트라, 대학에 팬들까지 모두 배도빈을 만나고 싶어 하니, 몸이 열두 개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정이 빡빡했다.

배도빈 스스로가 팬이 부르면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지만, 저렇게 기절하듯 잠든 모습을 보 니 히무라도 책임감을 느꼈다.

언제부터 자고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히무라가 조심스레 날 깨웠다.

눈을 비비며 그를 따라 어디론가 향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도빈아!”

‘이 낭랑한 목소리는……

고개를 돌리자 최지훈이 달려오고 있었고, 피할 새도 없이 녀석이 날 끌어 안았다.

“축하해! 반가워! 잘 지냈어? 완전 대단하다, 너!”

너무 바쁜 나머지 귀국한 후에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 니 나도 반가웠다.

뭐부터 대답해야 할지 모르게 하고 싶은 말을 전부 꺼내 버렸지만 최지훈 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여긴 무슨 일이아흐”

“오늘 같이 출연하잖아. 몰랐어?”

뒤돌아 히무라를 보자 멋쩍게 웃었다.

저럴 때 히무라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데 참는 거니까 무슨 사연이 있는 모 양이다.

다시 최지훈을 봤는데.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 잘됐다.”

“응?”

“오늘 말 좀 많이 해.”

“ 왜?”

“그래야 내가 할 말이 적어지니까.”

“너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면 안 돼.”

“그래야 해.”

"...?"

나도 좀 살아야 하니까.

최지훈은 똘똘하고 말도 잘하니 혼자서도 토크쇼를 잘 이끌어 나갈 거라 생각했다.

이곳저곳 끌려 다니며 말을 했더니 턱이 다 아플 지경.

대기실에서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최지훈에게 ‘방송을 우습게 보지 마’라 든지 ‘자칫 잘못했다간 편집을 당한다 고’라고 세뇌시켰다.

“고마워. 그래, 나도 열심히 해야지. 근데 뭘 해야 하는데?”

“글쎄.”

나란히 앉아 고민을 하다가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너 천재인 척하잖아. 정말 음악가적인 말만 하는 거야.”

“척……

“쓸데없는 데 집중하지 말고. 정신 차려. 방송을 얕보면 안 된다니까?”

“으응. 근데 음악가적인 말이 뭐야?”

“너 피아노 치잖아. 피아노에 대해 이 것저것 설명해 준다든가 하면 되지 않을까?”

“아!”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 모양.

적어도 최지훈이 설명을 하는 동안에는 적당히 쉬어도 될 테니까 이번 일 은 좀 쉽게 넘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 했다.

잠시 뒤.

“목요일! 보이는 라디오! 오늘은 아주 귀여운 두 분을 모셨습니다. 대한민국 음악계의 미래! 배도빈, 최지훈 군이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하. 아니, 도빈 군.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요?”

‘저 인간이 왜 시작부터 시비를 걸고 난리야.’

시작부터 말을 걸기에, 최지훈에게 질 문을 넘기도록 대충 대답했다.

“죽겠어요.”

“아하하하! 사장님, 도빈 군 쉬게 좀 해주세요- 너무 피곤해하잖아요.”

ㄴ 우리 도빈이 죽는다아아아아!

ㄴ사스갘ㅋㅋㅋㅋ 일곱 살짜리가 힘들 어 죽겠댘ㅋㅋㅋ 거 불쌍하지도 않냨ㅋㅋ

ㄴ 진짜 저 어린 나이에 한 일 생각하 면 저런 말 하는 것도 이해가 됨

내 앞에 놓인 모니터에 사람들이 쓴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ㅋ’이 웃음을 표현한다는 건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

왜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지 모르겠다.

“그럼 다음. 피아니스트 최지훈 군. 최근 열린 ‘문 클래시컬 뮤직 컴페티 션’ 피아노 부문 초등부 최연소로 우승 했다죠?”

“네! 문 클래시컬엔 많은 선배 분들 이 참가했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

‘반응이 미적자근한데. 치읓차읓은 뭐지.’ 최지훈의 대답에 시큰둥하게 대답한 사회자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우리 보이는 라디오 시청자 분들께 간단히 자개소개 부탁드려요. 먼저 최지훈 군부터.”

“아, 안녕하세요! 8살 최지훈입니다. 피아노랑 작곡을 하고 있어요. 존경하는 음악가는 가우왕입니다.”

“그렇군요. 다음, 배도빈 군?”

“……배도빈입니다.”

“하하하하! 도빈 군 의욕이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어제 뭐 하셨어요? 바이올린 연습? 작곡?”

‘저게 약을 잘못 먹었나.’

왜 또박또박 잘만 대답하는 최지훈을 두고 나한테 말을 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CF 촬영이요.”

“이야! CF! 이런 질문하면 밖에 있는 사장님께 혼나겠지만 돈은 많이 벌고 있나요? 얼마쯤?”

어이가 없어 사회자를 노려보자 대본으로 얼굴을 가리며 겁먹은 척을 해서 내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유, 무서워라. 농담이에요, 농담.”

그렇게 말한 사회자가 모니터를 보더니 뭔가를 읽기 시작했다.

“핸드폰 뒷번호 XXXX님께서 말씀하셨네요. 화난 도빈이 너무 귀여워! XX XX님은 샛별 사장은 아동 학, 아, 이 건 아니고오〜”

ㄴ 아동학대라고 할 뻔했죠? 방송사고 날 뻔했죠?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진짜 배도빈 쿨한 거 개귀엽다

뭔가 내 생각과 달리 방송은 이상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잔뜩 의욕이 들어갔던 최지훈은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점점 더 위축되었고 그 반동으로 자꾸만 내 게 대화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데.

“피아노는 지훈이가 더 잘 쳐요.”

“아, 그래요?”

갑작스러운 언급에 최지훈이 놀라 나와 사회자를 번갈아 봤고 마지막 기회다 싶었는지 서둘러 입을 움직이기 시 작했다.

“피, 피아노의 정식 명칭은 피아노 포르테로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처음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다, 당시에는...

“바르톨••… 네?”

되는 일이 없다.

최지훈은 거의 울 듯했고 당황한 사 회자가 급히 연주를 부탁하며 겨우 상황이 수습되었다.

ㄴ 와 쟨 왜 앞니도 없는데 잘생겼냐?

ㄴ 말하는 거 봐 im 너무 귀여워

ㄴ 진짜 개웃기넼ㅋㅋ 일곱 살짜리가 피곤에 쩔어 있음ㅋㅋㅋㅋ

ㄴ 그게 웃기냐?

ㄴ 대본인 거 뻔히 알면서 진지한 척 오지죠?

모니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