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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58화 (5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58화

    14. 6살, 안녕(3)

    단원들을 마주한 순간.

    객석을 가득 채운 청중이, 그들이 내는 소리도, 이 무대를 기대했던 내 설렘마저 사라졌다.

    오직 나와 단원들만이 남은 듯했다.

    수석 연주자를 보며 왼손으로 주먹을 쥐자 금관악기가 호응하듯 1악장을 시작했다.

    아다지오(Adagio: 천천히)-알레그로 몰토(Allegro molto: 매우 빠르게).

    느린 비가풍으로 시작된 연주는.

    이내 격정적인 테마로 이어진다.

    두 팔을 굳게 쥐어 가슴 앞으로 뻗었다.

    두두두 둥둥-

    두둥 빠밤 두두두 둥둥 빠밤.

    싱코페이션으로 연주되는 이 진취 적 전개!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게 하는 멋 진 테마다.

    이어지는 알레그로 몰토.

    매우 빠르게 이어지는 음을 여리게 또 여리게(피아니시모).

    바순 수석 마누엘 노이어에게 눈길을 주자 그가 호응하듯 그 서정적 음색을 이끌기 시작했다.

    박자를 그리고 음색을.

    그리고 이 아름답고도 격렬한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 이스, 하프.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트럼본, 튜바.

    팀파니, 트라이앵글이 모두.

    나만을 바라본다.

    내 손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이 가슴 벅찬 소리를 내기 위해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

    오케스트라.

    오직 최선 최고의 연주를 위해 존재하는 음표들의 집합체다.

    이 순간을 위해 다시 태어난 것일까.

    하나의 교향곡이 내 손끝을 통해 완성되어 간다.

    짝짝짝짝짝_

    “브라보!”

    격정의 4악장을 마치고 마지막 음 마저 멀어져가자 우뢰와 같은 소리 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나는 본래의 현실로 돌아왔다.

    여러 명의 환호와 박수 소리를 듣고서야 다시금 주변을 인식하게 되었다.

    너무도 만족스러운 연주였다.

    정말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연주와 딱 들어맞았다.

    청중들이 보내는 저 열렬한 환호는 언제 들어도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이 모든 것이 베를린 필하모닉이 나와 함께해 준 덕분.

    콘서트마스터 니아 발그레이에게 손바닥을 위로 해 보여, 모두 일어 서 함께 이 영광을 누리자 권했다.

    그러나 니아 발그레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짝짝짝짝짝!

    “브라보! 브라보!”

    이 모든 영광을 나만이 받도록 하겠다는 뜻.

    천천히 악단들을 둘러보자 다들 입 가에 주름이 짙게 생길 정도로 미소 짓고 있었다.

    * * *

    샛별 배도빈의 지휘가 끝나고 각 언론은 분주해졌다.

    대체 그 충격적인 연주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 인데, 영국의 저명한 잡지, 그래머폰은 그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17년 만에 초청 지휘자를 들인 베를린 필하모닉]

    그의 음악은 마력을 지녔다. 그 격 렬함 속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지난 금요일,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폭발하였다.

    지난 여덟 차례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협연을 관람했던 나는 이번에 그가 지휘봉을 잡는다는 소 식을 듣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마에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베를린 필하모닉을 장악한 17년간, 그 외 다른 지휘자가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 선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문과 기대를 품고 들어선 나는 그리고 장담컨대 모든 청중은 그 압도적인 에너지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 작은 몸은 누구보다도 힘차게 지휘봉을 휘둘렀으며 그의 손짓부터 이뤄지는 하모니는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신세계로부터〉보다 격렬하고 장엄했다.

    그간 많은 사람이 배도빈을 샛별로 취급했으나 어제 이후 그들은 그를 수식하는 단어를 바꿔야 할 것이다.

    그는 아침을, 새로운 세계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전초가 아닌.

    아침이자 태양이다.

    -그래모폰 한스 레넌

    영국과 독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주요 언론사는 연일 배도빈에 관련 한 기사를 뽑아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연구가 된 적이 없었기에 클래식 음악 팬과 배도빈을 실제로 접한 전문가의 증언이 있을 뿐,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기에 그 작업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참고를 할 것이 필요한데, 배도빈 에 관련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처 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배도빈의 지휘를 직접 들은 권위 있는 거장들이 나서면서 그러 한 상황을 반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카라얀 이후 최고로 존경한다.

    -사카모토 료이치

    그의 음악은 거부할 수 없다. 듣는 순간 매료되어 함께할 뿐이다.

    -토마스 필스(로스앤젤레스 필)

    나는 그가 하루빨리 내 뒤를 이어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위한 일이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베를린 필) 충격적이다.

    -파보 예르비앙

    그리고 뒤늦게, 실황 촬영을 한 영 상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대한민국 에서도 멀리 이국 땅에서 활약하는

    어린 천재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TV에 몇 번 출연한 아이가 어찌된 영문인지 소 식이 조금도 들리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지 휘를 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ㄴ 오늘 시발. 실화냐. 쌌다.

    ㄴ 진짜 도랐다. 뭐 이런 애가 다 있냐. 얘 진짜 천재냐?

    ㄴ  시밬ㅋㅋㅋㅋ 베를린 필이랑 협연한다고 해서 천재 한 명 났구나 싶었는데 진짜 못 믿겠닼그거 거 얘 나중에 사이먼급 되는 거 아니냨ㅋㅋㅋ

    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런 거 전부 쇼야. 여섯 살짜리 애가 지휘는 개뿔. 책이나 읽을 수 있으면 용 하지.

    ㄴ [링크]

    ㄴ 유럽이랑 미국 일본에서만 기사 수백 개씩 쏟아지고 있음. 가서 니 눈으로 직접 봐라. 저게 쇼인지.

    ㄴ 아니, 근데 우리나라는 왤케 정 보가 없는데? 기사 안 냄?

    ㄴ 활동을 안 해서겠지.

    ㄴ NBC에시 짧게 소개하긴 함.

    ㄴ 극혐이네.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활동을 안 하고 밖에서만 하네. 돈 만 밝히기는.

    ㄴ 여섯 살짜리 애한테 못 하는 말 이 없네, 븅신이.

    ㄴ 관중석이라고 이필호 기자가 인 터넷에 기사 먼저 올림. 다음달에 잡지로도 나올 듯.

    ㄴ 우리나라 안에서 클래식 음악하 면 굶어죽기 십상이다. 저렇게 나가 서 나라 이름 드높이는데 응원은 못 할망정 욕이냐? 걍 넌 관심 끄는 게 답인 듯.

    ㄴ 나 이거 들어봤는데 개별로임. 120번 정도 반복했더니 질림.

    ㄴ ㅋㅋㅋㅋ 올라온 지 이제 일 주일짼데 120번? 연주 시간만 44 분짜린데?

    서울.

    재계의 중진이 모여 나누는 사교장 에 오랜만에 WH그룹의 유장혁 회 장이 참석했다.

    이런 일선에서 벗어나 있던 유장혁 회장이었기에 의외였으나 사람들은 곧 한국 최대의 정계 대부 주변에 모여들었다.

    “회장님은 여전하십니다. 하하!”

    ‘ 흐음.’

    모두가 그에게 아부를 떨고 있을 때 EI전자의 최우철 사장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EI그룹과 WH그룹.

    특히 EI전자와 WH전자는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사업부터 시작해 여러모로 경쟁하는 입장이었다.

    WH전자가 얼마 전에 선보인 신제 품은 단기간에 가장 많은 판매량을 올릴 정도로 최근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

    인사도 나눌 겸 한마디 나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 실장이 다가왔다.

    “사장님, 잠시.”

    “무슨 일이야?”

    김 실장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한 최우철이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NBC가 배도빈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뭐? 그 꼬맹이?”

    “예. NBC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도 기사를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다들 광고 받기 싫대? 갑자기 무 슨 일이야?”

    “그게 갑자기……

    “자네 내 밑에서 일한 시간이 얼만 데 그런 거 하나 제대로 처리를 못 해? 어?”

    “죄송합니다.”

    “됐고. 내일 한 사람씩 찾아오라 해.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게.”

    “뭐!”

    “진짜 안 된다고 합니다.”

    막대한 양의 광고비를 대주고 있는 EI전자의 요청을 거절할 정도라면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

    오랜 시간 함께했던 김 실장의 반 응을 보니 확실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라 생각한 최우철은 짜증을 내며 손을 저었다.

    “알겠으니 가 봐. 내가 직접 알아 볼 테니까.”

    ‘쓸모없는 놈.’

    아들 최지훈을 위해 아비 노릇 좀 하려던 계획이 망가지니 기분이 언 짢아졌다.

    큰일도 아니고 어린애 한 명 누르 라는 건데 그런 일 하나 제대로 처 리하지 못하는 김 실장이나.

    뭐가 그리 겁이 난다고 난리를 치는 언론사들이 한심할 지경이었다.

    우선은 오랜만에 유장혁 회장과 인 사를 나누어야 했기에 최우철은 담배 한 대를 태운 뒤 안으로 들어갔다.

    “회장님, 건강하셨습니까.”

    “아, 최우철이구만.”

    유장혁 회장이 최우철을 부하 직원을 대하듯 불렀다.

    ‘칫

    그러나 최우철 사장이 EI전자 사장 이기는 하나 EI그룹 장병철 회장의 일가를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기에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각 신문사 사장들을 막 부리는 것처럼.

    그 역시 유장혁과 같은 ‘진골’에게는 그런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간 격조했습니다. WH 전자가 새로 낸 제품이 반응을 타고 있던데요? 하하.”

    “뭐. 다들 잘 노력해 준 덕이지.”

    그렇게 잠깐의 담소를 마치고 돌아 가려는데, 유장혁 회장이 최우철을 불러 세웠다.

    “그러고 보니 자네 아들이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친다고 들었네.”

    “아, 하하. 그렇습니다.”

    “우리 손주 녀석과 잘 지내면 좋겠더군.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하던데, 자네 혹시 알고 있었나?”

    “예?”

    “저런. 몰랐던 모양이구만.”

    ‘이 늙은이가 뭐라는 거야.’

    “배도빈이라고 내 손주지. 어린 녀 석이 아주 똘똘해. 곧 한국으로 오니 자네 아들이랑 친구하면 참 좋겠다는 말이야.”

    ‘이게 무슨.’

    최우철이 잠시 당황하고 있을 때 유장혁 회장이 지나치며 그의 귓가 에 작은 목소리를 남겼다.

    “부디 모르고 한 행동이기를 바라 네.”

    그 섬뜩한 목소리에 최우철은 잠시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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