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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57화 (57/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57화

14. 6살, 안녕(2)

지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서트마스터 니아 발그레이의 우수함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실 니아 발그레이 말고도 3명의 콘서트마스터가 더 있지만, 유독 그 와 함께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럴 수 있어서 내심 만족스러웠다.

악장, 콘서트마스터는 지휘자와 단원을 잇는 가교이자 지휘자의 대리 이자 단원들의 선생이다.

그 맡은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나는 연습이 끝나면 니아 발그레이 와 몇 차례 따로 미팅을 가졌는데, 다행히 내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음색을 조금 달리 하고 싶다는 거지?”

“네. 활의 윗부분을 가볍게 눌러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바이올린으로 직접 연주를 하며 대조해 주니 니아 발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가 흐르고 나 서 오늘 연습을 정리할 수 있었다.

“데려다 줄까?”

“괜찮아요. 오늘은 카밀라가 데려 다주기로 했어요.”

“또 야근이신가. 다들 고생이네. 그 럼 내일 보자.”

“네.”

손을 흔들어 니아 발그레이를 배웅 하고 사무국으로 향했다.

11월 첫 번째 연주회를 준비하던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들이 펍에 모여 맥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는데 어느 새 단원들이 몇십 명이나 모이고 말 아 펍 안을 가득 채우고 말았다.

“크으. 빌어먹을 꼬맹이.”

“뭐야. 도빈이를 말하는 거야?”

“그래! 뭐, 꼽냐!”

그중 벌써부터 조금 취한 남자가 맥주를 들이켠 뒤 말했다.

“멋대로 왔다가 금방 가버리는 경 우가 어디 있냐고. 악장, 그 꼬맹이 정말 어떻게 안 되는 겁니까?”

남자의 말에 니아 발그레이가 고개를 돌렸다.

“네. 복잡한 것 같습니다. 시민권이 라도 얻으면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군대 등 여러 문제로 복잡하다고 하더군요. 도빈이 부모님도 국적을 바꾸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시고요.”

“쳇. 그 꼬맹이를 두고 군대 이야 기라니.”

답답한 마음에 대한민국에 대해 잘 모르는 남자는 다시금 맥주로 속을 달랠 뿐이었다.

“그나저나 도빈이 생각보다 깐깐하 던데요? 귀도 좋고. 바이올리니스트 로서가 아니라 지휘자가 더 어울리는 거 아니에요?”

“흐흐. 그 꼬맹이가 귀신같긴 하지. 나도 모르던 버릇 같은 게 있었는데 갑자기 알려주는 거야. 빠르게 연주 하게 되면 손가락에 무리가 갈 거라 고.”

“나도. 살짝 느리게 시작했는데 정 말 신기하게 찾더라니까.”

“그건 네가 전날 술 퍼마셔서 그런 거 아니야. 이 알코올 중독자야.”

“뭐야?”

“하하하!”

“어린 녀석이 말은 또 얼마나 잘하 는지.”

“하하하하. 그래. 옆에서 쫑알쫑알 떠드는데 아주 질릴 지경이지.”

“하지만 모두 맞는 말이지.”

“그래서 그 빌어먹을 꼬맹이가 짜 증난다는 거야. 악마 같은 놈.”

“하하하하하!”

오랜만에 함께하는 자리라 실없는 말과 농담으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모두 배도빈과 헤어지게 됨을 슬퍼 하기 때문이었다.

여름에 찾아온 어린 배도빈은 그간 베를린 필하모닉의 활력소였다.

실력이 정점에 이르고 다소 정적이었던 악단은 배도빈이 들어오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향곡에 독주 파트를 새로 작곡해 협연을 하는 기괴한 방식이라든가.

악기 배치를 바꾸는 일이라든가(이 일은 결국 홀 중심에 무대가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는 그 효과가 미미했지만) 하는 재밌는 일이 많아졌다.

또 기존 연주 레파토리 내에서도 조금씩 다른 시도가 있었는데, 기존 푸르트벵글러와 맞추었던 것과 다른 부분이 몇 있었다.

마치 푸르트벵글러가 배도빈에게 영향을 받는 듯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크고 작은 변화들이 모두 연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다는 것을 모를 사람들이 아니었다.

“천재 아닐까?”

“이제 와서 무슨 새삼스럽게.”

“아니, 너무 잘하잖아. 우리 중에 천재 소리 안 들어본 사람이 어딨 어. 하지만 난 단언하건대 도빈이 만큼은 뭔가 다르다 생각해. 분명 뭔가 달라.”

“그러고 보니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 악장?”

“여러 지휘자를 접하지는 못했습니 다만 도빈이는 조금 다릅니다.”

앞에 놓인 에일을 한 모금 마신 뒤 니아 발그레이가 말을 이어나갔다.

“보통은 부드럽게, 풍성하게처럼 조금 모호한 표현을 요청받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보잉을 제가 판단 해 바꾸었죠.”

"흠..."

“그러나 도빈이는 한 번도 그렇게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정확하 죠.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에는 1악장의 흐흐흐흠~ 이란 부분을 연주할 때 활의 윗부분을 조금만 더 눌러 달라고 하더군요.”

“디테일하구만.”

“그렇습니다. 도빈이는 곡을 해석 하는 능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정말 작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씁니다. 악장으로 있기 참 편한 지휘자 죠. 아니, 까다롭다고 해야 하나요. 하하.”

“하하하! 내가 뭐랬어. 그 녀석은 악마라니까. 악마. 조금만 실수가 나도 집어내서 꼭 말한다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악평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이었다.

“네. 정말 대단한, 악마가 내린 재 능이라 생각합니다.”

본래도 많은 사람이 찾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연이지만 오늘은 유독 인파가 몰려들었다.

두 곡의 교향곡으로 영화 음악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남긴 작곡가이 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실력을 입증한 천재 배도빈이 처음으로.

그것도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드보 르자크의 9번 교향곡〈신세계로부 터〉를 지휘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각 언론사와 잡지 기자들은 물론이 고 세계 각국에서 유명 인사들이 대 거 방문하면서 이 공연에 대한 기대 치는 날로 높아졌다.

그리고 공연 당일.

배도빈의 스승으로 알려진, 오랜 시간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카모토 료이치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지휘자) 토마스 필스 가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 등 장하자 기자들은 사진을 찍기에 바 빴다.

“마에스트로 사카모토! 제자 배도빈 군이 지휘자로서 처음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감상 한마디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도빈 군은 제자가 아닙니다. 함께 음악을 하는 친구이자 동료죠. 오늘 은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카모토 료이치의 대답에 기자들 이 술렁였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는 데 오는 충격이 아니라, 저 거장 사카모토 료이치가 고작 다섯 살 아이를 동료라 표현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수많은 관계자가 배도빈의 음악을 극찬한다는 거야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 기자들은 배도빈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잘 알지 못했다.

클래식 음악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기자들이야 인지하고 있지만, 아직 일반 기자들은 배도빈을 그저 주목을 받는 신동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미 전설적인 사카모토 료이치의 발언에 놀란 것이다.

어쩌면.

베를린 필하모닉이 단순히 홍보성 퍼포먼스로 이런 기획을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런 그들의 머리에 생겨났다.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이 빈자 리 없이 채워졌다.

곧 단원들이 나와 자리에 앉았으며 오늘 공연의 콘서트마스터 니아 발 그레이가 연주자 중 가장 늦게 무대에 발을 디뎠다.

니아 발그레이가 오보에 수석에게 시선을 주었고 곧 그가 A음을 냈다.

이내 단원들이 지시에 따라 그 음에 맞추어 악기를 마지막으로 점검 하기 시작했다.

이미 조율은 끝나 있었다.

굳이 오보에가 내는 A음으로 이러한 과정을 진행하지 않아도 음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그러나.

관악기가 먼저 튜닝을 하고, 오보에 수석이 다시 A음을 낸 뒤.

현악기가 그것을 맞추는 이 행위는.

마치 곧 위대한 음악가가 나오기 전의 의식과 같았다.

오래된 전통을 지키는 그 움직임은 관중석을 채운 사람들에게 곧 연주 가 시작된다고, 새로운 위대한 음악 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내.

한 아이가 무대 위에 발을 내디뎠다.

배도빈이 나서자, 니아 발그레이가 단원들에게 눈짓을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단원이 그를 따라 일어서 지 휘자 배도빈을 맞이했다.

“허허. 저 도도한 사람들이 도빈 군을 인정한 모양일세.”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토마스 필스의 말에 사카모토 료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빈는 악장 니아 발그레이가 악 수를 나누었고 곧장 지휘대로 올라 섰다.

체구가 작았기에 지휘대 위에는 그 보다 조금 작은 상자가 놓여 있어, 계단처럼 한 번 더 올라설 수 있었다.

그곳에 올라선 배도빈은 악단의 연주자들과 눈으로 인사를 나눈 뒤 돌 아서 관중석을 정면에 두었다.

이 상황을 마치 즐기는 듯.

잠시 관중석을 살핀 배도빈이 이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박수 소리는 더욱 커졌고 충분히 인사를 한 배도빈이 다시 관중석을 등지자, 단원들이 자리에 앉았다.

동시에 박수 소리는커녕 조금의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장내.

‘드보르자크라. 좋은 곡이지. 이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리라 말하는 게냐.’

무대 뒤에서 푸르트벵글러 상임 지 휘자가 배도빈을 보며 생각했다.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름의 배도빈과 지금의 배도빈은 너무나 달랐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미 한 사람을 훌륭한, 아니, 그가 상대한 어 떤 음악가보다 개성이 뚜렷했는데.

묘하게도 빈 고전파의 향수를 냈다.

정말 많은 영향을 끼친 빈 고전파 의 향수를 풍기며 뚜렷한 개성을 가 지고 있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아이덴티티.

그것이 오리지널이기에 생기는 느 낌이라는 것을 푸르트벵글러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가을의 배도빈은 여름과 또 달라졌다. 보다 현대적이게 되면서 마치 스펀지처럼 베를린 필하모닉을 흡수 하고 있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음악은 물론, 여러 거장들을 말이다.

‘그래. 곧 네 세상이 올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본 푸르트벵글러는 확신했다.

이 아이가 정말로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문을 열어줄 거라고.

언론에서 붙여준 별명처럼 말이다.

배도빈이 눈높이로 팔을 들어 올렸고, 이내.

아름다운 선율이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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