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6화 (5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56화

    14. 6살, 안녕(1)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이제 사람들은 위인을 인식 하기 시작했다.

    이 곡은 숲속의 전나무처럼 강인한 힘을 전달한다.

    그의 이름이 홀에 울려 퍼졌다.

    드보르자크! 드보르자크!1)

    1) 뉴욕 헤럴드 기사 발췌

    단풍이 떨어질 무렵.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8차례의 협연을 한 나는 독주 파트 연주를 줄여 나가기로 했다.

    시간 문제였는데.

    제2바이올린 역할을 함께하기에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일을 더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일 정을 소화할 수 없었고.

    푸르트벵글러와 상의 끝에 독주 연주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공부 중이에요.”

    내가 죽고 난 뒤에 활동한 음악가 들의 교향곡 악보를 살피고 있는데, 이승희가 들어왔다.

    “이거 네가 다 체크한 거니?”

    집중하고 있었기에 더는 방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만 끄덕였는데 이승희가 나를 들었다.

    “아.”

    악보가 멀어진다.

    “끄응. 너 진짜 많이 컸구나? 이제 드는 것도 힘들다.”

    “왜요?”

    “돌아갈 시간이야. 엄마가 기다리셔.”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집중을 하고 있다 보니 어 느새 해가 진 것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엎드려서 있으면 나중에 축농증 생긴다? 눈도 나빠지고.”

    “네.”

    축농증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몸 건 강의 중요성은 절실히 느꼈기에 다 음부터는 책상에 앉아야겠다고 생각 했다.

    “여기.”

    대충 악보를 챙기는데 이승희가 옆 에서 도와주면서 한마디 했다.

    “정말 너 대단하다. 점심 먹을 때 빼곤 못 봤는데, 설마 계속 여기서 이거 하고 있었던 거니?”

    “그런데요?”

    이승희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것 같더니 다시 물었다.

    “설마 이번 주 내내 이러고 있었던 거야?”

    아마 이번 주 연습을 안 나갔던 걸 떠올린 모양.

    고개를 끄덕이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음악도 좋지만 다른 경험도 많이 해봐야 해, 도빈아.”

    “다른 거 뭐요?”

    “글쎄……. 만화 안 좋아하니?”

    한때 안경 쓴 펭귄에게 영혼을 빼 앗긴 적이 있었지만 졸업한 지 오래다.

    “네. 유치해요.”

    “그럼 게임은?”

    사촌형 배영빈이 하는 걸 본 적은 있는데 정신이 사나워서 뭐가 뭔지 모르겠던 기억이 났다.

    “정신 사나워서 안 좋아해요.”

    “그럼 보통은 뭐 해?”

    “ 보통?”

    “쉴 때나 놀 때?”

    쉴 때라.

    예전에는 하던 게 꽤 많다.

    산책을 한다든가 아침에 커피를 타 마신다든가 요리를 한다든가 말이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혼자 다니면 위험해’라든지 ‘커피는 커서 마시는 거란다’ 또는 ‘요리는 칼이랑 불을 써야 하니 나중에 하자?’라는 식으로 원천봉쇄를 하고 계시기에 지금 은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

    “바이올린 켜요.”

    “바이올린 말고.”

    “피아노?”

    “어휴. 이 음악 바보.”

    지나가는 것처럼 말했지만 방금 이 승희가 무척 심한 말을 한 것 같다.

    “바보 아니에요. 천재예요.”

    “그래. 그래. 너 잘났다〜”

    뭔가 대단히 기분이 나빠 노려보자 이승희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도빈아, 어릴 때는 좀 뛰어놀고 그러는 거야. 친구 소개해 줄까?”

    “세프가 있으니 괜찮아요.”

    뭐가 잘못되었는지 이승희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 그래. 세프도 친구지만 음악 바보 두 사람이 만나봤자 음악 이야기밖에 안 하잖아. 누난 도빈이 가 다른 것도 많이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야. 그래야 곡을 쓸 때도 더 잘 써질걸?”

    그럴 듯한 말이라 생각을 해보고 있는데 문득 푸르트벵글러와 음악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님을 떠올렸다.

    “음악 이야기만 하는 거 아닌데요?”

    “그래? 그럼?”

    “웃긴 이야기요.”

    “웃긴 이야기? 세프가?”

    이승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뭔가 많이 놀란 표정이다.

    “무슨 이야기인데?”

    “양이 전쟁을 하면?”

    “어?”

    “양이 전쟁을 하면?”

    “글쎄?”

    “워메 워메.”

    ‘안 웃긴가.’

    푸르트벵글러와 이야기할 때는 둘 다 완전 뒤집어졌는데, 이승희에게는 재미없는 모양이다.

    “프랑스인이 빨래를 널면서 하는 말으?”

    “마르세유.”

    말없이 눈을 마주치고 있던 이승희  일어서면서 중얼거렸다.

    “대체 애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애 다 배렸네. 아재개그도 적당 히 해야지. 할배개그네, 할배개그.”

    이승희는 웃음에 박한 듯하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들어오자마자 위생을 위해(TV에서 봤는데 손을 씻는 것만으로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세면대로 향 해 손을 씻는데 어머니와 이승희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정말이지 그 아저씨가 도빈이 다 버린다니까요?”

    “안 그래도 어디서 들었나 싶었어요. 글쎄 저번에 무가 울면? 이라고 하기에 뭐냐고 물으니 무뚝뚝이라는 거예요.”

    "..."

    “아, 죄송해요. 아무튼 도빈이한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니까요? 제가 내일 한마디 할게요.”

    “그런 걸 가지고 뭘요. 도빈이도 재밌어하던걸요.”

    “정말 걱정이에요. 얼굴은 그렇게 잘생겼는데 음악 얘기 말고는 다 아저씨 같아서.”

    “아하하.”

    몰래 듣는 건 좋지 못한 행동이지 만 뭔가 기분이 나빠지는 대화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들 먹어요.”

    최근에는 나와 어머니 그리고 이승희 세 명이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보통 아침에 이승희가 차를 끌고와 나를 태어 함께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로 가고.

    돌아올 때도 같이 오니까 어머니께서 답례 차원에서 저녁을 차려주시 는데, 이승희는 어머니의 솜씨가 마 음에 드는지 먹을 때마다 감탄을 한다.

    “어머. 이거 정말 제육볶음 맞아요? 너무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시댁 부모님께서 보 내주신 고추장으로 한 건데 입에 맞나 봐요?”

    “네. 진짜. 진짜 너무 맛있어요, 언니. 아.”

    “말이 헛나와서....... 죄송해요.”

    “아니. 한 번 언니라 했으면 계속 언니지. 안 그래, 도빈아?”

    뭔지 몰라도 어머니 말씀은 옳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가 이승희를 보며 웃었다.

    “많이 먹어 동생〜 괜찮지?”

    “네. 그럼요.”

    독일에서 어느덧 다섯 달.

    내가 베를린 필과 친해진 것처럼 어머니도 잘 적응하고 계신 듯하다.

    저녁을 먹고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나는 교향곡 악보를 살피는 데 집중했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필하모닉이 내게 ‘지 휘’를 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상임 지휘자가 멀쩡히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지휘봉을 넘겨주는 것조차 말이 안 되고.

    자신들이 직접 선출한 지휘자가 아닌 사람의 지휘를 받는 것을 꺼려하 는, 그런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들 이 내게 그러한 기회를 준 것이다.

    명목은 이별.

    내 귀국 날짜가 좀 더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그간 잘 몰랐는데 사무국장 카밀라 로부터 여러 이야기가 들어오면서 더 이상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함께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베를린 필이 마음에 들면 거기 있어도 좋겠지만 도빈 군은 아직 경험 하지 못한 일이 너무도 많지 않나. 시야를 넓히게.’

    그런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이 옳았기에 나는 12월부터 내 앨범 관련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그리고 몇몇 곳에서 초청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처리하고자 베를린 필과 이별하기로 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푸르트벵글러 와 베를린 필하모닉은 내게 너무도 큰 선물을 준비했고.

    그것이 바로 11월 정기 연주회에서 의 단 한 곡을 지휘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빨리, 그것도 세계 최고 수 준의 관현악단을 지휘할 수 있는 기 회를 맞이할 줄은 생각지 못했고.

    아쉬움만큼이나.

    그리고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만큼 이나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하여 일주일간 악보를 탐독한 끝에, 하나의 곡을 선정해 보여주었는데, 푸르트벵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자크(Anto nin Leopold DvoFäk) 의 9 번 교향곡 E 단조.

    신세계로부터 (Z noveho sveta).

    체코라는 나라의 작곡가가 만든 이 곡은 내 눈을 사로잡고 말았다.

    사실 내 교향곡 중에서 고를까 싶다가 그것은 내가 온전히 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뒤에 해야 의미 가 있을 것 같았기에 다른 곡을 찾았는데.

    드보르자크의 곡은 그중에서도 이 E단조, 활기 넘치는 멜로디가 격렬하게 이어지는 전개에 푹 빠져 버리 고 말았다.

    형태도 음색도 음의 배치도 모두 흥미로운 발상이다.

    마치 정말 새로운 세계를 접한 것 만 같았다.

    “빈 고전파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 난 최초의 작곡가지.”

    푸르트벵글러가 짧게 설명했다.

    “흑인 음악, 스코틀랜드의 민요처 럼 그때까지와는 다른 방식을 취했단다. 여기. 이 부분이 재밌지?”

    “맞아요.”

    푸르트벵글러가 가리킨 곳은 첫 번 째 주제가 표시된 지점이었다.

    “스카치 스냅. 스코틀랜드 당김음 이라고 한단다.”

    보통의 점리듬과 반대인데.

    주제만이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사 용되고 있었다.

    “싱코페이션이라고 하지. 잘만 사 용하면 아주 진취적인 느낌을 준단다. 봐라.”

    푸르트벵글러가 피아노로 해당 부 분을 연주했다.

    박자에 긴장과 이완을 주는데, 확실히 세련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코페이션(Syncopation: 당김음).

    나 역시 자주 사용하던 방법인데 드보르자크는 그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흐음.”

    “왜요?”

    “건들 곳이 없구나.”

    “그럼?”

    “바로 연습에 들어가 보자. 이런 드보르자크라니 , 기대되는구나.”

    푸르트벵글러의 말에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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