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052화
13. 6살, 혈연(2)
연습을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자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머니께서 마중을 오셨다.
다만 집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사무국으로 갔는데 카밀라와 이승희가 함께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기다리는데, 어머니께서 먼저 말을 꺼내셨다.
“도빈이가 앞으로 음악을 하려면 도와주실 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두 분께 부탁을 드렸어. 이야기 같이 듣자.”
도와줄 사람이라.
“연주회도 다니고 협회나 기자 그 리고 업체와 연락을 해줄 사람을 말 하는 거야. 예전에 나카무라 아저씨 가 해줬던 것처럼. 매니저를 해줄 사람이 필요할 거야.”
“아.”
무슨 말인가 싶었더니 비서를 말하는 것 같다.
확실히 나카무라와 히무라가 함께 해 줄 때는 여러모로 편리했다.
무엇을 알아봐 주고 대신 처리하는 데, 전문가라 그런지 그런 쪽으로는 내가 신경 쓸 일이 거의 없었다.
현대의 음악계는 확실히 너무나 넓 어서 아직 모르는 게 많다.
그 때문에 학교를 비롯한 정규 교 육과 이쪽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은 건데, 그 전에 도와줄 사람을 찾으시는 모양이다.
‘어머니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계약에 관련 된 일을 함께해 주셨던 걸 떠올려보면 확실히 기본적으로 지식인답게 대응을 해주신 것이 사실이나.
두 분은 음악을 좋아하실 뿐.
업계에 대해 잘 알고 계시지는 않다. 그런 한계를 생각해 보면, 또 언제까지나 나 때문에 두 분이 두 분의 삶을 못 사는 것을 바라지도 않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그래서 세 군데 정도 추려봤어. 다 괜찮은 곳인데 아무래도 도빈이 가 직접 만나보고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히무라 아저씨는요?”
“어?”
이승희가 말하는 와중에 끼어들자 그녀가 조금 당황한 듯했다.
“히무라 아저씨랑 약속했어요. 정 리가 되면 다시 함께하기로. 매니저 가 생기면 히무라 아저씨랑 함께할 때 문제가 없는 거예요?”
“도빈아, 히무라 아저씨는 당분간 도빈이를 신경 써줄 수 없어.”
“괜찮아요. 몇 년이 걸려도.”
“승희 씨,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마…… 히무라 씨는 매니저 사업을 병행할 거예요. 엑스톤이 그랬 던 것처럼요. 원래 엑스톤 자체가 나카무라 씨와 히무라 씨가 키운 거 나 다름없으니,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아요.”
“그러면.”
“네. 중복 계약을 할 수는 없으니 까요. 만약 히무라 씨가 음반 레이 블 회사를 운영할 생각이라면 문제 가 없겠지만, 아마 히무라 씨는 도빈이와 그런 관계를 바라진 않겠죠.”
대충 답이 나온 듯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엄마, 저 히무라 아저씨 아니면 안 할 거예요.”
히무라와 나카무라는 이 세계에서 나를 처음 알아봐 주었다. 그리고 함께 일하면서 누구보다도 친밀하게 교감을 나누었다.
예전 삶에서의 한 사람을 떠올려 보면, 히무라와 나카무라가 내게 얼 마나 잘 대해주었는지, 진실되었는 지 알 수 있다.
안톤 쉰들러.
참 알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온갖 달콤한 말로 나를 대했지만 그 안에 진심에 대해서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사카모토 료이치와 ‘나’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얼핏 들었는 데, 내가 죽은 뒤 몇몇 물건을 훔쳤다는 이야기였다.
대화록이라든가 말이다.
물론 히무라와 나카무라 역시 나와 함께해서 이득을 취하려고 하겠지 만, 나는 그 일에 대해서는 당연하 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얼마나 진실되었는가.
그리고 나와 얼마나 많은 감정을 공유하였는가.
함께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는 히무라라는 사람 이고 말이다.
“엄마, 저는 히무라 아저씨랑 일할 때 가장 편했어요. 저를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사람도 히무라 아저씨였고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전 히무라 아저씨랑 함께할 거예요. 그렇게 약속했고, 약속은 지켜야 해요.”
그리 말하자 어머니께서 나를 기특 하게 보시며 얼굴을 매만지셨다.
“도빈이가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해 서 너무 기쁘다. 하지만 도빈아, 그전까지는 도빈이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할 거야. 정말 많은 사람이 도빈이에게 연락을 하고 있단다.”
어머니를 보다가 문득 카밀라에게 눈을 주었다. 나를 따라 이승희와 어머니도 시선을 돌리셨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듣고 있던 카밀라 사무국장이 당황한 듯 물었다.
“다, 다들 왜 그래요?”
“카밀라 아주머니가 해주시면 되잖아요.”
“내가?”
“단원들 스케줄은 사무국에서 해준다고 하던데요?”
“그, 그거야 그렇지만.”
“국장님, 도빈이도 베를린 필의 단 원이에요.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부탁드려요. 도빈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만이라도요.”
“부탁드립니다, 카밀라 씨.”
내 해결책이 먹힌 듯하다.
카밀라라면 믿을 수 있는지 어머니 와 이승희가 내가 내놓은 방법에 동 조하여 카밀라에게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 지금도 바빠서 따로 일을 더 하는 건 무리……
130명이나 되는 단원들을 관리하 고 베를린 필을 운영하는 사람이라 면 확실히 바쁠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유능하니까 하고 계신 거잖아요.”
한마디 거들자 어머니와 이승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베를린 필에서 국장님보 다 유능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사실 세프가 사고 칠 때마다 해결하는 것도 전부 국장님이잖아요.”
“도빈이가 베를린 필 객원 연주자 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신 과정만 봐도 카밀라 씨가 얼마나 대단한 분이 신지 알 수 있었어요. 부탁드려요.”
“부탁드려요, 아주머니, 아니, 누나.”
이승희의 경우를 놓고 봤을 때 여성은 아주머니라고 불리는 것보다 누나라고 불리는 쪽을 선호한다.
아주머니지만 지금은 부탁하는 입장이니 호칭을 바꾸자 난감해하던 카밀라가 웃어버렸다.
“누나? 아하하하하.”
“아’. 하하. 하.”
이승희가 멋쩍게 따라 웃었고, 어머니께서는 ‘얘가 왜 이래’라는, 내 게 처음 보여주는 표정을 지으셨다.
“후우. 그래요. 뭐, 베를린 필에 있을 동안은 관리해 드리도록 할게요. 처음 도빈이 들어올 때 약속한 것도 있으니까요.”
“카밀라 씨.”
“우선 지금까지 연락이 온 곳부터 넘겨주세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일이 잘 풀렸다.
카밀라가 나를 맡아준 뒤로 그간 내가 정말 눈이 어두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이 오는 모 양인지, 아침에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로 향하면 연습실이 아니라 사무국 사무실로 가야 했다.
“인터뷰 요청이 두 건, 협연 요청 서가 세 건 그리고 작곡 요청서가 여덟 건이야.”
“너무 많아요.”
“이것도 줄인 거야. 아, 한국에서도 요청이 있었어. 광고 모델이 되어 달라고 하던데…… 여기 있다.”
“ 광고?”
“응. 피아노를 만들어 파는 곳인데, 도빈이가 모델을 해줬으면 한대. 한 국으로 가서 촬영을 해야 하니까 대 충 3〜4일은 걸리겠다.”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타야 하다니.
“그 안에 연주회가 끼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사양할게요.”
“도빈이가 좋아하는 돈 많이 주는데?”
‘ 돈?’
“ 얼마나요?”
“2년 계약에 2억. 방송이랑 지면을 포함한 금액이야.”
“2년이면 2년 동안 계속 광고를 해줘야 하는 거예요?”
“그건 아니야. 중간에 한 번 더 촬 영 조항이 들어 있는데, 1년에 한 번씩 두 번 찍고, 그걸로 홍보를 하는 기간을 2년으로 잡은 거지.”
"응."
“하고 싶어?”
2억이라면 비행기 두 번 정도는 타줄 수 있을 것 같다. 가계에 크게 도움이 되는 큰돈이니까.
“네. 엄마한테 물어볼게요.”
“그래. 그럼 이건 따로 두고. 협연 요청이 왔는데, 두 개 일정이 겹쳐. 둘 중에는 보스턴 심포니가 좋은데, 어떻게 생각해?”
“보스턴은 어디에 있어요?”
“ 미국.”
“독일에서 미국까지 오래 걸려요?”
“글쎄. 음……. 경유하게 된다면 14시간 정도?”
한국에서 독일로 올 때 비행기 안 에 있는 시간만 10시간이 넘었는데, 14시간?
“안 가요.”
“그래.”
카밀라는 괜찮은 조건의 서류 중에 서도 내 체력을 고려해 몇 개를 더 추려주었다.
그러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 내가 궁금한 점, 모르는 일을 친절히 설 명해 주었고 그것은 내게 정말 필요 했던 일이었다.
독일어라 더 이해하기 쉬웠던 것도 있는데, 그걸 제외하고서도 확실히 카밀라 앤더슨의 사무 능력은 뛰어 난 것 같았다.
새삼 카밀라의 유능함과 나카무라, 히무라가 있어서 얼마나 편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해했니?”
“네. 카밀라 누나가 알려주니 이해하기 쉬워요. 카밀라 누나가 최고.”
“최, 최고는 무슨.”
그리고 이 젊은 여성이 칭찬에 약하다는 것도 파악.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말 몇 마디의 칭찬이야 당연한 일인데, 저리 좋아하는 것을 보면 더 해주고 싶어 진다.
“그럼 잠깐 기다려.”
“네.”
카밀라가 어머니께 보여드릴 서류 와 그걸 설명하는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연습해도 돼요?”
“그래.”
마냥 기다리고 있기에는 심심해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무엇을 연주할까 싶다가 문득 예전 에 들은 전자바이올린 곡으로 편곡 된 영국의 민요가 떠올랐다.
‘콘트라단자라고 했지.’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 듯 한 기분이었고, 그만큼 인상 깊었던 지라.
음악 학원에서 즉석으로 편곡해 연주했는데, 썩 마음에 들었기에 재미 삼아 연주해 보았다.
♪♫♬♪♫♬
‘반주가 없어 아쉽지만.’
나중에 피아노로 반주 악보를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어머. 바네사 메이도 아니?”
“그게 누구예요?”
“방금 연주한 곡 콘트라단자 아니이?”
“맞아요.”
“그거 연주한 사람이 바네사 메이야. 클래식만 듣는 줄 알았는데 전 자바이올린도 듣는구나?”
“좋은 음악이면 가리지 않아요.”
듣기만 좋다면 장르를 가릴 이유가 없다. 악기도, 형식도 모두 말이다.
“역시 음악의 샛별이네.”
“카밀라!”
단원들이 놀리는 것도 모자라 카밀 라까지 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