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051화
13. 6살, 혈연(1)
-……여보? 무슨 일이에요?
“잘 시간일 텐데 미안. 상의할 일 이 있어서.”
-잠시만요.
막 전화를 받은 유진희의 목소리가 많이 잠겨 있었지만 배영준이 용건
을 말하자 유진희도 무슨 일이 있음을 느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차린 뒤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도빈이한테 그간 연락이 왔는데, 그게 영빈이 메일로 왔었나 봐. 영 빈이가 메일 확인을 안 했는데 지금 쌓여 있는 걸 받았어.”
-메일이요? 얼마나요?
“반년 정도. 마흔 통 정도 되는데, 읽어보니 음악 관련한 이야기더라 고. 상을 준다는 곳도 몇 곳 있었고.”
-어머.
“일단은 이거 톡으로 보내줄게. 그 리고.”
_네.
“그간 히무라 씨나 나카무라 씨가 있어 느끼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도빈이를 도와줄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아.”
-네……. 확실히 주변 분들이 도와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더 바 빠지면 전문적으로 관리해 줄 사람 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 도 이번에 기자들이 왔을 때 엄청 난감했어요. 나카무라 씨와 히무라
씨가 계셨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생각했죠.
“그래. 조건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으로 추천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 한번 알아보자.”
-네. 그래요. 어머, 시간 좀 봐. 당 신 설마 안 잤어요?
“아냐. 잤어. 조금 일찍 일어났을 뿐이야. 이제 씻고 출근해야겠다. 잘 자.”
숙소에서 남편과 통화를 끊은 유진 희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거짓말에 서툰 남편은 분명 도빈이 걱정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거짓말을 할 때면 설명을 자세하게 해버리는, 자기도 모르는 버릇을 했으니까.
잠도 제대로 못 잔 남편이 몸을 쓰는 일에 나가면 얼마나 위험하고 피곤할까 생각하니 유진희는 좀처럼 편히 잠들 수 없었다.
곧, 배영준이 보낸 그림 파일이 도 착했다.
그것을 살핀 유진희는 내일 할 일을 생각하곤 애써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이승희를 집으로 초대한 유진희는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데 한창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집 안에는 배도빈 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가득 했고, 이윽고 풍미 가득한 요리 냄 새가 함께하기 시작했다.
띵동-
“누구세요.”
“누나야.”
“아주, 나.”
“……도빈이 너, 방금 아주머니라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오해예요. 귀가 안 좋으신 것 같네요, 누나.”
“쿡쿡.”
이승희가 도착했는지, 현관에서 도빈이와 이승희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났다. 며칠 전부터 호칭 문제로 말을 하더니, 결국에는 도빈이가 져주 기로 한 모양이다.
“어서 오세요.”
“어머님.”
“막 준비되었는데 잘 맞춰 오셨네요. 들어오세요. 도빈아, 밥 먹자.”
“네.”
다행히 음식이 입에 맞는 모양이었
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 이승희가 연신 맛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저 이렇게 맛있는 잘라트 처음이 에요.”
“저도요.”
발사믹을 넣은 단순한 샐러드인데, 이승희도 도빈이도 맛있게 먹었다. 특히 입이 짧고 한 가지 음식에만 집착하는 도빈이는 독일 음식이 입 에 맞는지 독일에 와서는 식욕이 왕 성해 졌다.
그래도, 독일 쪽 음식이 짠 편이기 에 밖에서 먹지 않고 직접 해주곤 했는데, 좋아 하니 다행이다.
식사를 마치고 재래시장에서 산 사 과주스를 내왔다.
“어머. 이거 어디서 사신 거예요?”
“여기서 얼마 안 걸려요. 시장에서 산 건데, 맛이 괜찮죠?”
“네. 이건 계속 사서 마시고 싶네요.”
“나중에 같이 한번 가요.”
도빈이는 벌써 한 잔을 다 비우고는 한 번 더 달라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조금만 더 채워주었다.
“오늘은 상의할 일이 있어서 와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네.”
“실은 도빈이에게 작년부터 이런 메일이 왔더라고요. 처음 연락을 도빈이 사촌형 메일로 하다 보니 확인 이 늦어졌는데. 우선은 이 관련되어 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승희 씨한테 묻고 싶어서요.”
이승희에게 어제 남편에게서 받은 메일 내용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살 피던 이승희가 깜짝 놀라 나와 도빈 이를 번갈아 보더니, 다시 한번 메 일을 살펴보았다.
“도빈아! 너 정말 대단한 애구나?”
조용히 메일을 살피던 그녀가 갑자 기 고음으로 소리를 치니 도빈이가 깜짝 놀라 멈춰 버렸다.
“Golden Satellite Awards 후보였다니. 잘했어, 잘했어!”
도빈이가 신을 내는 이승희를 두곤 자기 방으로 피신을 갔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첼로 수석은 기 쁨을 감추지 못하고 내게 말을 계속 했다.
“축하드려요, 어머니. 아마 이번에는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최종 후보 로 올랐었다니. 그 뒤로는 소식지네요. 이런저런 정보 같은 거. 앨범 자체는 샌디에이고 영화 평론가 협 회 (San Diego Film Critics Society) 에서 상을 받았네요. 앨범에 이름을 넣은 게 아니라서 수상자는 아니지 만, 가장 큰 희망을 작곡한 배도빈 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다, 라니. 도빈이 정말 유명인사인데요?”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 정 도는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승희가 말하는 내용이 새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다른 문제.
“고마워요. 그렇게 기뻐해 주시니 저도 또 한 번 기쁘네요.”
“그럼요! 다들 도빈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다는 뜻이니까요.”
“다행이죠. 그런데……
“네?”
“승희 씨는 일정이라든지 외부 연락 같은 거 직접 하시나요?”
“ 아.”
본론을 꺼내자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한 모양이다.
“베를린 필에 들어오기 전에는 매 니지먼트와 계약을 했어요. 지금은 베를린 필 사무국에서 일정을 봐주 는데, 그 전에는 매니저가 확실히
필요하더라고요. 유명해질수록 일정 이 있다 보니 혼자 관리하는 게 어렵기도 했고요.”
“그랬군요.”
“우리나라는 보통 부모님들이 많이 그런 역할을 해주시기도 한데.”
“네.”
“사실…… 전문적이지 못한 건 사 실이에요. 매니저를 두는 비용이 부 담스럽기도 하고 자식 일이니까 직 접 나서는 건 이해하지만요.”
역시 이승희에게 묻는 게 답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내가 궁금했던 이야기를 경험자 입장에서 상세히 풀어주었다.
그녀 역시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유 명하고 도빈이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성장했으니, 도빈이의 상 황을 잘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럼 매니지먼트에서 해주는 일은 무엇인가요?”
“꽤 다양해요. 계약 법률 검토부터 페이에 대한 문제도 다루고요. 스케줄 관리와 기본 생활에 대해서도 도 움을 주고요.”
“기본 생활이요?”
“네. 아무래도 연주자들은 여러 나 라를 돌아다니는 일이 많은데, 숙소예약부터 관련한 일도 해주고. 음…… 그런 스케줄을 소화해 낼 수 있게 건강과 생활에 신경을 쓴다고 할까요.”
생각보다 그 영역이 훨씬 넓은 듯 하다.
“하지만 이건 좋은 매니지먼트를 만났을 때의 일이에요. 아무래도 도빈이가 아직 어리다 보니 매니저를 찾으신다면 자세히 알아보셔야 할 거예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승희 씨에게는 언제나 도움만 받는 것 같네요. 정말 고마워요.”
“에이, 아니에요. 정말 도빈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제2바이올린에 사람이 없어서 연주회 로테이 션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니까요. 도빈이가 가끔 자리를 채워서 연주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 고 있어요.”
웃으며 손사래를 치는 이승희를 보 며, 우리 도빈이가 정말 좋은 분들 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카무라, 히무라, 사카모토 료이치.
카밀라, 푸르트벵글러, 이승희.
그리고 달리 많은 사람이 모두 도빈이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모두, 도빈이를 예뻐해 주고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
지금까지 도빈이의 재능을 진심으로 좋아해 호의를 베푸는 이들을 만 났다면, 언젠가는 도빈이를 이용할 사람도 생겨날 것이 분명하다.
도빈이가 커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 직일 수 있기까지.
그 전까지는 내가 그 방패선 역할을 해줘야 한다.
엄마니까.
클래식 음악 세계에 대해, 나는 잘 모르지만 그래서 매니저를 구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과 이후 관리에 대해서는 필히 확인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럼, 승희씨께 또 부탁 하나 드릴게요.”
“네. 걱정 마세요.”
매니지먼트를 알아보기로 했다.
“하하하핫! 이 괴팍한 꼬맹이가 샛 별이라고?”
“시끄러워요, 노이어.”
연습실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 원들과 쉬고 있을 때였다.
한 사람이 내가 실린 기사를 들고 와 모든 사람 앞에서 읽어주었는데, 기사 내용이 참으로 낯을 뜨겁게 했다.
[(전략) 클래식 음악계는 황혼기를 넘어 암흑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2011년 7월 13일, 나는 여명을 알 리는 별을 관측했다. 그의 바이올린 은 새로운 미래가 오고 있음을 암시 하는, 샛별과도 같다. (후략)]
“오오. 이 귀여운 샛별 같으니.”
‘이이이 익.’
단원들이 나를 놀려 먹는 것에 재미를 들린 듯, 내가 이 낯 간지러운 기 사에 부들부들 떨자 계속 놀려댔다.
“아냐! 아니라고!”
“하하핫!”
“왜, 도빈아? 샛별이라니 너무 잘 어울리는데. 쿠키 먹을래?”
쿠키는 먹겠다만.
또 그것을 받아 먹자 바순 수석 노이어를 비롯해 단원들 몇몇이 크 게 웃었다.
몇몇 여성 단원은 내 볼을 만진다거나 하면서 꺅꺅 대고.
“빨리 다시 연습이나 해요!”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
잠시 쉬는 시간에는 이렇게 다들 떠들고 웃지만, 막상 연습에 들어가 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집중력을 발휘 한다.
오늘은 내일 정기 연주회의 프로그 램 중 하나인 로베르토 슈만의 교향 곡 D단조다.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산 사람의 곡 이라 그런지, 자잘한 곳에서 당시 내 교향곡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푸르트벵글러는 로베르토 슈만뿐만이 아니라 모든 음악가가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을 존경한다고 말했지만, 그중에서도 슈만은 내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
♪♫♬♪♫♬
연주도 완벽.
레파토리 중에 하나라 그런지 다들 이 곡에 대한 숙련도가 높다.
곡 자체도 훌륭하니 연주를 함께하 면서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