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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50화 (5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50화

    12. 6살, 세계를 울리다(4)

    기자들이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진을 치고 있었기에 그간 집에서만 지냈는데.

    남은 시간이 10개월뿐이라고 생각 하자 그 시간마저 아까웠다.

    그런 이야기를 카밀라와 이승희에 게 했더니 그럼 자리를 만들어 한 번에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떻겠냐고 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한 명, 한 명 상대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카밀라와 이승희에게 말 로만 들었지.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사람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구성 원이 정말 다양했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 아시아 쪽 기자도 많았고 그중에는 익히 아는 얼굴도 있었다.

    예전에 인터뷰를 했던 김준용 기자 와 아사히 신문의 이시하라 린.

    독일 출신의 기자들은 물론이고 유 럽계 사람도 많이 참여하고 있었다.

    얼핏 헤아려도 삼사십 명은 되는 듯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배도빈의 기자 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내빈해 주신 분들께 서는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말을 마쳤다.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단상에 오르자 여러 대의 카메라가 플래시라이 트를 터뜨렸다.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배도빈입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요청 해 주셔서 오늘은 제가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제 카밀라, 어머니와 함께 연습한 대로 잘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잘 쓰지 않는 말을 쓰려니 조금 어색하지만 일단은 계속해 나갔다.

    “저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객원 연주자로서 1년간 몇 차례의 연주를 함께할 예정입니다. 그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잠시 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어 나갔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하는 것은 너무도 큰 기쁨이고 여기, 마에스트 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역시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환경에서 음악을 할 수 있어 서 무척 행복합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모든 기자가 손을 들었다.

    사회자가 한 사람을 지목하자, 그 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피가로(Le Figaro)의 모리스 르블 랑입니다. 지난 2년간 갑작스레 등 장해 지금까지 총 12곡을 발표하셨습니다. 뛰어난 작곡가이면서 연주 자로 데뷔한 점을 보고 많은 사람이 앞으로의 행보를 궁금해합니다.”

    동시 통역가의 말을 듣고 답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함께할 수 있는 기간까지는 연주자로서 함께할 겁니다. 하지만 작곡을 놓을 생각은 없고요. 충분한 답이 되었을까요?”

    모리스 르블랑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고, 곧장 다른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슈피겔(SPIEGEL)의 빌리 브란트 입니다. 13일의 고혹적인 연주를 들려주신 데 경의와 감사를 표합니다.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의 B플랫장조 의 편곡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연주회 후 마에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그 편곡을 배도빈 작곡가께서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B 플랫장조를 선택한 이유와 그런 편 곡을 한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면 굳이 통역을 거치지 않고 싶어 독일 말로 대답했다.

    “B플랫장조는 루트비히 판 베트호 펜이 가장 솔직하게 만든 교향곡입니다. 그는 고독하고 위태로웠지만 결국에는 싸워 이겨낼 수 있다는 희 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의 뜻을 잇고자 그의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솔직했던 B플랫장조를 선택했습니다. 편곡은 지금 음악을 즐기시는 분들이 어떻게 하면 가장 즐겁게 B플랫장조를 즐길 수 있을까를 고 민한 결과입니다.”

    뭔가 내가 나를 설명하려니 어색하다.

    그러나 내 대답이 충분했는지 빌리 브란트 기자가 ‘고맙습니다’라고 인 사했다.

    다음은 익숙한 사람이었다.

    “네. 아사히 신문의 이시하라 린입니다. 큰 슬픔을 겪은 일본이 정규 앨범 ‘Dobean Bae 배도빈: 피아노 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으로 위 로받고 있습니다. 작곡가로서 데뷔 했던 일본에 한마디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일본에서의 공연도 기대합니다.”

    이 역시 일본 말로 답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유감입니다. 조 금이지만 그 슬픔을 이해합니다. 부디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공연 예정은 아직 없지만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사람이 일어났다.

    “그래모폰의 한스 레넌입니다. 13 일 데뷔 무대를 직접 연주를 들은 사람이 배도빈 연주자를 두고 21세 기의 야샤 하이페츠라고 하고, 그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는 익히 들었습니다. 저는 그를 대체할 수 없고, 그도 저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야사 하이페츠는 거대한 강입니다.”

    그렇게 문답이 오갔다.

    그중에는 한국 사람도 있었는데, 그의 차례가 마침내 되었다.

    “관중석의 이필호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한 최초의 한국인이 되셨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한 소감과 한국의 팬들에게 베를린 필하모닉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치열한 곳입니다. 첫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베를린 필하모닉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 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치열함이 베를린 필의 완성도 있는 연주를 가 능하게 한 것 같습니다. 모두 최고 의 연주를 향해 뛰고 있고 저도 함께 뛸 수 있어서 기쁩니다.”

    [21 세기 최고의 매력적인 음악가】

    -모리스 르블랑(르 피가로)

    [이러한 베토벤은 처음이었다. 앞으로 그가 연주할 곡을 듣고 싶어 애 타는 밤을 보낼 것이다.】

    -빌리 브란트(슈피겔)

    [21 세기는 새로운 천재를 맞이했다. 그의 베토벤은 악성이 다시 살 아온 듯하다.]

    -이시하라 린(아사히 신문)

    【완벽한 연주를 위해 독일로 간 천재, 배도빈]

    -이필호 (관중석)

    카밀라가 기자 회견 뒤에 올라온 기사를 몇 개 추려 보여주었다.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기억 에 남은 몇몇 기자의 기사를 찾아봤는데, 잘 써준 듯하다.

    “독일 말을 잘하는 줄 알았지만, 어제 기자회견에서는 깜짝 놀랐어.”

    “왜요?”

    “너무 어른스럽게 말했으니까?”

    독일 말로 한다면 어린애처럼 말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누나도 깜짝 놀랐어. 언제 그렇게 말을 잘하게 된 거야?”

    이승희도 거들었다.

    제대로 했을까 걱정했는데 이승희 가 저런 반응을 보이니 나쁘지 않게 했던 모양이다.

    “대화하려면 많이 배워야 하니까요.”

    “맞아. 도빈이는 앞으로 여러 나라 에서 활동할 거니까 언어를 많이 알 면 좋지.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는 것도 직접 이야기하는 게 제일 좋아. 한국이랑 일본, 독일어를 할 줄 아니까 영어 정도 더 배우면 좋겠다.”

    여기서 영어까지 배우려면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이승희가 아무렇지 도 않게 말했다.

    “아. 그런데.”

    “응?”

    “이승희 수석은 누나가 아니었어요.”

    “어?”

    “누나라고 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잖아요. 이제부터는 이 승희 수석이나 이모라고 부를게요.”

    “어머. 얘 좀 봐? 나 아직 서른밖에 안 됐어.”

    “아.”

    생각보다도 나이를 더 먹었다.

    내가 보기엔 촐랑대는 어린 아가씨 일 뿐이지만 아가씨라 부를 수는 없으니까.

    나와의 나이 차이가 24살 정도니 적당한 단어가 떠올랐다.

    “아주머니.”

    “뭐, 뭐?”

    “아주머니가 적당할 것 같아요.”

    “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성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분명 사전에 적 혀 있었는데.

    이승희가 화부터 냈다.

    분명 아주머니가 누나라는 호칭보다 높을 텐데 화를 내는 이승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일을 숙소로 돌아와 전해드리자 어머니께서는 정말 오랜만에 깔깔, 크게 웃으셨다.

    “아하하하.”

    “제가 뭐 잘못한 거예요?”

    “응. 끄윽. 이번에는. 쿡쿡. 도빈이 가 잘못했네. 푸흡.”

    뭐가 그리 웃기신 건지.

    한참을 끅끅대던 어머니께서 진정 하곤 말씀하셨다.

    “내일 승희 누나 보면 누나〜 라고 하렴.”

    말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말은 여전히 어렵다.

    한편 한국에서는 배도빈의 사촌형 배영빈이 오랜만에 계정 이메일에 들어갔다.

    그간 신경 쓰지 않아 수백 통의 메일이 쌓여 있었는데, 그것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스팸 매일 극혐이네, 진짜. 대체 어디서 자꾸 보내는 거야?”

    그렇게 메일을 살피며 삭제를 반복 하던 배도빈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골든……. 어워드? 이건 뭐지?”

    드래그를 해 검색창에 붙여 넣자 배영빈의 게슴츠레한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Golden Satellite Awards.

    국제 보도 아카데 미 (International Press Academy- IP A) 에서 매년 엔 터테인먼트 산업 부문 별로 주는 상 이었다.

    “미친. 이거 뭐야. 언제 온 거야?”

    날짜를 확인해 보니.

    2011년 7월 2일.

    비교적 최근에 온 메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배영빈이 마우스휠을 내렸는 데, 같은 곳에서 여러 번 보낸 것 같았다.

    결국, 이메일 주소로 검색을 해보 니 총 20통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무려 반년 전, 2010년 12월 20일 부터 최근 2011년 7월 2일까지.

    배영빈은 예전에 사촌동생에게 온 영화 제작사의 메일을 보여주곤 그 뒤로 메일을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반복해서 메일을 보낼 일이라면 중요한 일일 것이 뻔했다.

    그런 것을 반년도 지나 이제야 확 인을 했으니.

    배영빈은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날 저녁.

    배영빈은 작은아버지 배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작은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그래. 영빈이구나.

    “네, 작은아빠. 그게……

    -응. 무슨 일인데?

    “그게……. 도빈이한테 메일이 왔어요. 골든 무슨 상인데요.”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메일 내 용 좀 캡쳐해서 보내줄래?

    작은아버지가 너무나 반가워하기에 배영빈은 자꾸만 위축이 되었다.

    “네. 근데 그게 좀 많아서……

    -많아? 괜찮아. 천천히 보내줘.

    “죄송해요, 작은아빠!”

    _어?

    “이게 사실 작년에 온 건데 제가 그동안 메일을 안 봤거든요. 근데 계속 메일이 오고 있었어요.”

    사실대로 고한 배영빈은 이제 잔뜩 혼이 날 거라 생각했는데, 핸드폰에 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끄윽. 끄윽. 죄송해요.”

    -하하. 괜찮아, 괜찮아. 도빈이한테 온 메일 더 있는지 찾아봐 주고 작은아빠한테 좀 보내줘. 뚝 그치고.

    “히끅. 네……

    배영빈은 다시 한번 메일함을 꼼꼼히 살폈고 배도빈에 관련된 내용처럼 보이는 이메일을 모두 배영준에 게 보냈다.

    그것을 받아본 배영준은 시계를 확 인했다.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중요한 일이었기에 독일에 있을 유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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