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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9화 (49/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49화

    12. 6살, 세계를 울리다(3)

    “객원이라고는 하나 단원의 정보를 함부로 공개해 드릴 순 없습니다. 그럼.”

    “자, 잠깐만.”

    벌써 며칠 째였다.

    대체 몇 명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자가 베를린 필하모닉 사무국에 방문하여 현재 배도빈 이 머무는 곳을 물었다.

    그 덕분에 사무국장 카밀라는 그러 지 않아도 바쁜 일정에 차질을 빗고 있었다.

    “후우.”

    다음에도 찾아오면 쫓아내 버릴까 생각하던 차, 이승희가 사무국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휴. 정말 지긋지긋하다니까.”

    “승희 씨?”

    “국장님.”

    이승희가 의자에 앉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곤 카밀라도 책상에서 나와 이승희와 마주 앉았다.

    “기자들에게 시달린 모양이네요.”

    본인도 방금까지 기자들에게 시달렸던 터라 카밀라가 웃으며 말했다.

    “네. 정말이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여기까지 오는 내내 따라 붙으면서 정신없이 묻는데, 제가 다 지칠 정도였다니까요? 잠시 여기 로 피신 왔죠, 뭐.”

    “잘했어요. 실은 독일이나 유럽뿐 만이 아니라 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도 방문해서 저도 곤란했거든요.”

    “도빈이가 정말 유명해지긴 한 모양이네요.”

    “네. 그렇게 될 수순이었죠. 아, 커피 할래요?”

    “고마워요, 국장님.”

    카밀라가 커피를 타는 와중에 이승희가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용감한 영혼이 평론가들 사이에서 화제인 모양이에요. 그래머폰이랑 스트라드에서 평론 기사를 냈더라고요.”

    “어머, 그래요? 내용은요?”

    “하하. 그 보수적인 곳에서 재밌는 말을 하더라고요.”

    커피 가루에 물을 따르던 카밀라가 고개를 돌려 이승희를 보았다.

    “그의 음악는 너무도 고혹적이라 마치 악마가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라던데요?”

    그 말을 들은 카밀라가 싱긋 웃더 니 고개를 돌려 다시금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죠. 도빈 군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 게 더 몰입이 되는 것 같아요.”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완벽한 구조를 가졌으면서도 듣기 쉬 운 곡도 드물 거예요. 아마 그런 점 때문에 감정 이입이 잘되는 것 같고요.”

    “맞아요. 달콤하죠. 그리고 열정적이고. 어쩜 그리 어린아이가 그런 곡을 지을 수 있는지 신기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카밀라가 커피를 다 내린 것 같았기에, 이승희가 일어나 카밀라에게 서 커피 잔을 받아들었다. 한 모금 마신 이승희가 웃었다.

    “역시 카밀라가 타 준 커피가 좋다니까요.”

    “30유로나 하는 원두라 그래요.”

    “아하하.”

    작은 농담에 웃은 두 사람은 한동 안 커피를 마시는데 집중했다.

    그러다 문득 이승희가 걱정이 되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도빈이네 집은 괜찮을까요? 난리도 아닐 텐데.”

    “여기로 도빈 군의 주소를 묻는 기자가 한둘이 아니었어요. 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당분간은 콘서트홀에는 오지 말라고 해야겠네요.”

    “네. 그러지 않아도 오늘 아침에 유진희 씨와 통화했어요. 도빈 군은 집에서 할 일이 있다면서 더 좋아했다던데요?”

    “할 일이요?”

    이승희가 되묻자 카밀라가 어깨를 으쓱 올리며 소파로 향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를 한 뒤로 나는 오케스트라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예전에도 교향곡은 좋아했지만, 이토록 발전한 상태의 오케스트라와 함께할 수 있다니, 가슴이 뛰었다.

    수십 대의 악기와 그 연주자들이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며 만드는 하모니.

    D단조 교향곡(합창)을 만들 때 그렸던 어렴풋한 오케스트라의 완성 형태가 바로.

    베를린 필하모닉이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에는 이만한 연주자도, 환경도 구하기 어려웠던 탓에 여러모로 제약이 있었는데.

    나는 그 때문에 그때까지 내가 했던 하나의 목표이자 열 번째 교향곡으로 만들고 싶었던 ‘v이 Iständig sammeln’에 대한 시험작.

    D단조 교향곡의 실 연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뒤, 여러 변형 과정을 통해 현대에 이르러 녹음된 D단조 교향곡을 듣고 나서는.

    그리고 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경험 하고 나서는, 마침내 ‘vollständig sammeln’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태울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푸르트벵글러도 보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작곡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벌써 귀국해야 하는 날이 오고 말았다.

    “도빈아, 밥 잘 먹고 지내야 한다?”

    “ 아빠도요.”

    “하하하하.”

    나를 번쩍 들어 안은 아버지가 얼 굴을 문댔다. 까끌까끌한 그 감촉은 싫지만 아버지를 꽉 안아드렸다.

    3년, 아니, 2년 안에 크게 성공해 우리 가족을 완전히 부양할 수 있도 록 성공해, 우리 가족이 이렇게 다시 이별하지 않도록 하기를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럼, 여보. 갈게.”

    “조심히 가요.”

    두 분이 입을 맞추시곤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고 잠시 뒤, 아버지께서 다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타셨다.

    아버지가 탄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 습을 보고서야 나와 어머니는 천천 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아빠 살 많이 빠졌지?”

    “ 네.”

    “도착하자마자 출근해야 한다던 데……. 아빠가 힘낼 수 있게 전화 자주 하자.”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의 수입으로도 생활은 가 능한 것 같은데 아버지는 일을 그만 두실 생각이 없으신 듯하다.

    내가 음악을 하고, 그만 두는 일에 어떤 조건이 되고 싶지 않으신 듯.

    혹시라도 내가 음악이 힘들어 그만 두고 싶은데, 가족 내 돈을 버는 사람이 없으면 그러지 못할까 봐 일을 계속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아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으신 거야 이해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내가 크게 성공하면 해결될 일이라 생각하며 이곳, 베를린에 서 푸르트벵글러와 이승희 그리고 단원들과 함께할 미래를 그렸다.

    그런데.

    “도빈이도 열심히 하자. 여기서 있을 수 있는 것도 내년까지니까.”

    “ 네?”

    깜짝 놀라 어머니를 올려다보자 어 머니께서 내게 차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해 주셨다.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하려면 비자 라는 게 있어야 해. 그런데 도빈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베를린 필하모닉 의 정직원이 되지 못했잖니?”

    “그래서 베를린 필하모닉에서도 비 자 발급에 대해서는 도와주기 어렵대.”

    “그러니까, 한국으로 돌아가서 학교 다니면서 나중에 완전히 일할 수 있게 되면 다시 오도록 하자.”

    “ 얼마나요?”

    “의무교육이라고 도빈이가 꼭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데, 중학교까지는 마쳐야 하지 않을까?”

    “ 중학교?”

    “그래. 중학교.”

    “중학교는 언제까지 다녀야 해요?”

    “16살?”

    두 눈을 크게 뜨자 어머니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러니까 지금 있을 수 있을 때 많이 추억을 남기자. 도빈이가 초등 학교, 중학교 다닐 때까지 기억할 수 있게.”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안 나 왔다.

    집에 돌아온 뒤, 이 내용을 오랜만 에 연락을 한 히무라에게 하소연하자 히무라가 크게 웃었다.

    -아아. 그래. 그런 일이 있지. 도빈 이에게 9년은 너무 긴 시간일지도 모르겠구나.

    “너무 길어요! 그냥 긴 게 아니라 너무!”

    -으음. 지금 도빈이가 독일에 얼마 나 있었지?

    “두 달 조금 안 돼요.”

    -그럼 아마 한 달 뒤에는 한국으로 가야 할 거란다. 여행 비자일 텐데 90일까지만 가능하거든.

    “ 네?”

    -하하. 도빈이는 아직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에서 머물고 돈을 벌기 위 해서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단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충격을 받아 말을 잃고 말았다.

    히무라는 내가 지금 사는 곳도 ‘집’ 이 아니라 ‘숙소’일 뿐이라 설명하며, 여태껏 독일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 착각을 송두리째 뽑아냈다.

    외국인청 (Auslaenderamt) 이란 곳에 의뢰하여 독일 노동청이란 곳에서 노동 허가를 내리면 그 허락된 기간 에서만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알고 있었냐고 카밀라에게 물어보니, 카밀라와 어머니가 이 미 그 관련된 일을 처리해 받은 기 간이 1년.

    1년 뒤에는 꼼짝 없이 한국으로 돌 아가게 생겼다.

    설마 내 첫 번째 조국이 나를 이렇게 배신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억울 하고 분통이 터졌다.

    “도빈아, 독일에서 더 허락해도 한 국에서 학교는 다녀야 해.”

    “왜요? 학교는 독일에서도 다닐 수 있잖아요.”

    “한국인이잖니.”

    어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방으로 들 어온 나는 생각을 거듭했다.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

    배도빈.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이다. 또 동시에 배도빈이기 도 하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알 수 없으나 지금 내 삶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시 태어났기 때문.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일에 너무나 감사하다.

    차마 다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다 시 할 수 있게 되어 기뻤던 것이 사 실이고.

    음악을 하기에 인생이 너무나 짧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조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인이잖니.’

    어머니의 말씀이 단순히 국적을 말 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배도빈으로서 살아가 야 한다.

    시대는 많이 변했고, 과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겪은 불편한 일을 생각하면 확실히 음악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시대에서 겪은 단 몇 년 만으로 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아는 것이 없다.

    나카무라, 히무라, 카밀라, 이승희.

    사카모토 료이치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같이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배워야 한다.

    나는 지금 그저, 당장의 아쉬움을 느낄 뿐이다.

    그래. 단지 아쉬울 뿐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이상적인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기 때문 에 그럴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특히 내 가족과 ‘배도빈’을 말이다.

    분명.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음악 은 할 수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음악은 내가 있기에 가능한 법.

    베를린 필이 없다고 해서 내가 나의 음악을 못 하는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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