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8화 (4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48화

    12. 6살, 세계를 울리다(2)

    2011년 7월 13일에 있었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배도빈의 데뷔 무대는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베토벤의 4번 교향곡을 편곡하여 바이올리니스트 와 협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화젯거리였는데.

    그 주인공이 불과 1년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친 ‘가장 큰 희 망’을 작곡한 다섯 살(만) 동양인이 라는 점 때문에 유럽 각지의 음악 잡지,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야? 다섯 살짜리 꼬마가 베를린 필과 협연? 이게 말 이나 되는 소리야?”

    “작곡가로서는 몰라도 연주자로? 배도빈 뒤에 누가 있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베를린 필이 뒷배가 있다고 협연을 할 것 같아? 그 콧대 높은 사람들이?”

    “음악가들은 이미 다 알고 있던 모양인데? 사카모토 료이치, 토마스 필스도 직접 관람했다던데.”

    “블레하츠나 가우왕도 마찬가지 야.”

    막상 취재에 나선 기자들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세계 최고의 관 현악단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상임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포함해, 모든 단원이 ‘베를린 필’ 의 소속임을 자랑스레 여기는 곳.

    그만한 실력을 갖춘 이들이었기에, 설마 하면서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일반 관객과 기자들은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교향곡 B플랫장조를 듣곤 전율을 느꼈다.

    클래식 음악이 이처럼 세련될 수 있었던가.

    정말 많은 연주를 들었던 그들이지만 이번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회는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정체되어 있던 클래식 음악의 연주가 마치 새롭게 한 발을 내디딘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당일 저녁부터 각 잡지사와 언론사는 급히 인터넷 기사를 올리기 시작 했다.

    【배를린 필, 관현악의 새 지평을 열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B플랫장조는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합작.”]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의 4번 교향 곡에 대해]

    【작곡가 배도빈, 바이올리니스트로 데뷔]

    【베를린 필 공식 발표, “배도빈은 베를린 필의 객원 연주자.]

    베를린 필하모닉의 7월 13일 공연 에 관련된 기사만 수십 개에 달했으며, 이를 접한 클래식 업계 사람들 은 눈을 의심했다.

    몇 년 전부터 배도빈이라는 이름이 조금씩 들어본 적 있었지만, 그중에는 배도빈이란 동양인 작곡가에 대 해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단지 ‘가장 큰 희망’을 포함해, 그 의 정규 앨범을 들었을 뿐.

    대한민국이라는 클래식 음악 불모 지에서 가끔 나타나는 천재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독일 언론사 7개와 영국,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써낸 기사를 보곤 비로소 유럽 내에서도 배도빈 이란 이름이 정확히 알려지게 된 것 이었다.

    다섯 살,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트스.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기사가 올라왔기 에 정보는 많았지만 그 내용만큼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클래식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취미로 즐기는 사람도 겨우 다섯 살짜리 아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ㄴ 오늘 베를린 필 연주회 다녀온 사람 계십니까? 기사 내용이 좀 믿을 수가 없네요.

    ㄴ 베를린 필 언제 이렇게 망가졌냐? 할 짓이 없어서 어린애 데려다 가 언플하는 거냐?

    ㄴ 다녀온 사람입니다. 배도빈의 연주는 고혹적이었고 베를린 필은 여 전히 세계 최고였습니다.

    ㄴ 기사가 사실인가요?

    ㄴ 적어도 저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관중이 기립 박수를 보냈으니까요. 물론 저를 포 함해서요.

    ㄴ 헛소리도 작작 해라. 모차르트도 여섯 살부터 여행 다니면서 연주했어. 배도빈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딱 봐도 유명해지려고 무리수 두는 거잖아.

    ㄴ 저도 다녀왔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더군요. 협연자에 대한 상례라 고는 하지만 마에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필이 배도빈이 홀로 박수를 받을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ㄴ 아,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또 그 어린 바이올리니스트가 마에 스트로와 단원들에게 함께 일어나 박수를 받자고 권하는 모습도 참 인상 깊었죠.

    ㄴ 아, 이 새끼들 다 아르바이트 하 냐? 점잔 빼면서 헛소리들 하고 자 빠졌네.

    ㄴ 배도빈의 첫 번째 앨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이 직접 연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카모토 료이치와 함께 연주한 클래식 기 타와 바이올린의 2중주 한번 들어보 세요.

    ㄴ 한 분이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 보군요. 부디 좋게 잘 풀리기 바랍니다.

    ㄴ 힘든 일이 있으셨나 보네요. 힘내세요.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함께 즐거 운 저녁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분 주하셨다. 거의 눈을 감고 아침을 먹자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시기에 여쭸다.

    “오늘 어디 가요?”

    그러자 아버지가 씩 웃으면서 내 잠옷을 벗기셨다. 혼자서도 갈아입을 수 있는데 항상 그러신다.

    그간 못 하셨으니 잠자코 두 팔을 올려 아버지에게 호응했는데, 깜빡 잊고 있던 일을 알려주셨다.

    “오늘 도빈이가 참여한 영화 개봉 일이잖니.”

    “아.”

    그간 연주회에 집중하고 있어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니위즈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죽음의 유물: 2 부’가 오늘 개봉하는 모양이다.

    ‘녹음은 잘되었으려나.’

    사실 독일로 와서 적응하고 이런저 런 일이 있었기에 ‘죽음의 유물’의 음악 자문을 맡고 있는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부탁을 했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라면 믿을 수 있었기에 그리 했는데, 이번에 녹음을 한 곳이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은 걱 정이 되었다.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을 따라 악보를 최대한 남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쓰는 데 공을 들이긴 했는데, 지휘자에 따라 해석을 어떻게 하는 지 달라지기도 하니.

    어쩔 수 없는 걱정이었다.

    ‘사카모토가 잘해줬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양말을 신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무더운 날씨인데, 신기하게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도리어 오랜만에 함께하는 가족 나들이가 지난 몇 주간 노력해 준비한 ‘연주회’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베를린에 있는 스크린만 300개가 넘는다고 하더구나.”

    이동하는 와중에 아버지께서 알려 주셨는데, 베를린은 영화가 정말 발 달되어 있단다.

    베를린 시내에 있는 영화관만 100 여 곳 이상이라고 하니, 그 규모의 크기를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서울에서 가봤던 극장을 생각해 보면, 그런 거대한 영화 관이 100개 이상이라는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는 작은, 영화 관에 도착했다.

    ‘UCI?’

    “엄마랑 데이트하던 곳이야.”

    아버지의 말을 듣고 두 분을 번갈 아 보니 어머니께서 쑥스러워하시면서 아버지를 툭툭 밀었다.

    “아빠도 독일에 있었어요?”

    “엄마 때문에 오래 있었지?”

    “도빈이한테 거짓말하지 마요. 당 신 매일 탐사한다고 몇 주씩 사라졌으면서 독일에 오래 있긴요.”

    “그래도 독일에 가장 오래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내심 아버지가 독일어 자막을 못 알아보시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내부로 들어가 티켓을 끊고 상영관 에 이르니 벌써 사람이 가득했다.

    “마지막 편이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네.”

    “그러게요. 잘되면 좋을 텐데. 그치, 도빈아.”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부모님 사이에 앉아 콜라를 마시는데, 어머니께서 조용히 내 컵을 어머니 의 것과 바꾸셨다.

    어머니를 올려다보니 고개를 좌우로 저으시기에 포기하고, 설탕이 들 어가 있지 않은 오렌지 주스를 마셔 야만 했다.

    이윽고.

    상영관 내부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영화는 확실히 만족스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보는 내내 땀을 쥐었고, 감동을 받기도 슬픔을 느끼기도 했으며 마지 막에 이르러서는 등장인물들이 성인 이 된 장면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사이에 1편에서부터의 이야기를 쭉 다시 떠 올리자 마치 오랜 친구와 헤어진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이 이야기의 뒤는 오직 상상 으로만 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빈아, 재밌었어?”

    “네. 재밌었어요. 더 잘생긴 쌍둥이 가 죽은 건 너무 안타까웠지만요.”

    어머니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빈이가 만든 곡은 어디서 나왔어?”

    제목이 나온 뒤 마법학교가 배경으로 나온 장면부터 요정의 무덤이 나 오기까지 일부분.

    마법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이 방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분.

    그리고.

    혼혈의 영웅이 남긴 기억을 보여줄 때.

    ‘ein mutiger Geist(용감한 영혼)’이 사용되었음을 두 분께 설명해 드리 자, 부모님께서 나를 기특하다는 듯 나를 사랑스럽게 보셨다.

    “도빈이 덕분에 아빠도 재밌게 봤다.”

    “네.”

    내 음악으로 인해 두 분이 행복하셨다니, 더없이 행복했다.

    한편.

    최우철 EI전자 사장의 압력으로 인해 배도빈에 대한 이야기가 잠잠해 졌던 대한민국에서도 7월 13일, ‘죽 음의 유물: 2부’가 개봉되었다.

    영화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영화를 감상한 사람들의 감상이 올라왔고, 영화관은 개봉일로부터 며칠간 매진을 거듭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래 사랑받았던 지니위즈 시리즈에 대한 여러 정보가 쏟아져 나왔는데.

    영화리뷰를 하는 어느 사람으로 인해 한 가지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죽음의 유물: 2부를 더욱 재밌게 감상하기】

    해당 영상의 조회 수는 영화 개봉 에 맞춰 폭발적으로 올라갔는데, 그 내용에 배도빈에 관련한 내용이 담 겨 있었다.

    -다섯 번째. 죽음의 유물: 2부의 사운드 트랙을 만든 음악 감독은 프 랑스의 영화 작곡가 알렉스 데스플 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드물게도 한 사람의 이름이 더 있는 데요. 배도빈. 네, 몇 달 전 TV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천재 음악가 배도

    빈 군이 죽음의 유물: 2부에 참가했다는 점입니다.

    높은 조회 수에 비례해, 해당 영상 에는 수많은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 리기 시작했다.

    각종 커뮤니티에 ‘실화냐’라는 제 목으로 퍼지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ㄴ 개소름이네 진짜.

    ㄴ 여섯 살 아님? 뭔데? 구란 거 같은데.

    ㄴ 얘 TV에서 봄. 바이올린 레알 소름 돋게 연주하던데.

    ㄴ 네, 다음 주작.

    ㄴ 어휴. 배도빈 모르면 닥치고들 있어라. 일본에서만 클래식 음악으로 20만 장 가까이 팔았는데

    ㄴ 여기 기사 봐라.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연주자로 데뷔했단다. [링크]

    ㄴ 번역은?

    ㄴ 지난 6월, 베를린 필하모닉의 사 무국장 카밀라 앤더슨 씨는 배도빈이 정식으로 베를린 필의 객원 연주 자 계약을 마쳤다고 밝혔다.

    ㄴ 베를린 필이 뭔데?

    ㄴ 아니 쉬바 지금 저게 중요한 게 아니라 대체 얼마 번 거임? 우리나라에서 저런 거 한 사람 있음?

    ㄴ 근데 왜 기사 같은 거 없음?

    ㄴ 우리나라에서 활동 안 해서 그런가 보지 뭐.

    ㄴ 왜 우리나라 사람이면서 우리나 라에서 활동 안 하고 밖에서만 하는데?

    ㄴ 내가 어태 알아 븅딱아.

    배도빈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

    모르나 이번 기회에 호감을 가지게 된 사람,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진 사람이 다양했으나.

    중요한 것은 배도빈이란 이름이 더 이상 누군가 막는다고 해서 감춰지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를 인지한 국내 언론사들은 급히 베를린으로 기자를 출장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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