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6화 (4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46화

    11. 6살, 오케스트라에 대해(5)

    2주 뒤에 있을 연주회를 앞두고, 악보를 받아든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자들은 아연실색했다.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답게 그가 해석한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의 4번 교향곡은 너무도 완벽해 보였다.

    당장에라도 호흡을 맞춰보고 싶을 정도였는데, 문제는 4악장이었다.

    바순 수석 연주자 마누엘 노이어가 눈썹을 좁히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에게 다가갔다.

    “세프, 실례합니다.”

    “무슨 일인가.”

    “4악장의 템포가 지나치게 빠른 듯 합니다.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설명 해 주시겠습니까?”

    바순 수석 마누엘 노이어 뒤로 금관악기 연주자들이 함께했다.

    지금이야 오랜 시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라는 걸출한 지휘자와 함께하 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은 상임 지휘자가 없는 세월이 더 길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인정할 만한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들은 기본적으로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연주 자다. 더군다나 세계 최고의 관현악 단 ‘베를린 필’ 소속이라는 사실에 무엇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존경하고 그를 따르나.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적으로 복종하는 이는 없다.

    그가 완벽한 지휘자로 있기에 그들 도 완벽한 ‘악기’로 있는 듯, 부당한 지시를 따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악보 해석에 문제가 있는 듯하여 물었거늘, 정말 생각지도 못 한 답변이 나왔다.

    “그건 내가 답해줄 말이 아닌 듯하 군.”

    “그게 무슨.”

    “들어오게.”

    푸르트벵글러가 신호를 보내자 한

    아이가 연습실로 들어왔다. 몇 번 얼굴을 봤던, 입이 험한 꼬맹이었다.

    한 달 전쯤에 견습 바이올린 연주 자 한스를 제대로 혼내주었으며.

    당시 오디션 참가자들을 단 한 번의 연주로 포기하게 만들었던 아이다.

    “2주 뒤에 있을 연주회의 첫 번째 연주곡인 B플랫장조는 나 혼자 해석하지 않았네.”

    푸르트벵글러가 주변을 둘러본 뒤 말했다.

    “이번 연주회의 협연자 배도빈 군 이 함께해 주었지. 도빈 군, 노이어 수석이 의문이 있는 모양이네. 답변할 수 있겠는가.”

    ‘이게 무슨.’

    마누엘 노이어뿐만 아니라 연습실 에 모인 모든 연주자가 말을 잃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라고 해도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에 관여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푸르트벵글러의 말을 들은 단원들의 표정은 금세 썩어들었다.

    나도 푸르트벵글러도 예상한 반응 이었는데, 그럼에도 푸르트벵글러는 고집을 부렸다.

    온전히 자신이 해석한 악보가 아닌데, 그것을 숨길 수는 없다고 말이다.

    지휘자로서의 자존심의 문제인 듯.

    그러나 이렇게 반발이 있을 것도 예상했는데, 푸르트벵글러는 단호히 말 했다.

    지금처럼.

    “악보에 대해 의문이 있다면 얼마든지 의견을 제시하게. 모든 것은 배도빈 군이 설명할 것이야. 배도빈 군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그 답을

    납득할 수 없다면 다시 말하게. 그렇지 않는 이상 첫 곡은 이 악보로 진행할 것이니.”

    푸르트벵글러가 말을 마치자 사람들 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불신의 눈빛이다.

    바순 수석 마누엘 노이어가 입을 열었다.

    “꼬맹아, 4악장 템포를 이렇게 배정 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겠니.”

    “B플랫장조 4악장의 테마는 변화예요. 템포, 음색, 음폭을 다양하게 가 져가야 효과적이죠.”

    “악보는 제대로 볼 수 있는 거니?

    분명히 ‘빠르게, 하지만 지나치지 않게(Allegro ma non troppo)’라고 적 혀 있지 않느냐. 위대한 베트호펜이 왜 이런 말을 적어놓았을 것 같으냐.”

    위대한 베트호펜이라니.

    알고 보니 솔직하고 착한 친구다.

    “알고 있어요. 당시엔 지나치게 빠르게 가면 따라오지 못했으니까요.”

    “……당시 엔?”

    “네. 하지만 아저씨는 할 수 있잖아요?”

    “ 뭐야?”

    “베를린 필하모닉의 바순 수석 마누엘 노이어가 아니면 이런 편곡을 누 가 감당할 수 있겠어요? 아저씨니까 이렇게 한 거예요.”

    “그게 무슨.”

    “빠르고 다양한 곡이 많이 나온 지 금, 청중들은 예전 B플랫장조의 악보 로는 즐겁지 못해요. 템포 변화가 더 욱 크게 이루어지고 음의 수직 배열도 크게 잡아야 개성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게 버겁다는 말 아니 니. 꼬맹아,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오케스트라는 한 악기가 움직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수십 개의 악기가 하 나처럼 움직여야 하는 거야.”

    “ 알아요.’’

    “안다면 이런 편곡을 해서는 안 되지.”

    “안다고 말씀드렸어요, 노이어. B플 랫장조의 최신 버전은 베를린 필하모닉에서만 할 수 있으니 지금이 아니 면 안 되는 거예요.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도, 빈 필하모닉도 상 상할 수 없는 연주를 해요.”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이렇게나 편리한 일이다.

    예전 같았으면 불가능했을 터.

    그러나 현대 독일어에 익숙해지면서 내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얼마간 알아보기로 베를린 필하모닉은 정말이지 조금의 거짓도 없이 내가 상상하던 최고의 관현악단이 라 할 수 있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라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지휘자뿐만이 아니라, 각 악기의 연주자들 역시 세계 최고라고 인정받을 만했다.

    비단 이승희만이 뛰어난 게 아니었다는 듯, 정말 지구 곳곳에서 가려지 고 가려진 연주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하기에 가능했던 편곡.

    그러하기에 가능한.

    도발이다.

    “……짓.”

    마누엘 노이어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바순을 꺼낸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에서, 못 한다고 하기엔 그의 세계적인 명성과 자신이 최고라는 자존심이 너무도 큰 탓이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마누엘 노이어가 그런 행동을 보이자 다들 자리로 돌아가 악기를 준비 했다.

    예전의 내가 지휘를 할 때 가끔 사용하던 방법이 먹힌 듯하다.

    당시에는 내 명성에 짓눌려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악단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용도로 즐겨 사용했다.

    음악을 하는 사람만큼 자존심이 강한 이들도 드무니까.

    모든 예술인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한 분야의 정점에 이른 이들이 면 특히 더 그러하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고.

    저들도 마찬가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난 몇 년간 베를린 필하모닉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선정되지 못한 것을 신경 쓰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상임 지휘자가 그것을 신경 쓰는데, 연주자들이 아무렇지 않을 리 없을 거라고.

    그 예상이 들어맞았고.

    나는 내 의지대로 200년도 전에 쓴 B플랫장조를 현대의 입맛에 맞추어 고친 악보를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 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설명을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얼 핏 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재밌을 것 같군.”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곡을 헤치기 는커녕 더……

    “……그래. 나아. 원래 연주하던 악보보다 나아졌어.”

    “정말 저 애가 한 걸까요? 믿을 수 없어요. 베토벤이 다시 살아 돌아온 다고 해도 이렇게는……

    할 수 있지.

    세계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은 곳답게 차근차근 설명을 하니 다들 이해 한 모양이다.

    빗발치던 질문이 점점 잦아들더니 나중에는 경청하는 분위기가 되어 한결 수월해졌다.

    “다들 이해한 모양이군.”

    “네.”

    푸르트벵글러와 단원들과 조금 떨어 진 곳으로 가 대화를 나누었다.

    “이 영악한 녀석. 지금 보니 그때 내게 세계 최고니 뭐니 했던 것도 일 부러 한 말이었구나.”

    다른 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 씩 웃어주니 푸르트벵글러가 허탈하게 허허 하고 웃었다.

    “어린 녀석이 저 친구들을 다룰 줄 도 알고 말이야. 지휘에도 관심이 있었던 게냐.”

    “하고 싶죠.”

    “으음. 꼭 여기로 와야 한다. 빈이나 다른 곳으로 갔다가는 혼줄을 내줄 거야.”

    “베를린 필하모닉이 그때도 세계 최고라면요.”

    “ 뭐야?”

    잔뜩 인상을 썼던 푸르트벵글러가 나를 보더니 껄껄 웃었다.

    상임 지휘자.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때부터 단원들의 투표로 선임되게 되었다.

    그런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상임 지 휘자로 군림하고 있는 푸르트벵글러라면, 뛰어난 지휘자가 단순히 곡을 잘 해석하는 사람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음악적 완벽함은 기본.

    관현악단의 구성원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와 요령도 지휘자가 가 져야 할 필수 덕목이다.

    만일 오케스트라의 악기인 연주자들 이 ‘연주자’인 지휘자에 대해 의구심을 품거나 신뢰를 잃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지휘자는 지휘봉을 들고 단상에 설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푸르트벵글러였기에 저들을 상대하는 내게서 ‘노 하우’를 캐치한 것이다.

    “이제 연습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야지. 1악장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 되 지만, 들어볼 테냐?”

    “그럼요.”

    “하하. 좋아. 그럼 일어나 볼까.”

    여기서부터는 다시 푸르트벵글러의 역할이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 1악장에 등장하지 않는 악기의 연주자들은 개인 연습을 위해 연습실에서 나갔고, 푸르트벵글러의 지시 아래 베를린 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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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보를 받아보고 처음 하는 연주임에도 곧장 소화해내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조금씩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푸르트벵글러가 곧장 지적을 했고, 연주자들 역시 한 번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이것이 베를린 필하모닉.

    세계 최고의 관현악단.

    이승희의 제안을 받고 이곳으로 온 것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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