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5화 (4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45화

    11. 6살, 오케스트라에 대해(4)

    “베를린 필하모닉이 세계 최고가 아니에요?”

    “뭐, 뭐라고?”

    독일에 머문 지 한 달이 흘렀다.

    그간 푸르트벵글러를 포함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들과 시간을 가지며 현대의 독일어를 어느 정도 익 힐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옆집 할아버지가 되 어버린 푸르트벵글러와는 특히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예로 들어 현대의 오케스트라에 대해 많은 이 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가 메모한 악보를 보며 감상을 전 해주었다.

    푸르트벵글러는 자신의 음악 해석을 완벽히 이해한 나의 코멘트에 매 일 감격했으며.

    나는 그에게 현대의 음악을 보다 깊이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사카모토 료이치에게는 미안한 말 이지만, 클래식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 장르를 다루는 그에 비해 푸르트벵글러와의 대화가 더 깊이를 가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만큼 자연스럽게 푸르트벵글러와 가까워졌고,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2위라고 들었어요.”

    그러는 와중,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푸르트벵글러가 주먹을 불끈 쥐며 부 들부들 떨었다.

    “그럴 리가! 미친놈의 헛소리야. 베를린 필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관현악단이다.”

    “하지만 여기엔 암스테르담이 최고 라고 나와 있는데요?”

    내가 오래된 잡지를 보여주자 푸르트벵글러가 그것을 빼앗아 발기발기 찢었다.

    나이도 있는 사람이 기운도 좋다.

    “이, 이 빌어먹을 평론가들! 알지 도 못하면서 입으로만 나불대는 놈들이야! 그런 놈들이 정한 순위 따위, 아무런 의미 없다! 이런 것에 속으면 안 돼!”

    “네. 푸훗.”

    “이 이이 익!”

    사실, 나도 푸르트벵글러와 같은 생각이다.

    그저 지휘를 할 때는 그렇게 철두 철미한 그가 평소에 보이는 이런 인 간적인 모습이 재밌어 놀리는 것뿐 이다.

    2008년, 그러니까 내가 한국 나이 로 세 살 때 영국의 그라모폰이라는 잡지가 전 세계의 음악 평론가를 상대로 투표를 한 결과.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런 순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만 푸르트벵글러에게는 치욕 이었던 듯하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만 20년 가까 이 상임 지휘자로 활동한 그에게 베를린 필은 본인의 자긍심이었고.

    세계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이라는 그가 마리 얀스라는 또 다른 마 에스트로에게 밀려 2위를 했다는 사실이 못내 분한 모양이다.

    “이런, 이런 쓸모없는 녀석들 같으니! 귓구멍을 하나 더 뚫어도 시원찮을 놈들!”

    몇 년 전 잡지를 저렇게 꾸깃꾸깃 밟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의미 없다면서 왜 그렇게 화를 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그런 줄 아니까. 대체 이걸 어디서 얻은 거냐.”

    “승희 누나가 공부하라고 준 거에 있었어요.”

    “이, 이승희!”

    평소에는 이렇게 성질 더럽고 귀여운 옆집 할아버지 같지만, 그의 음악 세계는 놀라울 만큼 세련되었다.

    그와 함께한 한 달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존경할 만한 음악가로 인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런 그가 이토록 분해하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았기에 그의 자 존심을 건들 요량으로 넌지시 입을 뗐다.

    “2006년에는 빈 필하모닉이 1위였네요. 암스테르담은 2위. 베를린 필 은 3위.”

    “뭐, 뭐라고오!”

    또다시 예전 잡지를 찢어버리는 푸르트벵글러를 보며 말했다.

    “세프.”

    씨익씨익-

    분함을 못 이겨 씩씩대는 푸르트벵글러가 정신을 차리고 나를 보았다. 평소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내게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왜 그러느냐.”

    “난 베를린 필하모닉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요.”

    “암!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이라면 당연히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지!”

    “그래서 말인데요.”

    “음?”

    “저도 베를린 필하모닉이 세계 최고라고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어요.”

    “크흠흠. 허어. 날이 덥구나.”

    갑자기 푸르트벵글러가 말을 돌렸다. 벌써 세 차례나 이런 반응을 보였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단단히 마 음을 먹었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연주회 나가고 싶다고요.”

    “그게……

    내 실력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 이렇게 답답하게 구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

    그간 나는 프루트벵글러와 함께 악보를 함께 해석하며 충분한 공을 들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들과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연습을 하며 그들 사이에서도 ‘입이 험한 천재’로 인정받고 있었다.

    문제는 단 하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대체 왜 안 된다는 거예요?”

    반드시 답을 들어야 직성이 풀릴 듯하여 재차 묻자 푸르트벵글러가 그제야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까워서 그래.”

    이건 또 무슨 개똥 같은 말이야.

    “그게 무슨 개똥 같은 말이에요.”

    “너, 너, 스승에게 그게 무슨 말버 릇이냐.”

    “스승이 아니라 옆집 할아버지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제가 가르쳐 드 린 게 훨씬 많은데요?”

    “뭐, 뭐라고!”

    푸르트벵글러와 옥신각신한 끝에 누 가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냐에 대 해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대화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나는 널 독주자로 쓸 생각 이다. 기회가 올 테니 기다려라.”

    “벌써 한 달이나 흘렀잖아요.”

    “프로그램은 그리 쉽게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푸르트벵글러가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비록 최고 지휘자라고는 하지만 공연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무국, 연주자 그 리고 팬이 함께 정하는 일이야.”

    “그런 건 이유가 되지 않아요. 어떤 곡이든 잘해낼 수 있어요.”

    “……후우. 이 못 말리는 꼬맹이 같으니. 좋아. 네가 우쭐해질 것 같아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말한 푸르트벵글러는 아무도 없는 주변을 살피는 척을 했다.

    “반드시 비밀로 해야 한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가방 안에서 악보 하 나를 꺼냈다.

    Sinfonie Nr.4 B-dur op.60

    내 네 번째 교향곡이었다.

    이곳저곳 메모한 것이 많았는데 얼 핏 보았기에 무슨 내용인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네가 좋아하는 베트호펜의 B플랫 장조다. 지금껏 시도해 보지 않았던 일인데, 이 곡을 고쳐 네 독주무대를 넣어주고자 한다.”

    선뜻 푸르트벵글러의 말이 이해되 지 않았다.

    “무슨 뜻이에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을 하자는 말이다. 실은 이걸 준비하려고 네 데뷔 무대가 늦어지는 거란다.”

    푸르트벵글러가 넘겨준 악보를 받아 들었다.

    그것에는 바이올린 독주를 포함시키려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민이 많아. 이만한 완성도를 가진 곡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네 독주를 돋보이는 작업이. 어때, 재밌지 않겠느냐?”

    “네. 재밌을 것 같아요.”

    확실히 내 데뷔 무대로서 손색이 없는 선택이다.

    B플랫장조는 힘을 빼고 작곡했다.

    C단조 교향곡(운명)을 작곡하던 와 중에 머리를 환기시킬 겸 만들었던거고.

    그간 나의 음악을 확인하고자 시작 한 이 곡은 부담감을 가지지 않았던 탓인지 꽤 만족스럽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장난도 쳤고.’

    도입이라든가 말이다.

    ‘꽤 다듬어지는 시기였지.’

    지금도 그러하지만 음의 강약과 변화를 크게 주는 내 스타일은 초기에는 거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는 데, 아마 이 시기부터 제대로 감은 잡았던 것 같다.

    ‘덕분에 C단조를 잘 만들 수 있었고.’

    스스로 내 음악 세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여기는 만큼, 데뷔할 곡으로는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3악장이 괜찮을 것 같은데.’

    독주를 넣는다면 3악장의 중반부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악장에서 테마를 연주하는 것도 나 쁘지 않을 것 같지만.••… 1악장에서 바라는 건 어느 하나의 악기가 뽐내는 게 아니다.

    2악장의 경우에는 제1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서로 공명하듯 작용하기에 제외.

    역시 3악장에서 트리오 부분을 고쳐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낭만 시대의 음악가들을 보면 스케르 초에 변형을 주었는데, 당시 나 역시 형식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때였다.

    하여 스케르초, 트리오, 스케르초로 진행하였는데 그게 썩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적절한 변형이 가능하리라.

    이런 생각을 말하자 푸르트벵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담한 발상이야. 어디 한번 고쳐볼 수 있겠느나?”

    당장의 생각을 악보에 옮겨 적었다. 푸르트벵글러가 그것을 옆에서 그것을 자세히 살피다가 읊조리듯 말했다.

    “……내가 지금 베트호펜과 함께 있는 것인가.”

    아직은 틀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지만 푸르트벵글러는 만족한 듯싶다.

    “4악장은 어떤가.”

    B플랫장조의 4악장은 확실히 바이올린과 목관악기가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이쪽에서도 활약을 하고 싶은데, 빠른 연주를 하다가 일순간에 속도를 늦춰 관객을 놀라게 했다가,

    다시금 연주 속도를 높이는 등 즐거운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앞서 3악장을 건든 것처럼 대충의 방향을 제시했는데 푸르트벵글러가 흐음 하고 신음을 냈다.

    “ 왜요?”

    “장난을 치고 싶구나.”

    역시 푸르트벵글러다. 내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재밌을 거예요.”

    “확실히 그렇겠지만 4악장은 연주하는 데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어. 템포를 이렇게 조절해 버리면 너무 빨라 음이 쉽게 뭉개질 수 있지.” 푸르트벵글러가 이상한 의견을 냈다. 평소에 그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인 데, 조금 전에 그를 너무 많이 놀린 듯하다.

    “뭐가 문제에요? 세계 최고의 관현악 단과 할아버지가 있는데.”

    "..."

    푸르트벵글러는 내 말을 듣곤 악보에서 눈을 떼 나를 보았다.

    “그래. 그렇지!”

    “네. 그거예요.”

    세계 최정상의 관현악단과 함께 연주를 하는데, 자잘한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과거, 내가 살았을 적에 비해 현대의 전문 연주자들은 그 기량이 크게 늘었고, 하물며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관현악단의 단원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지난 한 달간 내 귀로 직접 확인했기에 확신할 수 있다.

    다소 연습은 해야겠지만.

    분명 더욱 즐거운 4번 B플랫장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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