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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2화 (42/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42화

11. 6살, 오케스트라에 대해(1)

더위가 점점 무르익어 햇볕이 뜨거 운 날이었다.

오디션 당일이라 어머니께 인사를 한 뒤 이승희와 함께 베를린 티어가 르텐으로 향했다.

“저기야.”

이승희가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요란스럽게 생긴 건축물이 눈 에 들어왔다.

누런 외관의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은 육면체 건물에 익숙한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나중에 홀도 보여줄게. 기대해도 좋아.”

외관만큼이나 독특한 모습인 듯, 이승희가 내 호기심을 부추겼다.

오디션을 보는 장소는 소연습실.

복도를 통해 오디션 장소로 이동하고 있는데, 본래보다 조금 일찍 도 착했는데도 벌써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다.

“승희.”

“아, 짜증 나.”

막 소연습실로 들어가려는데 체격 이 좋은 갈색 머리 남자가 이승희를 불렀다.

이승희가 한국말로 짜증을 내고 돌 아보는 걸 보니 그리 사이가 좋지 못한 듯하다.

“한스.”

“한국에 다녀온다더니, 이 꼬마가 네가 말했던 친구인가 보군. 생각보 다도 너무 어린데? 괜찮겠어? 하하 하!”

한스라는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너보다는 훨씬 낫지.”

“하하! 농담도. 아무튼, 이번에야말 로 부수석이 될 것 같으니 나중에 축하주 한잔하자고. 근사한 곳을 알 아두었거든.”

그렇게 말한 한스는 다시 한번 나를 내려다보더니.

“이런 아시아 꼬맹이는 빼고 말이야. 젖 좀 더 먹고 와야겠는걸? 하 하하!”

신경 긁는 말을 했다.

그동안 좋은 사람만 만났는데, 이런 시건방진 인간은 참으로 오랜만 에 보는 것 같다.

“견습 딱지나 떼고 말하지?”

“오오. 이번 기회에 한 번에 올라가란 뜻인가? 멋진 응원이군.”

이승희를 보니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기에 한마디 쏘아줬다.

“건방 떨지 말고 입 다물게. 숙녀 께서 싫어하시잖나.”

“뭐, 뭐?”

“집적거리지 말고 꺼지라 했네.”

순간 복도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 선이 내게 집중되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가만두면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기에 단단히 일 러둔 것.

내가 독일어를 할 줄은 몰랐던 모 양인지 한스라는 놈이 당황하여 입 만 뻥긋거리고 있는데.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스, 어린애한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면 그만하는 게 어때? 이승희 수석에게 그만 ‘집적’대라고. 하하!”

그중에서도 크게 웃은 남자가 한스를 비아냥댔고.

“네가 도빈이니? 방금 정말 시원했어. 어쩜 그렇게 독일 말을 잘하 니?”

흑인 여성이 다가와 자세를 낮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배도빈이라 하네. 독일 영화를 보 며 배웠지.”

“하하하하! 귀여워. 정말 잘하네. 혹시 80년대 영화를 보며 배운 건 아니지?”

‘1780년이라면 맞긴 한데.’

“난 제이미라고 해. 반갑다.”

“반갑소.”

제이미란 여성과 악수를 나누자 한 스가 분을 못 이기고 자리를 박차고 가버렸다.

‘찌질한 놈.’

혀를 차곤 주변의 환영을 받으며 오디션장으로 들어가는데, 이승희가 내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정해진 대기석에 앉으니 이승희가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혼자 있을 수 있지?”

“그럼요.”

“그래, 잘하고. 아, 한스 일이라면 신경 쓰지 마. 워낙 그래서 다들 안 좋게 보고 있는데 마침 잘 쏘아붙여 줬어.”

“신경 안 써요.”

이승희 내 대답을 듣더니 씩 하고 웃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이승희가 오 디션장을 빠져나간 뒤 주변을 살펴 보았다.

다들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든

지, 아니면 자신의 악기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악보를 보기도 했는 데, 그 악보에 빼곡히 메모가 되어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준비를 많이 한 모양.

이승희의 말에 따르면 이미 1차 오디션에서 전원 불합격을 받았고, 오늘 2차 오디션 전에 이미 한차례 단체 심사를 받았다고 한다.

오늘 이곳에 모인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은 그 단체 심사를 통과 한 사람이라는 뜻.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체 심사’를 거치지 않은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집중 하고 있다는 것은.

나를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거나, 또는 남을 신경 쓸 시간 에 마인드 컨트롤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일 터.

너무도 어린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다른 후보를 신경 쓰지 않고 본인 할 일에 충실하다는 것은 높게 평가 할 일이다.

저기, 가장 늦게 들어온 한스라는 녀석을 제외하면 말이다.

출석을 불러 모든 사람이 모인 것을 확인하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이 어디론가 향했고.

이윽고 세 사람이 오디션장으로 들 어왔다.

다들 일어나 그들을 맞이하는 와중 에 유심히 세 사람을 관찰했다.

말끔한 차림의 노인과 금발의 젊은 남자. 그리고 단발머리의 여성.

저 노인이 아마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일 것이다.

‘저 사람은 악장인가.’

단발머리의 여성이 곧장 피아노 앞으로 갔기에 금발 남자에 대해서는 악장이라고 추측했다.

‘젊은데.’

보통은 관현악단과 지휘자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니 베테랑이 하는 것 이 일반적일 텐데, 생각보다 젊다.

어찌되었든, 심석에 자연스럽게 앉는 걸 보니 오늘 심사는 저 두 사람이 보는 것 같다.

“그럼, 1번 참가자를 제외하고 모 두 밖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1번 참가자, 배도빈 씨.”

‘ 엉?’

1번일 줄이야.

다른 지원자들이 우르르 나가려는 와중, 바이올린을 챙겨 앞으로 나가 려는데.

“아, 잠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손을 들었다.

“배도빈 군, 오디션을 할 때 모두 듣게 하고 싶은데, 괜찮은가.”

무슨 생각일까.

보통은 방해되니 이러한 요구는 하 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적어도 내가 이곳에서 활동했을 적의 관현 악단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 각하여, 통역가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하기 전해 먼저 대답했다.

“방해만 없다면 괜찮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조금 놀란 듯했다.

아마 말이 통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이승희도 몰랐으니 무리는 아 니지만, 신기한 모양이다.

“좋아. 다들 자리에 착석해 주게. 도빈 군은 준비되면 바로 시작하 고.”

자리를 잡고 피아니스트와 시선을 마주했다.

온화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미소 지으니 그녀도 화답해 주었다.

이로써 신호는 맞춘 셈.

현을 켜기 시작했다.

‘F 장조라고?’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오디 션을 본다고 하면 본인이 부각되는 곡을 선정하게 마련이다.

어린, 경험이 적은 연주자일수록 그런 경향을 강하게 보이는데 당연

히 본인의 실력을 뽐내기 위함이다.

‘이해하고 있어.’

그러나 배도빈이 선택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도장조는 바이올린 과 피아노가 완벽하게 하모니를 이 루는 곡이다.

베토벤 전까지만 하더라도 2중주에 대한 관념이 제대로 없었다.

건반 악기가 반주로만 쓰이든, 현 악기가 건반을 보조하든 말이다.

베토벤의 초기 곡에도 이러한 경향 이 나타나는데, ‘바이올린 소나타 F 장조’만큼은 완벽히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조화를 이룬 곡이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어린 천재 배도빈이 자신의 상황을 확실히 파 악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섯 살부터 이름을 떨친 경우는 없다. 그러니 당연히 생길 선입관을 없애려 이런 선택을 한 것이야.’

말 그대로, 만 다섯 살의 아이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너무 고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 했다.

그러나.

♪♫♬

♪♫♬

눈앞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배도빈을 보니 그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조화로움 속에서도 베테랑 피아니스트를 리드하면서 자아내는 아름 다운 선율. 음을 내는 기초적인 행 위는 말할 것도 없으며, 곡의 해석 능력 또한 발군이었다.

‘맙소사. 믿을 수가 없군.’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으나.

배도빈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도장조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들 어본 연주 중에 최고였다.

마치 베토벤이 다시 태어나 연주한 다면 이런 느낌일까.

모두가 다른 연주를 하지만.

저 어린 바이올리니스트는 말하는 듯했다.

‘자기만이 옳다고 말하는 것 같군.’

바이올린 소나타 오장조는 이렇게 연주해야 한다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아름다운 선율과 그 음 사이의 간격에서 느껴지는 여운을 들으면, 그 부드러운 강요가 강요처럼 느껴 지지 않았다.

연주를 마치고 충분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반응이 없었다.

여운을 즐길 시간은 충분했을 터인 데, 심사관 두 사람도 지원자들도 가만있어 불쾌했다.

오직 피아노를 맞춰준 연주자만이 내게 밝은 미소를 주어 예를 갖추어 인사를 나누었다.

그제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입을 뗐다.

“고맙소.”

“별말씀을.”

“나가보셔도 괜찮소.”

그렇게 짐을 챙겨서 나오니, 복도 에 이승희가 서 있었다.

“어땠어?”

“재밌었어요.”

“재미?”

“네. 피아노 쳐준 분이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았어요.”

“다행이네. 그럼 돌아가기 전에 구 경 좀 하다 갈래?”

이승희가 앞서 말했던 홀이 어떻게 생긴지 궁금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소연습실 의 문이 열렸다.

그러곤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들이 한 무더기로 우르르 몰려나와 복도를 지나치는데, 나와 이승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이 모두 지나치고 나서야 크게 뜬 눈을 끔뻑이며 오디션장을 살피 려 하는데.

“아, 아직 안 가고 있었구만. 다행 일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복도로 나 왔다.

“세프(Chef)! 무슨 일이에요? 오디 션은요?”

나를 대신해 이승희가 나서서 물었고.

“합격이야. 잘 부탁하네, 배도빈 부 수석.”

푸르트벵글러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일단 그의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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