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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1화 (4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41화

    10. 6살, 입장(6)

    공개 오디션을 일주일 남기고, 도빈이가 오디션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도빈이의 앨범을 듣는 순간 합격하리라고 확신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이 연주를 과연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적어도 내겐 무리라고 생각한다.

    도빈이가 연주한 마지막 음이 가슴에 아직 머물러 있다.

    그것을 충분히 음미한 뒤에 눈을 뜨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말았다.

    “이렇게 연주하면 안 되죠?”

    그러나 내 박수가 무색하게, 도빈 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니야, 도빈아. 최고였어.”

    장담하건대 전 세계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를 두고 비교한다 해도 도빈

    이의 연주 실력은 손에 꼽힐 것이다.

    조금 고전적이긴 하지만 곡을 해석 하고 그 곡의 감성을 극대화하여 전달하는 데 있어서 나는 이 아이보다 능숙한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럼요. 당연한 말을.”

    “그래. 최고야.”

    다른 아이가 말했더라면 연습이나 더 열심히 하라고 했겠지만, 이 자신감 넘치는 아이의 말은 사실이다.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본인에 대한 자신감과 실력이 충만하니 나오는 말임을 잘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도빈이는 의외의 말을 해 내게 충격을 전해주었다.

    “독주라면 괜찮지만 아무래도 오케스트라니까요.”

    도빈이가 악보를 살피면서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태연해서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실, 오늘 도빈이에게 해줄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연주자가 기본적인 연주 스킬 은 물론이고 음을 뽑아내는 행위도 가능하다. 조금 더 뛰어난 사람은

    고난이도의 곡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일도 가능하다.

    물론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그 것은 그저 컴퓨터 흉내를 내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거장에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곡을 이해하고 해석한 뒤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도빈이는 이미.

    그런 거장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문제는 관현악단의 연주자로서 그 러한 행위는 크게 제약을 받는다. 최우선은 독립된 개체인 연주자가

    아니라 지휘자다.

    ‘오케스트라’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지휘자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가져야 할 소양이다.

    그러하기에 그 점에 대해 알려주려 했는데.

    저 어린아이는 이미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누나.”

    “응?”

    “푸르트벵글러 아저씨의 악보 구해 다 주세요.”

    “아, 악보를?”

    악보야 구해줄 수는 있지만 도빈이는 아직 외부자다. 무슨 생각을 하 는지는 알겠다만 형평성 문제도 있고, 괜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았기에 웃으며 도빈 이를 달랬다.

    “악보는 입단한 뒤에 볼 수 있단다. 소중한 악보잖니?”

    “네.”

    다행히 도빈이는 고개를 끄덕여 쉽 게 수긍했다.

    “그러면 실황 녹음한 것 좀 들려주 세요. 되도록 많이.”

    아마 여러 곡을 들어보고 푸르트벵글러의 음악 세계를 판단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귀여운 녀석.’

    악단의 악보를 보여주는 일이야 난감하지만 이런 일쯤이야 도리어 부탁받는 쪽이 기쁘다.

    “알았어. 내일 정리해서 가져다줄 게.”

    “네.”

    꼬마 주제에 시크하게 답하곤 다시 바이올린을 잡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나도 모르게 도빈이의 연주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덧 노을이 질 즈음해서야 정신을 차릴 정도로 말이다.

    공개 오디션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도빈이가 벌써 이틀이나 연습실에 오지 않아 걱정되어 호텔로 찾아갔다.

    어머님으로부터 도빈이가 음악을 듣는다고 전해 듣기는 했지만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어서 오세요.”

    “과일 좀 사왔어요.”

    “어머.”

    정말 아이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 로 도빈이의 어머님은 우아하게 아름답다. 그것을 받아들고 나를 환대 하시기에 조심스레 슬쩍 물었다.

    “도빈이 어디 아픈 건 아니죠?”

    “그게……

    어머님의 표정이 안 좋아진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닐 까, 걱정이 더욱 커졌다.

    “그런 건 아닌데 방에서 나오질 않네요. 잠도 제대로 안 자고 밥도 제 대로 안 먹어서 걱정이에요.”

    “네?”

    “잠깐 들어간 적 있는데 도빈이가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오디션 전까 지만이라도 들어오지 말아달라고 해 서요.”

    “그럼 밥은……

    “식탁에 차려 놓으면 나와서 먹고 들어가는데.”

    탁 _

    어머님과 대화를 하는 순간 도빈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탱탱하고 생기 넘치던 얼굴이 퀭하게 되어 어딘 가 반쯤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도빈아.”

    “아.”

    도빈이가 나와 어머님 그리고 식탁을 보더니 이내 자리를 잡고 앉아 입에 음식을 꾸역꾸역 쑤셔 넣기 시 작했다.

    오물거리는 것이 마치 살기 위해 먹는 것처럼 보였다. 입에 음식을 물고 있으면서 꾸벅꾸벅 조는데, 귀 엽기는 하지만 안쓰러웠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 물었다.

    “도빈아, 잠은 자? 이러다가 큰일 나.”

    “다 했어요.”

    “대체 뭘 했는데 그래? 응?”

    꾸벅.

    대화하는 와중에도 조는 걸 보니 정말 잠도 안 자고 뭔가를 한 모양.

    “도빈아, 안 되겠다. 자야 해.”

    “……네.”

    보다못한 어머님께서 도빈이를 이 끌고 침실로 향하셨다. 도빈이는 거 의 끌려가다시피 하며 걸어갔는데.

    궁금했기에 도빈이가 있었던 방으로 들어가자.

    ‘세상에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수의 악보가 지천에 널 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랐는데, 악보를 들자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 나 자세히 살펴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말 그대로 악보였다.

    내가 추려서 준 베를린 필하모닉의 실황 연주를 그대로 악보로 녹인 것.

    깜짝 놀라 여기저기에 흩어진 악보를 취합하자 11곡의 관현악곡의 악보가 완성되고 말았다.

    “설마.”

    아니, 설마가 아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 나온 말일 뿐이다. 지난 며칠 사이에 연주를 듣고 그대로 악보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것도 관현악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관악부와 타악부에 이르기까 지, 그야말로 악보를 완성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적어도, 관현악부의 악부만큼은.

    ‘완벽해.’

    정말 완벽했다.

    심지어 푸르트벵글러 상임 지휘자 의 코멘트마저 완벽하게 녹아 있었다. 표기하는 방식은 조금 달랐지만,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

    복잡한 심경이다.

    이게, 단순히 천재라는 말로 설명 가능한 일인가? 나조차 천재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음악계에 있으면서 정말 대단한 거장들을 봐왔지 만, 벽조차 어디에 있는지 모를 기분이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승희 씨?”

    “아, 네. 어머님.”

    “차 한잔하실래요?”

    김이 나는 머그잔을 앞에 두고 나는 말을 잊고 있었다.

    악보를 살펴볼수록 단순히 음악을 듣고 악보를 작성했다, 라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느낌을 받았기에 충격을 받는 것이다.

    “도빈이가 안에서 뭘 했나요?”

    “……며칠 전에 도빈이가 베를린 필의 실황 녹음본을 들려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몇 곡 뽑아서 줬는데.”

    “그걸 듣고 악보를 만든 모양이에요. 아마 지휘자의 성향, 아니, 베를린 필하모닉의 성향을 알아보기 위함이겠죠.”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네.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보통은...”

    보통은 절대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입단 오디션을 준비하는 거 라 말하기에는 과할 정도다.

    “보통은 그러지 않나 보네요.”

    “네. 참고삼아 연주를 반복해 듣고 나름대로 해석해 보는 건 당연하지 만 도빈이처럼 이렇게까지 완벽.”

    완벽이란 단어를 내뱉고나서 깜짝 놀랐다.

    ‘완벽.’

    그래. 완벽이다.

    “완벽하게 준비한 사람은 보지 못 했어요.”

    어머님은 반쯤 식은 차를 손을 꼭 잡은 뒤 입을 열었다.

    “도빈이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에요.”

    “그럼요!”

    곧장 고개를 들어 그 말에 긍정했으나, 어머님의 얼굴을 보고선 경솔 했음을 탓했다. 미처 몰랐는데 도빈 이의 어머니, 유진희 씨 역시 무척 피로해 보였다.

    아마, 도빈이가 깨어 있는 동안 걱 정되어 그녀 역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던 것이리라.

    “열심히 하는 건 부모로서 너무 기 특하지만, 저렇게 행동하니 그보단 건강이 걱정이네요.”

    아이는 없지만,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식의 성공이 자식의 건강보다 중 요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후후.”

    문득 유진희 씨가 웃었다.

    “정말 누굴 닮았는지 뻔하다니까요.”

    “네?”

    “도빈이 아빠도 저랬거든요. 유적을 찾는다고 몇 달씩이나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거지꼴을 하 고 와서는 밥 좀 사달라고 했었죠. 바보처럼 웃으면서 말이에요.”

    “……그게 멋졌어요. 그런 외골수 적인 모습이 말이에요.”

    “독일 유학 시절에 그렇게 만났었는데, 도빈이도 그러네요. 피는 못 속이나 봐요.”

    “아하하.”

    “손해 보는 거죠, 뭐.”

    멀리 침대에 누워 있는 도빈이를 보는 유진희 씨의 눈에는 걱정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도빈이를 많이 사랑하시네요.”

    “그럼요. 제 아들인걸요.”

    도빈이의 생각을 들려주겠다고 했던 아버님.

    그리고 아들을 깊이 사랑하는 어머님.

    그리고 그런 부모님을 끔찍이 아끼는 도빈이까지.

    이보다 사이좋은 가족이 또 있을까 싶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어머니와 함께 나란히 누워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대 해서는 알아봤고, 이제 베를린 필에 서 연주자로 활동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졸음이 쏟아지고 말았다.

    꼬르륵-

    자고 일어나니 배도 무척이나 고팠는데, 어머니께서 주무시고 계시기 에 조용히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자 식탁 위에 과일이 놓여 있었다.

    바나나가 있기에 하나 까서 먹는데.

    그 옆에 내가 적어놓은 악보와 쪽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공부 열심히 했던데?

    오디션 꼭 합셕하자. 파이팅!

    이승희가 적은 모양이다.

    언뜻 자기 전에 얼굴을 본 기억이 났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합격하지.’

    들어가서 적응 기간을 단축하기 위 해 베를린 필하모닉이 어떤지 알아 보고 싶었을 뿐인데,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아니면 누가 되는데.’

    참 걱정도 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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