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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0화 (40/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40화

10. 6살, 입장(5)

길을 잃었다.

베를린 테겔 국제공항에 내린 뒤, 속이 울렁거려 화장실을 찾는 것까 지는 좋았는데.

어머니와 이승희가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리저리 찾아봤지만 아무래도 중간에서 길이 엇갈린 듯하다. 어디를 봐도 나와의 관계없는 사람들이 지 나가고 있을 뿐이다.

‘아동 보호소로 가는 게 빠르겠지.’

그래도 일본이나 미국이 아니었기에 다행이다.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여보시게, 젊은 양반. 길을 잃어 그러는데 여기 아동 보호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시겠는가. 내 부탁 함세.”

사람이 말을 하면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할 텐데 공항 직원은 멍청하게 두 눈을 끔벅일 뿐이었다.

시끄러워 잘 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말하자 크게 웃었다.

‘왜 저래?’

“그래. 길을 잃었구나. 아저씨랑 같이 가자. 데려다줄게.”

“고맙게 되었소. 그대는 참으로 친절하구려.”

“하하하하!”

일단 데려다준다기에 그의 손을 잡고 따라가고는 있는데, 뭔가 상당히 불쾌했다.

아동 보호 센터에 도착한 나는, 후 덕한 여성에게 오렌지 주스를 받아 마셨고. 감사 인사를 하자 그녀도 큭큭 대며 웃었다.

잠시 뒤, 어머니와 이승희가 헐레 벌떡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빈아!”

“ 엄마.”

주스를 옆에 내려놓고 어머니에게 향했는데.

어머니께서 나를 꽉 끌어안으셨다. 걱정을 많이 하신 모양이다.

“엄마, 저 괜찮.”

순간, 어머니께서 나를 무릎에 걸 치시곤.

짝!

“악!”

“엄마가 같이 가자고 했지? 그렇게 갑자기 뛰어가면 어떡하니!”

어머니께서 엉덩이를 두 대 때리셨다.

어머니께 훈육이라 하더라도 맞아 본 적은 처음이었기에 깜짝 놀랐다. 애초에, 엉덩이를 맞는 게 몇십 년 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엄마, 그게 아니고.”

“도빈이 여기서 길 잃으면 엄마랑 다시는 못 봐. 그래도 좋아?”

그럴 리는 없지만 어머니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 줄 알았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다시 한번 나를 꽉 끌어안으셨다. 우시는 걸 보 니 내 생각보다 크게 놀라신 모양이다.

아동 보호 센터의 직원들과 이승희 마저 감동스러운 재회에 흐뭇한 표 정을 짓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이승희가 직원에게 독어로 물었다.

“보안 직원이 데려와 주었습니다. 아이도 침착하게 잘 있더라고요.”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승희와 그때까지도 나를 끌어안 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정신을 차리 시곤 날 안내해 주었던 보안 직원에 게 인사하셨다.

“아뇨. 아드님께서 독일어를 참 잘 하시더라고요. 하하하.”

“네?”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지만, 어럽거나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도 쓰고요. 독일에 오래 거주하신 모양 입니다. 그렇지? 어린 친구.”

“그게 무슨……

뭔가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았기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보안 직원이 나를 부르기에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처음이지만 큰 도움을 받았네그 려. 감사하지.”

“푸하하하! 그래. 다음에 또 보자. 그럼 저는.”

크게 웃은 보안 직원이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섰고, 이승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았고, 아동 보 호 센터 직원은 조금 전처럼 큭큭 대며 고개를 저었다.

“도빈아, 너 독일 말은 어떻게…"

가장 놀라신 어머니께서는 말조차 제대로 못 이으셨다. 모른 척 적당히 넘어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서 예전에 생각해 둔 변명을 하였다.

“영화 보면서 배웠어요.”

“영화?”

“네.”

“어머.”

이승희가 놀란 듯, 신기하다는 듯 나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일본말도 조금 할 줄 안다고 들었는데. 도빈이 정말 대단 하네? 다행이네요, 어머님. 도빈이 가 독일에서 적응하는 게 빠르겠어요.”

“그렇긴 하지만……

어머니께서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보셨다.

그러더니 문득 뭔가를 떠올리셨는 지 말을 돌리셨다.

“어쨌든 혼자 다니면 위험해. 알겠니?”

“네.”

그렇게 독일에서의 첫 번째 날이 소란스럽게 시작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빌 헬름 푸르트벵글러는 65세임에도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철저히 관리 했으며 조금이라도 많은 음악 활동을 위해 자기관리에도 힘썼다.

그런 그에게 최근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도통 마음에 드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없었기 때문.

견습 과정을 거친 사람 중에 단 한 명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기 준에 부합되는 사람이 없었고, 오디 션을 보기도 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제1첼로 수석인 이 승희가 선물해 준 앨범을 듣고.

그는 정말 오랜만에 그 바쁜 노년을 치유 받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믿을 수가 없군.’

그 역시 작곡가이자 연주자이자 지 휘자였기에 배도빈의 ‘밴쿠오의 자손’을 듣곤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일렉트릭기타와 함께 연주한 곡이 라고는 하지만 그 강렬한 사운드에 배도빈의 바이올린은 조금도 묻히지 않았다.

소리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없고서 야 불가능한 조율이었다.

이러한 곡을 다섯 살 난 아이가 직접 작곡, 연주까지 훌륭하게 해냈 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카모토가 극찬했다고 하더니 과연.’

처음에는 사카모토 료이치가 과한 반응을 보인 건 아닌가, 싶었지만 음악으로 증명하고 있으니 푸르트벵글러도 점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멋진 곡을 들으면 들을수록 말 이다.

‘허허.’

단순히 매력적인 주제음을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곡 전체의 구성에 있어서도 완벽할 따름.

과연 그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연주자인 이승희와 세계적인 작곡가 사카모토 료이치가 칭찬할 만했다.

이런 친구가 오디션을 보러 와준다 고 하니, 방에서 ‘Dobean Bae 배도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 곡’을 즐기고 있는 푸르트벵글러로 서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걱정을 덜 수도 있겠군 그래.’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거리도 있었는데.

그것은 현재 공식 오디션의 자리가 ‘부수석’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부수석을 맡아와 주던 사람이 은퇴하면서 생긴 그 자리를 과연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맡을 수 있을까.

또 단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푸르트벵글러는 자신이 결정 한 오디션 결과에 대해 이견을 받아 들일 생각이 없었다.

기존 평단원 중에서 승진을 시켜주는 것은 애초부터 고려조차 하지 않은 문제였다.

오로지 실력.

실력만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부수석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한 차례 치른 오디션 결과는 ‘수준 미달’.

심지어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는 사람조차 푸르트벵글러의 기준에는 부합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부수석을 공석으로 두는 것도 방법이겠군.’

그렇게 생각한 그는, 오늘 독일로 온다는 배도빈을 마지막 희망으로 생각하고 다시금 그의 음악을 감상 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독일에 오고 이튿날.

볼일을 보러 간 이승희를 두고, 어 머니와 함께 본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내린 그곳은 지하철과 달리 곧 장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천천히 걷자 곧 익 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시간이 흘러 그 흔적이 느껴지기는 해도, 예전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뭔가 내 얼굴인 듯한 그림이 여기 저기에 걸려 있어서 부담스럽다.

“도빈아, 저기 봐.”

‘저건 또 뭐야.’

후대 사람들이 나를 떠 받들어주고 있다는 거야 대충 알고 있었지만, 예전에 살던 곳에 위치한 청동상을 보곤 할 말을 잃었다.

키 작고 심술 맞게 생긴 남자가 서 있는데.

솔직히 기쁘진 않다.

그렇게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잊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예전에도 성인이 된 이후로 본에 온 것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뿐으로, 빈으로 돌아간 뒤에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본 집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어렸을 적의 추억을 함께한 사람들 과 라인강이라면 모를까.

“저쪽으로 가야 했던가? 도빈아, 손.”

“네.”

‘여기를 돌면.’

어머니를 따라 골목을 도니, 큰 길 쪽에 당시에도 수수했던, 내가 살았던 그 건물이 보였다.

“도빈이가 좋아하는 베토벤이 저기 서 살았대. 한번 들어가 볼까?”

지금도 충분히 감회가 새로워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어 머니께 이끌려 들어갔다. 내 예전 집에 들어가는데 돈은 대체 왜 내야 하는지.

더군다나 막상 들어오니.

‘내 집이 아닌데.’

정확히 말하면 내 집이긴 하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일단 내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림은 왜 걸어둔 거야.’

나와 그다지 상관이 없었던 사람의 그림도 있고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 하여 보는 듯 마는 듯했다.

‘하이든이라.’

사실 그리 좋은 사제관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하이든의 그림을 가져다 놓은 걸 보면 의아하긴 하다.

또…….

‘저건 또 어디서 찾았대?’

안토니의 초상화가 있었기에 민망 하기 그지없었다.

‘프란츠 그 친구가 못 본 게 다행이로군.’

대체 내가 죽고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예전 집을 꾸며 놓았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빈’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듯한 10호 전시실만큼은 정말 신기했는데, 조금은 무서울 지 경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게 당황하면서 슬쩍슬쩍 훑어보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재미없니?”

“아뇨. 그냥요.”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익숙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뭔가 내 집에 돌아온 느낌이 아니라서 어색하다는 말 이 정확할 듯싶다.

이 건물보다는 주변 경관이 내 향 수를 좀 더 자극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조금 걸어 강가가 아닌 조금 멀리서 라인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간은 정오가 되었고, 햇 살을 받은 라인강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반짝이고 있었다.

‘ 돌아왔구나.’

저 큰 강을 보고 있자니 비로소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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