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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9화 (39/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39화

10. 6살, 입장(4)

“뭐? 독일로 간다고?”

"응."

학원에서 만난 최지훈에게 독일로 간다는 말을 꺼내니 깜짝 놀랐다.

어찌나 놀랐는지 평소 얌전하던 녀석이 크게 소리를 낼 정도였다.

“왜? 왜 가는데?”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와달라고 했어.”

“베,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응."

더 크게 놀랐는지 이번에는 소리를 내진 않고 입만 뻐끔댔다.

그러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 내일 방송국에 간다고 자랑하려고 했는데. 나도 TV에 나온다고.”

“잘된 일이잖아?”

“그치만 넌 벌써 그렇게 대단한 곳에 갈 정도잖아. 자꾸 나한테 천재 라고들 하는데, 진짜 천재는 여기에 있는데. 후우.”

“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거짓말.”

“음. 노력하고 있지.”

기껏 위로해 주려고 이 몸이 후하 게 평을 해주었는데, 본인이 거짓말 이라고 하니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녀석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기에 어깨를 툭 쳤다.

“나 때문에 좌절할 거였으면 내 피아노 듣자마자 그랬어야지.”

"맞아.”

“그래.”

“반드시. 반드시 나도 독일로 갈 거야. 기다려.”

음악을 하려면 꼭 독일에서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렇다고 하니 일단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7살, 최지훈의 얼굴이 사뭇 진지했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저, 전화해야 해?”

눈물을 글썽인다.

“그래.”

친구가 울먹이며 배웅하는 모습을 보며, 최대한 밝게 웃으며 그를 위로했다.

EI그룹의 최대 매출사인 EI전자의 사장 최우철은 최근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아들 최지훈 과 비교되는 한 천재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때문.

얼마 전부터 일본, 미국에서 활동 한 천재 음악가 배도빈에 대한 기사 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흐음.’

최우철은 배도빈이 출연한 프로그 램을 보다 이내 TV 전원을 끄고 생 각에 잠겼다.

그는 EI전자라는 대기업을 이끌고 있지만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강요 하긴 싫었다.

그의 아내가 그러길 바랐고, 무엇 보다 그 자신이 EI전자의 사장직에 오르기까지 너무나 힘든 일을 겪어 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부모에게 항상 최고가 되라고 강요 받았던 최우철은 결국 EI전자의 전 사장이었던 장태웅의 비리를 파헤쳤고, 그간 쌓아온 입지를 통해 EI전 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즐겁지는 않았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노력과 그 성과를 손으로 쥐었을 때는 짜릿 했지만 ‘그 길’을 강요받았다는 데 에는 항상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하여 아들만큼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다행히 어린 아들에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음악.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던 최지훈은 아버지 입장에 있는 최우철이 보기에도 재능이 있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최지훈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본 사람은 모두 하나같이 감 탄하였다.

‘어린 나이에 대단하네요.’

‘정말 재능이 있네요.’

그도 부모인지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어리지만 아들이 부유한 환경에서 철없이 크는 게 아니라, 본인 이 좋아하는 일에 열중한다는 것도 흡족한 일이었다.

최우철은 그런 아들이 음악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누구보다도 좋은 환경을 가꾸어주었는데 힘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들보다 한 살 어린 아이가 주목을 받는 것이었다.

아들 덕분에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두었지만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지표로 드러나는 것만 봐도 아들 최지훈은 비교조차 안 될 정도였다.

처음에는 분명 거짓이라 생각했다.

수많은 천재를 만나봤지만 배도빈의 음악 활동은 다분히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력을 통해 따로 알아본 결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고는 아들 최지훈이 되어야 한다.

‘안 될 일이지.’

그의 독점욕과 부성애 그리고 최고가 되고 접할 수 있었던 전율이 한데 얽혀 최우철의 사고를 마비시켰다.

최우철이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김 비서, 이 실장 들어오라 하게.”

-네, 사장님.

잠시 후, 지난 몇 년간 이 실장이 최우철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이 실장은 최우철의 표정을 보곤 직감했다.

그의 수족으로 갖은 일을 해결했던 이 실장은 이번에도 뭔가 처리할 일이 생겼다고 판단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방송국 쪽에서 사람 하나 구해보 게. 유명한 PD면 좋겠군. 지훈이를 잘 포장해 알려줄 사람으로.”

부모는 부모인가.

평소와 같은 ‘더러운 짓’을 예상했던 이 실장은 의외의 말을 듣곤 고 개를 끄덕였다.

최우철이라는 완벽한 배경을 가진 최지훈은 그 음악적 역량도 충분해 보였다.

그런 아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야 같은 부모인 이 실장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리고 배도빈이라고 아나.”

“들어본 적 있습니다. 어린 천재라 고. 도련님과 같은 학원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네. 도련님과 각별한 사이라고 최 팀장이 말한 적 있습니다.”

최지훈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최 팀장이 한 말이라고 하니 최우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과 그런 사이일 줄은 몰랐는 데, ‘적’이 될지도 모르기에 경고를 해줘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군. 그 아이 관련한 언론 보 도는 억제하도록 하게. 지훈이 관련 기사 쓸 기자도 적당히 알아보고.”

“……네. 조치하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실장은 이제 갓 여섯 살인 아 이를 견제하는 최우철의 치졸한 요구를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도덕적으로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일이라도 반드시 이루어주는 것.

그리고 설령 그 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감정을 비우고 대답하는 것.

그가 최우철 사장의 최측근으로 살 아남을 수 있게 한 처신법이다.

“그만 가보도록.”

이 실장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대표실에서 나와 핸드폰을 꺼냈다.

베를린 필하모닉 공식 오디션을 일 주일 남기고, 나는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 있던 이승희가 반갑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

“어머니 너무 예쁘시다.”

어머니는 평소와 다른 게 없는데,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이승희도 입 발린 말을 참 잘하는 것 같다.

“도빈이도 안녕?”

“안녕하세요.”

“표정이 안 좋은데? 아, 아빠하고 떨어져 있기 슬퍼서 그런 거구나?”

“호호. 그건 아닐 거예요. 도빈이가 비행기 타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어머. 그래요?”

이승희가 쪼그려 앉아 내 앞에 장난감을 보였다.

“누나가 도빈이 주려고 비행기 장난감 사 왔는데. 싫어?”

“어머. 그런 거 안 하셔도 되는데.”

“도빈아?”

의아해하는 어머니와 이승희를 두고 아버지에게 갔다. 그러곤 아버지를 꽉 하고 안아드렸다.

“도빈아……

이승희가 울컥했는지 잠긴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나는 나와 어머니를 보내고 이곳에 홀로 계실 아버지를 잠시나마 위로하기 위해.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

나를 위해 본인을 희생한 아버지가 홀로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파졌기 때문이다.

“읏샤!”

그러자 아버지께서 나를 번쩍 들곤 나를 올려다보며 씩 하고 웃으셨다.

“엄마 잘 지켜드려야 한다?”

“네.”

이 어린 몸은 조금만 감정이 움직 여도 자꾸만 눈물을 쏟으려 했기에, 그간 조절해 나가는 중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런 나를 보더니 이내 가슴에 꽉 끌어안으시곤 머리를 쓰다듬었다.

곧 어머니께서 뒤에서 나와 아버지를 안으셨고, 우리 가족은 한동안 그렇게 못내 남은 아쉬움을 달랬다.

잠시 뒤.

“그럼, 다녀올게요.”

“조심하고.”

“당신도 밥 잘 챙겨 드시고요.”

“걱정 마.”

어머니와 아버지가 인사를 나누었고 나는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일이 있어 바로 돌아가야 했기에 좀 더 함께 있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활짝 웃으셨다.

그래서 좀 더 마음이 아팠다.

체크인과 짐을 부치고는 출국 심사는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 와중에.

여러모로 감정이 복잡했다.

아버지가 외롭지 않도록 시간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다짐하였고.

내 오랜 고향 독일로 향한다는 것 에 조금은 설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로스앤젤레스에서 느꼈던 현대의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모습을 떠올리며,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가 장 유명한 관현악단이라는 핀 필하모닉에 함께한다는 생각을 하니.

사실, 나도 내 마음 상태를 잘 모르겠다.

“참, 도빈아. 오디션을 볼 곡은 정했니? 미리 알려줘야 해서.”

“아니요.”

“어?”

“네?”

이승희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고 의아했는데, 이승희 역시 당황한 모 양이다.

“그…… 연습이라든가 하려면 빨리 정해야 하지 않을까?”

“아.”

연습이라.

“괜찮아요.”

하루 종일 바이올린을 켜는 데 따로 연습 같은 게 필요할 리가. 평소 에 즐겨 켜던 곡 중 하나를 선보이 면 되리라 생각했다.

확실히 관현악단 입단 심사에 뭐가 필요한지 정도는 생각해 봐도 나쁘 지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독주곡이니? 독주곡도 좋지만 협주곡이 좋을 거야. 피아노를 쳐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친절한 곳이네요.”

“보통은…… 그렇지?”

“그러면 베트호펜 바이올린 소나타 F장조로 할게요.”

새로운 시작이니까.

‘좋은 피아니스트와 함께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승희와 함께 오디션을 볼 때 피아노를 맞춰 줄 피아니스트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를 들었다. 20년 이상 피아노를 친 베테랑이라는데, 과연 녹음 파일을 들어보니 괜찮은 피아니스트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곧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다.

-11 시 독일행 비행기에 탑승하시는 고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독일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이나 일본, 미국과 달리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는 없다는 점과 얼마나

변화했을지는 몰라도 배영빈이 컴퓨 터로 보여준 사진으로 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

그것만은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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