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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8화 (3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38화

    10. 6살, 입장(3)

    독일로 가게 되면 앞으로 더 바빠 질 것 같아서 ‘죽음의 유물: 2부’에 쓸 음악도 만들 겸, 일본에 방문했다.

    사건이 터진 주변은 위험하다고 하기에.

    또 나카무라 매니저가 고향인 후쿠오카에 머물고 있었기에 그쪽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함께 게이트를 통과하니 사카모토 료이치와 그간 통역을 해 주었던 누나가 웃으며 환영해 주었다.

    “료이치!”

    “하하. 잘 지냈는가.”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유진희 씨.”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곧장 나카 무라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듣기로는 이제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모 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곧, 큐슈 대학병원에 도착했고.

    나카무라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들 어섰다.

    정말 의외로, 꺄르르 하는 여자아 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카무라, 도빈이와 유진희 씨가 찾아오셨네.”

    “나카무라 씨.”

    사카모토 료이치와 어머니께서 인사를 하자,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후다닥 나카무라 옆으로 숨었다.

    고개만 빼꼼 내밀고 나카무라에게 찰싹 달라붙어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

    “이런, 선생님. 어머님.”

    나카무라가 앉은 채로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선 안심하여 나도 인사를 했다.

    “나카무라 아저씨.”

    “그래, 도빈이도 와줬구나. 고맙다. 편지는 잘 받았어.”

    다가가자 나카무라가 내 머리를 쓰

    다듬었다. 분명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일 텐데 밝게 웃는 것을 보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그러나 당사자가 저렇게 애쓰는데 슬퍼할 수는 없는 법이다.

    평소 하던 대로 일 이야기를 꺼냈다.

    “죽음의 유물 2부 음악 작업 때문 에 들렸어요. 완성되면 꼭 들어주세요.”

    “히야. 벌써 2부 준비할 때가 되었구나. 저번처럼 늦으면 안 된다? 하 하하.”

    “하하하.”

    잠시 웃고 정적.

    “아, 료코. 인사해야지? 아빠의 선 생님인 사카모토 료이치 선생님, 이 분은 유진희 씨. 그리고 얘가 바로 료코가 좋아하는 ‘Hochgefühl(넘치는 기쁨)’을 만든 도빈이란다.”

    나카무라의 딸이 수줍게 나와선 사카모토 료이치와 어머니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쳤는데 다시 나카무라의 뒤로 숨어버렸다.

    “하하. 제 딸이 낯을 가려서요. 원 래는 밝은 아인데 말이죠.”

    “귀엽네요. 료코는 몇 살이니?”

    어머니의 말을 통역가가 전달해 주 자 료코가 손을 쫙 펴보였다.

    “다섯 살? 도빈이랑 친구네? 도빈 아, 료코랑 잘 지내야 한다?”

    내게 ‘또래 친구’가 있길 바라시는 어머니는 료코와 나를 어떻게든 같이 놀도록 유도하셨지만, 료코가 마 음을 열지 않았기에 이내 포기하셔 야 했다.

    “그런데 도빈아, 바쁠 때 아니니? 영화 테마곡도 만들어야 하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오디션도 본다며.”

    “네. 그럴 거예요.”

    “아저씨라면 괜찮으니 어서 가.”

    “크흠. 도빈이가 자네 걱정을 얼마 나 했는지 모르네. 작업 핑계를 대 면서 굳이 오겠다고 했지.”

    사카모토 료이치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

    “녀석, 의리 있구나?”

    나카무라가 씩 웃으니 나도 모르게 조금은 쑥스러워져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방금 병실에 들어올 때 들은 나카 무라 료코의 웃음소리와 지금 저 밝은 나카무라의 미소.

    큰 재난을 겪었지만 그들이 행복을 모두 잃은 건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안도한 것은 사실이다.

    “멋진 음악을 들려다오. 다리는 다 쳤지만 귀는 멀쩡하거든.”

    “……네. 꼭 멋진 곡 들려드릴게요.”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병실을 나서 려는데.

    “와줘서…… 고마워.”

    나카무라 료코가 내 등에 대고 말했다.

    돌아서서 손을 흔들자.

    나카무라도 그녀의 딸도 손을 흔들어 화답해 주었다.

    “알렉스 데스플로가 보면 기절초풍 하겠구나.”

    후쿠오카에 있는 사카모토 료이치 의 별장에서 이틀간 머물기로 했다.

    일정이 빡빡한 편이었기에 나카무 라에게 병문안을 다녀온 뒤에 곧바로 악보를 보여주자 사카모토 료이치가 감탄했다.

    ‘죽음의 유물: 1부’에서도 음악 감독을 맡았던 알렉스 데스플로를 언급하면서 혀를 내두르는 사카모토 료이치를 보며 말했다.

    “제목은 ‘ein mutiger Geist(용감한 영혼)’이에요.”

    “확실히 테마를 잘 잡았네. 어 디……

    사카모토 료이치가 바이올린을 들 곤 테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독주로 제시한 주제음을 훌륭히 연주한 사카모토 료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해. 언제나 그랬지만 손을 댈 곳이 찾을 수가 없어. 하하. ……그 런데.”

    “너무 길어요?”

    “음. 아무래도.”

    ‘ein mutiger Geist(용감한 영혼)’의 연주 길이는 약 20분. 일반적으로 1 분에서 10분 사이로 만드는 사운드 트랙에 비해 좀 긴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 곡만으로도 서사를 만들어내고 싶었기에 그리 만들었다.

    “알렉스 데스플로가 들어봐야겠지.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네. 저번처 럼 편집되어 삽입될 수 있는 건 알 고 있겠지?”

    “네. 알고 있어요.”

    사카모토 료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내게 서류 하나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 곡에 관련한 계약서일 듯하다.

    “어머님을 모셔와 줄 텐가.”

    “그럴게요.”

    게스트룸에서 쉬고 계실 어머니께 계약서를 쓰는데 함께 계셔달라고 말씀을 드리고 자리를 함께했다.

    테이블에 나와 어머니, 사카모토 료이치와 통역가가 함께했다.

    “전과 같은 내용입니다. 저작권은

    도빈 군에게 있지만 사용권은 제작 사 측에 있고, 기한은 10년. 이후에는 확인을 통해 연장이나 해지를 할 수 있어요.”

    “네.”

    “도빈 군이 새로 작곡한 ‘ein mutiger Geist(용감한 영혼)’에 대한 수입은 매절, 즉 계약서에 명시한 금액만으로 지급될 예정입니다.”

    “그럼 얼마나 팔리든 도빈이에게는 추가적인 수입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다만 10년 이후부터는 제작사 가 유통사를 통해 받는 수익의 2할을 지급해 드리게 됩니다.”

    “……이쪽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조건이 불공평하다는 건 알겠어요. 사카모토 료이치 씨.”

    “맞아요. 도무지 도둑놈들 같은 장 사치밖에 없는 구조죠. 허허.”

    “저번 계약에서는 음악 판매 비율 이 책정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 데 이번에 달라진 이유가 따로 있나요?”

    사카모토 료이치가 내게 나쁜 제안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 머니께서는 계약 조건을 보시고 상 당히 꺼리시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음악을 만든 사람이 전체 수익의 극히 일부만 가져가게 되는 상황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첫 번째는 영화 음악의 수익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나름 도빈 군을 위해 애써 넣은 조항 이었는데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조절을 했습니다.”

    “대신 매절 형태로 수익을 보장해 주는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하신 거로 군요.”

    “네.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을 들은 어머니께서는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떼셨다.

    “사카모토 료이치 씨가 도빈이를 잘 대해준 것은 알지만 그런 계약이 라면 조심스러워지네요. 좀 더 알아 본 뒤에 결정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통역가로부터 전해 들은 사카모토 료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중해야지요. 그럼, 마지막으로 개런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사카모토 료이치가 두 번째 장을 나와 어머니께 보여주었다. 종이 가운데쯤에 적힌 숫자를 가리켰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도 마찬가지.

    “20만 달러. 제작사는 ‘가장 큰 희 망’을 만들어준 도빈 군에게 감사하 고 있습니다. 매절이란 형태 자체가 거부감이 드실 수 있겠지만, 현대 영화 음악에 단 한 곡 참가한 사람 에게 주는, 최고의 조건입니다.”

    사카모토 료이치는 장담을 한다든 지, 약속을 한다든지 하는 자질구레 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희망’을 만들어 주고받은 돈이 약 천만 원.

    20만 달러라 하면 내 기억으로는 2 억이 넘는 돈이다. 1년도 지나지 않아 내 곡의 가치를 20배나 높여 부른 제작사.

    그리고 그것을 신경 쓴 사카모토 료이치의 진심은 ‘액수’로 확실히 전 달되었다.

    놀란 것은 어머니도 마찬가지셨다.

    “20만 달러라니……. 실례지만 이미 픽스를 받은 액수인가요?”

    “네. 제작사도, 음악 감독인 알렉스 데스플로도 인정한 금액입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희망’에 대한 평이 좋다 보니 신경을 쓴 모양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잠시 고민하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조건이라면 확실히 매절이라 도 받아들일 이야기네요. 도빈이의 노력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어머니와 사카모토가 이것저것 추 가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머릿속으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떠올 려 보았다.

    족히 수십에서 수백억 원이라고 하 기에 애초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내 몸값이 계속 오르게 되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도빈아, 괜찮니?”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무 슨 일인가 싶어 어머니를 보자 사카모토 료이치와 함께 작게 웃으셨다.

    “이번 죽음의 유물 2부 OST 앨범 에, 도빈이 이름이 함께 올라간대.”

    "..."

    순간 뭔가 싶어 사고가 멈추었다.

    사카모토 료이치를 물었다.

    “그럼 그 전에는 안 들어갔어요?”

    “하하. 그래. 마지막 트랙의 작곡가로만 표기되어 있었지. 이번에 앨범 전면에 이름을 함께 넣는 건, 알렉스 데스플로 감독의 예우라고 생각해야겠지. 보통은 총감독의 이름만 올라 간다네.”

    뭔가 조금 생색내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어머니는 제작사 측의 서명이 이루어진 두 부의 계약서에 공동 서명을 했고, 사카모토 료이치와 각각 한 부씩 챙겼다.

    “아, 그리고 이번에는 꼭 감사연 때 함께해 달라고 하더군.”

    “그럴게요.”

    “기대하겠네. 하하.”

    그렇게 독일로 가기 전, 일본에서 해결해야 할 일을 모두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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